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23화 (123/245)

< 39. 입단 테스트 (3) >

나는 단장실에서 훈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태양이 스트레칭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 보고 있었다. 이태양은 내가 단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1군 입단 테스트를 보는 선수였으니까. 그리고 이태양이 시차 적응도 안 된 첫날부터 잘 해 줄지 걱정됐으니까.

연습 경기가 시작하고, 이태양이 엉망진창으로 당할 땐 속이 탔지만, 손에 땀을 쥔 채로 응원했다. 첫인상은 정말 중요하니까 뭐라도 하나 보여주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이태양은 회귀 전에 자주 보던 빠른 달리기로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슈팅까지 가져갔으니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잭슨은 이태양을 바로 교체로 빼버렸다.

그래서 나는 방금까지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이태양을 보고 있었다.

"휴우···."

이태양은 잭슨과의 대화가 끝난 후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잭슨에게 좋은 말을 들은 것으로 보여 안심됐다.

회귀 전의 재능이 지금 발현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아마 입단 테스트도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 같았다.

자신에게 무척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태양 본인은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긴장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커튼을 닫고, 다시 내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이태양의 훈련을 지켜보는 동시에 마녀 에이전트와의 통화로 알아낸 번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흠···."

바로 T 에이전시 소속의 에이전트이자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선수, 데이비드 워커의 번호였다.

회귀 전의 이태양은 전역 후, 2년 정도 저니맨 생활을 했었다. 이동안 정말 무의미하게 시간을 날렸다고 본인과 그의 에이전트인 데이비드 워커의 인터뷰를 통해 말했었다.

이태양은 올해에는 스페인 5부 리그, 벨기에 3부 리그에서 뛰다가 회귀 전의 내 팀에 입단 테스트를 신청했었고, 나는 이태양에게서 재능을 못 봤었다.

이후 이태양은 포르투갈 3부 리그까지 갔다가 방출당하고, 파트 타임으로 선수 생활을 하다가 세계적인 에이전시인 T 에이전시와 군소 구단들이 함께 개최한 트라이얼에서 데이비드 워커의 눈에 들었다.

그리고 선수들의 개인적인 코치까지 한다는 슈퍼 에이전트, 태현석의 코치를 직접 받았다고 했다.

우리 팀에 입단 테스트를 보러 왔을 때만 해도 특출나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T 에이전시의 코치를 받은 후에는 폭발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그렇게 이태양은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에이전트의 힘으로 오스트리아 1부 최하위 팀에서 뛰게 된 이태양은 데뷔한 지 첫 달에 오스트리아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고, 한국 축구협회와 태현석의 추천으로 국가대표팀에 들어가게 됐다.

이 사건에 축구계 관계자들은 우려를 표했었다. 내가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것도, 축구협회의 내부 관계자가 이태양이 어떤 방식으로 선발됐는지 인터뷰로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국가대표 선발에 국가보다는 자기 선수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에이전트가 이렇게 큰 영향력을 끼쳐도 되나?'라는 내용으로 칼럼이 몇 개 나왔었지만, 금방 묻혔다.

어중간한 논란은 선수의 실력만 있다면 순식간에 묻히니까.

이태양은 한국 대표팀의 조커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압도적인 속도'라는 직관적인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팬들도 국가대표 첫 경기 이후 이태양에게 열광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태양에게 말한 국가대표 계획이라는 건, 원래의 미래대로 이태양에게 데이비드 워커를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태현석에게 연결될 테고, 회귀 전처럼 진행될 테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 적어둔 번호를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로 천장을 보았다.

"감당할 수 있을까···."

축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 에이전트들이었던 멘데스나 라이올라는 일개 구단도 아닌 대형 클럽들을 쥐고 뒤흔들 정도의 힘을 보여줬다. 축구는 결국 선수놀음이기 때문에 선수들을 관리하는 에이전트는 힘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에이전트들은 선수들이나 돈을 위해서라면 구단과 얼마든지 척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태현석이 같은 한국인이라지만, 나는 그가 국적 같은 걸 신경 쓰지 않는 오직 자기 선수에만 미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만남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다 읽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아주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우리 구단에는 슈퍼 에이전트의 선수가 없었다.

헌터 형제의 에이전트가 꽤 유명하긴 했지만, 슈퍼라는 단어까지 붙일 정도로 대단한 급은 아니었다.

이태양을 워커에게 소개해주는 순간부터 우리 구단은 슈퍼 에이전트의 눈에 들어가게 되는 거였다.

