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35화 (135/245)

< 42. 잭슨 포터 (3) >

"바보야. 들킨 것도 모자라서 그걸 다 말하면 어떡해?"

"미안해···."

파스칼은 동료 스포츠치료사이자 연인인 폴린에게 혼쭐이 나고 있었다.

폴린은 한참 동안 잔소리를 하다가 잭슨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파스칼과 함께 점심을 먹겠다고 온 잭슨은 파스칼이 폴린에게 혼나기 시작할 때부터 둘을 빤히 보고 있었다.

폴린이 말했다.

"감독님이 신경 쓸까 봐, 감독님 모르게 하자고 했는데···."

잭슨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아주 살짝 숙였다.

"아닙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진짜로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다들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코치분들도 그렇고···."

"코치들도 뭘 하고 있나요?"

잭슨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고, 폴린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옆의 파스칼이 기세등등해서 폴린에게 말했다.

"바보네."

폴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잭슨은 그런 둘을 보며 바보 커플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잭슨이 물었다.

"그럼··· 틀림없이 폴린도 뭔가 하고 있겠군요."

폴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할리스를 관리해주고 있어요."

"관리요···?"

"예, 파스칼과 함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걸 돕고 있죠."

"미할리스의 고질적인 통증은 파스칼의 치료만으로 충분한 거 아니었습니까?"

잭슨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폴린이 동의하며 답했다.

"경기를 뛰는 데는 무리가 없어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도핑에 걸리지 않는 약을 찾아서 추가 치료를 해주고 있어요. 얼마 전에 효과도 봤잖아요?"

잭슨은 두 경기 전, 교체로 들어와 두 골을 집어넣었던 미할리스를 떠올렸다.

미할리스의 컨디션은 눈에 띄게 꾸준히 좋아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던 것이었다.

잭슨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절대 나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다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 선수단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도움의 손길이 뻗어 있었으니까.

잭슨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그리고 말인데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미스 폴린과 미스터 파스칼처럼 도움을 주고 있는 직원들에 관해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저기, 그건···."

"부탁드리겠습니다."

잭슨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잭슨이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고 간절한 태도로 부탁하자 파스칼과 폴린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

"저기, 식당 안에 마이크 보이시죠."

"마이크요? 마이크가 누군지···."

"노팅엄 푸드 코트에서 한국식 양념치킨을 파는 요리사예요."

"아, 그 음식은 아주 잘 알죠. 미스터 킴이 정말 좋아해서 저도 가끔 얻어먹었습니다."

잭슨의 말에 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마이크는 푸드 코트에서 제일가는 실력자예요. 여러 국가의 요리에 통달해 있죠."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마이크가 가끔 신메뉴를 개발했다면서 저희에게 가져오곤 했거든요."

잭슨이 마이크를 바라보다가 갸웃하며 물었다.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이크는 식당 일도 겸직하고 있는 겁니까?"

"아뇨. 선수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파머 부부를 도와주고 있는 거예요. 요 몇 달 동안 식사가 유난히 맛있어지지 않았나요?"

잭슨은 천천히 생각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끔 메뉴가 질릴 때가 있었는데, 이번 시즌은 아니었다. 늘··· 맛있었다.

폴린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마이크뿐만이 아니에요. 파머 부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구단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 갈지도 모른다면서 시간 날 때마다 요리 강좌에도 가시고 있죠."

파머 부부는 30여 년 동안 노팅엄의 식당을 책임진 사람들이었다. 자부심도 강할 텐데, 스스로 발전하려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잭슨은 깊은 감명을 받고, 파머 부부와 마이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기억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일단 점심부터 먹어요. 오늘은 카레네요. 오, 고기가 정말 많아요."

잭슨은 폴린 커플과 함께 식사하며 폴린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었다. 파스칼은 가끔 보충설명 정도만 했다.

"훈련장 관리인 아저씨들은 이번 시즌부터 엄청 일찍 출근하세요. 밤에 술이라도 마셨다 싶으면 여기서 잠잘 정도로 열정적이시죠."

"새벽 5시에는 출근하시는 것 같더군요."

잭슨은 김도운과 함께 새벽 6시마다 조깅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관리인들은 그때도 말끔한 모습이었다.

잭슨이 기억하기로 원래의 출근 시간은 8시였다.

"미쳤군요. 조기 출근이라니··· 제가 직장 생활은 해본 적 없지만, 그게 끔찍하다는 건 잘 아는데···."

잭슨의 중얼거림에 폴린과 파스칼이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폴린이 노인과 1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를 가리켰다.

"저기, 장비관리사 듀오는 최근에 최신 기술을 배워오겠다며 교대로 맨시티에 원정을 갔다 왔었어요."

