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펍 포레스트 (2) >
한국의 여러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공식 번역 기사들보다 빨리 번역 기사들이 올라오곤 한다. 해외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실제 기사보다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짧게 요약도 돼 있고, 번역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춰 표현도 수정된다. 그래도 기사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의 많은 사람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공식 번역 기사보다 즐겨 읽는 컨텐츠였다.
지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이 글 또한 그런 번역 기사 중 하나였다.
[번역 기사](데이터주의)
선 요약부터 함. 길게 번역한 기사는 보고 싶으면 봐.
1. 이틀 전 리그 경기에서 볼 보이였던 존이 어제 FA컵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존의 나이는 불과 15세 3일이다.
2. 이렇게 어린 존이 왜 뛰게 됐냐면, 퍼스트, 세컨드 키퍼가 배탈이 나서 어쩔 수 없이 교체로 넣어놨는데, 주전으로 들어간 키퍼가 뇌진탕으로 실려 나오는 바람에··· 출전하게 됐다고 한다. 나도 어이없다.
3. 처음에는 긴장하는 것 같더니 서포터들의 격려와 볼 보이 친구들이 골대 뒤로 와서 끊임없이 놀려대는 바람에 긴장을 풀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4. 카메라에 친구들이 놀려대는 장면이 찍혔는데, 이게 특히 영국 전체에 화제다. FA컵은 신성하기만 한 게 아니라 즐거운 축구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줬기 때문에.
(존을 놀려대는 서포터들 영상 – 자막)
(존에게 훈수를 두는 세 친구 영상 – 자막)
(본문번역기사)
-ㅋㅋㅋㅋㅋ쏜 상대로 진짜 잘 막더니 이 정도로 어린 애였구나. 대성하면 좋겠다!
└해설이 몇 번이나 말해줬잖아. 15세 3일이라고. 귀가 없냐?
└미안 내가 정말 귀가 없어서...
└헐, 헐ㅜㅜ 미안해
└구라야. 사실 스피커 끄고 경기 봄
└개**야
└신고함 ㅅㄱ
-요약 ㄱㅅ
-요약 좀 해 주지.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듦
└(작성자)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시작부터 요약해놨는데. 너 안 읽었지?
└ㅎㅎ들켰군.
-급식들 진짜 커여워
-볼보이 친구들 표정 다 진지하네 ㅋㅋㅋㅋ 진심으로 훈수 두고 있는 듯?
-ㅋㅋㅋ 반 대항 축구 하던 생각난다
└ㄹㅇ 안 뛰는 놈들이 훈수 오지게 뒀었는데
└맞어. 근데 그런 놈들은 막상 뛰게 하면 못함
└ㅇㅈㅇㅈ
-또 노팅엄이야? 하부 리그 팀인데 무슨 3개월에 한 번씩은 소식 듣는 것 같네. 얼마전에 그 조로병 앓는 노아였나? 걔 재회한 것도 올라왔었잖아.
└한국인 단장이 운영하는 팀인데 이 정도면 진짜 적은 거지.
└에이전트 태가 워낙 큰 기삿거리를 몰고 다니니까 어쩔 수 없음. 노팅엄은 2부고, 태현석은 최소 1부 리그, 평균적으로 1부 리그 최상위급 선수들만 데리고 있으니까. 기사 나오는 양이 다르지.
└맞어. 이번에 크리스 앨런 레알 마드리드랑 재계약한 게 대박이었잖아. 또 웨일즈 월드컵 진출시켰다고, 주급을 거의 두 배로 뻥튀기해 받았다던데.
└일주일에 주급으로만 14억씩 받는다더라. 개 부럽다 진짜.
└레알 마드리드 피눈물 ㅋㅋㅋ
└레알 마드리드도 크리스 앨런으로 돈 겁나게 벌걸. 앨런 오고 챔스 우승 두 번 했고, 광고도 어마어마하게 찍고 있잖아.
└역시 잘생긴 게 최고야...
└야 니들 근데 왜 노팅엄 얘기하다 말고 딴 얘기하냐.
└아, ㅈㅅ
└미안요.
-지금 찾아보니까 노팅엄 리그 4위네. 이러면 내년에 프리미어리그에서 볼 수 있는 거 아님?
└와. 역대급이네. 4부에서 쭉 올라온 본머스도 2부 리그에서 2년 걸렸는데,
└김도운 진짜 현실 FM하네. 너무 부럽다.
-노팅엄 FC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우리 게시판으로 와 주세요! 노팅엄 게시판은 뉴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노팅엄 게시판이 따로 있음?
└네! 해외축구 게시판 절반이 노팅엄 얘기로 덮이는 바람에 사이트 관리자가 새 게시판을 만들어줬어요.
└오? 그 정도로 얘깃거리가 많음?
