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38화 (138/245)

< 43. 제임스가 돈을 쓰는 방법 (2) >

"정말 우리 감독님인가?"

할리의 말에 로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뭔 개소리를 하려고."

"마법사 같아! 시키는 대로 하니까 정말 이겼잖아. 그것도 두 경기 연속으로! 난 축구가 이렇게 쉬운 건 줄 태어나서 처음 알았어."

"요즘··· 굉장하시긴 하지."

잭슨이 많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선수들이 실수하면 예전처럼 화를 냈고, 호통도 쳤다.

하지만, 딱 하나. 설명이 확실히 줄었다.

원래 잭슨은 길고 장황하게 설명했었는데, 최근에는 전술 설명에 세 마디 이상 하지 않았다. 처음에 로드는 이래도 되나 싶다가, 오늘 경기에서 리그 10위 팀인 레딩을 2-0으로 무너뜨리며 확실히 깨달았다.

선수들이 성장하듯이 잭슨도 성장한 거라고.

로드의 마음속에서는 잭슨에 대한 존경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잭슨이 60대 중반에 가까운 나이인데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로드는 자신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응? 무슨 냄새지?"

"야, 할리. 내가 모처럼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방해를··· 어? 이거 고기 굽는 냄새 아니야?"

할리의 말대로 복도에는 여러 가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고기 냄새가 가장 강하게 났고, 매콤할 것만 같은 스튜 냄새도 났다.

경기가 끝난 직후, 몹시 배고픈 상태에서 맡은 냄새라 그런지 로드는 입에 저절로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로드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진짜 뭐지?"

"저쪽에서 나는 것 같은데?"

냄새는 지나치게 유혹적이었다. 로드와 할리의 뒤를 따라 터덜터덜 걸어오는 선수들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똥 씹은 표정으로 지나가던 원정팀 선수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로드와 할리는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드레싱룸 옆 옆방. 원래는 훈련 용품 등을 비롯한 각종 물건을 박아놓는 큰 창고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따스한 온기와 함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빨리 움직여. 경기 끝났다고."

"스튜 준비는 다 된 거 맞아? 아까 좀 싱겁던데."

"완벽해!"

창고에서 나올만한 대화가 아니었다. 로드와 할리는 활짝 열린 문틀에서 동시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이게··· 무슨."

창고 안에는 펍이 있었다.

구석에는 푸드코트 장비를 들여왔는지 익숙한 디자인의 조립형 판매대가 보였다. 냄새는 이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웨이터와 웨이트리스 복장을 한 사람들이 흔한 펍에서 볼 수 있는 나무탁자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벽은 언제 나무로 바꾼 거래···."

"그냥 나무 질감 벽지야."

"헉."

로드의 중얼거림에 느닷없이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할리 또한 깜짝 놀랐다가 로드보다 먼저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리고 말했다.

"제임스!"

"어때, 네 소원대로 준비해 봤는데. 펍 로빈훗 2호점이야."

"소원이요···? 아. 와우··· 미친."

할리는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깨닫고, 크게 웃었다. 제임스에게 했던 한 마디가 이 풍경으로 돌아온 거였다. 할리는 제임스와 힘찬 하이파이브를 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로드가 제임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근데 그 복장은 뭐예요."

"이거? 오늘 일일 웨이터를 하기로 했거든."

제임스가 목에 걸린 나비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로드는 황당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제임스는 할리의 말을 아이디어로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이 일을 계획했을 것이었다.

세상 어느 구단주가 이런단 말인가. 제임스를 오래 봐 왔기에 이게 가식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로드였다.

로드는 제임스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로드가 펍 로빈훗 2호점 안으로 한 발자국 내디디며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뭘 주문해 볼까···."

그때, 로드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팅엄의 왼쪽 미드필더 요한이었다.

"캡틴! 여기 있었네. 감독님이 왜 안 오냐고··· 화가 나셔서···."

"아, 맞다!"

로드가 당황하며 할리를 봤다. 할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쏜살같이 드레싱 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 치사한 놈아. 같이 가!"

로드는 이 모습을 보며 키득대는 제임스에게 말했다.

"제임스 때문이에요."

