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34화 (134/245)

< 42. 잭슨 포터 (2) >

"존, 브래드를 뺀 나머지 코치들을 모아 다오."

"예."

브래드는 초반 훈련을 담당할 코치였다.

잭슨 옆에서 이번 주 전술의 핵심이었던 테디와 요한의 이탈을 들은 수석코치 존은 군말 없이 목소리를 높여 필드 위에 있는 코치들을 불렀다. 그리고, 나머지 코치들에게도 전화했다.

선수들이 훈련에 매진하는 동안 잭슨은 오늘 아침 회의로 결정된 것들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전술을 바꿔야겠다.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테디와 요한이 경기 전에 제 컨디션을 찾을지 미지수다."

"아아···."

몇몇 코치가 탄식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존이 물었다.

"일단, 다음 경기를 어떻게 운영할지 생각해 놓으신 게 있습니까?"

"그래, 윙이 없는 다이아몬드 442를 쓸 거다."

다들 제대로 듣기 위해 잭슨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고, 잭슨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리와 세자르를 투 톱으로 놓고, 수시로 측면으로 움직이게 할 거다. 루카에게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기고··· 섀도우 스트라이커 역할과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동시에 해 줄 선수로는···."

잭슨은 말없이 필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코치들은 잭슨의 시선이 어디로 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라이언! 잠깐 와 봐라. 로드도!"

"예!"

라이언과 로드가 씩씩하게 대답하고 달려왔다. 잭슨은 먼저 로드에게 물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수 있겠나?"

후보 선수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잭슨은 노팅엄보다 순위가 높은 아스톤빌라를 상대로 후보 선수를 기용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판단했다. 1군과 후보 선수들의 차이는 분명했으니까. 세 번째 공격수인 미할리스만 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넌 이따 특별 훈련에 들어간다. 내가 직접 보고 결정하겠다."

"알겠습니다."

라이언에게는 통보식으로 말했다.

"라이언, 너는 오늘 공격수들과 같이 슈팅 훈련을 받는다."

"알겠습니다."

"훈련 후에 이번 경기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마."

"예."

라이언은 잭슨을 신뢰했고, 잭슨 또한 그러했으니 이런 생략된 대화가 가능했다. 그런 관계를 아는 코치들 또한 별말 없이 훈련 프로그램을 상의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다시 떠나고, 기초 훈련이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잭슨은 코치들에게 오늘 할 훈련을 지시하고, 오늘 훈련이 끝난 후에 이번 주 프로그램을 표로 만들어서 보고하라고 했다.

코치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수석코치 존이 손을 들었다.

"감독님, 그런데 우리 팀이 다이아몬드 442 전술은 한 번도 쓴 적 없는데, 괜찮을까요?"

다들 잭슨의 말이니까 되겠거니 했지만, 존만큼은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이래서 존은 잭슨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잭슨이 말했다.

"지더라도 시도는 해 봐야지. 안 그러면 테디와 요한 빼고 절대 못 이겨. 아스톤빌라는 우리보다 좋은 전력을 가진 팀이니까."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잭슨은 승점을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잘 됐으면 좋겠군요."

존은 진심으로 그렇게 바랐다.

**

"감독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부임하고 한 번도 쓴 적 없는 다이아몬드 442라니."

노팅엄 경기장의 프레스 석에서는 기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프레스 석 반대편에 보이는 전광판에는 [아스톤빌라 2 : 0 노팅엄]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간은 후반전 40분. 게임이 뒤집히기는 늦은 시간이었다.

"명장 병이 도진 거지 뭐. 테디와 요한의 컨디션이 별로라지만, 그냥 걔네를 쓰는 게 더 나았을걸?"

한 기자의 말에 다른 기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기자가 말했다.

"모처럼 응원하는 팀이었는데, 감독이 다 망치네."

"아직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잖아."

"뻔하지 뭐. 내가 노팅엄을 응원하게 되면서 잭슨이 예전 팀에 있을 때 어땠는지 찾아봤었거든?"

"응. 그런데?"

"선수단 운영에 문제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이런 식으로 파격적인··· 아니, 명장병 걸린 전술 운용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그 팀들에서 잭슨이 1부 리그까지 가 본 적이 있어?"

기자의 말에 다른 기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2부 리그 최하위권으로 예상되던 노팅엄을 최상위권에 올려놓은 잭슨 감독의 약점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건 좋은 기삿거리였으니까.

또한, 다른 기삿거리도 보였다.

"벤치에 테디랑 요한 표정 봐."

"화난 것 같은데."

