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20화 (120/245)

< 38. 펍 포레스트 (4) >

"제임스!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까? 여기의 노팅엄 팬들은 정말 굉장하다고."

-네가 이렇게 흥분할 정도면··· 정말 엄청난가 보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제임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게 말했다.

"베트남부터 시작해서 동남아에서 3개 도시를 돌았고, 중국과 일본까지 들렀어. 모두 최고였어. 난 여기에서 우리 응원가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응원가까지? 와우. 미쳤네.

"지난달에 만들어진 최신 응원가까지 알고 있더라. 이번 해외 펍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공할 거야."

-네 확신이면 무조건 믿을만하지. 정말 다행이다. 나나 조이나 해외 반응이 어떨지 정말 걱정하고 있었거든.

제임스의 말에 나는 조금 동요했다. 그동안 내 확신은 회귀 전의 기억에 근거해서 한 거였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조금 달랐다. 모든 구단은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해외 팬들을 위한 시설이나 컨텐츠를 제공했지만, 성공하는 구단보다 실패하는 구단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시아로 넘어온 내내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우울해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응, 이른 시일 내에 해외 투어를 계획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정말? 그 정도야?

"···사실 좀 오버하긴 했지만, 현지 팬들의 열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 오히려 이쪽 사람들이 대단한 게, 실제로 선수들을 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좋아해 주는 거잖아."

-그렇네.

"할 수 있는 한 보답해주고 싶어."

-꼭 그렇게 하자.

제임스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제임스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야?

"한국."

-오, 고향에 갔네.

"응, 여길 마지막으로 들르고, 선수 하나 데리고 돌아갈게."

-그 군인?

"맞아. 기억하네."

-오오, 기대된다.

제임스와 몇 마디를 더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익숙한 디자인의 펍 간판에 적힌 을 보고 펍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나는 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했다.

펍에 사람이 많은 건 그렇다 치는데 점원뿐 아니라 모두가 날 보고 있었다. 남자 7, 여자 3 정도의 비율이었고, 모두 뭔가 잔뜩 기대하는 눈 같아 보였다.

혹시 잘못 들어왔나 싶어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순간, 이 펍의 점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김도운 단장님 맞으시죠?"

"아, 네···."

"들어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절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예!"

뭔가 군대에서 하는 대답처럼 펍에 모인 사람들이 대답했다.

나는 또 한 번 움찔하고, 내 당황한 표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

나는 펍의 중앙 테이블에 앉았고, 몹시 부담스러운 시선들을 받으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들을 수 있었다.

내 앞에는 펍의 사장이라는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단장님이 아시아 쪽의 펍들을 돌아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어떻게요?"

"베트남 스포츠 신문에 기사가 나왔거든요. 노팅엄의 단장이 한 펍에 직접 들렀다고. 그 펍에 연락해보니, 노팅엄 공식 펍 관련해서 직접 오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아···."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걸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어제 단장님이 일본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걸 우리 팬 카페의 사람 중 하나가 보고 카페에 글을 올렸거든요."

"카페요?"

"네, <노팅엄 FC 한국지부>라는 이름의 노팅엄 팬 카페에요. 저희끼리는 잣나무들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제야 나는 여기 모인 사람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노팅엄의 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소수였지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다, 노팅엄의 팬들인 거군요?"

"네, 단장님을 보겠다고 이틀 연속으로 회사 끝나자마자 펍으로 출근해서 죽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물론, 평소에는 이 정도로 사람이 많진 않아요. 주말에 해외축구가 열릴 때만 사람이 많죠."

나는 어제 한국에 왔고, 집에서 하루 쉬었다. 그래서 이틀 연속으로 왔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날 만나기 위해서.

당당하게 나서는 거라면 모를까, 이런 간질간질한 분위기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뭐라고 이틀 연속으로···."

"단장님을 꼭 보고 싶었어요!"

