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입단 테스트 (1) >
나는 살금살금 걸어 군복을 입은 훤칠한 남자 뒤에 섰다.
남자는 자신이 막 나온 부대 입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는 남자의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병장 이태양!"
이태양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나는 그의 놀란 표정을 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군대 물 빠지려면 한참 걸리겠네요."
"아··· 단장님? 여긴 어떻게···."
이태양은 내 얼굴을 보며 오히려 더 놀랐다. 나는 미소를 풀지 않은 채로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전역 축하해요."
"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직접 오신 겁니까?"
"당연하죠."
이태양이 기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입단 테스트를 볼 구단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자신을 데리러 비행기로 열 시간이 넘는 곳에서 온 거니까. 분명 자신의 가치를 입증받는 기분일 것이다.
지난 프리시즌에 만난 이태양은 한동안 일반적인 선수들과는 다른 루트로 커리어를 만들어야 했기에 내가 직접 찾아와서 신뢰 관계를 쌓을 필요가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회귀 전의 이태양이라는 선수를 좋아했었다. 이태양은 8강 신화를 이룬 스트라이커 석대호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 경기에서 늘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어주는 슈퍼스타였으니까.
나는 싱글벙글해 있는 이태양에게 물었다.
"아침 먹었어요?"
"먹긴 먹었는데, 조금만 먹었습니다. 두근거려서 밥이 안 넘어갔습니다."
나는 지난달, 이태양에게 전역 날 직원이 마중을 나갈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직원과 함께 노팅엄으로 오면 된다고 했다.
의외로 전역할 때 꽤 많은 사람이 허무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태양은 설렐 수밖에 없었다. 전역과 동시에 노팅엄시로 떠날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K리그 2에서만 뛰어봤던 그가 유럽에 도전을 시작하는 거니까.
그에게 전역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태양이 말했다.
"비행기 시간은 언제입니까? 빨리 출발하고 싶습니다."
"음··· 미안하지만, 이태양 선수는 아직 군인 신분이에요."
"예?"
"비행기 못 탄다고요. 오늘이 지나야 해요."
"정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끊어 놨어요."
"아···."
이태양이 시무룩해졌다. 나는 그런 이태양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국밥이나 한 그릇 하죠. 맛있게 하는 집을 알거든요. 할 얘기도 있고."
*
"잘생긴 총각. 또 왔네?"
"예, 여기 음식이 맛있어서요."
"어머머, 고마워. 서비스 많이 줄게."
"감사합니다. 순대국밥으로 2인분 주세요."
이태양은 국밥집 주인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 날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낮에 최민석 행보관님이랑 이홍식 행보관님이랑 술 좀 마셨거든요. 그리고, 이른 저녁부터 쓰러져있다가 아침에 나온 거고요."
최민석은 내 군시절 행보관이고, 이홍식은 이태양이 소속된 부대의 행보관이었다. 둘 다 이태양과의 접촉에 많은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
이태양이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배고프시겠습니다."
"맞아요."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하고, 이태양과 함께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반찬으로 나온 당근을 된장에 찍어 먹으며 가볍게 배를 채웠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다시 프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면서요?"
나는 이태양의 행보관 이홍식이 어제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이태양은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이고 말했다.
"행보관님이 많이 배려해 주셨습니다. 특급전사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아침 점호 때, 체력단련을 할 수 있었고··· 개인 정비 시간에는 공을 찼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연등 하면서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이태양은 말하면서 점점 뿌듯한 얼굴을 했다.
더 말하고 싶은 것 같아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요?"
"후임 중에 영국 유학을 다녀온 녀석이 있어서,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회화도 많이 연습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은 무리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최상위 리그에서 뛸 공격수는 달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군 생활 자체도 힘들어하는데, 이태양은 시간을 쪼개 계속 노력해 온 것이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정말 잘했어요. 기대 이상이네요."
솔직히 어느 정도 몸이 망가져 있더라도 감수할 생각이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계획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얘기했다.