└일주일에 영상 세 개 정도는 올라오고,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아서요. 해외축구 매니아들 사이에선 유명해요. 제 바로 아래에 우리 게시판 관리자님 오셨네요.
잣나무라는 아이디의 유저가 기사에 등장한 선수들에 관해 장문의 설명을 하고 있었다.
-골키퍼 이름은 존. 영국 일진처럼 생긴 애는 잭. 너드처럼 생긴 애는 조. 그리고, 잘생긴 애는 레오. 얘네 전부 노팅엄 구단 내에서도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애들이에요. 다들 기억해 두세요. 국대 데뷔한 노팅엄 로컬 보이들처럼 열일곱 살에 충분히 리그에 데뷔할 수 있는 재능이라고 구단 내에서 평가받고 있어요. 특히 레오는 월드클래스 급 재능이라고 원래부터 축구계에서 유명했고요.
└국대 데뷔한 로컬 보이들?
└네, 로드, 할리, 라이언이요.
└아, 걔네가 노팅엄 애들이었음? 처음 알았네.
잣나무는 다른 유저들이 묻는 걸 성실하게 대답해줬고, 그러던 와중 한 유저의 질문에 새로운 사실이 알려졌다.
└와, 이 정도 팬이면 직관도 자주 가셨을 듯.
└네! 처음에는 길거리 음악을 좋아해서 몇 주 체류했었거든요. 그러다 노팅엄 FC에 푹 빠지고, 한국에 돌아와서 팬 카페도 만들고, 이 게시판 관리도 하고 그러고 있죠. 최근에는 공식 펍 신청도 넣어놨고요.
└펍?
└노팅엄 FC의 인증을 받은 공식 펍이요. 제가 맥주 가게 차리는 게 꿈이었거든요. 우리나라에 리버풀이나 맨시티 같은 팀의 펍도 있길래 혹시 가능할까 해서 일단 신청하고 봤어요.
└와ㅋㅋㅋ 추진력 대단하시다. 나중에 혹시 펍 열면 글 올려줘요. 그런데 가보고 싶었어요.
└···홍보하면 강퇴 아닌가요?
└앗. 죄송합니다. 알아서 찾아갈게요.
└ㅋㅋ넵.
이런 움직임은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북미에서도 남미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
응우옌 비엣 하오라는 청년은 20대 초반, 사업을 통해 큰돈을 만졌었다.
하지만, 하오는 돈을 저축하지 않고, 흥청망청 써대며 놀았다. 일에도 소홀했기 때문에 사업은 금세 망했고, 하오는 순식간에 빚더미에 나앉았다. 하오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업에 관한 철저한 준비도 하지 않고 부모님에게 빚을 지면서까지 새로운 사업 거리를 찾으려 했다.
하오가 정신을 차린 건, 서른 살이 되어서였다.
주변에 친구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부모님의 생활이 피폐해진 걸 어느 날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하오의 부모님은 평범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오는 공사판을 다니기도 하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살다가 공사판의 동료에게 딘 타이 티엔린이라는 펍을 운영하는 좋은 사장님을 소개받았고, 지금까지 5년 동안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하오, 이거 통 옮기는 것 좀 도와줘···."
"예, 사장님!"
하오는 사장 티엔린이 내려놓은 맥주 통을 번쩍 들어 날랐다. 티엔린이 느린 걸음으로 하오의 뒤를 따라오며 물었다.
"정말 가게 인수 할 생각 없어?"
"그러고 싶긴 하지만, 돈이 없어요. 저 아직도 빚 갚고 있는 거 아시잖아요."
"소중하게 일군 가게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넘기고 싶은데··· 슬슬 몸도 안 따라주고. 싸게 해 줄 테니까 어때? 빚 좀 내면 되잖아?"
티엔린은 거의 70세에 가까워지는 노인이었다. 벌어둔 돈도 충분하고, 이제는 쉬고 싶다는 얘길 하오에게 많이 했었다. 그러면서 하오에게 이 펍을 인수 할 생각 없냐는 얘길 자주 물었었다.
싸게 해 준다는 말에 하오는 잠깐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이제 절대로 빚 같은 거 안 낼 거예요."
"허허, 그럼 기회만 있으면 우리 가게를 운영해볼 생각은 있고?"
티엔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오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예, 좋은 단골손님도 많고, 멀리서 놀러 오는 손님도 많은 펍 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직장이기도 하고요."
"그렇지."
하오와 티엔린은 펍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오픈 시간이 아니라 사람은 없었지만, 펍의 벽부터 시작해서 구석구석에 놓인 장식물은 펍을 꽉 차 보이게 했다.
벽에는 호나우두, 지단, 앙리, 사비 등 시대를 주름잡았던 선수들의 유니폼이 전시돼 있었다. 장식장에는 선수들의 피규어들이 있었고, 선수들의 사인을 받아놓은 걸 액자에 넣어놓은 것도 있었다. TV에서는 축구 하이라이트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이 펍은 해외축구 매니아인 사장 티엔린의 취향대로 꾸며진 펍이었다.
