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10화 (110/245)

< 35. 12월의 라이언 (5) >

"미쳤는데?"

"이게 된다고?"

골을 넣은 할리와 어시스트를 한 라이언이 차례로 말하고 하이파이브하며 포효했다. 이어서 다른 선수들이 둘을 덮쳤다. 상대 팀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이 세레머니를 지켜볼 뿐이었다.

<와아아아아!>

팬들의 환호가 더 커졌다. 팬들은 환호를 지르면서도 황당해하고 있었다.

응원가를 주도해야 하는 서포터즈의 대부분도 응원가 대신 이 놀랍고 빠른 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야. 우리 팀 맞아? 저번 경기랑 시작이 너무 다르잖아."

"저번 경기뿐이냐. 지난달 내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덩치 큰 서포터의 투덜거림에 키 작은 서포터가 말했다.

둘이 중얼거리든 말든 마른 서포터가 전광판에서 다시 재생되는 라이언의 패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야, 우리가 라이언이 데뷔할 때부터 경기를 봤잖아."

"응. 왜?"

"라이언이 이런 패스를 한 적이 있었나?"

잠시 후, 덩치 큰 서포터와 키 작은 서포터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그렇네! 처음이네!"

"미쳤어. 실수든 의도든 처음으로 보여준 패스를 골로 만든 거잖아!"

마른 서포터가 덧붙였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할리가 전력 질주를 했잖아. 이건 틀림없이 의도한 거라고! 라이언이 한 단계 더 발전한 거야!"

서포터들이 이야기를 더 나누려고 할 때, 이들이 소속된 서포터즈 오크스의 리더인 맥켄지가 응원가를 부르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다들 집중 안 해? 왜 이렇게 떠들어! 우리 선수가 골을 넣었는데!"

세 명의 서포터는 황급히 응원가의 중간부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설자와 기자석에서 챔피언십 최단시간 골이 몇 초인지 찾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었다. 리그 최단시간 골은 아닌 거로 판명 나서 다들 아쉬워했지만.

아무튼, 이 첫 골은 노팅엄의 경기장을 찾은 많은 사람에게 당혹스러움과 기쁨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 골을 만들어낸 주인공인 라이언은 얼떨떨한 심정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라이언의 옆에서 걷고 있는 루카가 물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응. 축구하면서 이렇게 쉽게 어시스트를 올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라이언 자신의 축구관이 부서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음미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루카가 말했다.

"아직 90분 넘게 남았어. 다시 정신 잡아. 이제부터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기억하고 있지?"

"아··· 응. 이 패스를 언제든지 뿌릴 수 있는 '척'을 한다."

데브라이너와 잭슨 감독 모두 첫 번째 패스가 만약 성공한다면 라이언에게 '미끼'가 되라고 지시했다.

라이언이 미끼가 되면 원래 공격 빌드업을 전담했던 루카가 본격적으로 활약해 상대방의 수비를 부수고 추가 골을 넣는 게 계획이었다.

"그래, 아까 네가 한 패스가 어느 정도 운이 들어가 있다는 걸 쟤네가 깨닫기 전까지 내가 꼭 한 골 더 만들어 볼게."

"응."

라이언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내심 아쉬워했다.

루카의 말대로 방금 패스에는 정말 운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발등에 잘 얹힌 건 훈련 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했던 패스가 온전히 내 능력으로 만들어낸 기술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

"아악! 또! 왜 패스 안 하는 거야!"

노팅엄의 오늘 상대 팀, 위건의 미드필더 블랭킷은 자신이 전담으로 마크하고 있는 라이언에게 소리를 질렀다.

"미안."

라이언은 그렇게 말하자마자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블랭킷은 어쩔 수 없이 라이언을 쫓아 뛰어야 했다.

첫 골을 실점하자마자 감독이 라이언을 전담 마크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노팅엄에 관해 분석한 걸 선수들에게 얘기해줄 때, 라이언의 공격적인 패스는 없다고 못 박았었다. 루카만 막으면 된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라이언이 시작하자마자 완벽한 패스로 첫 골을 만들어냈다. 완벽한 속도와 궤적이었기에 우연일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래서 블랭킷은 감독에게 따지려고 했다. 당신이 했던 말과 다르지 않냐고.

하지만, 감독 또한 당황한 얼굴이었기에 그 말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그저 라이언을 마크하러 지금처럼 달릴 뿐.

그렇게 경기가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고, 위건은 노팅엄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었다. 리그 순위가 별로 차이나지 않았기에 이런 경기 양상은 생각도 못 했던 거였다.

그래도 운 좋게 추가 실점은 안 하고 있었고, 점점 위건에게 다시 페이스가 넘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블랭킷은 점점 라이언의 첫 패스가 우연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야, 너 우연이었지."

"뭘."

"첫 패스 말이야."

