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28화 (128/245)

< 40. 해외 유학 프로젝트 (1) >

이태양이 우리 선수가 된 지 일주일이 흘렀다. 나와 이태양은 공항에 있었다.

이태양은 내 옆에서 헤벌쭉한 얼굴로 자신이 들고 있는 비행기 표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태양에게 물었다.

"혼자 잘 지낼 수 있겠어요?"

"유럽 생활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설렙니다."

"한 달도 안 돼서 심심해 죽을걸요. 도시에서도 할 게 없는데, 베스테를로는 심지어 시골이라고요."

이태양의 다리 밑에는 노팅엄에 올 때 가져온 커다란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 이태양은 캐리어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이걸 잡고 한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노팅엄의 선수라는 신분으로 벨기에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죠. 너무 좋습니다. 빨리 벨기에에 도착해서 뛰고 싶습니다."

의욕이 넘쳐흐르는 이태양을 보니 괜히 흐뭇해졌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가서 열심히 해야 해요?"

"예."

"그런데 말이죠···. 에이전트가 없어도 정말 괜찮겠어요?"

일주일 전 계약서를 작성한 후, 나는 데이비드 워커와 계약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 정도 에이전시 소속이 되는 건 선수로서 정말 좋은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이태양은 에이전트가 생기면 이것저것 권유할 것 같다고,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래서 나는 구단 직원을 통해 이태양의 서류 작업을 도와줘야 했다. 사실상 에이전트 역할을 해 준 것이다.

"예! 굳이 필요성을 못 느끼겠습니다."

"그렇다면야···."

"아, 슬슬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자주 연락 주세요."

이태양은 공항의 시계를 보고 그렇게 말하며 떠나려고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혹시 더 할 말이라도···."

"아뇨. 그게 아니라 아까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나는 주머니에서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꺼냈다. 이태양의 옆자리 티켓이었다.

"저도 이태양 선수랑 같이 갈 거예요. KVC 베스테를로에 볼 일이 있거든요. 감독과 구단주에게 이태양 선수를 잘 부탁한다고 말해야 하고요."

이태양을 위한 아주 중요한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 볼일이 만들어진 이태양과 계약한 바로 다음 날이 떠올랐다.

*

회귀 전, 이 시기의 국가대표 명단과 이태양이 국가대표에 들어가기 직전 명단은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2022 월드컵에서 8강을 달성하고, 명단을 크게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운영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2026 월드컵에서 조별 탈락하고, 2027 아시안컵에서도 8강에서 떨어진다.

제때 세대교체가 안 된 탓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슈퍼 에이전트 태현석이 이태양을 국가대표에 밀어 넣었고, 그걸 시작으로 국가대표 명단이 크게 바뀌며 한국 대표팀은 새롭고 강한 팀으로 재탄생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국가대표 명단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지금도 이태양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얘기였으니까.

이태양이 T 에이전시 소속이 되는 걸 거부한 이상 나는 직접 움직여야 했다.

나는 챔피언십리그의 단장이었고, 내 연락이라면 아마 축구협회의 높은 사람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바로 연락하지 않았다.

먼저 우리 팀에 있는 인맥왕을 찾았다. 정보를 모으면 좋은 거니까.

나는 점심시간에 훈련장 식당에서 폐인 같은 몰골로 혼자 식사 중인 김건혁 앞에 앉았다.

"아이고, 엄청 피곤해 보이네요."

"단장님이시군요···. 죽을 것 같습니다···. 알렉스 팀장이랑 잭슨 감독님이 저흴 죽이려 하고 있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양이 아닌데, 어떻게든 해오라고···."

김건혁은 전력분석관 일이 정말 힘든 건지 힘없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한 팀을 분석하는 데도 일주일이 걸리는데, 일주일에 세 팀을 분석하라니요? 이게 말이 되나요?"

"그렇네요. 말이 안 되네요."

"단장님이 제발 감독님이나 팀장님에게 말 좀···."

