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31화 (131/245)

< 41. 매 시즌 있는 일 (1) >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보이네."

"다른 나라에 우리 노팅엄의 펍&스토어를 만든 효과 아닐까?"

테디의 중얼거림에 로드가 답했다.

"그런가··· 자, 여기요."

테디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내밀었다. 유니폼에는 방금 테디가 한 사인이 적혀 있었다.

"고맙습니다."

필리핀에서 왔다는 팬은 어색한 발음의 영어로 테디에게 감사를 표했다. 테디는 악수까지 하고 다음 팬이 가져온 공에 사인했다.

노팅엄의 훈련장 건물 안에는 선수들의 퇴근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사인을 위한 큰 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오늘도 약 30~40여 명 정도의 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대다수는 해외에서 찾아온 팬들이었다.

노팅엄시에 사는 팬들은 매주 경기장을 찾거나 마음만 먹으면 이곳에 찾아올 수 있었기에 굳이 자주 방문하지 않았다. 새로운 선수가 왔을 때만 빼고.

아무튼, 이 공간에는 훈련 후 약속이 없는 선수들이 퇴근 전에 들르곤 했었다.

오늘은 로드, 테디, 테오, 세자르, 할리가 있었다.

"오늘은 아름다운 리아 만나러 안 가요?"

"리아가 이쪽으로 오기로 해서요."

"그럼 여기 줄에 있는 사람들 다 사인해줄 수 있겠네요?"

"당연하죠. 친구들을 불러도 돼요."

세자르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여성 팬에게 자연스럽게 농담을 건넸다. 장난기 많은 팬이 정말 전화하는 시늉을 하자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말고, 내일 와요."

"불러오라면서요."

"오늘은 리아랑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요. 늦으면 혼날 거예요."

"봐 드릴게요."

"영광입니다. 레이디."

세자르와 팬이 까르르 웃었다. 팬 뒤에 서 있는 다른 팬들도 둘이 하는 대화를 듣고 웃었다. 세자르에게 사인을 받으려 기다리는 팬들이 가장 많았다.

세자르는 특유의 능글능글한 말이 담긴 인터뷰 덕에 인기가 많기도 했고,

"대신 저랑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드리겠습니다."

적극적인 팬서비스도 인기의 비결이었다.

특히.

"지난 경기 해트트릭 최고였어요!"

"감사합니다."

세자르는 노팅엄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골잡이이기 때문에 로드 같은 성골 유소년을 제외한다면 정말 인기가 많았다.

지난 경기에서 2부 리그 득점 랭킹 1위까지 차지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전형적인 남미의 미남인 점도 인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세자르를 보며 할리가 불평했다.

"저도 관심 좀 가져주세요!"

할리는 세자르 쪽에 줄 선 사람들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 모습에 팬들이 웃었다.

할리는 많은 움직임으로 세자르의 득점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득점 순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도움 순위에서는 5위 안에 들었고, 전문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서포터즈 또한 이번 시즌에는 사람의 뇌를 장착하고 경기하는 것 같다며 할리를 칭찬하면서 놀렸다.

"작은 헌터가 발을 뻗으면 적들은 멍청이가 된다네~."

테오는 팬과 함께 응원가를 부르면서 놀고 있었다. 테오는 수비수였지만, 테디와 형제라는 캐릭터와 아주 공격적인 풀백이어서 팀 내 도움 3위였기에 인기가 어느 정도 있었다.

팬이 절반 정도 줄었을 때, 검은 고양이 티케가 테디와 로드 옆에 다가와 애옹거렸고, 테디가 티케를 끌어안은 채로 팬들에게 사인해주었다.

그런 모습을 팬들이 찍으며 웃었고, 테디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팬까지 사인을 해주고, 테디가 말했다.

"로드, 오늘 어떻게 집에 가? 차 안 가져왔던데, 태워줘?"

"괜찮아. 할리랑 VR 게임 좀 하다 가려고. 할리 차 타고 갈 거야."