"하하하, 나는 드레싱 룸 갔다 온 줄 알았지. 아무튼, 힘내라. 잭슨 감독님이 선수들 앞에서 그렇게 무섭다며?"

"으어어."

로드는 억울한 얼굴로 기괴한 소리를 내며 드레싱 룸으로 달려갔다.

**

"잭슨, 오늘은 좀 봐주지 그랬어요."

나는 풀이 죽은 채로 스테이크를 깨작거리고 있는 로드를 보며 말했다. 옆자리에 앉은 잭슨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깜짝 이벤트는 깜짝 이벤트고, 일은 일이니까요."

로드는 어떻게 혼난 건지 눈이 맹했다. 옆자리에 앉은 테디와 테디 품에 안긴 검은 고양이 티케가 로드를 위로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들리지도 않는지 스테이크를 50번은 넘게 씹는 것 같았다.

뭐, 선수 관리는 잭슨이 알아서 하는 거니 나는 신경을 거두기로 했다.

그것보다는 창고를 일주일 만에 개조한 이 일일 펍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제임스 진짜 미친놈 같지 않나요."

"허허허, 재미있는 분이죠."

"돈을 이런 데다가 쓰다니··· 뭐, 선수들 표정 보면 나쁜 것 같지는 않네요."

약속이 있거나 집에 갈 선수들은 돌아가라고 했는데도 선수 한 둘 빼고는 다 남았다. 오히려 경기 끝나고 약속이 있는 선수들이 약속 대상을 이쪽으로 불러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작은 파티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기기까지 해 분위기는 정말 화기애애했다.

"오늘의 영웅, 할리와 세자르입니다!"

"오오오오!"

테오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수들과 코치들이 환호했다.

"할리, 발리 골 죽여줬다."

"세자르, 네 다이빙 헤딩 골은 어떻고. 역시 넌 내 파트너야. 미할리스 할아버지는 한 골도 못 넣었는데."

"할아버지라니, 나 아직 30살이야 이놈들아."

펍 중앙에서는 서로 1골 1어시스트를 주고받은 할리와 세자르가 어깨동무를 한 채로 미할리스를 놀리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손뼉을 쳐 주며 분위기를 맞춰주고 있었다.

"잭슨이 없었으면 술도 마셨겠죠?"

"뭐, 뻔한 거죠. 저도 프로에서 뛸 때, 경기 끝나고 맥주 마신 적 많았는데요."

"잭슨도 그랬었어요?"

"저도 사람입니다."

농담하는 걸 보니 잭슨도 기분이 들뜬 것 같았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다시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선수들은 무알콜 칵테일과 탄산수를 마시며 취한 것처럼 놀고 있었다.

이어서, 나는 빨간 나비넥타이가 돋보이는 웨이터 복장을 한 제임스에게 말했다. 제임스는 쟁반을 들고 우리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이거 주문하셨죠?"

"···재밌냐?"

"엉."

내 물음에 이렇게 답한 제임스가 킥킥 웃으며 우리 테이블 위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내가 주문한 스테이크 파스타에 잭슨이 주문한 고기 스튜였다.

제임스가 말했다.

"모처럼 제대로 돈을 쓴 기분이야."

"벤 아저씨는 어떻게 섭외했어? 아무리 우리랑 친하다고 해도, 미슐랭 2스타 주방장이잖아."

"주말 매출의 세 배를 주겠다고 하니까 바로 오케이 하시던걸?"

나는 허탈하게 웃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펍 로빈훗의 사장 겸 주방장 벤을 잠시 바라봤다. 벤 또한 즐거운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제임스에게 말했다.

"잘했다. 선수들이랑 코치들이 정말 좋아하네."

"시즌 중에 이런 식으로 기분 환기하면 좋잖아. 그렇죠? 잭슨?"

"예, 그렇습니다."

잭슨 또한 동의해주자 제임스는 우쭐하는 얼굴을 했다.

손으로 턱을 괴며 제임스에게 물었다.

"이제 만족하냐?"

"만족?"

제임스가 잠시 펍 안을 돌아봤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 아직 부족해. 더 찾아볼 거야."

"돈 쓸데를?"

"어."

"야, 그럴 거면 차라리 원정 버스나 새로 사 줘."

