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40화 (140/245)

< 43. 제임스가 돈을 쓰는 방법 (4) >

"웨인아. 오늘 받을 유니폼 마킹은 이렇게 하면 되겠지?"

"잠시만요. 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모두 노팅엄 팬인 리처드 3대의 웨인 리처드는 아버지 고든 리처드가 내민 스마트폰에 적힌 글자들을 천천히 확인했다.

GRANDAD 63

DAD 37

SON 9

웨인은 잠시 생각하고 물었다.

"일주일 뒤면 휴고 생일이잖아요. 9가 아니라 10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놈아. 이 유니폼을 받은 날을 기념해서 적어야지. 그러니까, 오늘 기준으로 하는 게 맞아."

"그럴듯하네요. 좋아요."

"그래, 그럼 다음 주 평일 즈음에 내가 다녀오마."

웨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바로 앞에 있던 아들, 휴고가 사라진 걸 깨달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데 다행히도 휴고를 찾을 수 있었다.

휴고는 사람들의 줄 바로 옆으로 빠져나가 줄의 끝을 보고 있었다.

"아빠, 곧 유니폼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스무 명 정도밖에 안 남았어요."

"그렇구나."

웨인은 괜히 휴고의 양어깨를 붙잡아 자신의 앞에 붙잡아 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고든의 노팅엄 예찬을 들었다.

"역시 우리 구단이 일 하나는 잘해. 선수 등 번호나 이름 같은 걸 먼저 새겨서 나눠주는 게 편할 텐데, 우리가 원하는 거로 해주겠다고 노마킹 유니폼을 주잖아."

"애초에 경기장 확장 기념일이라면서 유니폼을 공짜로 나눠주는 것부터 훌륭하죠."

"역시 내 아들이야. 잘 아는구나."

고든의 칭찬에 웨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할아버지, 유니폼 말고 이상한 기념품도 주고 있어요."

"이상한 기념품?"

휴고가 고개를 끄덕이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앞에서 봤는데 주먹만 한 작은 축구공을 나눠주더라고요. 기념품 같은 건 가봐요."

"오오··· 기념품까지 챙겨주다니."

고든이 줄 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그 기념품을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왜냐면 줄을 선 사람들은 기념품과 인터넷으로 예약해 놓은 사이즈의 티셔츠를 받고 바로 경기장으로 입장했기 때문이었다.

고든은 그래서 마치 휴고 나이대로 돌아간 것처럼 줄이 빨리 줄어들길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통했는지 앞의 사람들이 4명, 5명 같이 뭉텅이로 빠져나갔고 금세 리처드 3대의 차례가 돌아왔다.

"어서오세요. 티켓 주시겠어요? 가방은 이분에게 잠시 넘겨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웨인이 여자직원에게 티켓을 넘겼고, 고든은 보안요원에게 가방을 넘겼다.

리처드 3대가 보안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직원은 티켓의 바코드를 찍어 셋의 유니폼 사이즈를 확인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세 벌의 유니폼을 준비했다. 그리고, 바구니에서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클래식한 모양의 주먹만 한 축구공을 가져왔다.

동시에 보안요원은 가방검사를 마치고, 다시 돌려줬다.

"여기 있습니다. XL, L, 어린이2 사이즈입니다."

"저기, 이건 뭡니까?"

고든이 주먹만 한 축구공을 받아들며 물었다. 그 순간 여자직원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느릿하게 대답했다.

"자세히 보시면 축구공의 검은 무늬 안에 녹색으로 우리 구단의 엠블럼과 날짜가 새겨져 있어요."

"오, 정말 그렇네요."

"저희는 이걸 '노팅엄 볼'이라고 부르고 있죠. 기념품은 기념품이지만··· 오늘 경기 전, 하프 타임에도 쓰일 거예요. 앞으로 쓰일 수도 있고요. 절대 잃어버리시면 안 돼요. 이렇게, 이쪽 검은 부분을 열면 손목에 고정할 수 있는 줄이 나오거든요. 바로 착용해 보실래요?"

고든은 일단 시키는 대로 공의 검은 부분을 열었다. 거기서 나온 동그란 줄을 손목에 걸었다. 좋은 재질을 썼는지 손목에 착 달라붙었는데도 불편하지 않았다. 고든이 공을 놓자, 동그란 줄과 공 사이에 이어진 굵고 탄력 있는 줄에 공이 매달려 흔들거렸다.

고든이 물었다.

"알겠습니다만, 이게 어떻게 쓰인다는 거죠?"

고든을 비롯해 웨인과 휴고도 고개를 갸웃했다. 여직원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윙크하고, 말했다.

"자세한 건 비밀이에요. 자, 다들 들어가면 지금 나눠드린 유니폼 입는 거 잊지 마시고··· 어서 들어가세요."

경기장 안에 들어온 리처드 삼대는 계단 밑의 한산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휴고가 마구잡이로 옷을 뜯었고, 거의 5m간격으로 배치된 쓰레기통 안에 비닐을 넣었다.

휴고가 유니폼을 쫙 펼쳤다.