"그래도, 프로팀이 아닌 곳에서 하는 훈련은 한계가 있는 거 알죠?"
"예··· 알고 있습니다."
"이태양 선수를 기죽이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입단 테스트 초반에 마음대로 안 된다고 답답해할 것 같아서 미리 얘기하는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노팅엄에 돌아가면 저는 다른 일로 바쁠 거예요. 그만큼 이태양 선수에게 신경도 못 쓸 거고요."
이태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괜찮죠?"
"예."
"일단··· 유럽 팀에서 뛸 준비는 됐어요? 필요한 건 다 챙겼죠?"
"예, 부모님과 인사도 했고, 여권도 챙겼습니다."
"여권만요? 아··· 에이전트가 없죠?"
잠시 잊고 있었다. 이태양이 말했다.
"예, 작년에 단장님이 좋은 에이전트를 소개해 줄 거라고 에이전트를 구하지 말라고···."
"맞아요. 혹시 그동안 접근한 사람은 없어요?"
이태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접촉한 게 퍼지면 분명히 날파리들이 달라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홍식 행보관이 입이 정말 무거웠던 모양이었다. 그는 축구를 좋아하니 나중에 유명 선수의 사인을 받을 기회가 있으면 보내주든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기본적인 서류 같은 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착하면 바로 4주 동안 입단 테스트에 들어갈 건데··· 떨어질 수 있다는 거, 알죠?"
"예, 당연합니다."
"우리 팀은 지금 승격 경쟁을 하고 있어요. 시즌 초반에 무조건 강등당할 거라는 언론의 평가도 어느새 8위 정도는 할 거라고 바뀌었죠. 이제 노팅엄은 2부 리그에서도 상위권 팀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틈틈이 노팅엄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만큼 코칭 스태프들과 감독님의 눈이 더 높아졌다는 거예요. 저는 잭슨 감독님에게 선수단에 관한 전권을 줬기 때문에 이태양 선수를 강제로 선수단에 넣을 수 없어요."
이태양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입술을 꾹 다무는 게 조금은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전 이태양 선수의 잠재력을 믿고 있어요. 이태양 선수는 많은 걸 보여줄 필요 없어요. 그저, 최선을 다해주면 돼요. 잭슨 감독님은 지금 언론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시거든요. 분명, 이태양 선수의 재능을 알아봐 줄 거예요."
물론 못 알아볼 수도 있다. 그렇게 돼도 이태양의 인생이 꼬이지 않도록 도와줄 방법을 생각해두긴 했다. 하지만, 이건 굳이 얘기해줄 생각이 없었다.
이태양은 정말 간절하게 입단 테스트에 임해야 하니까.
아무 말 없이 대화 중간에 나온 국밥이 식는 걸 보고 있던 이태양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음··· 소주 한잔해도 됩니까?"
"전역 날인데 당연히 괜찮죠. 대신, 오늘만이에요."
"예. 이모님!"
나와 이태양은 잠시 말없이 술을 마시고, 국밥을 먹었다. 국밥이 거의 다 비워질 때쯤 이태양이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직접 전화를 주셨죠."
"그랬죠."
"···사실 저는 아직도 저를 왜 이렇게 높이 평가해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달 저에게 대단한 재능이 있다고, 열심히 하라고 하셔서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예. 하지만, 저는 불안합니다. 분명히 취업비자를 바로 받을 수 없을 거고, 임대 생활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저는 언제쯤 노팅엄에서 뛸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충분히 불안해할 수 있었다. 이런 약속을 해 두고 중간에 바꾸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나는 말 없이 남은 음식을 해치웠다. 그리고, 음식에 손도 안 대고 있는 이태양에게 말했다.
"걱정이 많아 보이니까, 입단 테스트에 합격했을 때부터의 계획을 말해줄게요."
"예."
"입단 테스트 종료일에 이태양 선수는 우리 구단과 계약할 거예요. 그리고 그 날은 벨기에의 임대선수 영입 기간 종료일이죠. 이태양 선수는 바로 벨기에 2부 리그 팀, KVC베스테를로로 임대를 가게 될 겁니다. 취업비자를 따기 위해서죠."