"예, 전달해 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의 하소연을 들으며 긍정적인 대답을 해 줬다. 김건혁의 호감도 수치 같은 게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두 배는 올라갔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물론, 방금 한 말대로 잭슨이나 알렉산더에게 전할 생각은 없었다. 잭슨이 이민호와 김건혁을 두고 <굴리면 굴릴수록 잘하는 한국인들>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제때 당근도 줄 거라고 하니 나는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내 용건은 다른 거였으니까.

"건혁 씨. 혹시 한국축구협회에 아는 사람 없어요?"

김건혁은 영국에서 한인회를 운영할 정도로 인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혹시나 해서 물어보러 온 거였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좋은 답변이 돌아왔다.

"있긴 있는데··· 말단직원이긴 하지만요."

"혹시, 그 친구를 통해 축구협회에 대해 들은 게 있나요?"

김건혁은 내가 그런 걸 왜 묻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피곤한 목소리로 말단직원 친구에게서 들은 걸 하나하나 늘어놓기 시작했다.

"음··· 박지석은 실제로도 착하다는 걸 들었고···."

정말 쓸데없는 정보부터 시작해서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우리 국가대표팀 경기력이 별로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협회 내부에서는 이번 월드컵에서 조별 탈락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조금 중요한 정보,

"해외 구단과 연계해서 유망주들의 유학을 돕는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한다고 했어요."

아주 중요한 정보까지 나왔다. 나는 이 정보에서 속으로 예스! 라고 외치고 김건혁이 계속 늘어놓는 얘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던 도중, 김건혁은 자기가 너무 말을 늘어놓은 건 아닌지 걱정하며 말했다.

"단장님이라서 이렇게 다 말한 건데··· 비밀 지켜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죠."

내 또렷한 대답에 김건혁은 조금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건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축구협회에 관해 물어보신 건가요···?"

나는 준비해놓은 답변을 내놓았다.

"아, 축구협회와 일 하나를 같이 하고 싶어서요."

"일이요?"

"예. 한국의 유망주들에게 관심이 있어서요."

굳이 여기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었지만, 김건혁의 친구 말단직원에게 이 말이 전해질지도 모르니 표면적 이유를 말했다.

물론 나는 표면적 이유를 미끼로 이태양의 국가대표 선발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생각이었다. 당연하게도 표면적 이유를 토대로 우리 구단의 이익도 만들 계획이었다.

**

한국축구협회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에 우수선수 해외 유학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비록 6기로 끝났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축구의 새로운 전설인 손흥진과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 두 명을 발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이 프로젝트는 손흥진 이후로 중단됐다.

나는 김건혁에게서 축구협회가 이 프로젝트를 다시 할 거라는 얘길 듣자마자 우리 구단에서 꼭 잡아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프로젝트를 우리 구단에서 할 수만 있다면 유망주를 수급하는 것에 더불어 재정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니까.

유럽의 수많은 구단은 아시아 마케팅을 노리고 있었다. 그걸 위해서는 아시아 선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유럽의 구단들은 아무 선수나 데려올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지 않으면 유럽에서 마케팅 목적으로도 뛸 수 없었으니까.

국뽕을 빼더라도 한국의 선수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축에 속했다.

그런고로 한국축구협회와 파트너 관계가 돼서 뛰어난 유망주들을 수급받을 수 있다면 분명 유럽 상위권 팀에서 뛸 수 있는 선수를 일이 년에 한 명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길 원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우리는 이적료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선수들은 우리 구단과 베스테를로에서 유럽 축구에 쉽게 적응하고, 이적할 기회를 얻게 되고, 우리는 선수 혹은 돈을 얻을 수 있었다.

잘 돌아가기만 한다면 한 마디로 Win-Win인 프로젝트였다.

라고 나는 내 앞의 프란시스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KVC 베스테를로의 구단주 프란시스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그 프로젝트를 노팅엄과 우리 구단에서 해 보자는 겁니까?"

"네. 저는 한국인이니까 프로젝트를 물어오기 훨씬 쉬울 겁니다."

"흐음···."

