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36화 (136/245)

< 42. 잭슨 포터 (4) >

'잭슨 포터 감독과 5년 재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잭슨은 김도운의 인터뷰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다.

일주일에 최소 세 번은 보는 사람인데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잭슨이 점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 시즌에 잘했던 감독이 다음 시즌에 엉망이 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김도운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걸 공식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감독님?"

"잠시만."

"예."

잭슨은 라이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인터뷰 기사를 읽어나갔다.

조지) 폭탄 발언이네요. 잭슨 감독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계시는지 느껴집니다. 그리고, 잭슨을 변호하겠다고 하셨는데요.

김도운) 예.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기사들을 순서대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라이언은 혹사가 아닙니다. 라이언은 구단 최고의 의료진들이 붙어 돌봐주고 있습니다. 지난 경기에 출전한 것도 뛸 수 있으니까 뛰게 한 거예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스포츠과학은 정말 많이 발전했어요. 라이언은 우리 구단의 스포츠 과학 시설을 전부 이용하고 있어요.

조지) 그렇군요. 그럼 두 번째는?

김도운) 테디와 요한은 잭슨에게 불만이 없어요. 둘이 화가 난 이유를 찾는다면··· 자신들에게죠.

조지) 자신들이요?

김도운) 예. 둘을 교체 명단에 넣어놓은 건 상대 팀을 압박하기 위해서였어요. 두 선수는 사고로 경기에 뛸 몸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조지) 세 번째를 물어봐달라는 얼굴이신대요.

김도운) 네. 잭슨에 관한 기사였죠. 전 팀에서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한마디로 말하죠. 말도 안 됩니다.

조지) 계속 얘기해주시겠어요?

김도운) 잭슨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이번 경기는 운이 없었던 것뿐이에요.

조지) 운이 없었다고요?

김도운) 예. 잭슨은 많은 클럽을 다니고, 오랜 기간 감독직을 해 온 경험을 통해 경기 전, 상대 팀과 우리 팀의 견적을 아주 잘 내는 분이에요. 핵심 두 선수를 뺀 상태로는 지난 아스톤빌라전에서 질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을 거고, 이길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내놓은 거죠.

잭슨은 지난 시즌에도, 지지난 시즌에도 이런 방식을 사용했어요. 전 지금 이게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잊어버린 것 같은데, 잭슨이 이런 운영을 통해 지난 시즌에 승점을 10점 정도 더 땄어요. 그런데 그런 도박 수가 늘 맞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번에는 그저 운이 없었던 거라고요.

잭슨은 잠시 읽는 걸 멈췄다.

김도운은 자신에 관해 정말 잘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볼 만큼.

감독 일에 관해 얘기한 적이 거의 없는데 자신이 어떤 식으로 감독 일을 하는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인터뷰를 통해 해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김도운의 말에는 문제점이 있었다.

안 그래도 기자가 그 점을 짚어줬다.

조지) 단장님의 지금 발언은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저 운이 없었다.'라는 말은 근거가 아주 부족한 주장이잖아요. 단장님의 말이 맞다면, 세상의 모든 감독은 질 때마다 운이 없었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걸요?

김도운) 저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 거예요. 하지만, 조지의 말도 맞네요. 경솔한 말이네요.

조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도운) 흠. 의미가 있을까요? 결과가 좋지 않으면 모든 가정은 의미가 없어지는데. 그게 축구잖아요.

조지) 그렇죠. 그래도, 기사를 보고 불안해할 팬들에게 한 마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도운) 팬들에게요. 그렇다면··· 이 말을 해 줄 수 있겠네요.

잭슨은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다.

김도운) 전 노팅엄에 돌아와서 단 한 번도 허튼일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건 팬분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했던 일 중에··· 노팅엄을 되살리고,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판단한 게··· 바로 잭슨 포터라는 감독님을 데려오는 거였어요.

저는 제가 그동안 했던 일 중, 잭슨을 데려온 게 가장 훌륭한 선택 중 하나로 평가받을 거라는 걸 믿어요. 앞으로 몇 년 후면 다들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이상이에요.

뒤는 기자 조지가 인터뷰 기사를 마무리하는 말이었다.

잭슨은 김도운이 마지막에 한 말을 계속해서 다시 봤다. 자신을 데려온 게 허튼일이 아니라니, 기분 좋은 말이었다.