로드와 할리는 둘이 승부를 겨뤄야 한다며 사라졌다. 테디가 세자르에게 말했다.

"세자르, 가자."

"오늘은 괜찮아."

"응?"

"리아가 여기로 오기로 했거든. 알아서 집에 갈게."

"그래? 알겠어."

원래 테디와 세자르는 집이 근처였기에 차를 번갈아 끌며 출퇴근하곤 했었기에 오늘 차례였던 테디가 물어본 거였다.

"가자."

"응."

그래서 테디는 오랜만에 테오와 단둘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테오가 조수석 바닥에서 두꺼운 책을 집어 들며 말했다.

"형, 이거 뭐야? 옷 공부해?"

패션쇼 사진이 잔뜩 들어있는 책이었다. 핸들을 잡은 테디가 곁눈질로 책을 보고 말했다.

"스칼렛이 놓고 갔나 보네. 연락해놔야겠다."

"어제 데이트했어?"

"나한테 관심 좀 가져라 동생아. 어제 11시 넘어서 집에 들어갔잖아. 차 안에서 트렌트강 보면서 와인 한잔했어."

테디는 그렇게 말하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테오는 그런 테디를 보며 말했다.

"요즘 웃음이 떠나질 않네."

"당연하지. 4주 연속 이 주의 오른쪽 윙에 뽑힐 정도로 잘하고 있고, 동료들은 재미있고, 티케는 귀엽고, 경기 때마다 팬들이 응원가를 세 번 넘게 불러준다고. 너는 저번 주에 두 번밖에 안 불러줬지?"

"허. 나는 네 번이었어."

"당연히 경기장 전체 팬들 기준이지."

테디의 당당한 말에 테오는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테디가 신나서 더 말했다.

"뭣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내 애인이잖아."

"···세자르 닮아가지 마. 소름 끼쳐."

"너도 연애해 보면 알게 돼."

테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창 저녁 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주택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비슷하게 늘어서 있는 건물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테오는 고개를 돌려 테디를 바라보았다.

오늘 팬 사인회 때도 그랬다. 테디는 이곳에서 매일 웃었고,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테오는 테디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형, 혹시 빅클럽에서 제안이 와도 여기 남을 거야?"

"응?"

"약속했던 거 있잖아."

"아아··· 그 자식을 만나자고 했던 거?"

"응."

테디와 테오는 에이전트 로빈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축구선수가 되기는커녕 올바르게 자라기 힘든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어릴 때 가출해버리고,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아버지는 자신들을 때리고, 욕하고, 깎아내렸으니까. 술을 마시면 정말 죽일 듯이 때렸고.

그때를 떠올리니 테오는 괜히 어깨가 움츠려졌다.

그래서 테오는 로빈을 떠올렸다.

로빈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새 팀에서 뛰게 된 날 형 테디와 약속 하나를 했었다.

"슈퍼스타가 돼서 그 자식이랑 만나자고 했었지··· 대체 우리한테 왜 그랬는지 물어보자고 그랬고."

테디의 중얼거림에 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입을 먼저 연 건 테디였다.

"난 사실··· 잘 모르겠어.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

"뭐?"

"그 자식 생각하는 것만으로 피곤한데, 굳이 만나러 가고 싶지 않아. 그 자식은 뭐 밑바닥 인생 살다가 죽겠지. 그런 놈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노력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때, 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테오는 더 얘기하려고 했지만, 집 앞에 로빈이 나와 있었다.

테디가 창문을 열었고, 로빈이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리 헌터들이 왔구나. 깜짝 놀랐지?"

*

테디가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한동안 프랑스에 계실 거라고 했잖아요."

"거래가 빨리 끝나서 말이야. 우리 아들들 보러 왔지. 한 번 안아보자."

로빈이 테디와 테오를 차례로 포옹했다. 로빈은 테오와 떨어지며 말했다.

"저녁 해 놨어. 들어가서 먹으렴."

"네!"

둘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짐만 풀어놓고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사 내내 각자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로빈이 말했다.

"사실, 너희들 일 때문에 여기 온 거기도 해."

