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39화 (139/245)

< 43. 제임스가 돈을 쓰는 방법 (3) >

"에단, 오늘도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노팅엄에서 구단주가 직접 찾아오기로 했거든."

"정말요?"

"일단 가져온 것부터 설명해줘."

"네."

노팅엄의 유니폼 스폰서, 아라크네의 대표 에단은 최근 늘 입가에 미소를 달고 살았다.

이번 시즌 노팅엄의 유니폼 스폰서를 시작하면서 회사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라크네에서 만드는 노팅엄의 유니폼은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팀과 맞먹는 판매량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노팅엄은 챔피언십리그의 팀이라고는 믿겨 지지 않을 정도로 해외 팬이 많았다. 그렇기에 공식 웹 스토어와 펍 포레스트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해외 펍에서 상당한 양의 유니폼이 판매됐다.

그리고, 그 유니폼들은 각국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고···.

"한국의 K리그에 소속된 두 팀에서 용품 계약에 관한 문의가 들어왔어요. 일본 J2리그의 한 팀도, 베트남 리그의 한 팀도···."

물밀 듯이 들어오는 계약 제안의 원동력이 되었다. 보고를 끝낸 직원이 에단에게 말했다.

"노팅엄을 선택한 건 정말 탁월한 일이었어요. 역시, 에단의 혜안은 정말 대단해요."

"너무 띄워주지 마."

"노팅엄과 계약하기 전까지만 해도 몇 년 동안 매출이 멈춰 있었잖아요.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예요."

"에이, 하지 말라니까."

말은 이렇게 해도 기분은 좋은지 에단은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에단도 이 정도로 잘 풀릴 줄은 몰랐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칭찬은 늘 옳으니까.

직원이 물었다.

"그런데 구단주가 왜 여길 와요?"

"공장 상태라도 확인하려는 게 아닐까?"

"아아."

"곧 재계약이잖아. 노팅엄은 앞으로 더 커질 거야. 이번 시즌도 봐. 시즌 시작할 때 예상순위가 강등권이었는데, 지금은 승격권이잖아."

직원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직원 중에도 노팅엄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정말?"

직원이 살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부분은 우리 일자리를 위해 응원하는 거지만요."

"하하, 나도 그런 마음이 조금 있긴 하지."

그때였다. 에단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에단은 화면을 확인했고,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노팅엄 FC 구단주 – 제임스 휘팅엄]

에단은 바로 전화를 받았고, 직원은 입을 다물었다.

-안녕하세요. 막 공장에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아, 제가 입구 근처에 있습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예. 기다릴게요.

에단이 전화를 끊고, 심호흡했다. 혹여나 오늘 잘못 보이기라도 한다면 유니폼 스폰서 계약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긴장하는 에단에게 직원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대표님, 파이팅이에요."

*

"···예?"

"다시 말씀드릴까요?"

"···아니, 제대로 들었습니다. 3주 뒤에 유니폼 3만 5천 벌이 필요하다고 하신 거 맞죠···?"

아라크네의 대표 에단은 순간 자신을 떠났던 정신을 붙잡으며 말했고, 제임스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정확해요!"

"대체 무슨 일로···."

"3주 후 홈 경기에 일 년 동안 공사한 새 좌석이 개방되거든요. 알렉산더 샌더스 구역이랑 아직 이름 없는 구역 두 곳이요. 총 1만 석이 늘어나죠."

"아, 그래서 특별 유니폼 판매를 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아뇨? 다 선물로 줄 거예요. 그날은 세미프로리그까지 떨어졌던 팀이 2부 리그로 돌아와서 좌석을 더 넓힌 날이잖아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아주 특별한 날이니까, 멋진 퍼포먼스가 동반된 축제를 열어야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증정이라는 말에 에단은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평범한 직장인이 몇 년을 일해야 벌 돈을 단 한 번에 쓴다니. 역시 구단주급 부자들은 손이 커도 너무 컸다.

에단이 어렵게 말했다.

"예. 그럴 것 같습니다···."

제임스의 목소리는 점점 빨라졌고, 몹시 신난 것처럼 느껴졌다.

"대표님, 상상해 보세요. 경기장을 찾은 모든 팬이 녹색 유니폼을 입고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그 모습을요."

에단도 스포츠용품 판매 기업을 이끄는 입장이었기에 같은 옷을 입은 팬들이 모여있는 게 얼마나 멋진 광경을 만들어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오··· 그건 멋지겠군요."

"그렇죠. 그래서 3주가 필요한 거예요."

3주라는 말을 듣자마자 에단의 마음은 팍 식었다.

