< 34. 제휴구단 (1) >
11월의 첫 번째 월요일, 나를 비롯한 스카우팅 팀은 출근하자마자 회의실에 모여 내년에 영입할 선수들의 자료와 영상을 보며 접촉할 대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직 다음 시즌까지는 기간이 한참 남은 만큼,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더 길게 보는 이야기도 나오곤 했다.
지금처럼.
"단장님. 우리도 여유가 되는 한 유망주를 좀 더 영입해 오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면 내가 말하기도 전에 다른 의견을 가진 스카우트가 반박했고.
"지금도 리그에서 가장 젊은 선수단이잖아. 유망주 영입 비율을 싹 줄이고, 경험 많은 선수를 영입하는 데에만 투자해야지."
스카우팅 팀과의 미팅은 일주일에 한 번씩 했다. 그리고, 이 두 의견은 어떤 방식으로든 늘 충돌했다.
여러 번 봐왔던 말다툼이었기에 나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비율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지금은 무조건 유망주 3, 경험 많은 선수 7 비율로 이적 자금을 쓴다고 생각해 주세요. 그것에 맞게 선수 보고서를 만들어 주시고요. 우리는 이번 시즌에 승격할 경우와 승격하지 못할 경우, 혹시라도 오랫동안 챔피언십리그에 남는 경우까지 전부 생각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두 스카우트가 시무룩해 하며 입을 다물었다. 다시 각 스카우트가 자신들이 조사해 온 선수에 관해 자료와 영상을 보여주고, 남은 사람들은 그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계속됐다.
보통 내가 가장 먼저 의견을 말하면
"비록 프랑스 3부 리그라지만, 저 반사신경과 침착함은 챔피언십에서도 먹힐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나치게 말랐습니다. 우리 팀의 라이언 같은 예도 있긴 하지만, 라이언은 몸이 아주 탄탄하죠. 저 선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일 수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스카우트들이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조니. 체질에 관해서는 확인했나요?"
"아뇨. 확인하겠습니다."
"다음 주 미팅 때까지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각자 조사한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면 해외로 출장을 나갔다 온 스카우트의 프리젠테이션이 시작된다.
아프리카 담당 스카우트인 빈스가 검은 화면만 띄워둔 채로 말했다.
"못 찾았습니다."
다른 스카우트들이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을 거다. 하지만, 빈스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절대로 논 건 아닙니다."
빈스가 그렇게 말하며 화면을 켰다. 선수들의 사진이 나오고 자료가 나왔다.
한 스카우트가 말했다.
"뭐야. 못 찾았다며?"
"그야 이 선수들을 영입 못 하니까요."
빈스가 손에 쥔 포인터를 이용해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수십 명의 선수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성인 선수들은 취업 비자를 받기가 너무 어렵고, 어중간한 나이의 유망주들 또한 몇 년 동안 유소년 팀에서 지내야 한다는 걸 못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아예 어린 유망주들로 눈을 돌려봤는데··· 빅클럽에서 이미 싹 쓸어갔더군요."
불만스러웠던 스카우트들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괜히 미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빈스가 날 똑바로 보며 물었다.
"단장님, 대체 협약 구단은 언제 생기는 겁니까?"
"지난주 금요일에 제안서를 보냈어요. 이번 주 내로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내 대답에 빈스는 안심한 얼굴을 했다. 이제 영입 제안이 좀 쉬워지겠다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3부 리그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유럽 내에서 선수 수급을 해결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회귀 전 지식이 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2부 리그에서 뛸 수준이 되는 선수들은 모두 빅리그와 빅클럽을 원했다. 유망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유럽리그에 익숙하고 유럽의 클럽들과 숩게 접촉할 수 있는 유럽 선수들이 특히 그랬다.
그렇기에 우리와 차원이 다른 규모의 빅클럽들과 빅리그에 소속된 클럽들에게 괜찮다 싶은 선수들은 전부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데려갈 수 있는 건 빅클럽의 스카우팅 팀이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선수들뿐이었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애매한 위상의 리그에 소속된 클럽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같은 구단은 유럽이 아닌 다른 곳을 노려야 했다. 그쪽도 빅클럽들의 스카우트가 퍼져 있긴 했지만, 유럽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 팀에 올 선수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영국의 악명 높은 취업 비자를 해결해주며 실전 경험까지 제공할 '제휴구단'이 필요했다.
한 스카우트가 물었다.
"어느 나라의 클럽인가요?"
"벨기에요."
"클럽 이름이···."
그 순간, 갑작스럽게 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나는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슬쩍 꺼내 전화를 건 상대방을 확인했다.
[프란시스 페르난데즈(KVC베스테를로의 구단주)]
나는 스카우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미스터 킴, 오랜만이에요. 제안서 잘 봤어요. 만나고 싶은데 제가 노팅엄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예? 직접 오시겠다고요? 아닙니다. 제가 직접 찾아갈게요."
프란시스가 몇 마디 더 했지만, 나는 끝까지 내가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내 통화를 기다리고 있던 스카우트들에게 말했다.
"내일이면 제휴구단이 생길 것 같네요. 다시 회의 시작할까요?"
**
김도운과 스카우팅 팀이 막 미팅을 시작했을 때, 벨기에 2부 리그에서 꼴찌를 달리고 있는 클럽, KVC베스테를로의 구단주실에서 클럽의 감독과 구단주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무 걱정 마요. 잘 될 거예요."
"구단주님!"
베스테를로의 감독 퍼시가 목소리를 아주 살짝 높였다.
구단주 프란시스는 무척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사람이 좋고 느긋했다.
장점은 감독인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주고,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단점은··· 지금 같은 위기 상황일 때도 크게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 11월이 되었을 뿐이에요. 저는 감독님이 잘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적어도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해고하지 않을 테니 불안해하지 마요."
