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06화 (106/245)

< 35. 12월의 라이언 (1) >

-11월 내내 노팅엄 FC가 리그에서 고전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간단하죠. 챔피언십리그의 팀들이 노팅엄 공략법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오전 8시.

노팅엄시의 출근 시간에 맞춰 시작된 라디오 방송에서는 늘 그렇듯이 노팅엄 FC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진행자는 질문하고, 패널로 섭외된 축구 전문가는 질문에 답해주는 방식으로 방송이 진행됐다.

-공략법이요?

-예. 노팅엄 FC의 모든 공격을 담당하는 루카 바르뎀을 집중적으로 수비하는 거죠.

-오··· 정말이네요. 시청자분들, 제가 지금 자료를 보고 있는데 11월에 바르뎀이 태클을 당한 숫자가 두 배로 늘었어요.

이어서 전문가가 말했다.

-그 숫자만큼 다른 팀들이 바르뎀에게 거칠게, 혹은 대인마크를 붙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노팅엄이 주춤하고 있는 거고요. 은퇴를 앞둔 리오넬 메시조차도 대인마크가 붙으면 힘을 못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르뎀 수준으로는 대인마크가 한 명만 붙어도 경기가 버거워지죠.

-그렇군요. 그래서 제가 사랑하는 노팅엄이 힘들어하고 있는 거군요.

-예. 바르뎀은 그만큼 노팅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요.

진행자가 말했다.

-운이 좋게도 11월에 1패밖에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 가시밭길이겠군요.

-예, 해결책을 찾아야죠.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바르뎀을 중심으로 공격을 진행하는 전술 자체를 바꾸거나···.

-바꾸거나?

-루카 바르뎀의 부담을 나눠 짊어줄 선수를 겨울 이적시장에 데려오는 거죠. 아니면, 바르뎀의 파트너 라이언이 바르뎀만 마크해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줄 정도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던가.

진행자와 전문가의 말은 계속되었지만, 라디오를 듣고 있던 라이언이 이어폰을 빼버렸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더 들을 수 없었다.

방금 들은 전문가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라이언이 중얼거렸다.

"나도 잘 안다고···."

"뭐라고?"

"아니야. 혼잣말이야."

옆에서 졸면서 걷던 루카가 라이언에게 물어 라이언은 중얼거리는 걸 멈출 수 있었다.

라이언과 루카는 함께 훈련장으로 출근하는 중이었다.

루카는 다시 눈을 떴다가 감았다 하며 졸린 기색을 보였다.

라이언은 그런 루카를 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잭슨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자신에게 공격적인 플레이를 몸에 익힐 걸 요구했다.

그리고 4부 리그에 있을 때는 간혹 '그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같은 피드백 정도를 해 줬었다.

3부 리그 시절에는 경기가 끝난 후, 수시로 피드백을 해 주고 패스의 정밀도를 올릴 것을 요구했었다.

라이언은 훈련 후에도 시간을 쓰며 열심히 했다. 잭슨이 만족하는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열심히 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의 잭슨은 그동안과는 다르게 라이언에게 직접 지도를 하기 시작했다.

라이언은 코치들과 2군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상황을 연습했다.

두 명 이상의 선수에게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패스까지 하기, 침투하는 선수의 타이밍에 맞춰 패스하기, 그리고 가장 많이 하는 게 경기장 중앙에서 좌우로 정확하게 패스하기 같은 것들을.

잭슨이 직접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라이언은 잭슨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이 루카의 부담을 덜어줄 만큼의 공격력을 갖길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로 수준의 수비들 사이에서 공격적인 패스를 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실제 경기에서도 몇 번 시도했다가 어이없게 공을 내주고 역습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지난 경기에서는 루카가 워낙 심하게 마크를 당해 라이언이 패스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라이언은 그 기회를 거의 살리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노팅엄은 비겨버렸고.

"라이언?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별거 아냐. 들어가자."

"응."

라이언은 걱정을 숨기고 출근한 동료들과 인사하며 일과를 시작했다.

*

팀 훈련이 끝나고, 라이언은 코치 둘, 잭슨과 함께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잭슨은 무표정한 얼굴로 라이언을 보고 있었다.

