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매 시즌 있는 일 (2) >
세자르와 테오는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그래도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세자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음··· 각자 볼일 끝나고 볼래?"
"···그래요."
세자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옆 방으로 향했다. 리버풀의 단장은 테오와 로빈, 그리고 뉴캐슬의 단장에게 눈인사하고 세자르가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어색하게 서 있던 뉴캐슬의 단장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하는지 이렇게 말했다.
"하하, 기묘한 상황이었네요."
"맞아요. 다른 에이전트들 만나면 꼭 얘기해야겠어요.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잖아요."
테오의 에이전트 로빈은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테오 또한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렇네요. 신기하네요. 아, 어서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뉴캐슬의 단장은 자신있게 걸어 호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방금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 약 10여 분간의 잡담 후,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테오, 뉴캐슬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런가요···."
"킴 단장이 테오의 이적료로 무려 3,500만 파운드(약 530억 원)를 요구했어요. 테오는 아직 스무 살도 안 됐고, 프리미어리그 경험도 없지 않습니까? 사실 말도 안 되는 요구라고 생각해서 전 포기하려고 했어요."
뉴캐슬의 단장은 그렇게 말하며 테오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테오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원래 테오가 여기서 발끈해서 다음 말로 달래주며 마음을 녹여야 하는데··· 뉴캐슬의 단장은 기대 대로 되지 않은 것에 아쉬워하며 준비했던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작년 FIFA 올해의 감독, 리찌가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테오를 무조건 데려와달라고 했어요."
"그렇군요."
테오는 조금 성의 없는 대답을 하며 세자르가 있을 옆 방을 바라보았다. 집중이 잘 되질 않았다. 치부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라 세자르와 빨리 얘기하고 싶었다.
그때, 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테오, 아까 일이 당황스럽긴 하겠지만, 예의는 지켜야 할 거 아니니?"
테오는 그제야 뉴캐슬의 단장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단장은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테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같은 팀 동료를 만나게 될 줄은 몰라서···."
"괜찮습니다. 이해해요."
단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테오의 사과를 받아줬다. 그리고 물었다.
"제 말은 다 들으신 거죠?"
"예, 리찌 감독님이 절 원하신다고···."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감독님이 테오 선수와 통화하고 싶어 하십니다."
"정말요?"
테오가 놀라서 묻자 단장은 그제야 원한 반응이 나왔다는 듯한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리찌는 뉴캐슬을 2부 리그부터 이끌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키고, 뉴캐슬을 세계에 통하는 강팀으로 만들어 낸 명감독이었다. 작년에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프리미어 리그 준우승이라는 업적 아닌 업적을 세우기도 했었다.
특히, 선수들 사이에서 리찌 감독은 유명했다. 리찌 아래로 들어가면 선수들은 무조건 몇 단계씩 발전했으니까. 리찌는 선수의 장점을 잘 살리기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했다.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감독이 자신을 어떤 선수라고 판단하는지 궁금했다.
뉴캐슬의 단장이 통화 버튼을 눌렀고, 불과 몇 초 만에 리찌와 연결됐다.
단장은 테오에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아, 안녕하세요···."
-테오 헌터 맞나?
"예."
-좋아.
뭐가 좋다는 건지, 테오는 리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테오, 긴말 않겠네. 다음 시즌에 자네가 꼭 필요해.
테오는 마음이 들뜨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챔피언스리그에도 단골로 나가는 팀을 이끄는 감독이 이런 말을 해 준 거였다.
테오의 표정이 어땠는지 로빈이 입 모양으로 '침착해.'라고 말했다.
테오는 헛기침을 하고, 로빈과 함께 준비했던 질문을 꺼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좋아.
"절 어떻게 평가하시죠?"
상대의 말이 립 서비스인지 확인하는 아주 직접적인 방법이었다.
-완성되기 전의 에브라, 마르셀루를 보는 것 같네. 자넨 체력 좋고 달리기가 빠르고, 사실상 윙어 같은 아주 공격적인 풀백이야. 이 능력은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먹힌다고 보고 있어. 하지만, 수비 능력은 솔직히 프리미어리그 하위권 수준밖에 안 돼. 이 단점은 내 훈련과 피드백을 통해 강화해 줄 생각이야.
리찌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테오는 적어도 리찌가 정말로 자신에 관해 알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테오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게 더 중요한 질문이었다.
"절 어떻게 쓰실 거죠?"