테디와 요한은 경기장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기자들에게는 선수들의 모습이 감독이 자신들을 기용하지 않은 데에 대한 불만 같아 보였다.

기자들은 말없이 각자 가져온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열심히 기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이번 시즌에 진 게 세 번째지?"

"누구 잭슨이 전에 있던 팀에서 무슨 트러블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 있어? 나랑 자료 교환하자."

"라이언은 혹사 아니야? 포지션도 바뀌고 역할도 바뀌고, 맨날 풀타임인 것 같은데."

그렇게 다음 날, 노팅엄시의 많은 사람은 아래와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을 잔뜩 접하게 되었다.

<전 팀에서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잭슨 포터. 이대로 괜찮은가?>

**

"어이가 없네. 테디랑 요한은 어제 경기 뛸 컨디션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알아요?"

"전 잭슨이랑 맨날 얘기하니까요. 테디랑 요한은 어제 정상 컨디션의 40%도 안 됐어요. 그래서 자기들이 미안하다고 분해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던 건데···."

내 스마트폰에 떠 있는 기사의 제목은 <테디와 요한, 감독과의 불화 시작?>이었다. 나는 단장실에서 마리아와 함께 동남아 투어에 관해 의논하다가 잠깐 차를 마시며 기사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욕하고 있었다.

"장작불로 태울만한 것들이면 다 기사로 만드는 망할 기자들."

"내부 출입 기자님은···."

"사실을 기사로 썼는데··· 묻혀버렸어요."

선수들과 잭슨의 사기가 걱정돼 단장실에서 보이는 훈련장을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잭슨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하고 있었다.

···아니, 평소와 달랐다.

더 적극적으로 보였지만, 중간마다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있곤 했다.

돈을 많이 버는 프로 감독이든,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됐든 비판은 늘 아픈 거다. 잭슨도 사람이니까. 그것도 과거의 트라우마를 꺼내서 비판한다면 더더욱.

"괜찮을까요?"

"안 괜찮을 것 같아요. 솔직히 저도 잭슨이 가끔 줄타기할 때 경기 보면 무서워 죽겠는데, 팬들은 오죽하겠어요? 우리 팀이 돈도 많아졌겠다, 검증된 감독을 데려오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럼 어떡해요?"

내 말에 마리아가 불안해하며 말했다.

"잭슨이 갑작스럽게 전술을 바꾸는 건 현재 전력으로는 승점 1점을 따기도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거든요. 어차피 졌을 경기를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하는 거죠. 저는 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보다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해요. 지난 시즌에는 이게 잘 먹혀서 승점을 10점인가 벌었는데··· 사람들은 지난 시즌을 금방 잊어버리네요."

"그런데, 지금 전력으로 승산이 더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팬들이나 기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러니까, 제가 인터뷰 한 번 해야겠어요."

흔들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길이 옳다는 확신이다.

**

잭슨은 출근하기 전부터 기분이 별로였다.

새벽에 받은 종이 신문과 아침을 먹으며 본 인터넷 기사에 적힌 자신에 대한 안 좋은 내용을 읽은 게 시작이었다.

테디와 요한의 표정 때문에 생긴 오해와 갑작스러운 전술 변화에 관한 오해까지는 정말로 괜찮았다.

둘과는 문제가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전술 변화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 그대로 두면 어차피 지는 거였으니까, 뭐라도 해 봐야 했다.

그리고 잭슨은 20년이 넘는 감독 경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오해들은 귀여운 수준에 속했다.

하지만, 한 개의 기사가 잭슨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라이언이 위험하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잭슨이 미처 생각지 못한 걸 짚고 있었다.

잭슨은 어느 팀에서나 마음에 드는 선수 몇을 정해두고, 그 선수들만 쓴다는 거였다.

잭슨의 기억에도 좋게 남아있는 선수들이 지나칠 정도로 출전 기록이 높다는 게 표로 정리돼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에는 이 선수 중 절반이 잭슨이 있을 때나 떠난 직후에 피로가 누적돼 다쳤다고 적혀 있었다.

잭슨은 노팅엄에 온 뒤의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봤다.

'내 욕심 때문에 유망한 젊은 선수를 무리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1부 리그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가고 싶었다. 2부 리그가 한계라는 말을 깨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잭슨이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 전술적인 부분이나 선수들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는 식으로 이뤄져야 하지 선수를 희생시키는 건 절대로 싫었다.

잭슨은 목적을 위해 선수를 희생시킬 수 있는 감독이 아니었다. 젊었을 때, 성공을 갈망했을 때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잭슨은 오늘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빨리 훈련이 끝나고, 라이언을 비롯해 선발 명단에 자연스럽게 이름을 적는 로드, 루카에 관해 확인해보고 싶었다.