하오는 맥주 통을 제 자리에 놓고, 기계에 연결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티엔린이 한 유니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 좋으세요?"
"그래. 평생 최고의 리그나 월드컵에서 뛰는 선수들만이 가슴을 뛰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그런 생각을 바꿔준 선수니까."
하오는 그 유니폼이 누구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녹색 줄무늬 유니폼에는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자신도 좋아하는 유니폼이었다.
하오도 티엔린의 옆에 다가가며 말했다.
"노팅엄 유니폼도 꽤 많이 모았네요. 우리 가게에서 가장 많아요."
"내가 팬이니까. 너도 팬이고. 어제 쓰리 제이와 레오의 활약 봤지?"
"예. 존은 그 나이에도 잘하더라고요. 레오는 훨씬 더 대단한 유망주라고 하고, 잭과 조도 괜찮은 유망주라고 하던데··· 앞으로가 기대돼요."
"이번 일을 계기로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노팅엄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손님들도 예전에는 이런 팀 유니폼을 왜 모으냐고 뭐라고 했다가, 요즘에는 유니폼 하나 주면 안 되냐고 물어보잖아? 노팅엄은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다고."
"많은 기적을 만든 팀이니까요."
하오의 말에 티엔린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엔린은 처음에는 유명한 선수들에 관한 유니폼과 장식물들만 모았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노팅엄에 관한 것들만 모으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이 펍은 손님들에게 농담 식으로 '노팅엄 베트남 지부'라고 불리곤 했다.
하오는 이 펍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몇 년 동안 그랬다. 하지만, 노팅엄이라는 구단에 관해 알게 되고 해외축구에 빠지게 되었다. 해외축구에 관한 관심은 거의 노팅엄에게만 쏠려 있었지만.
왜냐면, 노팅엄은 자신처럼 잘 나가다가 나락에 처박혔었고, 다시 원래 자리까지 올라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선수들의 이름과 유명한 직원들의 이름까지 전부 꿰는 수준까지 왔다.
티엔린이 말했다.
"이 정도로 열심히 노팅엄을 응원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노팅엄의 선수들이 이 펍을 찾아주면 좋겠는데···"
"저는 선수들도 좋지만, 김도운 단장님이나 잭슨 감독님을 꼭 만나보고 싶어요."
"어떻게 노팅엄을 재기할 수 있었는지 듣고 싶어서?"
"네. 꼭."
"허허,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번 일이 잘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고."
티엔린의 뜬금없는 말에 하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잠깐만 거기 앉아봐."
티엔린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고, 하오는 티엔린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티엔린이 말했다.
"난 앞으로 세달 뒤에 가게를 그만둘 생각이다. 난 너무 나이 들고, 지쳤어."
"예?"
하오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 말은 이 펍을 닫는다는 거고, 자신은 직장을 잃게 될 거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하오는 순간 빚을 내서라도 가게를 넘겨받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행히도 티엔린은 하오의 고민을 끝내줬다.
"하오, 이 펍을 네가 운영하는 건 어떻겠니? 인수는 아니니까 지분을 나누는 식으로."
"예?"
하오가 또 한 번 되물었다. 이어서 티엔린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한 하오는 더듬더듬 말했다.
"저는··· 티엔린처럼 해외축구에 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 펍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까요?"
이 펍은 베트남에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티엔린은 젊은 시절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덕에 해외축구에 관해 빠삭했다. 베트남에 해외축구 중계가 보급되기 훨씬 전부터 해외축구의 전문가였다. 그래서 이 펍에는 해외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매니아들이 찾곤 했었다. 티엔린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새 주인이 맡으면, 펍도 변해야지. 하오, 그래도 노팅엄에 관해서는 베트남의 그 누구보다 잘 알지?"
"어··· 예. 그렇죠."
"노팅엄 구단에 신청서를 넣어놨어. 베트남에서 노팅엄 공식 펍을 운영하면 안 되겠냐고."
하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엔린이 계속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오지 않겠다는 게 아니야. 나는 가장 일찍 와서 가장 늦게 나가는 손님으로서 이 펍에 올 거야. 네가 잘하고 있나 감시도 하고, 기존 단골손님들이랑 마음 편히 놀기 위해서."
하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티엔린이 하는 말을 계속 들었다.
"난 외동으로 자랐고, 결혼도 안 해서 자식도 없어.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친척들은 본지 몇십 년은 되었지. 내가 가장 아끼는 펍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20대에는 누구나 잘못된 길을 걸을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는 5년 동안 성실하게 일해왔어. 난 그 모습을 높게 산단다."
