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37화 (137/245)

< 43. 제임스가 돈을 쓰는 방법 (1) >

"우리 선수들 맞아?"

제임스의 중얼거림에 김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수들은 그대로지만, 잭슨이 한 단계 진화했으니까."

김도운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제임스와 김도운은 모처럼 함께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지금 열리고 있는 경기는 카디프시티와의 원정 리그 경기였다.

카디프시티는 노팅엄과 순위 1개 차이로, 언론에서 비슷한 전력으로 평가받는 팀이었다.

그런데.

카디프시티 0 – 3 노팅엄

스코어 판에 나타난 대로 노팅엄이 압도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김도운의 말을 당연하게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되물었다.

"진화라니?"

"며칠 전에 큰일이 있었거든?"

"큰일? 뭔데?"

"음··· 비밀."

"말은 왜 꺼낸 거야?"

"하하. 미안."

김도운이 멋쩍게 웃는 모습을 보며 제임스는 더 묻지 않고 경기장을 내려보았다.

원정 경기임에도 노팅엄 선수들은 물 흐르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루카가 공을 잡으니 할리가 측면으로 빠졌다. 카디프시티의 중앙수비수는 할리를 쫓아갔고, 뒤에 있던 라이언이 할리가 만들어준 공간으로 달려갔다. 루카는 그 공간을 향해 패스했다.

라이언이 일대일 찬스를 잡았고, 대포알 슛으로 골대 오른쪽 구석에 공을 꽂아 넣었다.

오늘 최소 세 번 이상 나왔던 장면이었다. 카디프시티는 이 단순한 전술에 대처하지 못했다.

"와아아아아아!"

제임스와 김도운은 어깨동무를 하며 방방 뛰었다.

조용히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자 석이었지만, 카디프시티의 구단주와 단장이 입술을 깨물었지만, 둘은 너무 기뻐 참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오늘 지거나 비길 줄 알았는데."

"나도."

비슷한 전력의 팀인 데다가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 순위가 걸려있는 경기였다. 오늘 경기에서 진 팀은 6위 아래로 떨어질 게 유력했다.

그래서, 카디프시티의 팬들은 33,000여 좌석을 전부 채웠고, 큰 응원전으로 카디프시티의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 기세까지 더해져 김도운과 제임스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감독과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그들의 생각을 바꿔 버렸다.

제임스가 물었다.

"이렇게 압도했던 경기가 있었나?"

"없었지. 칼이나 바비 같은 괴물들이 각성해서 경기를 쉽게 이긴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팀으로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준 건 처음이야."

선수들은 물 흐르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테오가 중간에 불협화음을 몇 번 냈었는데, 잭슨이 불러서 몇 마디 하니 금세 고쳐졌다.

그동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제임스가 말했다.

"나 정말 오랜만에 직접 경기 보러 오는 거잖아··· 선수들이나 감독님이나 전부 성장한 게 눈에 보인다."

"그래?"

김도운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잭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임스는 김도운의 뿌듯해하는 옆모습과 진지한 얼굴로 필드 위에 서 있는 잭슨을 번갈아 봤다.

'부럽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제임스는 사업에 집중하느라 구단에 신경 쓰지 못했다. 다행히 사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거뒀지만,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노팅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제임스는 아쉬웠다.

현재 경기 시간은 79분. 점수 차이가 3점이었기에 제임스는 경기를 보는 것보다는 김도운에게 말을 거는 걸 택했다.

"도니, 내가 작년부터 사업이 아주 잘 되고 있잖아."

정말 잘 되고 있었다. 경기장을 직접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국과 일본을 뺀질나게 돌아다녔었다.

노팅엄의 선수 피규어들을 최고의 퀄리티로 만든 게 시작이었다.

이걸 우연히 본 할리우드의 한 제작사 커머셜 디렉터가 제임스에게 캐릭터 몇 가지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했고, 열심히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시장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게 작년 초·중순 경이였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여러 영화사부터 시작해 일본의 애니메이션 회사들 같은 곳에서 제임스의 회사에 연락이 왔다.

제임스는 돌아다니면서 가장 비싼 값을 제시하고, 믿을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해 작년 중하순 경에 계약을 마치고 제임스의 회사에서 많은 굿즈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물건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아주 대박이 났다.

한숨 돌리나 했는데, 또 한 번 거물들에게서 계약 제안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김도운이 말했다.