"슈퍼 에이전트의 선수라···."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 사이로 훈련장을 내려보았다. 이태양은 벤치 옆에 앉은 선수와 미소를 지은 채로 떠들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이태양을 바라보았다.

**

"헉."

잠에서 깨자마자 무척 개운했다. 이태양은 본능적으로 늦잠을 잤다는 걸 깨달았다.

황급히 베개 근처를 뒤적여 스마트폰을 키니 오후 2시, 영국시간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이태양은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태양. 이 멍청한 놈···."

빠른 시차 적응을 위해서는 오늘 피곤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났어야 했는데. 비록 내일부터 훈련이라지만, 시작부터 뭔가 꼬인 기분이었다.

어차피 되돌릴 수는 없었기에 이태양은 자신에게 욕하는 걸 그만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문을 열며 이곳이 김도운의 집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꺼내먹어요.'

이태양은 일단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찾았다.

"···단장님은 아무것도 안 먹고 사나."

냉장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물 몇 통뿐.

이태양은 허기진 배를 만지며 김도운의 집 안을 샅샅이 뒤졌다.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태양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런 거로 김도운에게 전화해도 되나 싶었지만, 김도운이 여기 생활은 다 책임져주겠다고 한 말을 떠올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김도운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일어났어요?

"예."

-무슨 일 있어요?

"음··· 정말 죄송하지만, 먹을 게 없어서···."

-헉, 그래요? 제가 집에서 식사를 안 한 지 꽤 돼서··· 그래도 먹을 게 있을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김도운이 으음 하며 생각하는 소리를 내고, 말했다.

-지도에 포레스트 펍이라고 쳐 볼래요? 몇 개 나올 텐데, 그중 우리 집이랑 경기장 사이에 있는 곳이에요.

"아···찾았습니다."

-지금 전화해 둘게요. 거기로 가서 제 소개로 왔다고 말하면 식사를 내줄 거예요. 거기가 노팅엄시에서 가장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가게에요.

"감사합니다!"

-뭘요. 한동안 저도 바빠서 같이 식사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이따 계좌에 돈 좀 넣어드릴 테니까 계좌 좀 불러주세요.

이태양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예? 그렇게까지···."

-한국에 있는 사람을 꼬드겨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당연한 거죠. 아무튼, 파이팅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 필요한 거 있음 뭐든 얘기해도 돼요. 되냐 안되냐는 제가 정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

"실례하겠습니다···."

"어서오··· 아, 도니가 말한 선수군요?"

"맞습니다."

"아이고, 잘 왔어요. 저는 사라라고 해요. 식사는 뭐로 할래요?"

사라가 자리로 안내해주고, 메뉴판을 보여줬다. 이태양은 자연스럽게 피쉬 앤 칩스를 골랐다. 영국에 온다면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옆 테이블에서 사라를 불렀다.

"사라, 선수라니? 처음 보는 사람인데."

"아아, 이 선수가 지금 노팅엄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대요."

"우리 구단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다고?"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아저씨의 큰 목소리가 펍 전체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불과 1분도 안 돼서 이태양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미, 미안해요··· 빨리 식사부터 가져올게요."

"예···."

이태양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팅엄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사람이 이렇게나 몰리다니. 이태양은 이런 관심을 받는 게 태어나서 거의 처음이었다. 그래서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아저씨들 절반, 아줌마들 절반이었다. 이들은 이태양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댔다.

"어머, 잘 생겼다."

"감사합니다."

"동양인이야? 어느 나라에서 왔어? 설마 우리 단장이랑 같은 한국?"

"예. 맞습니다."

"포지션은 어디야?"

"공격수입니다."

"오오오, 동양인 공격수는 괜찮은 선수들이 많았지. 손이나 석, 첸처럼 잘 할 수 있어?"

"그분들은 너무 대단해서···."

굳이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질문들의 향연이 이어지던 중, 조금 생각해봐야 하는 질문이 들어왔다.

"이봐, 한국인 공격수! 널 누가 데려온 거야?"

이어서 아저씨들은 스카우트들의 이름을 다 꿰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양은 말해도 되나 고민하다가, 그냥 얘기하기로 했다.

"단장님을 따라 왔습니다."

그 순간, 펍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호기심에 가득하던 주변 사람들의 눈이 기대감과 설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옆자리에서 말을 걸었던 아저씨가 말했다.