라이언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자리에서 벗어나 달렸다. 루카에게 두 명의 미드필더가 붙었고, 루카는 둘에게 동시에 등을 지며 라이언에게 패스했다.

라이언은 공을 잡고, 순간 멈칫했다.

블랭킷이 봤을 때, 충분히 패스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는데도 하지 않았다.

블랭킷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패스 안 할거잖아! 이 사기꾼··· 어?"

그 순간, 라이언이 공을 찼다. 뻥 하는 소리와 동시에 블랭킷의 시선에서 공이 사라졌다.

<와아아아아! 달려! 달려!>

이어서 아까부터 귀를 시끄럽게 울려대는 노팅엄 팬들의 환호성이 더 크게 들렸다.

블랭킷은 공이 쏘아진 곳을 보며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라이언이 또 한 번,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

라이언의 패스가 또 한 번 상대 선수들을 가르며 세자르에게 연결됐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공을 받은 세자르가 한 번 멈칫하고, 슈팅을 가져갔다가 상대 골키퍼에게 방향을 읽혀 골을 넣지 못했다.

<아아아아···.>

팬들이 아쉬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라이언 또한 아쉬워하면서도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한 패스가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블랭킷이라는 이 선수가 자꾸 시비를 걸어 순간 울컥해서 공을 찬 거였기 때문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

라이언에게는 패스가 성공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이런 패스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들키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만약 실패했다면 감독님의 계획이 어긋날 뻔했으니까.

라이언은 블랭킷을 바라봤다.

블랭킷은 복잡한 얼굴로 라이언과 눈을 맞추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라이언은 고개를 돌려 잭슨을 바라봤다. 잭슨은 멍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라이언을 보고 있었다. 라이언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미안하다는 입 모양을 했다.

이어서 라이언은 루카에게 다가가 말했다.

"미안. 잠깐 흥분했어. 다시 수비에 집중할게."

"아니, 안 그래도···."

"두 번 연속으로 운이 좋다니, 정말 다행인 것 같아. 자, 힘내자."

"어, 응···."

라이언은 다시 뛰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을 마크하는 선수가 하나 더 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 감독님. 감독님? 잭슨?"

"아, 그래···."

알렉산더의 말에 멍하니 있던 잭슨이 정신을 차렸다.

"방금 라이언의 패스가 그렇게 좋으셨습니까? 제 말도 안 들어주시고. 지금 말씀드릴 게···."

알렉산더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잭슨이 말했다. 잭슨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잠깐만 시간을 주겠나. 재능이 개화하는 순간은 언제 봐도 황홀하거든."

알렉산더는 자신이 할 말을 넣어두고, 잭슨의 말에 대답했다.

"라이언 말입니까?"

"그래.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저 필드 위에서 조금씩 보여주고 있어."

"눈이요?"

잭슨이 자랑하듯 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로드, 할리보다 훨씬 더 대단한 선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 하지만, 나는 1부 리그 팀을 맡아본 적도 없는 2류 감독이었고, 내 눈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 오늘 경기 전까지만 해도."

"라이언이 감독님에게 자신감을 심어줬군요."

"그렇지."

잭슨은 그렇게 답하고,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라이언을 손자를 보는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짐하듯 말했다.

"라이언은 내가 직접 키운 첫 번째 월드클래스 선수가 될 거야."

그 말을 들은 알렉산더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 정말 기대되는 말이군요."

"그래야지."

"그럼, 이제 아까 못했던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응? 그러게."

"위건의 전술이 바뀌었습니다."

"뭐? 그걸 왜 이제 말하나?"

잭슨의 말에 알렉산더가 작게 중얼거렸다.

"감독님이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하셨잖습니까···."

알렉산더의 항변에 화를 내려던 잭슨이 어색하게 웃더니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중앙 미드필더가 두 명인 전술에서는 두 명 모두 수비와 공격 모두 어느 정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게 더 중요했다.

후반전이 되어서도 라이언은 수비 역할에 소홀하지 않고 있었다.

"비켜!"

"이이익!"

상대 미드필더들이 자신을 전담 마크하든 말든, 라이언은 킹이 헤딩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을 때, 그 공간으로 침투하려는 덩치 큰 공격수에게 몸싸움을 걸어 침투 시간을 늦췄다.

그 시간 동안 킹이 돌아와 함께 공격수에게 몸싸움을 걸어 공을 빼앗아내는 데 성공했다.

공을 빼앗은 후, 멀리 공을 차버린 킹이 라이언에게 엄지를 보이며 말했다.

"오늘 정말 최곤데? 공격도 잘하고, 수비도 잘하고."

"공격 패스는 두 번 밖에 안 했어."

"그게 더 대단하지! 딱 두 번 패스했는데 두 번 다 성공한 거잖아. 더 시도해 봐."

"안 돼. 감독님이 정해준 역할을 너무 벗어나면 팀플레이가 망가져."

"그래, 넌 감독님의 광신자였지."

"뭐?"