늙은 장비관리사와 젊은 장비관리사. 본래 잭슨이 오기 전에는 늙은 장비관리사 혼자 일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2년 전부터 인수인계를 한다고 젊은 장비관리사를 데려왔었다. 하지만, 일이 워낙 많아 늙은 장비관리사는 은퇴도 못 하고 팀에 남아있었다.

김도운이 엄청나게 설득했다고 들었다.

잭슨이 물었다.

"맨체스터까지요?"

"예. 그런데, 이건 단장님한테 걸렸어요. 자기한테 말하지 그랬냐고. 그래서 다음 프리시즌에 정식으로 맨시티 같은 빅클럽에서 연수를 받기로 했어요."

"잘 됐군요."

폴린의 설명은 계속됐다.

"일정이 워낙 힘들고, 선수단의 숫자가 적은 만큼 팀 닥터 분들도 보고하는 것 외로 선수들을 신경 써주시고 계시고···."

식당 구석에 앉아있는 마야를 비롯한 세 명의 팀 닥터가 보였다.

다들 평범하게 식사 중이었지만, 이제 잭슨의 눈에 직원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얘기하다 보니 점심 식사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잭슨이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군요."

"아, 아니에요."

잭슨은 폴린 등과 이야기하며 오후에 어떻게 움직일지 동선을 다 짜둔 상태였다.

이번 주말에 있을 경기 준비도 해야 했지만, 자신이 못 보고 있던 구단의 모든 모습을 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노팅엄의 직원분들은 마치 '브라우니(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전설에 나오는 집요정. 몰래 집안일을 해 준다고 한다)' 같군요."

"마음에 드는 표현이네요."

"다행이군요. 저는 그럼 남은 브라우니들을 보러 가 봐야겠습니다."

잭슨은 그렇게 말하며 떠났다.

남은 폴린과 파스칼은 잭슨이 꽤 멀어졌을 때쯤부터 대화를 나눴다.

"충격받으신 것 같지?"

"그래도 좋은 쪽으로 충격받으신 것 같아."

파스칼의 말에 폴린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파스칼의 팔뚝을 살짝 꼬집었다.

"왜 들켜 가지고···."

"허허··· 미안."

폴린은 픽 웃고, 막 잭슨이 사라진 식당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사실 그래도 조금 좋다. 감독님이 우리가 하고 있던 걸 알아준 거잖아."

**

"할리, 여기서 어떻게 뛰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음··· 당연히 왼쪽이죠. 그쪽 공간이 훨씬 넓으니까."

"그렇지, 너도 알고 있구나. 근데 넌··· 오른쪽으로 뛰었다."

"거짓말! 내가 그렇게 뛰었을 리 없어!"

잭슨은 문에 달린 창문으로 한 작은 방을 훔쳐보고 있었다.

벽에는 할리의 경기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잭슨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지난주, 아스톤빌라에 패한 경기였다.

공식 훈련으로는 다음 주 경기를 준비하기 바빠 아스톤빌라전 피드백은 간략하게 하고 넘어갔었다.

할리는 그 경기를 영상분석을 통해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잭슨은 집중했다.

"하아··· 영상이 있으니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네요. 캡틴, 그럼 저기서 왼쪽으로 뛰었으면 전반전에 한 골을 넣었을 수도 있겠네요. 제가 그쪽으로 움직이면 라이언에게 공간이 났을 테니까."

"그렇지."

"아아··· 내가 잘해야 했는데···."

할리는 자신이 멍청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받아들인 것 같았다.

파스칼의 정보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이런 식으로 할리에게 일대일 과외를 해주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맡긴 일도 만만치 않을 텐데, 정말 대단하다고 잭슨은 생각했다.

그때, 방 안에 있던 또 다른 사람 중 하나, 전력 분석관 김건혁이 손을 들었다.

"뒤로 가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알렉스, 할리."

"뒤? 말해 봐라."

알렉산더의 말에 김건혁이 옆 보드에다가 적 선수들의 위치와 할리를 비롯한 노팅엄 선수들의 위치를 동그라미로 그렸다. 그리고 화살표를 그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왼쪽으로 가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 뒤로 온다면 수비수에게 혼란이 올 거예요. 그럴 때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니까, 할리를 살짝 따라오겠죠. 그 공간으로 라이언이 뛰고, 할리가 패스를 해주면··· 훨씬 더 확실한 찬스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괜찮네요. 형."

"오, 그런 방법이."

전력 분석관 이민호 또한 동의했다. 할리 또한 감탄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지만, 이 녀석은 그 좁은 틈새로 패스할 기술이 없어."

"아···."

"캡틴! 너무해요."