왜 미리 말 안 했느냐는 불만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제임스는 손님이었다. 그것도 일 년 동안 자신을 먹여 살린 손님이자, 오늘 아주 큰 거래를 하러 온 VIP 손님.

그리고, 무리한다면 기간 내에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노팅엄 유니폼과 같은 형태의 옷이 대략 이만 장 정도 있으니까 쉬고 있는 라인까지 동원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재고요? 이번 시즌 유니폼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만···."

제임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저는 조금 특별한 유니폼을 원하거든요. 딱 그날만 받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유니폼이요."

에단은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제임스의 말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아 천천히 물었다.

"그렇다면··· 3만 5천 장을 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임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3주 만에?"

"맞아요."

"어···."

에단의 떨떠름한 반응에 제임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상의만 주문할 건데도 어렵나요?"

"가동할 수 있는 라인의 개수가 정해져 있어서···."

제임스 또한 여러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단이 더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로빈훗 펍의 사장을 꼬드길 때처럼 돈을 더 쓸 필요는 없었다.

제임스가 말했다.

"흠. 그럼 제안은 없던 거로···."

"···시간 맞춰 보겠습니다. 아니, 맞춥니다!"

제임스의 예상대로 바로 반응이 나왔다.

제임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유니폼 디자인은 말이죠···."

*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부터 기계처럼 일해야 합니다."

대표 에단의 말이 끝나고 침묵이 깔렸다.

이어 아라크네의 직원들은 옆의 사람들에게 이 사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남자 직원은 당황스러운지 대답을 못 했다. 남자 직원은 방금 노팅엄 구단주의 의뢰를 전한 에단에게 물었다.

"우리 공장에서 다 가능한가요?"

"아뇨. 다른 공장에 협력을 요청했어요. 아무튼, 우리 공장은 3주 뒤까지 끊임없이 일해야 합니다."

"하하···."

"제임스 구단주님의 유니폼 시안은 이겁니다. 몇 시간 내로 디자인 확정 짓고, 컨펌 받은 후 작업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단은 그렇게 말하며 제임스의 요구사항을 듣고, 직접 그린 유니폼을 보여줬다.

직원들이 모여서 유니폼의 형태를 확인했다.

남자 직원이 말했다.

"오··· 아이디어는 괜찮네요. 이거 노팅엄의 예전 유니폼 디자인이죠?"

"그래. 16년인가 17년 전 유니폼이란다. 구단주와 단장이 유소년 선수였고, 알렉산더가 젊었던 시절이라고 잘 확인하고 만들어달라고 신신당부하시더라고요."

"이건 또 뭔가요? ?"

유니폼 하단부에 적힌 문구였다. 에단이 말했다.

"'생색내고 싶어요.'라고 그러시더라."

잠깐 침묵이 있었다. 남자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청 솔직하시네요."

"그렇죠. 아무튼, 바로 디자인 팀에 맡겨 시안을 뽑을 테니까 다들 좀 쉬어 둬요. 곧 제발 쉬게 해 달라고 하게 될 테니까."

에단의 말에 직원들이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리고, 에단의 다음 말에 직원들은 활기를 찾았다.

"물론, 보너스는 아주 많을 겁니다."

"예에!"

**

아라크네의 공장에서 디자인 시안을 받은 제임스는 바로 김도운의 방을 찾았다.

김도운은 제임스의 계획을 들었고,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넌 미친놈이야···."

"하하, 디자인은 어때?"

"좋지. 너무 좋지."

"역시 그렇지? 바로 제작 들어가 달라고 전화할게."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김도운은 황당했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제임스가 짧은 통화를 마치자 김도운이 물었다.

"안 아까워?"

"좋아하는 걸 위해 돈을 쓰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어이구···."

"하하하,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되지."

철이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게 제임스였다. 김도운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래, 네 돈 네가 쓰는 데 굳이 뭐라 할 것도 없지. 유니폼 어떻게 나눠줄지랑 팬들에게 원하는 사이즈 정보 모아서 공장에 요청하는 것··· 같은 건 내가 알아서 할게."

"흐흐, 고마워."

"그럼 된 건가? 나 곧 미팅 있는데."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제임스에게는 용건이 남아 있었다. 김도운은 말하라는 듯 눈짓했다.

"서포터즈 펍들 위치 좀 알려줘. 너 자주 가잖아."

"아, 응원 도구라도 바꿔주려고?"

김도운의 추측은 비슷했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제임스는 더듬더듬 말했다.

"뭐··· 그렇지?"

"그런 거 괜찮네. 알겠어. 스마트폰 줘봐. 다 찍어줄게. 연락처까지."

"고마워."