"아··· 네. 뭐. 오늘은 다른 약속이 없으니 느긋하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한 팬의 말에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펍 전체에 환호성이 일었다.

그동안 돌았던 국가 중에 가장 황당하고, 조금은 기쁘기도 한 상황이었다.

나는 사장에게 말했다.

"펍이 잘 운영되는 곳인지 보려고 했는데, 망했네요."

"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전국에서 사람이 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이 모였잖아요."

"그렇네요."

사장의 말이 충분히 공감이 갔다.

내가 언제 이곳에 올지도 모르는 데, 퇴근 후의 소중한 시간을 날 기다리는 데 쓰다니. 그게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로 안 되면 내일도 여기 들를 테니까, 편하게 술 한잔하면서 얘기합시다."

"오오."

"술은 제가 다 사죠."

"오오오!"

그리고 난 한국에 있는 노팅엄의 팬들과 하나하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수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는 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리 노팅엄에서 있었던 '이야기'에 관해 물어봤다.

"어릴 때, 알렉산더의 풋 보이라고 하셨었잖아요. 단장으로 다시 만났을 때 어땠어요?"

"저는 재밌었어요. 알렉산더는 불편해 했지만."

나는 하나하나 성실하게 대답해줬다.

"알렉산더랑 로드가 10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는 걸 알고,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마케팅으로 이용 해먹을 수 있겠다···?"

나는 진심으로 대답하고 있는데, 팬들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이어서 잭슨 감독과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를 물어봤고, 노아와 라이언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팬들 덕분에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얘기가 끝나고, 나는 사장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돌아와 솔직한 소감을 얘기했다.

"여기 팬들이 노팅엄에 관해 이렇게 자세히 알 줄은 몰랐어요. 오길 정말 잘했네요."

"노팅엄 TV나 영국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팬들이 하는 얘기, 기사 등을 팬들이 카페에 번역해서 올려서 돌려 봤거든요."

"와우··· 정말요? 귀찮지 않아요?"

"아뇨. 재미있어요. 재미없으면 이런 거 절대 못 해요."

그녀의 단호한 말에 나는 씩 웃고, 물었다.

"노팅엄 펍은 왜 하시려는 거예요?"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건 길거리 음악이었죠."

"그럼··· 혹시 노팅엄에 온 적 있나요?"

"네. 한동안 체류했었어요. 처음에는 다양한 음악가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노팅엄을 응원하고 있더라고요. 노팅엄시의 사람들은 펍이든 성당이든 마트든··· 어디에서나 노팅엄 얘기를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간판 디테일이 좋았던 거군요."

나는 출입구 위에 걸려있던 간판을 떠올리며 말했다. 노팅엄시에 있는 펍들의 간판과 정말 흡사한 디자인이었다.

"네. 그리고, 노팅엄의 소규모 서포터즈 이름을 나무 이름으로 짓는 걸 봤어요. 그래서 이 가게 이름을 코리안 파인즈라고 지었죠. 잣나무를 영어로 하면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팬 카페 이름도 그렇게 지었고요."

몹시 만족스러웠다. 나는 가볍게 웃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안 그래도 우리 구단도 해외의 펍들에 그 나라의 고유한 나무의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이거든요. 여기는 뭐··· 바꿀 필요도 없겠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영어도 잘하시죠? 직원 중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분이 별로 없어서."

내 말에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참 신기해요. 공식 펍을 열 수 있게 되는 게 그렇게 좋은가요?"

이번 여행을 하며 계속 마음속에 담아둔 의문이었다. 한국에서 와서 마음이 편해진 건지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계속 담아두기에는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

나는 계속 말했다.

"다른 나라의 사장님들도 그랬어요.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니까, 다들 정말 기뻐하시더라고요."

"노팅엄은··· 비록 지금 2부 리그의 구단이지만···."

사장이 말을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저희가 웃고, 울고, 감동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 준 곳이잖아요. 그런 구단에게 정식적으로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네요. 팬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직접 그곳에서 응원할 수 없는 우리가 헛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기도 하잖아요?"