라이언은 잭슨을 볼 때마다 괜히 미안함과 분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 라이언은 정말 최악이었다. 하지만, 잭슨은 경기 후 드레싱 룸에서 라이언을 전혀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래 맡은 역할인 수비적인 부분에서의 문제점만 지적할 뿐이었다. 그날 엄청나게 깨졌던 할리는 잭슨이 라이언만 편애한다고 투덜댈 정도였다.

라이언은 잭슨이 왜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았는지 알고 있었다.

아직 자신의 공격적인 능력이 잭슨이 기대할 만큼 대단하지 않아서였다.

라이언은 더 잘해서 잭슨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답답했다.

"라이언, 집중 안 하나?"

자꾸 다른 생각을 하니 훈련조차 잘되질 않았다. 라이언은 잭슨의 질책을 듣고, 집중해보려고 했으나 실수는 계속됐다.

잭슨은 몇 분 동안 팔짱을 낀 채로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라이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훈련을 도와준 코치들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수고했어."

"맛있는 거라도 좀 먹어."

코치들은 제각각 대답하며 장비를 들고 건물로 돌아갔다.

라이언 또한 터덜터덜 걸어 건물로 향했다.

그때, 아직 자리에 남아있던 잭슨이 물었다.

"라이언, 오늘 점심은 누구랑 먹나?"

특별한 피드백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잭슨이 훈련 후에 말을 거는 일은 없었기에 라이언은 살짝 긴장하며 답했다.

"루카, 로드랑 식당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잭슨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셋이라면 하나쯤 빠져도 괜찮겠군."

"예?"

"라이언, 내가 인도 음식을 맛있게 하는 가게를 아는데··· 같이 가겠나?"

"아··· 예! 가겠습니다."

뒤늦게 잭슨이 점심 식사를 권유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라이언이 힘차게 대답했다.

라이언은 피트니스 룸에 남아있던 루카와 로드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잭슨의 차를 타고 노팅엄시의 시내로 향했다.

**

잭슨과 사적인 자리가 처음인 라이언은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잭슨은 훈련장과는 다른 부드러운 얼굴로 라이언에게 평범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건 카레에 찍어 먹으면 돼."

"네, 감사합니다."

"긴장할 필요 없어. 편하게 식사나 하자고 온 거니까.""예···."

잭슨은 편하게 식사를 하러 왔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자신의 부인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시작으로 가족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손자가 말이야··· 저번에 유소년 대회에서 퍼펙트 해트트릭을 했단 말이야? 대체 누굴 닮아서 그런지···."

"감독님을··· 닮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뭐? 하하. 라이언 자네 아부도 할 줄 아는구만. 아무튼, 우리 집안에서 천재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어. 또, 학교에서 성적은 얼마나 좋은데···."

특히, 손자 자랑은 메인요리가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됐다.

거의 3년 동안 잭슨을 봐왔던 라이언은 이 모습이 어색했지만, 점점 적응돼 잭슨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후식이 나왔을 때, 잭슨이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예?"

"온종일 정신이 딴 데로 가 있으니 물어보는 거야. 내일도 이러면 훈련에 차질이 생기니까."

"아···."

라이언은 얘길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입을 열었다.

"지난 경기에서 엉망이었던 게 분해서···."

"분하면 훈련을 더 열심히 해야지, 정신이 나가 있으면 되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라이언은 고개를 숙였다. 잭슨은 그런 라이언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라이언, 자네는 충분히 훌륭한 프로 선수야. 적어도 팀에서 수비적인 역할로 1인분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좋은 선수지."

"···예?"

느닷없는 칭찬에 라이언이 고개를 다시 들었다. 잭슨은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계속 말을 늘어놓았다.

"착각이라면 민망하겠지만, 내가 자네에게 보이는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얘기야."

라이언은 입을 다문 채 잭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잭슨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직접 기대한다는 말을 한 거였으니까.

잭슨이 라이언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내 기대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게 맞았나 보군."

"···예."

"그래.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게 아니고서야 모르는 게 이상하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크게 부담이 됐나? 며칠 동안 훈련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잭슨은 드레싱 룸이나 훈련장, 경기장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라이언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사실··· 아주 조금요."