"그렇지? 이번에는 코너 브라더스랑 계약했다며."

"오, 알고 있었네."

"당연하지, 우리 구단주 님 회사 소식인데 모르면 안 되지."

코너 브라더스는 할리우드의 히어로물 계통 영화 제작사였다.

김도운이 장난스럽게 웃었고, 제임스 또한 얘기가 쉬워지겠다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조금 있는데, 선수들 재계약이나 이적료에 보탤래?"

"이적료?"

"응, ······만큼 쓸 수 있어. 재계약을 해 주면 지금 선수들도 힘낼 수 있을 거 아니야."

제임스는 당연히 오케이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김도운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안 돼."

"어? 왜?"

"FFP까지 다 계산해서 예산을 맞춰놔서··· 네가 투자하고 싶어도 못 해."

"···."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그저 제임스도 김도운과 잭슨처럼 팀에 보탬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돈이 있는데 투자를 못 하는 상황이라니.

김도운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어지간한 에이전트를 데리고 있는 선수들은 지금 계약 안 할 거야.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면 그거에 맞춰 돈을 더 달라고 할 테고, 그게 아니면 남는 대가로 돈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있고··· 상위 리그로 이적하고 싶을 수도 있고."

"그렇구나··· 에휴."

"마음은 고맙다."

김도운이 제임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제임스가 말했다.

"그럼 다른 쓸 곳은 없어?"

"시설 같은 걸 새로 들이는 건 FFP랑 상관이 없어서 괜찮은데··· 음. 사실, 이번 시즌에 필요한 건 다 있어서."

"에휴···."

제임스는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

카디프와의 경기가 끝난 다음 날, 제임스는 모처럼 출근해 조이를 찾았다.

"돈 쓸 곳이 없겠냐고? 흐음··· 뭐, 억지로 쓰면 못 쓸건 없지만···."

"정말?"

"새 경기장 건설···?"

조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제임스가 발끈했다.

"야! 말도 안 되는 거잖아."

"하하, 도운이가 시설 바꾸는 것 말곤 사실상 없다고 했다며. 그 말이 맞아."

제임스는 시무룩해졌다. 구단의 세세한 살림을 담당하는 조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실패였다.

조이가 말했다.

"그냥 갖고 있어.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제임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장 도움이 되는 건 없을까. 우리 구단이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 갈 기회잖아. 돈 지랄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으니까, 지금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

조이는 잠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때, 제임스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내가 광고랑 이벤트를 막 해서 관중을 불러 모으는 건 어떨까? 이번 시즌 끝날 때까지 만원 관중을 만드는 거야!"

조이는 제임스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또 한 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임스··· 지금 몇 경기 째 만원 관중인지 잊었어?"

"아."

시즌 중반에 한 번, 평일에 경기하는 바람에 만원 관중이 깨졌었지만, 노팅엄은 이번 시즌 그 경기만 빼고 매번 만원 관중이었다. 분데스리가에서 매 경기 만원 관중을 달성하는 팀인 도르트문트를 따, 잉글랜드의 도르트문트라는 기사도 나왔었다.

제임스가 허공을 보며 한탄했다.

"돈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제임스는 무척 우울했다. 그런 제임스를 안쓰럽게 보던 조이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시간 있으면, 직접 찾아보는 건 어때? 선수들이나 직원들, 팬들에게 좋은 생각 없냐고 물어보면 되잖아."

"···그거 좋은데?"

제임스의 눈이 반짝였다.

*

제임스는 훈련장을 찾았다. 그리고, 로컬보이 3인방과 마주쳤다.

"제임스! 뭐 해요?"

할리가 쾌활한 목소리로 제임스를 불렀다.

제임스 또한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뭣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저희한테요?"

"응."

로드와 라이언이 갸웃했고, 할리가 물었다.

"좋아요. 물어보세요. 얼마든지 대답해 줄게요."

"요즘 필요한 거 없어? 아니면, 하고 싶은 거라든가."

"설문 조사 같은 거예요?"

"실현 가능성이 있는 설문 조사? 너희들이 고생하고 있으니까, 나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오?"

로드와 라이언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할리는 고민에 잠겼고, 라이언이 먼저 말했다.

"막상 얘기해보려니까 없네요."

"안 돼. 뭐라도 말해 봐봐."

제임스의 말에 로드가 입을 열었다.