"거기서 복수국적을 딸 때까지 뛰면 되는 겁니까?"
우리나라는 2023년에 우리나라 국민이 복수국적을 따는 걸 허용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은 복수국적을 얻기 쉬운 나라인 벨기에나 북아일랜드 같은 곳에서 2~3년 동안 뛰고, 잉글랜드 구단으로 이적하는 방식이 많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방식이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회귀 전의 기억이 이태양을 더 빠르게 데려올 방법을 내게 알려주었으니까.
"저는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취업비자를 받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죠. 그중 구단 최상위 주급은 줄 수 없어요. 이태양 선수는 객관적으로 증명한 게 없으니까요. 물론, 다른 조건들도 무조건 충족 못 해요."
"그렇죠···."
"하지만,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으면서, 이태양 선수의 몸값과 명성을 올릴 수 있는 팀이 있잖아요. 이태양 선수는 거기에 가게 될 거예요."
몸값과 명성 또한 취업비자 심사에 큰 도움이 된다.
이태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데가 있습니까? 선수가 클럽 말고 어딜···."
나는 이태양의 옷 한 부분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태양이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이 꽂혀 있는 자신의 어깨 부근을 봤다.
"설마."
이태양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날 빤히 봤다.
나는 이태양의 군복 어깨에 붙어있는 태극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죠. 국가대표가 되는 거예요. 단, 반 시즌 만에."
**
2022 월드컵 8강 신화와 아시안컵 우승으로 우리나라는 피파 랭킹 10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잉글랜드 리그에서 취업비자를 발급받는 조건 중 하나는 국가대표 출전이었다. 특히, 피파 랭킹이 높은 국가대표팀에서는 절반 정도만 뛰어도 다른 조건에 상관없이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피파 랭킹 10위권 국가대표팀에 소속된 선수는 2년간 열린 A매치 중 45%만 뛴다면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노리는 건 바로 그거였다.
회귀 전, 이태양은 국가대표팀과 깊게 연이 닿아있는 에이전시 소속이 되며 올해 하반기부터 국가대표팀의 전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회귀 후인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그의 재능만 활용한다면 충분히 다시 한 번 국가대표팀에서 뛸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뒷사정을 모르는 당사자는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었다.
"단장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반 시즌 만에 국가대표가 된다는 겁니까?"
"이태양 선수는 재능이 있고, 저한테 계획도 있어요. 믿어 보세요. 뭣보다, 지금 중요한 건 입단 테스트에요. 거기에만 신경 쓰세요."
한국에서 노팅엄시에 도착한 지금까지도 이태양은 틈만 나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태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입단 테스트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아직 시차 적응도 못 했는데···."
"잭슨 감독님 요청이에요. 연습 경기를 뛰는 걸 잠깐이라도 보고 싶으시대요. 몸풀기까지 포함해서 40분 정도만 운동할 테니까, 괜찮죠?"
"예."
그때, 단장실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들어온 건, 우리 팀의 주장 로드였다.
로드가 내게 가볍게 인사하고 농담을 건넸다.
"킴? 킴이 먼저 부르다니··· 혹시 절 팔아버리려고···?"
"이상한 농담 하지 마. 로드. 넌 종신이야."
"와우, 좋은데요?"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멀뚱멀뚱 서 있는 이태양을 바라보았다. 나는 로드에게 말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었던 선수야. 오늘부터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됐는데, 구단 안내 좀 해줘.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 피곤할 테니까, 오늘은 딱 필요한 것만 알려주고."
"라져 댓."
로드는 장난스럽게 말하고, 이태양에게 말을 걸었다.
"따라오세요. 영어 하실 줄 알아요?"
"네···."
이태양은 로드를 따라가면서도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런 이태양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꼭 테스트에 붙어야 해요. 그래야 계획대로 할 수 있으니까."
< 39. 입단 테스트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