잭슨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서, 못하겠나?"

"예전에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이언의 말에 잭슨이 우울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라이언은 그동안 궁금했던 걸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수비적인 것도 잘하고, 공격적인 것도 잘 할 수 있는 만능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잭슨은 라이언을 직접 프로로 데뷔시킨 은인이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이유를 묻지 않고 잭슨이 요구하는 걸 어떻게든 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한계에 부딪힌 지금은 이유를 꼭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슨은 라이언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어 천천히 말했다.

"나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을 다뤄본 적이 없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을 직접 이끌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많은 유형의 선수들을 보고, 연구해 왔지. 월드클래스 선수들은 두 가지의 소질 중 적어도 하나를 갖거나, 둘 다 갖고 있더군."

"어떤 거죠?"

"하나는 압도적인 재능. 또 하나는 불굴의 정신력."

잭슨은 그렇게 말하며 라이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네를 처음 봤을 때, 드디어 나의 뮤즈가 되어줄 선수를 찾았다고 느꼈네. 자네에게서는 훌륭한 정신력이 보였거든. 그리고 한 시즌, 두 시즌을 보내며 확신했지.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자네가 월드클래스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예···? 월드클래스요···?"

"그래, 최상위 리그에서 경기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월드클래스 말이야. 1부 리그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감독의 어림짐작이지만. 나는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어째서···."

잭슨은 라이언의 벙찐 얼굴을 향해 말했다.

"내가 자네와 로드, 할리를 함께 봤을 때를 기억하나?"

"유소년 친선경기였던가요?"

"그래, 자네는 수준 차이가 몇 배 나는 팀을 상대하면서도 절대 방심하지 않았고, 몸을 던지는 걸 주저하지 않았어. 대충 경기를 뛰던 로드, 할리와 달리 말이야."

라이언은 고작 그런 거로··· 라는 얼굴로 잭슨을 바라보았다.

잭슨이 덤덤하게 말했다.

"당연히 그것뿐만이 아니지. 자네는 거기에 더해 훌륭한 기본기와 좋은 발목을 갖고 있었어. 기본기가 없는 정신력은 허울뿐인 정말 슬픈 재능이지만, 자네는 내 기준으로 그 정신력을 살릴 수 있는 것들을 갖고 있었다고."

잭슨은 그때를 떠올리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라이언은 조용히 잭슨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잭슨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넣은 골은 전부 중요한 경기에서 나왔네. 또한, 자네는 중요한 경기에도 긴장하는 모습 없이 늘 좋은 경기력을 보여 줬어.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 줬지. 그걸 보며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네."

"감사합니다."

"동료를 챙길 수 있는 여유도 갖고 있고, 주변 선수들에게 휘둘리지도 않아. 훈련 태도는 늘 훌륭하고 그만큼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지. 나는 자네가 틀림없는 월드클래스의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잭슨이 자신을 이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라이언은 살짝 울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잭슨은 어두운 얼굴로 이어 말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내가 자네에게 잘못된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자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거지. 난 진짜 월드클래스 선수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까."

라이언은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잭슨의 말이 더 빨랐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건, 지금부터 할 얘길 하기 위해서네."

"···듣겠습니다."

"내일부터 추가 훈련은 없네."

"예?"

"현대 축구에서는 한 가지만 잘해서는 안 돼. 자네에게는 공격적인 능력이 필요해. 그러니까, 어떤 스타일의 공격적인 무기를 장착할지 스스로 연구하고 생각해 보게. 내 방법은 틀렸던 것 같으니까."

잭슨이 씁쓸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궁금한 것, 조언을 구할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아."

잭슨은 선수들 앞에서는 늘 완벽한 감독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 자존심까지 꺾어야 했을 것이다. 잭슨의 마음을 헤아린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여 잭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잭슨이 살짝 미소지으며 라이언에게 말했다.

"다른 선수들에게는 비밀이네. 자네니까 내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거야."

라이언은 잭슨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팀의 그 어느 선수보다 라이언을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라이언은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 35. 12월의 라이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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