코치들, 스포츠치료사, 그리고 팀닥터에게 물을 계획이었다. 그들 모두에게서 괜찮다는 말을 들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라이언!"

할리의 외침과 함께 킹의 느린 태클을 미처 피하지 못한 라이언이 필드에 엎어졌다.

잭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괜찮아요!"

다행히도 라이언은 바로 일어났다. 살짝 절뚝거리다가 다시 열성적으로 훈련에 참여했다.

하지만, 잭슨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일렁이는 걸 느끼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피할 태클이었다.'

'나는 잘못하고 있었던 걸까?'

라이언의 출전 시간을 조정한다면 1부 리그로 향하는 길은 훨씬 험난해질 것이다. 루카가 팀 전체에 패스를 뿌리는 기계라면, 라이언은 루카가 잘 작동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돕는 연료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필요할 때면 루카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니, 잭슨은 루카와 라이언 중 한 명만 써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라이언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라이언이 참가한 공격수들의 훈련이 필드 밖에서 들어온 한 거구의 남성에 의해 멈췄다.

스포츠치료사, 파스칼이었다.

파스칼의 목소리는 굵고 우렁찼기에 잭슨의 귀에도 아주 잘 들렸다.

"괜찮다고 그냥 뛰면 안 되지."

"하하···."

파스칼은 라이언을 데리고 터치라인 밖으로 나왔다. 라이언을 앉히고 발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아파?"

"음··· 아뇨."

"이건?"

"아악!"

"흠··· 이건?"

"괜찮은 것 같아요."

파스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이다. 타박상 맞네."

"그렇죠?"

"그래도 선수가 부상 정도를 판단하면 안 돼. 너희가 다 판단할 수 있으면 단장님이 날 왜 데려왔겠냐?"

파스칼의 말에 라이언이 머리를 긁적이고, 앞으로는 꼭 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도 공식 훈련 끝나면 들러. 마사지 한 번 제대로 해 줄 테니까. 근육이 또 뭉치려고 한다."

"늘 고마워요."

"그래. 그리고, 네 몸 상태 걱정된다고 미스 마야가 잠깐 들르라고 하더라."

"전부 고마워요."

잭슨은 그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파스칼이 라이언에게 마사지를 자주 해 준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파스칼이 자신에게 무언가 보고할 때는 선수들의 몸 상태에 문제가 있을 때뿐이었으니까.

잭슨은 돌아가려는 파스칼을 불렀다.

파스칼은 성큼성큼 잭슨에게 다가왔다.

잭슨이 물었다.

"라이언을 계속 돌봐주고 있던 건가?"

"아··· 별거 아닙니다. 라이언이 원래 몸이 많이 약했기도 했고, 가장 많은 시간을 뛰다 보니까··· 돕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미스 마야는···."

"팀 닥터들도 라이언뿐만 아니라 로드, 루카 같은 선수들을 꾸준히 관리해주고 있습니다. 감독님에게 보고하는 것보다 두 배 정도로?"

잭슨은 당황스러웠다. 이들은 공식 업무에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잭슨의 상식에 어긋났다.

직원들과 코치들은 감독이나 단장이 시킨 것만 하지, 굳이 일을 만들지 않았다. 잭슨이 또 물었다.

"킴 단장이 부탁했나?"

"아, 아뇨. 저희가 자발적으로···."

"자발적으로?"

잭슨이 질문을 반복하자 파스칼은 자신을 질책하는 거라 착각했는지 열심히 변명했다.

"감독님이나 단장님 모두 승격을 위해서 1초라도 낭비할 틈 없이 열심히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직원들도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기로 이번 시즌 시작할 때 얘기했습니다. 사실 뭐, 더 힘들긴 하지만, 저희도 노팅엄이 1부 리그에 올라가는 걸 보고 싶거든요."

파스칼의 말에 잭슨은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어느 팀에서도 이런 적이 없었다.

모든 걸 자신이 신경 써야 했고,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은 당연히 망가졌다.

파스칼이 잭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감독님의 계획을 저희가 어그러뜨린 건가요?"

"아니, 아니네."

파스칼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노력 덕에 라이언의 피로 누적 같은 사고가 나지 않고 있는 거였다. 또한, 잭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직원들이 노력해서 커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잭슨은 이들 모두를 한 번 찾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팀을 위한 자발적인 행동을 한 직원에게 가장 먼저 할 말은 딱 하나뿐이었다.

"정말 고맙네. 덕분에 내가 편하게 리그를 치르고 있었어."

< 42. 잭슨 포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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