김도운은 제임스의 스마트폰을 잡고, 열심히 두들기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며 차오르는 기대감에 미소를 지었다.

그날 경기장을 찾을 팬들에게 전부 같은 유니폼을 입히는 건 1차 계획일 뿐이었다.

제임스는 그날을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해서 한 공연에서 본 멋진 광경을 경기장에 재현하려 하고 있었다.

그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은 모두 응원 봉을 들고 왔고, 응원 봉은 공연이 중앙통제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하며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었다.

*

"자, 구단주님을 위해. 제임스!"

"제임스!"

펍 오크스에 모인 사람들이 맥주잔을 치켜들며 외쳤다.

이 펍의 주인이자 소규모 서포터즈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가 말했다.

"제임스도 마셔요. 엊그제 들여온 가장 맛좋은 맥주인데 제임스가 와서 꺼냈어요."

"오, 정말요? 그럼 많이 마시고 가야겠네요."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고 순식간에 한 잔을 다 비웠다.

"오오! 역시 우리의 구단주!"

이미 해가 완전히 사라진 시간이었기에 펍 오크스에 모인 노팅엄의 팬들은 술에 취해 있었다. 제임스는 원래 술을 더 마시며 분위기에 적응하고, 본론을 꺼내려 했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흘러도 팬들이 완전히 맛이 가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제임스는 중앙에 나섰다.

다짜고짜 말하는 게 조금 부끄러웠는데 마침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가 적절한 질문을 건네줬다.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해서 왔어요."

"협력이요?"

"직접 말할게요."

맥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크게 손뼉을 치고 말했다.

"자, 다들 주목해봐. 구단주님이 할 말이 있으시단다."

팬들이 술 취한 얼굴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제임스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3주 뒤 홈 경기에는 알렉산더 샌더스 구역과 반대편 구역이 개방돼요. 다들 아시죠?"

"알지!"

"그날은 우리 노팅엄 사람들에게 아주 의미 있는 날이에요. 2부 리그에 돌아온 걸 넘어서 구장 확장까지 해낸 거잖아요."

차차 펍 안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는 그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일단, 곧 시즌권을 가진 사람들과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올 건데··· 그날 입장하시는 분들에게는 유니폼을 무료로 증정 할 거예요."

"오오?"

"3만 5천 명의 사람들이 전부 녹색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거예요. 괜찮죠?"

펍에 모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줬다.

제임스가 계속 말했다. 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은 지금부터였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해보려고 해요. 예전에 알렉산더가 은퇴할 때, 온 관중이 카드 섹션을 했었잖아요?"

"이번에도 카드 섹션을 하자고요? 뭐, 못할 건 없지만···."

맥켄지의 말에 제임스가 기다렸다는 듯 신나게 말했다.

"아뇨. 연습이 필요 없지만, 카드 섹션과 비슷하면서도 어찌 보면 더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볼 거예요. 입장하는 팬들에게 유니폼과 함께 줄 '노팅엄 볼'을 통해서요."

"'노팅엄 볼'이요?"

"일종의 응원용 도구예요. 축구공 모양으로 만들고, 안에 중앙통제식 LED 기계를 넣어서 서포터즈의 리더님들이 조종할 수 있게 할 거예요."

펍의 팬들은 제임스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맥켄지는 이해했는지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멋지겠군요! 장엄한 응원가면 경기장 전체를 붉은색으로 물들일 수도 있고, 희망찬 응원가면 경기장 전체를 황금색으로 바꿀 수 있겠어요!"

"그렇죠! 역시 이해해주시네요."

"그런데 그··· 노팅엄 볼이라는 건 어떤 식으로 만들 겁니까? 유리나 철 같은 물건으로 만들면 경기장에 반입 못 하는데···."

"당연히 맞아도 위험하지 않은, FA 규정을 준수한 재질로 만들 거예요. 우리 장난감 공장에 그런 재료가 아주 많거든요. 야구공 사이즈로 공을 예쁘게 만들고, 줄을 달아서 손목에 감고 다닐 수 있게 만들 거예요."

"···좋군요. 그럼 저희가 할 일은 그 '노팅엄 볼'을 이용한 응원법들을 만드는 거네요."

"그렇죠!"

제임스와 맥켄지가 신나게 얘기를 나누는 동안 펍의 팬들은 고개를 갸웃한 채 둘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불평했다.

"둘만 얘기하지 말고 우리도 알려줘."

"좋아. 자 들어봐."

맥켄지는 제임스와 한 대화를 쉽게 풀어서 얘기했다. 펍의 팬들은 점점 집중했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새로운 응원법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 43. 제임스가 돈을 쓰는 방법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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