"···그렇네요."

"그리고요."

사장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노팅엄은 틀림없이 더 대단한 구단이 될 거예요. 단장님이 말했잖아요. 6년 안에 프리미어리그에 갈 거라고. 그런데, 3년 찬데 벌써 2부 리그에요."

"하하··· 운이 좋았죠."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저는 노팅엄이 앞으로 훨씬 더 대단한 팀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노팅엄 펍을 열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뒤늦게 노팅엄의 가치를 알아봤을 때, 저는 첫 번째로 알아본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녀의 당찬 말에 나는 웃고야 말았다.

그리고, 다른 팬들의 요청 때문에 테이블을 옮겨야 했다.

**

다음 날, 축구 커뮤니티의 베스트 글에 조금 특이한 인증 글이 올라왔다.

제목은

(사진인증, 후기) <김도운 단장님을 만났습니다.>

이었다.

단장이 방문할 걸 예측해 이틀 연속으로 펍에서 기다렸다는 얘기부터 시작해 단장에게 밤새 노팅엄에 관해 들었다는 얘기와 사진들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작성한 아이디 '잣나무'의 모임 소감도 적혀 있었다.

[김도운 단장님은 정말 정말 친절하셨어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당황할 만도 한데, 오히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렇게 모여줘서 너무 고맙다며 50명의 사람과 일일이 대화를 나눠줬거든요.

덕분에 보통 팬들은 노팅엄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축구계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들은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어요.

대학생도 안 된 아이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진로를 잡아야 할지 도움을 줬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영국 내의 한인 축구 모임과 연결해줬어요. 그리고, 노팅엄에서 다음 시즌에 인턴십을 열 계획이니까 신청하라고도 말해줬어요.

정말 알차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여러분도 이렇게 좋은 단장님이 계신 노팅엄 FC를 응원해보는 건 어떨까요?

노팅엄 게시판은 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주소)

카페 홍보는 밴이라서 안 할게요···.]

-ㅋㅋㅋㅋ훈훈하다가 마지막에 홍보 뭐야

└(작성자) 이럴 때 해야지 언제 하겠어요!

└역시 우리 대장님. 노팅엄! 노팅엄!

└노팅엄! 노팅엄!

-와씨 부럽다. 나도 축구계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조언 같은 거 듣고 싶은데.

-와··· 재밌었겠다. 우리 구단은 직원이라도 안 오나 ㅠㅠ

비슷한 내용으로 부럽다는 여러 댓글이 실시간으로 주르륵 달렸다.

인증 글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새로운 글에 밀려났고, 댓글 또한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반나절이 지난 후, 거의 한 시간 동안 아무 댓글도 달리지 않다가, 갑자기 댓글 하나가 올라왔다.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오면 팬이 될 생각이 있는데 언제쯤 올라올 수 있을까?

작성자는 댓글을 보고 있었는지, 바로 대댓글을 달아주었다.

└(작성자) 이번 시즌에 승격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어요. 늦어도 다음 시즌에는 꼭 승격할 거라고 해요. 레스터시티 이상의 동화를 쓰고 싶으시다고 했어요.

└정말요?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

잠시 후, 다른 유저가 대댓글을 달았다.

└대단한 사람은 무슨, 미친 사람이지.

이어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오면 팬이 될 생각이 있다는 유저가 댓글을 달았다.

└너, 만약에 저 말대로 되면 어떻게 할 거냐?

└당연히 응원해야지. 근데 솔직히 말도 안 되지 않냐? 승격은 그렇다 치고, 레스터시티만큼의 동화가 쉬운 줄 아나.

└ㅋㅋㅋ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거 아니겠냐.

잠시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난 후에야 띵 소리와 함께 부정적인 의견을 달았던 유저의 댓글이 달렸다.

└그건 그렇네.

< 38. 펍 포레스트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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