그때, 옆에 조용히 있던 라이언이 말을 걸었다.

"다 보셨죠? 어때요?"

"좋네."

"오늘 감독님이 너무 시무룩하신 것 같았는데, 다행이에요. 사람들이 걱정 많이 했거든요."

"정말이냐?"

"예."

라이언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잭슨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터뷰 하신 단장님이 가장 걱정했을 거예요. 단장님의 감독님 사랑은 그 누구도 못 따라가거든요."

잭슨은 피식 웃었다. 라이언이 계속 말했다.

"단장님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감독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으니까··· 다음 경기에서 이길 방법을 제 자리에서 찾아볼게요."

잭슨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잭슨은 단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접니다."

"잭슨? 들어와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하던 김도운은 잭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잭슨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도운이 보였다.

김도운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잭슨이 빨랐다.

"차 좀 주시겠습니까. 잠깐 얘기 좀 하고 싶어서."

김도운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마시지도 않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요즘 티케 보신 적 있어요? 그 뚱냥이··· 선수들이 자꾸 먹을 걸 주니까 배가 축 늘어져서는."

"그렇습니까."

"예. 선수들에게 공지해야겠어요. 티케 다이어트에 들어간다고."

"선수들이 슬퍼하겠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건강이 최우선인 것을···."

잭슨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소소한 일상 얘기도 좋지만, 그걸 하러 온 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미스터 킴. 5년 재계약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도운은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찻잔에서 올라오는 김으로 시선을 돌렸다. 잭슨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킴?"

"하하··· 제안한다는 말이지 꼭 계약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꼭 계약했으면 하지만."

"흠··· 그렇군요."

잭슨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기에, 하늘이 노을빛으로 채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거쳐 온 훈련장의 하늘 중,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잭슨은 김도운을 슬쩍 바라봤다. 김도운은 계약에 관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지, 잭슨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잭슨이 입을 열었다.

"노팅엄에 오고 가장 충격적인 하루였습니다."

김도운은 궁금증을 참고, 잭슨의 다음 말을 기다려주려는 지 이렇게 물었다.

"충격적인 하루요?"

"절 비판하는 기사를 보고, 내가 잘못하고 있나 진지하게 고민했었습니다. 특히, 제가 라이언이라는 유망한 선수를 망쳐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죠."

"다른 기사들은요?"

"그것도 솔직히 타격이 있었습니다. 그냥 익숙하니까, 겉으로 티를 안 낼 수 있는 거지요."

김도운이 잭슨의 얼굴을 빤히 봤다. 잭슨은 자신이 어떤 표정인지 몰랐지만, 김도운의 다음 말을 듣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오늘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예.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많은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무리하게 라이언을 기용하고 있는데도 라이언이 부상을 입지 않았던 이유는 파스칼과 팀 닥터들의 헌신 덕분이었더군요."

잭슨은 담담한 목소리로 오늘 본 것들을 쭉 얘기했다.

김도운 또한 진지한 얼굴로 잭슨의 얘길 들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라이언 얘기까지 마친 잭슨이 말했다.

"저는 솔직히 단장님이나 일부 선수들, 수석 코치 정도만 아군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그저 있든 없든 상관없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잭슨은 여전히 자신의 얼굴이 어떤지 몰랐다. 하지만, 김도운은 잭슨의 얼굴을 보며 짙은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잭슨이 말했다.

"노팅엄에는 수많은 브라우니가 삽니다. 저랑 미스터 킴 둘이 모든 걸 굴리는 팀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브라우니들은 저와 미스터 킴을··· 진심으로 지지해주고, 믿고 있습니다."

"···공감해요."

잭슨은 김도운 덕에 전에 있던 클럽들처럼 모든 걸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잭슨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은 많았다. 브라우니, 아니 직원들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니까, 잭슨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변할 겁니다. 저 혼자 다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더 적극적으로 브라우니들에게 일을 맡길 겁니다."

"그럼 전 브라우니들의 연봉을 조금 올려줘야겠네요. 잭슨. 그거 아세요? 브라우니라는 요정은 집안일을 도와주기는 하지만, 사례를 하나도 안 주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대요."

김도운의 뼈있는 농담에 잭슨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제 부담을 덜어내고, 경기에서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럼 이제는 매니저가 아니라 헤드 코치라고 부르면 될까요?"