알렉산더의 말에 김건혁과 이민호가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고, 할리는 투덜거렸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네 아이디어는 좋았다. 하지만, 우리 팀에서 그런 기술을 가진 선수는 루카뿐이다. 선수에게 조언할 때 늘 그 선수의 능력치와 상대 선수의 능력치를 파악하고 말해야 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전력 분석관들은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고, 할리 또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고 있었다. 더 볼 것 없다고 생각한 잭슨은 이 장면을 다시 머릿속에 담으며 자리를 떠났다.

*

잭슨은 이어서 피트니스 룸으로 향했다.

수석코치 존도 보였고, 체력 훈련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코치도 있었다.

수석코치 존은 왼쪽 수비수 테오와 중앙 수비수 킹에게 노트를 들고 설명하고 있었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건 테오가 이렇게 오버래핑을 나갔을 때, 킹 네가 왼쪽 측면을 커버하기 위해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킹이 수비를 위해 앞으로 나갔을 때, 테오는 중앙으로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거고."

테오가 작게 불평했다. 잭슨의 귀에 들린다는 건 꿈도 못 꾸고.

"··· 이걸 '서로 커버해.'라고 한 마디로 말씀하신 거예요? 감독님 너무해."

"하하, 우리 감독님이 말이 좀 짧지. 그래서 내가 있잖냐."

잭슨은 억울했지만, 뛰쳐나가지는 않았다. 상식을 가진 프로 선수라면 충분히 알아들을 설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잭슨은 억지로 심호흡 해 차분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럴수록 생각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자신의 설명이 부족할 수도 있는 거였다. 선수마다 개인차가 심하니까. 특히 테오와 킹은 가끔 뇌를 벤치에 놓고 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판단적인 실수가 잦은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테오와 킹보다 나쁜 머리를 가진 선수들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여기에 오고 몇 년 동안 지시에 대한 질문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도 경기장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지시대로 잘했었다.

그 말은 즉···.

"존···."

자신의 선수였던 수석코치, 존이 힘을 써주고 있던 거였다. 혹은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다른 코치들이나 선수들이 노력하고 있었을 거다.

잭슨은 시선을 옮겼다.

체력 훈련을 담당하는 코치는 후보 선수들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직접 뛰어다니며 도와주고 있었다.

"너희들은 언제 출전할지 몰라. 그러니까, 늘 최선의 몸을 만들어놔야 하는 거야. 기회를 잡고 싶잖아?"

코치들이나 전력 분석관들이 이들과 같이 있는 걸 못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잭슨은 그런 모습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른 구단에 있을 때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모두 드러났었다. 이런 지원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모든 것을 통제하려 애썼고, 카리스마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아무 문제도 없었기에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전부 착각이었다.

자신은 그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을 채워주는 스탭들이 있었다.

자신을 선의로 돕는, 아니, 클럽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잭슨은 그동안 자신이 살짝 어긋난 길을 걷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라? 감독님?"

그때, 화장실에 가려고 한 건지 라이언이 문밖으로 나왔다. 라이언은 문 바로 옆에 서 있는 잭슨을 보고 크게 놀라지도 않고 살갑게 말했다.

"방금 올라온 기사 보셨어요?"

"기사?"

"네, 단장님이 아스톤빌라 경기 끝나고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고 한마디 했어요. 그리고, 감독님에게도··· 어, 이건 직접 보시는 게 좋겠다."

잭슨은 고개를 갸웃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노팅엄의 공식 홈페이지로 들어가 김도운의 인터뷰를 찾아냈다.

잭슨은 김도운의 사진을 클릭해 기사를 열었다.

내부출입 기자 조지의 도움을 받은 건지, 스카이스포츠 발 기사였다. 잭슨은 제목부터 읽기 시작했다.

<노팅엄의 사장 겸 단장 김도운, 경솔한 기자들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다.>

본 기사는 인터뷰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기사입니다.

조지) 갑자기 연락을 주셨는데요.

김도운) 예,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요.

조지) 어떤 내용의 기사들이었죠?

김도운) 잭슨이 전 팀에서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테디와 요한이 잭슨에게 큰 불만을 갖고 있다··· 라이언이 혹사당하고 있다 등. 구단 내부 사정에 관해 잘 모르고, 겉만 보고 쓴 기사들 천지였어요. 저는 평소에 기자님들을 존경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조지) 안 그래도 유언비어가 돌아서 저도 해명 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요.

김도운) 제가 직접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잭슨을 변호하고 입장표명도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고.

조지) 입장표명이요?

김도운) 예, 입장표명. 저는 잭슨 포터 감독을 신뢰하고 있고, 따라서 잭슨 포터 감독과 5년 재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잭슨은 기사를 읽는 걸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 42. 잭슨 포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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