"테스트 받는 선수는 처음이라 신기해서 말을 건 건데··· 우리가 보물을 몰라 봤구만. 안 그래?"

주변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사과의 의미로 술 한잔 사지. 어때?"

"야, 이런 식으로 새치기할 거야? 내가 살 거야."

다른 사람들도 이태양에게 술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던 이태양은 알겠다고 고개를 반쯤 끄덕이다가, 단장과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술 못 마십니다."

하지만, 노팅엄의 아저씨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탄산수라도 마시면 되잖아! 앞으로 한 식구가 될 건데 우리랑 같이 못 마시겠다는 거야?"

"식구요?"

"우리의 킴 단장이 데려왔으면 뻔하지. 무조건 테스트에 합격할 거야."

아니라고 말하기도 구차해져 이태양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다들 아이들처럼 신나 하며 자연스럽게 이태양의 옆에 하나둘 앉았다. 멀리 앉아있던 사람들도 이태양을 보겠다는 듯 근처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다들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게 눈에도 보여서 이태양은 속으로 놀랐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프로리그에서는 주전이 된 적도 없었고, 아무 펍이나 들어와도 팬이 있을 정도로 팬들이 많지 않았다.

정말 신기하고, 왠지 모르게 따뜻한 기분이었다.

이태양은 식사를 하면서도, 탄산수를 마시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카사 펍은 스페인 음식이 맛있어."

"광장에서는 일요일마다 시장이 열려. 노팅엄 원정 경기가 있을 때는 노팅엄 푸드 코트에서 가게를 여는 사람들도 오니까, 한 번 가서 먹어봐."

"우리 가게에 오면 가장 신선한 과일을 공짜로 줄게. 주소가···."

"사인 좀 받을 수 없나?"

거의 일방적인 퍼주기와 부탁이었지만 말이다.

기분은 좋았기에 이태양은 모두 성실하게 대답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다른 노팅엄 선수들도 이런 생활을 하는지 궁금했다.

테스트 선수라는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신분이 아닌, 진짜 이곳의 선수가 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이태양은 물었다.

"그동안··· 노팅엄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은 어떤 걸 잘했나요?"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사람들은 진지한 얼굴로 고민했다.

"재밌는 선수?"

"아니야. 실력도 없는데 웃기려고 하면 우리 화만 난다고."

한 아줌마의 의견에 다른 아줌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하는 선수?"

"그게 최고지. 그런데 눈에 띄지 않더라도 오래 살아남는 선수들도 많았어."

여러 의견이 나왔고, 토론의 장이 되어버렸다.

이태양은 진지한 얼굴로 이들의 의견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한 가지 결론을 냈다.

"팀에 보탬이 되고, 열심히 하는 게 눈에 보이는 선수!"

"그렇지! 그게 최고지. 슈퍼스타들은 다 팀을 떠나버린다고."

그 말을 들은 이태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슈퍼스타가 이 팀에 남는다면···?"

"최고지. 그리고, 우리의 꼬맹이 주장 로드처럼 사랑받는 거지. 로드는 2부 리그 소속에다가 나이도 어린데 지난 월드컵 우승팀인 잉글랜드 국가대표에서 주전 자리를 꿰찼다고. 우리의 자랑이야."

이태양에게 우리의 자랑이라는 말이 강하게 와닿았다. 그런 말을 이곳에서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름도 안 물어봤네."

"어··· 그러게요?"

한 아저씨의 말에 이태양은 어색하게 답했고, 사람들이 와하하 웃었다. 자기들도 멍청이라면서.

이태양은 미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태양이라고 합니다. 성은 이입니다. 태양이 썬이랑 같은 뜻이니까 썬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오오, 손이랑 어감이 비슷한 게 손 같은 수준의 선수가 되는 거 아냐?"

이태양은 설마요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뭔가 마음속에 응어리진 게 있었다.

한국의 2부 리그에서도 제대로 뛰지 못하고, 상무팀에도 못 들어가 군대까지 갔다 온 자신이었다. 2부 리그 팀에서는 발만 빠르지 할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는 멍청이라는 소리도 들은 적 있었다.

하지만, 어제 챔피언십 리그의 감독이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것 같았고, 단장은 자신을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 팀의 팬들은 함께하고 싶을 만큼 따뜻했다.

그래서 이태양은 어느 순간부터 가슴 속 깊이 묻어놨던 말 한마디를 입 밖으로 꺼냈다.

"더 대단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 39. 입단 테스트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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