하오는 티엔린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따스하게 느껴졌다. 하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 일단 오픈 시간이 다 돼가니 자세한 얘기는 일하고 하자."
"예···."
티엔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하오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줬다.
하오가 천천히,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팅엄처럼··· 멋진 펍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티엔린이 만들어낸 펍보다 더요."
"그거 괜찮은데?"
티엔린의 기분 좋게 웃는 소리가 펍 안을 가득 채웠다.
**
노팅엄 경기장의 한 회의실에는 날 비롯한 여러 직원이 둘러앉아 있었다.
나는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직원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어서 여러분들을 불렀어요. 최근, FA컵이 끝나자마자 해외에서 노팅엄에 관련된 많은 요청이 쏟아지고 있거든요."
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조이가 이어 말했다.
"가장 많이 오고 있는 요청이 노팅엄 공식 펍을 차리고 싶다는 거고, 두 번째로 많이 오는 게 공식 팬 샵을 열고 싶다는 거예요. 그것 외에도 다양한 제안들이 왔어요. 가장 재밌는 건, 최근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문의가 온 거예요."
"영화화요?"
마리아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랑 잭슨 감독님을 주인공으로 4부 리그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고 하던데··· 거절했어요."
또 다른 직원이 손을 들며 소리쳤다.
"왜요!"
"그런 건 프리미어리그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고 찍어도 늦지 않으니까요."
내가 한 말에 직원들이 얼빵한 얼굴들을 했다. 무척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다. 이어서 농담이라고, 사실 부끄러워서 거절한 거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좀 더 편하게 만들려고 생각하는 순간.
"역시 도니군요."
"단장님다운 말이네요. 열심히 해야겠어요."
마리아에 이은 직원들의 말이 쏟아졌고, 나는 입을 다시 다물고 어색하게 웃어야 했다. 조이가 날 보며 피식 웃었다.
나는 헛기침 한 후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모든 요청을 여기서 얘기할 생각은 없고, 오늘은 펍, 팬샵, 그리고 해외 팬들에게 어떤 식으로 팬서비스를 할 수 있을지 의견을 듣고 싶어요. 이 세 가지는 꼭 추진할 거거든요. 이번 이적시장에는 영입할 선수도 없고, 겨울 휴식기라 할 일이 적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도 일이 생기네요."
직원들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직원들도 쉬고 싶을 테지만, 지금은 좋은 기회였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번 일 진행하는 동안 당연히 추가수당도 지급하고, 휴가 갈 기간도 충분히 마련해줄 테니까 다들 힘내봐요."
"예!"
내 말에 직원들이 힘차게 대답했고, 하나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펍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마리아의 의견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노팅엄에 있는 펍들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거나, 최소한 분위기만이라도 비슷하게 만들면 어떨까요?"
"오, 괜찮은데요?"
"그리고 '포레스트' 총 서포터즈 안의 소규모 서포터즈들은 각자 나무들의 이름을 갖고 있잖아요? 펍 이름은 그 나라의 고유한 나무들을 따서 지으면 좋을 것 같아요. 노팅엄이라는 숲이 전 세계로 넓어지는 것 같잖아요."
"오오오."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모두 감탄했다. 마리아는 어깨를 쭉 펴며 턱을 들고 우쭐한 얼굴을 했다.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펍 같은 경우에는 노팅엄의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을 사장인지, 폭삭 망하지는 않을지 정도의 사전 조사만 필요했다. 그래도 펍은 기본적으로 술집이기 때문에 컨셉이 어떻든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신경을 덜 써도 됐다.
하지만, 우리 구단의 유니폼, 각종 굿즈들을 들여놓을 팬 샵 같은 경우는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구단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살 필요가 없는 것들이니까.
"해외는 이래서 문제야. 시장성이 어떤지 확인할 수가 없잖아."
다행히도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소규모 펀딩 같은 거로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요?"
"직원들을 추가 고용해서 파견하는 건···."
여러 의견이 줄줄이 나왔다. 하지만, 팬샵 같은 경우는 다들 애매한 의견들뿐이었다. 오늘 방향을 정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때, 조이가 입을 열었다.
"너무 상황에 취한 것 같아. 우리 구단은 아직 2부 리그 구단이잖아. 팬샵은 잘 될지 모르는 거고."
"그래서?"
나는 조이가 말을 하기 편하도록 질문해줬고, 조이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 공식 펍에 팬샵의 역할까지 맡기는 건 어떨까? 펍에 우리 팀의 굿즈들을 소량 제공하고, 시장성도 확인하는 거지."
"흐음."
괜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직원들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이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노팅엄 공식 펍을 이용할 때나 팬샵에서 굿즈를 살 때 있잖아··· 통합 앱 같은 걸 만들어서 마일리지 같은 걸 적립해주는 건 어떨까?"
조이의 아이디어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38. 펍 포레스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