감독을 부르는 영어 단어는 매니저와 헤드 코치가 있었다. 매니저는 보통 선수의 영입부터 시작해 자잘한 관리, 구단의 경영까지 관여하는 스타일의 감독에게 붙었고, 헤드 코치는 마치 야구의 감독처럼 오직 경기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의 감독에게 붙었다.

"미스터 킴은 이해가 빠르군요. 예.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좋아요."

"감사합니다. 제 축구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온전히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치르는 것에만 몰입하는 건요."

김도운이 기대 가득한 눈빛을 했다. 평소였다면 부담스러워했겠지만, 잭슨은 처음 가보는 길에 대한 기대감과 왠지 모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믿었다.

김도운은 기대감을 순화해서 말했다.

"재미있겠네요."

"예.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브라우니들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원이요?"

잭슨은 고개를 끄덕이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브라우니들, 그러니까 직원들이 헌신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클럽이 잘 되는 거지요. 그들은 아마도··· 그들의 헌신이 경기장에서 보답받길 바랄 겁니다. 그리고, 그걸 이뤄줄 수 있는 건 바로 저죠."

"···그렇겠네요."

김도운이 감명받은 얼굴로 말했다. 김도운이 또 말했다.

"아, 한동안 기자들이 좀 시끄러울 수 있는데··· 최대한 막아볼게요. 제 인터뷰 하나로 기자들이 그런 기사를 안 쓸 거라고는··· 장담 못 하겠거든요."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전 신경 안 씁니다."

"정말요?"

"예. 시끄럽게 떠들든 말든 알 바 아닙니다. 왜냐면, 기사를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거든요. 아마 제가 기사를 다시 읽는 건, 이번 시즌이 끝난 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잭슨은 온전히 경기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김도운은 잭슨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프로는 결과로 증명하는 거고, 감독님도 마찬가지예요. 다음 경기에서 이기라고는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시즌이 끝났을 때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당연하죠. 저는 남은 3개월 동안, 오직 감독으로서 집중해 제가 살아온 길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인정받을 겁니다."

잭슨이 이렇게 직접적인 목표를 말하는 건 드물었다.

김도운이 살짝 당황한 얼굴을 하자, 잭슨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감독은 팀을 목적지로 이끄는 직책입니다. 시즌 끝에 우리가 어디에 도착해 있을지, 꼭 지켜봐 주십시오."

**

"감독님 이상하지 않아?"

"이번 주 내내 이상했지."

노팅엄 FC의 코치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2부 리그 6위, 카디프시티의 원정 드레싱룸 안에 있었다.

선수들은 경기장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잭슨의 최종 전술 지시만 남은 상황이었다.

노팅엄은 지난주 아스톤빌라에 패배하고 리그 5위가 됐기에 이번 경기에서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만약 진다면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6위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잭슨은 이번 주 내내 너무 평온해 보였다.

그게 이 코치 둘이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하는 이유였다.

"'자네에게 맡기겠어.'"

"'부탁하겠네.'"

코치 둘은 잭슨의 말투를 흉내 내며 서로에게 말했다.

"평소에는 다 혼자 하셨던 분이 이상하잖아. 오늘도 그러셔서 너무 당황스러웠어. 훈련 용품부터 꼼꼼하게 다 확인하시던 분인데···."

"그러니까 말이야. 야, 혹시 지난주 기사 때문에 기가 죽으신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그때, 잭슨이 드레싱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코치 둘은 동시에 차렷 자세를 했다. 잭슨은 그들이 그러고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자, 집중해."

선수들과 코치들이 모두 잭슨을 바라보았다. 잭슨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부터 코칭 스타일을 바꾼다.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할 테니, 집중해서 들어라."

"알겠습니다! 보스!"

코칭 스타일을 바꾼다는 말에 선수들과 코치들이 잠시 당황했지만, 잠깐이었다. 잭슨이 바로 전술 지시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할리, 미드필더에서 공을 잡으면 측면으로 빠져라. 라이언, 할리가 측면으로 빠질 때마다 전진해라. 루카, 라이언이 전진해도 라이언의 공간을 메꿀 생각 말아라. 라이언이 빠진 공간은 테오가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커버해라.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평소대로 하면 된다."

지나칠 정도로 짧은 지시였다.

선수들과 코치들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잭슨은 다음 말로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렇게 하면, 이긴다."

< 42. 잭슨 포터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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