이번에도 리찌는 망설임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왼쪽 풀백 주전 자리를 보장할 계획이야. 오버래핑을 수시로 나가는 공격적인 풀백 역할을 맡을 거고, 전술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는 왼쪽 윙 안토니오 마린을 대신해서 나갈 수도 있을 거야.
"제가··· 마린을요?"
-그래. 바로 다음 시즌부터.
마린은 무결점 스트라이커 셰브첸코의 후계자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에이스이자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왼쪽 윙 겸 스트라이커였다. 뉴캐슬에서는 발롱도르 후보에 늘 들어가는 니콜라스 마카키스가 부동의 원톱 자리를 맡고 있었기에 왼쪽 윙에서 뛰고 있었다.
테오는 리찌의 말을 들으며 리찌가 정말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테오는 뉴캐슬에 관해 생각해봤다.
뉴캐슬은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툰'이라는 이름의 팬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툰'은 팬으로 유명한 리버풀, 도르트문트, 셀틱에 꿀리지 않는 열정적인 팬들이었다.
리그에서는 4위 안에 무조건 들어가는 늘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팀이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최소 8강은 가는 팀이었다.
사실상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빅클럽이었다.
이 팀의 주전 선수가 된다면, 테오는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신 있게 아버지를 만나러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테오의 머릿속에는 노팅엄의 훈련장과 경기장, 그리고 동료들과 자신의 응원가를 불러주던 팬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테오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리찌의 말을 듣기만 했다.
*
그리고 같은 시각 세자르도 리버풀의 단장에게 제안을 받고 있었다.
"킴 단장이 아주 끈질기더군요. 세자르 선수를 데려가려면 최소 4천만 파운드를 내놓으라고 했어요. 계약 기간이 잔뜩 남았다면서 말이죠. 세자르, 여기에 100만 파운드 정도에 오지 않았나요?"
"뭐··· 구체적인 이적료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걸요?"
단장이 김도운을 떠올리는 건지 눈썹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돈을 지급하는 한이 있어도 세자르 선수를 영입하기로 했어요. 세자르 선수의 기술과 축구 지능은 이미 프리미어리그 상위급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리고 그런 재능을 가진 선수들은 좋은 선수들이 주변에 있을수록 더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고요."
"좋은 평가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세자르 선수는 우리 리버풀에 오면 틀림없이! 한 시즌에 최소 20골은 넣을 수 있을 선수인데, 당연한 평가죠."
이어서, 단장은 너무나도 매혹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클롭 감독님이 세자르 선수를 원톱 스트라이커로 쓸 거라고 했어요."
세자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신이 더 노력한다면 세계 최고의 펄스나인이었던 피르미누와 세계 최고의 선수인 크리스 앨런이 뛰었던 리버풀의 원톱 자리에서 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단장은 이어서 클롭 감독과 전화 연결을 시켜줬다.
클롭은 세자르와 길게 통화하지 않았다. 세자르를 얼마나 원하는 지 얘기하고,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자네가 오길 기다리겠네.
세자르는 생각에 잠겼다.
목표에 한 걸음이 아니라 몇 걸음 다가갈 수 있는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오리아나와의 물리적인 거리는 조금 멀어지겠지만, 세계적인 기업의 딸인 오리아나와 결혼하기 위해서 했던 내기를 이룰 가능성이 훨씬 커지는 길이였다.
세자르는 1억 파운드짜리 이적료를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거나, 1천만 파운드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했으니까.
하지만, 세자르의 머릿속에는 훈련 끝나고 자신에게 사인을 받아가던 팬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리버풀의 단장이 세자르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나?"
**
"뭐라고 대답했어요?"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망할, 생각해 볼 것도 없는 건데."
테오가 묻고, 세자르가 답했다.
테오와 세자르는 테오의 호텔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테오가 왠지 모르게 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죠. 저한테도 3천 5백만 파운드나 내놓겠다고 했거든요. 주전 자리 보장도 해 주겠다고 했고. 이거 엄청나게 대우해주는 거잖아요. 이 돈 내고 주전으로 안 쓸 수가 없을 텐데."
"와우. 그건 그렇네. 아, 그래도 내가 이겼다. 난 4천만 파운드거든."
이 상황에도 장난스럽게 말하는 세자르에게 테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실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공격수라 그렇죠."
"웃기시네. 넌 잉글랜드 프리미엄 받은 거잖아."