라이언이 발끈하는 건 보기 힘들었기에 킹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서 자리로 돌아가라고 눈짓했다.

라이언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킹이 말했다.

"우리가 2-0으로 이기고 있잖아. 넌 너무 욕심을 안 부려. 가끔은 욕심을 부릴 때도 있어야지. 그렇게 네 가치를 더 높여야지. 우리 팀에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내 가치를 입증 못 해서 2군에서 썩었었잖아."

"···조언 고마워."

"그래."

라이언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루카가 기점 패스를 했고, 테디의 낮은 크로스에 이은 세자르의 발리슛으로 2-0이 되었다.

그 이후, 감독의 지시에 따라 노팅엄은 천천히 패스하며 경기를 천천히 운영하고 있었다.

노팅엄이 완벽하게 경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 번쯤은 욕심을 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기 종료까지 10분 남았을 때, 라이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경기장 측면과 중앙 사이의 애매한 공간.

현대 축구에서는 이 자리를 하프 스페이스라고 지칭한다.

중앙 미드필더들은 중앙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도 여러 역할을 소화해야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 중 하나가 라이언에게 조언을 해 줬던 케빈 데브라이너였다.

"리턴!"

노팅엄의 공격 상황, 루카가 라이언에게 패스를 건네며 페널티박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원래대로라면 루카에게 바로 공을 돌려줘야 했다.

하지만, 라이언은 지금 하프 스페이스에 있었다.

그리고 이 공을 받아줄 선수가 루카 말고, 반대편 페널티박스에도 있었다.

'이 킥은 강한 발목이 있어야만 찰 수 있어.'

열 살까지 병원에서 살았다. 그랬기에 라이언 자신의 발목 힘은 타고난 것보다는 그 세월을 보상받기 위해 축구와 운동에 매진한 덕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사용한 자신의 무기는 정말 강력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운이 좋은 이 경기에서 한 가지를 더 실험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올랐다.

루카의 패스가 라이언의 발에 도착하는 순간, 라이언은 패스 대신 공 아래쪽을 발 안쪽으로 강하게 찼다.

회전이 걸린 공은 상대 미드필더의 머리 위를 지나고,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를 지나 반대편에 마크 없이 서 있던 요한의 머리를 향했다.

하프 스페이스를 사용할 줄 아는 중앙 미드필더가 패스 외에 갖춰야 할 무기, 바로 크로스였다.

라이언의 크로스는 이 경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요한은 갑작스러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머리를 갖다 댔고, 공은 골망을 흔들었다.

라이언은 주먹을 꽉 쥐고, 소리 없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와아아아아아!>

한 단계가 아닌 몇 단계 성장한 기분이었다.

노팅엄의 선수들이 골을 넣은 요한보다 라이언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렇게 노팅엄은 3-0으로 승리했다.

*

경기 후, 라이언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였다.

"라이언, 네가 루카보다 낫던데?"

할리의 말에 루카는 승부욕이 자극됐는지 라이언을 이상한 표정으로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최고였어."

"고마워."

"앞으로는 조언 해 주면 안 되겠다. 잘못하면 나보다 패스를 더 잘할 것 같아."

"루카···."

루카가 씩 웃고, 선수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이어서 로드가 말했다.

"정말 멋진 패스랑 크로스였어."

"네가 훈련을 도와줘서 좋은 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헤헤··· 아니, 나보다는 케빈 데브라이너를 모셔온 단장님이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나중에 꼭 고맙다고 말해."

"그래. 아무튼, 너도 고마워."

로드가 민망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라이언은 이어서 경기장 위의 쓰레기를 줍고 있는 훈련장을 관리하시는 아저씨를 만났다.

"어? 왜 여기 계세요?"

"허허, 경기장 관리하는 놈이 휴가를 가서. 그런데, 보러 온 보람이 있었구만. 앞으로도 늦게까지 문을 열어 줘야겠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있는 마리아를 만났고,

"오늘 경기 소감은 어때요?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 줬는데요."

"마리아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어머, 정말요?"

MOM 인터뷰도 했다.

"노아, 고마워. 네 조언 덕에 이렇게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어."

그리고, 경기장을 나와 드레싱 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잭슨을 만났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바람에 많이 늦었기에 라이언은 이렇게 말했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잭슨은 잠시 대답하지 않고, 라이언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는 살짝 웃고, 짧게 말했다.

"잘했다."

"운도 좋았고··· 저 혼자서는 못 했을 겁니다."

진심이었다.

감독, 단장, 팬, 직원, 동료의 도움··· 라이언은 경기장을 나오며 자신이 정말 축복받은 12월 초반을 보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빠른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게 많은 사람의 도움이라는 걸 가슴에 새겼다. 남은 시즌 동안 더 발전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라이언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잭슨은 정말 활짝 웃었다.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 마음가짐을 잊지 마라."

< 35. 12월의 라이언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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