"일이요?"

"리버풀, 맨시티, 아스날, 뉴캐슬, 맨유에서 제안이 들어왔단다. 브라이튼이나 스토크시티 같은 중상위권 팀들에게서도 연락이 왔고."

"예?"

프리미어리그에서 10위 안에 드는 팀들의 이름이 주르륵 나오자 테디와 테오는 렉 걸린 캐릭터처럼 그대로 멈췄다.

로빈은 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바로 이어 말했다.

"멀티 포지션이 되는 20세 이하의 잉글랜드 선수. 국가대표 데뷔전도 치렀고, 챔피언십리그에서도 시즌 내내 꾸준하게 상위권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가 있어. 너희들이 감독이라면 안 탐나겠니? 그것도 형제라는데?"

테디가 물었다.

"방금 말한 팀에서 전부 저희 둘 다 원하는 거예요?"

"아니, 리버풀과 맨시티, 맨유에서는 너희를 둘 다 영입하고 싶다고 했단다. 아스날과 브라이튼에서는 테디만, 뉴캐슬과 스토크시티에서는 테오만 원한다고 해."

테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단장님은 뭐래요?"

"너희 둘을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고 싶대. 하지만, 너희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테디가 말했다.

"그럼 저는 안 갈래요. 빅클럽들이랑 대화할 생각도 없어요. 대신, 저 오퍼들을 근거로 노팅엄이랑 재계약하고 싶어요."

테디의 확실한 의사 표현에 로빈은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최대한 비싸게 받아줄게. 그럼··· 테오는 어쩌고 싶니?"

"저는···."

하지만, 테오는 테디와 로빈을 번갈아 보며 한참 동안 결정하지 못했다.

**

"사실 잘 모르겠어요. 노팅엄에 남고 싶기도 하고, 빅클럽에 가고 싶기도 하고···."

로빈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테오의 팔뚝을 쓰다듬어줬다.

"그럴 땐 일단 대화해보면 네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단다."

테오는 어제 빅클럽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정했다. 로빈은 노팅엄 구단에 알렸고, 허락을 받고 지금 노팅엄의 한 호텔에 와 있었다.

이렇게 외부로 흘러나가면 좋을 게 없는 만남을 가질 때는 보통 호텔에서 대화한다.

다른 방을 다른 시각에 잡고, 약속한 시각에 서로의 방으로 찾아가 만나는 방식이었다.

테오와 로빈은 곧 찾아올 뉴캐슬의 단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벨이 울렸다.

"예, 나갑니다."

테오는 당연히 뉴캐슬의 단장이 온 거라고 생각하며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굳었다.

문 앞에는 뉴캐슬의 단장이 아닌 노팅엄의 동료, 세자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자르?"

"테오?"

세자르의 뒤에는 몇 번 본 적 있는 그의 에이전트도 있었다.

테오를 보자마자 그 에이전트도 당황하며 스마트폰을 급히 보고, 방문에 붙어있는 방의 번호를 보고 세자르에게 말했다.

"세자르, 옆 방이라니까. 잘못 눌렀잖아."

"오, 이런··· 테오. 나 여기서 만난 건 비밀로 해줘."

하지만, 그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도착했다. 테오는 이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뉴캐슬의 단장이었다.

"오오. 테오. 벌써 나와 있었네요. 만나고 싶었어요. 리찌 감독님이 테오를 얼마나 원하는지 몰라요."

그리고 원래 세자르가 벨을 눌렀어야 할 옆 방문이 열리며 사람이 나왔다.

리버풀을 성공으로 이끈 마이클 에드워즈라는 리버풀의 단장이었다.

"세자르, 거기서 뭐 해요. 리버풀로 오는 길은 이쪽이에요··· 혹시 테오 선수예요?"

테오와 세자르는 다시 서로를 보며, 굳은 채로 있었다.

서로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둘 다, 빅 클럽과 대화를 나누러 온 거였다.

세자르가 물었다.

"너도?"

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 41. 매 시즌 있는 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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