"음··· 노팅엄 사람들끼리 파티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시즌 막바지니까, 다들 힘내보자는 느낌으로?"

"역시 캡틴이네. 좋아, 접수."

"감사합니다."

로드가 씩 웃으며 답했다. 그때, 할리가 입을 열었다.

"해 보고 싶은 거라고 해서 그러는데··· 경기 끝나고 드레싱룸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보고 싶어요. 컨셉은··· 펍 느낌으로? 식사도 할 수 있고, 음료수도 마실 수 있게요! 술은 좀 힘들겠지만···."

제임스는 할리의 제안이 이뤄진 모습을 잠시 상상해봤다.

"그거 멋진데? 오케이, 할리도 접수."

"오예!"

할리가 신나 하자 로드와 라이언이 황당해했다.

로드가 말했다.

"저기, 제임스. 얘 미친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시고···."

"미쳤다니. 좋은 아이디어인데? 너희들 경기 끝나면 쉐이크나 바나나, 곡물 빵이나 파스타 같은 것만 먹잖아."

"그건 그런데···."

"한 번쯤은 괜찮을걸? 영양 밸런스도 맞춰서 주면 되잖아."

"그런 거··· 같네요?"

결국, 로드도 갸웃하며 넘어갔고, 할리는 재밌겠다며 방방 뛰었다.

라이언은 이 상황이 웃긴지 허허거리고만 있었다.

제임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줄게."

*

미슐랭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식당은 일반인이라면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노팅엄시에도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된 식당이 열 곳 정도 있었다. 그 중, 별을 받은 가게의 숫자는 3개였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식당 중에 특이하게 '펍'이 있었다.

이 펍은 별 두 개를 받았다.

미슐랭가이드의 별 두 개는 본래의 목적지가 아닌 곳이라도, 우회해서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가게라는 뜻이었다.

그 펍, <로빈훗>에 제임스가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직 영업시간 전이었기에 가게는 한참 청소 중인 것으로 보였다. 제임스는 맥주잔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는 안경 쓴 중년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먼저 인사했다.

"제임스 아니냐?"

"벤, 일 안 하고 놀고 있는 거예요?"

"어허, 놀고 있다니. 맥주잔 닦으면서 저거 보고 있었다."

로빈훗의 사장 벤이 눈으로 가리킨 곳에는 노팅엄이 카디프시티를 상대한 지난 경기가 재생되고 있었다.

벤이 말했다.

"우리 팀이 이렇게 완벽하게 이겨본 게 얼마 만이냐. 그런데, 도니나 조이는 어디 가고 혼자 와."

펍 로빈훗은 트렌트 강변에 있었다. 그리고, 노팅엄 경기장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로빈훗은 김도운이 단장에 취임한 날에도 방문한 곳이었고, 그 이전··· 그러니까 술을 마실 수 있게 됐을 때부터 제임스, 조이, 김도운 셋이 함께 놀러 오던 펍이었다.

워낙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 전에 미슐랭가이드까지 받는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아무튼, 제임스는 용건을 꺼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말에 많이 바쁘죠?"

"뭐, 그렇지."

"한 주라도 쉬신 적 있어요?"

"어떻게 쉬냐. 가게 매출이 그때 가장 잘 나오는데. 평일에 쉬어야지."

"허허, 한 주 정도는 쉬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서 선수도 좀 만나고 얘기도 나누고···."

"선수?"

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임스가 우물쭈물하자, 벤이 재촉하듯 말했다.

"뭐 이렇게 뜸 들이냐. 얘기해 봐라. 할 말 있는 거잖아."

"음···."

제임스가 머릿속으로 내용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다음 경기 끝나고, 선수들을 위한 펍을 만들어줄 수 있으세요?"

"뭐?"

"드레싱룸 옆 방을 일일 펍으로 개조해볼까 하고요. 벤이 노팅엄에서 가장 실력자니까, 이 이벤트를 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흐음···."

벤이 고민하는 것 같아 제임스가 말했다.

"주말 평균 매출만큼 지급할게요."

"으음··· 그렇지만, 단골들도 있고··· 가게 영업을 갑자기 쉬는 건 좀···."

제임스는 망설임 없이 다음 수를 꺼냈다.

"매출의 세 배를 드릴게요."

"좋아."

제임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벤이 말했다.

< 43. 제임스가 돈을 쓰는 방법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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