"공격수 프리미엄이 더 비싸요."
둘이 투닥거리고 있으니 로빈이 작게 웃었다. 둘의 시선이 로빈에게 닿자, 로빈이 세자르를 담당하는 에이전트의 머리에 팔을 감아 헤드락 자세를 만들며 말했다.
"둘이 얘기 나눠. 에이전트끼리 할 얘기가 있거든."
로빈이 둘이 편히 얘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려고 한다는 걸 깨달은 테오가 감사를 말했다.
"고마워요. 로빈."
"끝나면 전화해."
"네!"
로빈이 고참 에이전트라 그런 건지 세자르의 에이전트는 쩔쩔매면서도 방 밖으로 끌려갔다.
그걸 보며 웃던 둘은 잠깐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궁금했지만 미처 물어보지 못한 질문을 꺼냈다.
"근데, 왜 바로 계약 안 했어?"
세자르의 물음에 테오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음이 불편해서요."
"마음?"
"떠날 생각을 하니까 너무··· 찝찝한 거 있죠. 여기 사람들이 생각나더라고요."
"너도 그랬어?"
세자르의 물음에 테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자르도?"
"응. 리아와의 결혼이 목표가 아니었으면 바로 남는 걸 선택할 정도로 노팅엄이 생각나더라."
"오리아나 얘기가 왜 나와요?"
"그러니까······."
세자르는 간략하게 자신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래서 리버풀의 제안에 마음이 너무 흔들려. 1억 파운드짜리 선수가 빨리 되려면 무조건 빅클럽에 가야 하는 거잖아?"
"···저 진짜 놀랐어요. 오리아나 양이 람브레 건설사 사장의 딸이었다니."
"아무튼, 그래서 고민되는 거야. 근데, 너는 왜 이적을 더 하고 싶어 하는 거야? 테디도 이적하고 싶대?"
테오는 잠시 멈칫했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느라고.
테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은 남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너는?"
"목표가 있어서요. 로빈이 더 유명해지면 가정 사정 같은 건 어차피 알려질 거라고 했으니까, 세자르라면 미리 말해 놔도 괜찮을 것 같네요."
"뭔데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야?"
"그러니까······."
테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테디와 테오, 두 헌터 형제의 힘들었던 가정 사정이 나왔다. 세자르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이렇게 된 거죠. 로빈이 없었더라면 저랑 형은 축구 선수가 못 됐을 거예요."
"아이고···."
세자르는 무슨 위로를 할지 고민되는지 입을 열었다 뗐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테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지금은 다 좋으니까."
예전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다는 테오의 간접적인 의사 표현을 알아차린 세자르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게 문제야. 지금이 너무 좋아서 옮기고 싶지 않거든. 리버풀에 가도 잘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노팅엄도 몇 년 안에 정말 대단한 팀이 될 것 같은데."
"오, 그렇네요. 노팅엄이 빅클럽이 되면 되네요?"
"그런데 그게 쉬운 게 아니잖아···."
"···그렇죠."
테오의 표정이 밝아지자마자 어두워졌다.
"어쩌지."
"그러게요."
테오의 말을 끝으로 둘은 한동안 얘기하지 않았다.
둘 다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 세자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테오, 우리끼리 끙끙대 봤자 아무것도 안 나오겠다. 감독님이랑 면담해볼까?"
"감독님은 무서운데···."
"그럼 로드는 어때?"
"오, 좋네요."
*
"그래서, 너희 떠난다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세자르, 로드, 테오는 노팅엄의 한 카페에 모여 앉아 있었다.
세자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쭉 얘기했다. 무슨 제안을 받았는지까지 얘기하자 밝은 얼굴로 왔던 로드는 금세 어두운 얼굴로 바뀌었다.
"가겠네."
로드의 너무나도 단호한 말에 세자르와 테오는 뭐라고 말해야 할 줄 몰라 머뭇거렸다.
둘 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기에 로드는 둘이 진짜로 간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땅을 파는 것처럼 우울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슬프다. 우리 구단이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려면 최소 2년은 필요하고, 실제로는 더 걸릴 테니까··· 가야지. 빅클럽에서 그런 제안을 하는데 어떻게 거절해."
"아니···."
"매 시즌 있는 일이야. 당연한 거지 뭐. 그래도 다른 선수들한테는 얘기하지 마."
"아니, 우리 얘기 좀 들어봐. 그 말 하겠다고 널 부른 게 아니란 말이야."