프란시스가 고민하는 것 같아 나는 구체적인 계획을 늘어놓았다.

"만약 프로젝트를 한다면, 한국 선수들을 일단 우리 구단의 유소년 팀에서 몇 달 테스트하며 훈련 시킬 겁니다. 그렇게 베스테를로에서 뛸 기량이 된다고 판단되거나 베스테를로의 코칭 스태프가 원한다면 그쪽으로 보내겠습니다."

"한국 선수는 취업비자를 받기 어려우니까, 우리 구단에서 꼭 뛰어야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베스테를로에서 프로 경험을 쌓고, 일정 기량이 된다면 선수에게 세 가지 선택지를 줄 겁니다. 노팅엄으로 돌아오거나 베스테를로에서 뛰거나 아예 새 팀을 찾거나."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기량이 안 되는 선수거나 노팅엄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선수라면··· 우리도 노려 볼 수 있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아, 한국 선수들이 뛰게 된다면 소소하게나마 관광객들이 경기장도 찾을 겁니다."

주급도 우리가 지급하니 이만큼 좋은 게 없었다. 물론, 그만큼 우리의 권리가 훨씬 더 크긴 하지만.

프란시스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구체적인 계약서가 오고, 이상한 점이 없으면 바로 사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감사하죠. 요즘 제가 킴 덕에 경기장에서 어깨 펴고 다닙니다."

프란시스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제휴 구단 계약을 맺으며 당장 키우라고 조언해줬던 선수 둘이 리그에서 대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의 활약으로 팀 분위기 자체가 살아나 나머지 선수들도 경기력이 올라왔고, 그렇게 베스테를로는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승점을 쌓을 수 있었다.

덕분에 강등권도 진작 탈출해 있었다.

지금 베스테를로는 중위권이었다.

프란시스가 책상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곳에는 이태양의 이름과 사진이 있었다. 이태양의 임대 서류였다.

프란시스가 물었다.

"이 썬이라는 선수는··· 틀림없는 즉시 전력감 선수겠죠? 괜히 기용했다가 다시 강등권으로 간다면···."

"음··· 제가 감독이 아니라서 자신 있게 말은 못 하겠지만, 우리 잭슨 감독님이 충분할 거라고 했습니다."

"정말 빠른 선수라고 들었습니다."

"예. 지금도 전 세계의 축구선수 중 1%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빨라질 겁니다."

"···그 정도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태양의 지난주 연습경기 득점 장면을 보여줬다. 잠시 후, 프란시스는 안심하며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이 되었다.

"그럼 썬은 취업비자가 나올 때까지 우리 팀에서 뛰는 거겠죠?"

"예, 맞습니다."

프란시스는 2~3년을 얘기한 거겠지만, 나는 대략 1년 정도를 말한 거였다.

프란시스가 계속 말했다.

"그 정도 기간이라면 우리 구단의 역사에 남는 선수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태양 선수가 여기서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았으면 하거든요."

내 말에 프란시스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임대 선수가 아니라 우리 식구처럼 대해 주겠습니다."

"믿음직스럽네요."

나는 그렇게 프란시스와 악수하고, 프란시스가 마련해준 경기장 근처 집에 짐을 풀고 돌아온 이태양을 프란시스와 인사시켜줬다.

이후 나는 구단을 나왔고, 공항으로 가며 한국축구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네, 한국축구협회 언론홍보팀 최미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챔피언십리그에 소속된 노팅엄 FC의 사장 겸 단장, 김도운이라고 합니다."

-예?

나는 그녀의 되물음에 똑같이 한 번 더 말해줬다. 최미영이라는 직원은 한숨을 내쉬고 내게 말했다.

-장난하지 마세요.

"장난 아닙니다. 곧 축구협회 메일로 공문도 갈 거예요."

나는 조이에게 문자를 하며 말했다. 그제야 최미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진짜···?

"예. 그래서 그런데, 혹시 더 높은 분과 지금 통화할 수 없을까요? 당장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 40. 해외 유학 프로젝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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