그는 아주 이상적인 구단주이긴 했다. 하지만, 퍼시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구단주에게 이것저것 요구해야 했다.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공격의 50% 이상을 담당했던 공격수와 윙어의 부상으로 연패행진을 달렸고, 둘이 복귀하고서도 팀의 처진 분위기를 살리지 못해 11월 초가 된 지금까지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믿음은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 잘라서라도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때입니다. 팬들의 원성이 정말··· 끔찍해요."
퍼시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프란시스 또한 입가에 미소를 지웠다. 프란시스는 곧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이적 시장은 끝났고, 임대 기간도 끝났어요. 뭘 어떻게 더 해야 하죠?"
프란시스 또한 팀에 문제가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말한 거였다.
퍼시가 말했다.
"자유 계약 선수를 데려온다던가 입단 테스트라던가··· 아니면 후반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팬들과 선수들에게 보여준다던가···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돼요. 더 영입했다가는 FFP(구단의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안 된다는 규칙)에 위반돼요."
프란시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원래 이 클럽은 프리미어리그의 첼시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계약이 끝나며 임대해 준 선수들을 전부 데려가 버리는 바람에 선수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프란시스는 원래부터 자신의 클럽이 빅클럽의 하위 구단이 되어 휘둘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돈을 풀어 선수들을 평소보다 더 영입했다. 하지만, FFP 때문에 영입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선수를 영입할 때, 최대한 좋고 비싼 선수들을 데려왔다. 1군 선수단 19명. 부족한 선수층이 걱정되긴 했지만, 2부 리그에서는 좋은 선수들이었기에 믿었는데··· 부상 악령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
"머리가 아프네요. 후반기는 어쩌죠? 시즌 중에 제휴구단을 구하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하아. 다 꼬여버렸네요. 이래서 단장을 데려오려고 했던 건데."
프란시스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프란시스는 최근 자신의 고집을 꺾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제휴구단을 구하기 위해 빅리그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웬만한 팀들은 다 제휴구단을 갖고 있거나 임대를 보내줄 만큼 팀에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뭐··· 지난 일이지 않습니까."
퍼시의 말에 프란시스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아쉬워요. 2년 반 전에··· 미스터 킴이 거절했을 때··· 연봉을 열 배를 불러서라도 데려왔어야 했어요. 그 단장이 해낸 일을 봐요!"
"저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에 안 왔잖습니까."
"그러니까 후회되는 거예요."
그때,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프란시스가 말했다.
"들어오세요. 애니. 무슨 일이에요?"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구단의 행정직원 애니였다. 애니는 여기까지 뛰어온 건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숨을 크게 들이 내쉬고 있었다.
퍼시가 물었다.
"뭐 급한 일 있어요? 지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퍼시의 말에 애니가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이며 파일철에 깔끔하게 넣어진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이건 구단주님에게 직접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의 노팅엄 FC에서 제휴구단 협약을 맺고 싶다고 지난주 금요일에 메일과 팩스가 왔었더라고요."
"뭐요?"
"정말?"
프란시스와 퍼시가 앞다투어 서류를 집어 들었다. 프란시스가 먼저 서류를 잡았고, 눈을 부릅뜨고 읽었다. 퍼시 또한 바로 옆에 딱 붙어 서류를 읽었다.
그리고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프란시스가 말했다.
"전화, 전화해야 해. 내 스마트폰 어디 갔나. 미스터 킴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을 거야."
퍼시는 프란시스의 책상으로 달려고 스마트폰을 집어왔다.
프란시스는 바로 김도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란시스는 떨리는 얼굴로,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기 너머에 있을 김도운에게 말했다.
"미스터 킴, 오랜만이에요. 제안서 잘 봤어요. 만나고 싶은데 제가 노팅엄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
"···오랜만이네."
나는 노팅엄의 경기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경기장 앞에 서 있었다.
인구 2만 5천 명의 작은 도시, 베스테를로에 위치한 KVC베스테를로라는 클럽은 회귀 전 내가 직접 운영해 7년 만에 벨기에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팀이었다.
회귀 후인 지금은 2부 리그 꼴찌를 달리고 있었지만.
"진작 제휴를 맺자고 제안했어야 했는데. 설마 이번 이적 시장 때 제휴구단을 안 구한다는 판단을 할 줄은···."
나는 자조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내가 회귀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 팀은 계속 승승장구해 지금은 2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어야 할 팀이었다.
회귀 전, 이 시기의 나는 첼시와의 계약 관계를 끝내고 뉴캐슬과 제휴구단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해 편하게 선수를 수급할 수 있었다.
벨기에 리그는 빅리그를 가기 위해 거쳐 가는 리그라는 인식이 강했고, 벨기에의 클럽들조차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벨기에 리그의 클럽들은 2중 국적을 발급받기 좋다는 장점을 이용해 잉글랜드의 클럽들과 제휴구단 관계를 맺고, 선수를 수급받았다. 거의 모든 팀이 그랬다.
"아이고, 먼 길 잘 오셨어요."
"오랜만입니다. 프란시스 구단주님. 2년 반 만에 만나는 건가요?"
하지만, 내 눈앞의 구단주는 벨기에 리그의 그런 시스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이 클럽을 사랑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클럽을 원한다고 늘 내게 얘기했었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 이런 실수를 하게 된 걸 거다.
회귀 전의 나는 그가 이상을 말하면 그걸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늘 고민했고,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경영했다. 그렇게 이 베스테를로를 벨기에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어 냈다.
하지만, 지금의 베스테를로는 3부 리그 강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괜히 마음이 아파졌다.
혹여 표정에라도 드러날까,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프란시스에게 말했다.
"안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 34. 제휴구단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