"오, 그럴까? 지금은 임대하는 식으로 하고 있었지? 괜찮은 버스를 알아봐 줘. 같이 고르자. 근데, 시설 투자는 FFP에 안 걸리는 거 맞지?"

"안 걸리긴 하는데··· 그래."

제임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지름신이 온 눈이었다.

사실 임대 버스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기에 지난번에 얘기를 안 했지만, 이런 식으로 돈을 쓰는 걸 보니 버스를 사는 게 더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얘길 꺼냈다.

나는 제임스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이제 만족하지?"

"응? 그럴 리가. 더 쓸 거야."

"미친놈···."

내 잔소리가 시작될 걸 예감했는지 제임스가 끔찍한 윙크를 하고 도망치듯 떠났다.

나는 제임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잭슨, 괜찮을까요?"

"구단주가 구단에서 구단을 위한 일을 찾아보고, 자기 돈을 쓰겠다는데··· 말리는 것도 이상하긴 합니다. 그냥 두시죠."

잭슨의 말에 나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맞다. 쟤 구단주였죠."

**

"아직 못 찾았냐."

"응··· 이러다 시즌이 끝나버릴지 몰라."

선수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은 일일 펍 이벤트가 끝나고 나흘이 지났다.

오늘은 또 경기가 있었다.

예전에 치렀던 FA컵 때문에 밀린 리그 경기를 평일에 했기 때문이었다.

원정 경기였기 때문에 제임스와 김도운은 얌전히 경기를 보고 있었다. 오늘 상대는 밀월이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여기 팬들은 정말 무섭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여기와 웨스트햄을 소재로 훌리건즈라는 영화까지 나왔을까.

밀월은 노팅엄의 경기장처럼 만원 관중이었다. 그리고, 이 수많은 관중은 갖가지 욕설을 노팅엄의 선수들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뭐, 예상하던 거였기에 제임스와 김도운, 그리고 선수들과 코치들은 태연했다.

제임스는 노팅엄의 원정 팬들이 열심히 응원해주고 있었기에 태연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다.

선수들이나 코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정에 팬들이 함께해줬기에 이들도 밀월의 훌리건들에게 둘러싸여도 태연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노팅엄의 원정팬들은 원정 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도운이 말했다.

김도운은 노팅엄의 팬들이 휘두르고 있는 녹색 깃발들을 보고 있었다.

"역시 우리 팬들은 최고야."

제임스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는 꽉 찬 원정석을 보다가 문득 생각난 걸 물었다.

"확장 공사 말이야. 얼마 안 남았지?"

"응, 공사가 빨리 진행돼서 3주 뒤 홈 경기부터 쓸 수 있을 거야. 우리도 이제 3만 5천 석이라고."

"정말 다행이다."

"그래, 그동안 항의가 얼마나 많았는데··· 이제 좀 사그라들겠지."

김도운은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제임스 또한 경기에 잠시 집중했다. 노팅엄이 잠시 실점 위기에 처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노팅엄은 잘 수비하고 오히려 역습을 나섰고, 좋은 득점 기회를 맞이했다.

제임스는 아까워한 후, 원정 팬들을 바라보았다.

원정 팬들은 노팅엄의 상징인 녹색 물건들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사복을 입고 있거나 원정 유니폼을 입고 있는 팬들도 있어 알록달록했지만, 전체적으로 녹색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제임스의 머릿속에 멋진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노팅엄의 홈 경기장을 노팅엄의 상징인 녹색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3주 뒤 좌석 확장 기념이라고 하면서 입장하는 관객에게 유니폼을 전부 증정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제임스는 필드에서 시선을 떼고, 스마트폰을 켜 지난 경기 영상을 틀었다.

역시나, 홈 경기장은 부분부분 녹색이었다. 완벽한 녹색이 아니었다.

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 아이디어의 꼬리를 물고 다른 아이디어도 나온다.

제임스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 녹색 물결에 최근 외국에 가서 본 공연의 한 광경을 겹쳤다.

"오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너무나도 멋진 광경이었다.

제임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김도운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어왔다.

"너 이상한 생각 했지."

"아니야. 그럴 리가."

제임스는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더했다.

"멋진 생각을 했어."

김도운이 못 미덥다는 얼굴로 제임스를 바라봤다.

< 43. 제임스가 돈을 쓰는 방법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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