세자르의 말에 로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 말을 하려고 했는데?"
"불편해."
"찝찝해."
세자르와 테오의 말에 로드가 고개를 더 기울였다.
"뭐가? 설마 이적하는 게?"
"응. 이적하는 게 맞는지, 남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
로드가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왜? 그렇게 좋은 기횐데?"
"여기는··· 특별한 곳이잖아."
세자르의 말에 로드의 표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로드는 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둘 다 이곳에 온 지 1년밖에 안 되는 선수였다. 그런데도 팀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너랑 얘기를 나누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부른 거야."
세자르의 말에 로드는 고민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로드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로드는 그 사람을 입 밖에 냈다.
"단장님이랑 얘기해봐."
**
"또 로드지··· 그 자식은 상담사를 고용해놔도 왜 자꾸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다음 시즌 영입명단을 정리하던 나는 갑작스러운 방문객들과 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대놓고 투덜거렸다.
테오와 세자르는 나란히 앉은 채로 동시에 갸웃했다.
두 명 동시 상담이라니. 벌써 머리가 아파 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둘 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데 테오가 먼저 물었다.
"단장님은 저희가 떠났으면 하는 건가요? 이적을 허가해준 거잖아요."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내가 너희들 이적을 허가해준 건 간단해. 우리 구단의 이미지와 너희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서야."
"이미지요?"
"지금 너희에게 매겨진 이적료는 시장 가치에 비해 높아. 그런데도 너희에 대한 제안을 거절한다면 나중에 우리 팀에 올 선수들이 고민하게 되거든. '아, 저 팀에 가게 되면 쉽게 나올 수 없구나.'라고. 2010년대의 파리 생제르망처럼 말이야."
"아아···."
그리고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떠났으면 한다고? 그럴 리가 있나."
테오와 세자르는 또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이어서 나는 둘이 오뚝이 인형처럼 보였다.
"3500만 파운드, 4000만 파운드. 둘 다 큰돈이지. 하지만, 나는 너희들이 1억 파운드짜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해. 그러니까 사실 지금 파는 건 손해인 거지."
둘은 더욱더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직접 얘기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거라고. 남든지, 이적하든지 말이야."
"그걸 몰라서 여기 온 건데···."
둘 다 프리미어리그 최상위급의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회귀하기 직전에도 둘은 어린 편이었기에 그 이후에 월드클래스 선수가 됐을지도 모르는 거였다.
그런 둘이 고민 중이라고 한다.
아마 구단에 대한 애정 때문이겠지.
나는 둘을 보며 잠시 갈등했다.
남으라고 하면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이 선수들 개인에게 좋은 일일까?
개인적으로는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예전의 칼처럼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수가 만족하지 못하면 경기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순서였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동기부여야. 동기부여가 안 되는 곳에 있으면 안 돼. 프로 생활은 짧아."
테오와 세자르가 진지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사실 사회에서 보면 어린애들이야. 하지만, 그런 걸 배려해줄 사람은 이 축구계에는 없다고 보면 돼. 다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니까. 그러니까, 너희들은 중요한 순간에 기둥이 되어 줄 기준이 있어야 해. 예를 들면 세자르의 1억 파운드 같은 목표 말이야.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느 길이 가장 빠를 것 같아? 너희들은 답을 알고 있을 거야."
테오와 세자르가 눈을 크게 떴다. 둘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던 눈을 동시에 떨궜다. 무슨 선택을 할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
세자르와 테오는 노을빛이 채워지기 시작한 훈련장 잔디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둘은 지는 해를 보며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냥 1억 파운드짜리 선수가 되고 싶어서, 오리아나가 사는 곳이랑 가까워서 온 곳이었는데···."
"저도 로빈이 추천하는 대로, 빅클럽에 가기 전에 들를 팀이라고 생각하고 온 거였는데···."
둘 다 삼킨 뒷말은 똑같았다.
이렇게 정이 들 줄 몰랐다. 떠나고 싶지 않을 줄은 몰랐다.
해가 반쯤 사라졌을 때, 세자르가 물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나면 어떡할 거야?"
"모르겠어요. 세자르는요? 오리아나랑 결혼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질문했는데, 내가 대답해야 하네···."
세자르의 투덜거림에 테오가 작게 웃었다.
세자르는 진지한 얼굴로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노을빛만 남았을 때까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 41. 매 시즌 있는 일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