아직 유니폼을 뜯는 중이던 고든과 웨인이 유니폼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이거 색이랑 디자인이 옛날 거 같아요."

평소대로였다면 할아버지 고든은 이 유니폼에 관해 설명해줬을 것이었다.

하지만, 고든은 순간 돌이 된 것처럼 유니폼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고 있던 유니폼의 포장을 뜯었다.

휴고는 아버지 웨인을 바라봤지만, 웨인도 이상했다. 휴고의 유니폼을 빤히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휴고는 고개를 돌렸다. 주변의 일부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휴고의 귀에 고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게 그리운 유니폼이군."

고든의 옆에 웨인이 붙으며 물었다.

"아버지, 이거 16년 전 유니폼 맞죠?"

"그래. 우리 팀이 2부 리그에 있는 게 당연한 시기였고, 우리는 늘 승격을 꿈꾸던 때였지. 은퇴한 알렉산더도 그때는 젊은 선수였어."

고든의 눈은 유니폼을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고든이 추억에 잠기는 걸 배려하기 위해 뭔가 물으려는 휴고를 웨인이 막았다. 잠시 후, 고든이 휴고에게 말했다.

"휴고, 이 유니폼은 구단이 나나 네 아빠 같은 오랜 팬들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이게요?"

"그래. 이 유니폼만 봐도 16년 전을 떠올릴 수 있거든."

휴고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가? 생각하면서. 고든이 말했다.

"그리고,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구단은 우리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단다. 우리 팀은 16년 전의 그때보다 더 굉장한 팀이 되었다고."

"그렇네요. 오늘 만 석이 추가되잖아요. 노팅엄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고요."

웨인이 이어서 말했고, 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휴고에게 고든이 말했다.

"너도 나중에는 알게 될 거란다."

티셔츠의 디자인에 감명을 받은 건 리처드 3대뿐만이 아니었다.

노팅엄의 오랜 팬들은 이 티셔츠를 펼쳐 들고, 미소짓거나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하지만, '노팅엄 볼'의 쓰임새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노팅엄 경기장 안에 있는 원정 드레싱룸에는 오늘 상대 팀인 헐 시티의 선수들이 의기투합하고 있었다. 전술 지시를 마친 헐 시티의 감독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선수들이 정말 열의가 넘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헐 시티의 주장이 말했다.

"오늘 노팅엄이 기념행사를 한단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망쳐버려야지!"

"그렇지!"

드레싱 룸이 시끌벅적해졌다. 헐 시티의 선수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감히 우리와의 경기에서 기념행사를 한다니,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라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외쳤다.

이들의 얘기를 쭉 들은 헐 시티의 주장이 말했다.

"그럼 오늘 구호는 이걸로 하자. 망치자!"

"망치자!"

"가자!"

헐 시티의 선수들은 드레싱룸의 문을 열고, 마치 갱단처럼 험악한 인상을 한 채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필드로 향하는 터널에 먼저 줄을 서고 있던 노팅엄의 선수들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헐 시티와 노팅엄 선수단끼리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헐 시티 선수들이 줄을 서자마자 주심이 바로 나가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헐 시티의 주장은 노팅엄의 어린 주장에게 말로 기선제압을 못 한 걸 아쉬워하며 걸었다.

그래도 헐 시티의 주장은 오늘 경기에 자신이 있었다.

노팅엄은 오늘 기념행사를 열기에 노팅엄의 선수들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휩싸여 있을 테니까.

헐 시티와 노팅엄의 전력은 그렇게까지 차이나지 않았다.

헐 시티의 순위는 9위였고, 노팅엄의 순위는 4위였지만, 노팅엄과의 승점 차는 딱 6점이었으니까.

어느새 필드 바로 앞이었다.

헐 시티의 주장이 외쳤다.

"망치자!"

"망치자!"

헐 시티의 선수들이 따라 외쳤고, 다들 자신만만하게 필드로 들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맨 앞에 선 헐 시티 주장의 걸음이 느려져 뜻대로 되지 않고, 서로 부딪쳤다.

"캡틴! 왜 그래?"

헐 시티의 주장 바로 뒤에 있던 선수가 주장의 등을 밀며 말했다. 그제야 주장은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필드 밖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지만.

주장 바로 뒤에 있던 선수는 왜 그러나 싶어 필드로 나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아주 기이한 광경이 선수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가 선 필드는 밝았지만, 관중석을 밝히는 조명이 다 꺼져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았을 거다. 하지만, 어두운 관중석은 지옥에서 올라온 수만 개의 반딧불이가 날고 있는 것처럼 붉은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또한, 어디서 흘러나오는 건지 음울한 노래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척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헐 시티의 선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무서워···."

**

잠시 시간을 돌려 경기 시작 1시간 전, 노팅엄의 메인 스폰서, 엑스피아의 대표 매튜는 함께 온 손님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어떻습니까. 괜찮죠?"

매튜가 가리킨 건, 노팅엄 경기장 안에 마련된 엑스피아의 VR 기계 체험공간이었다. 노팅엄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팬들이 여러 기계를 작동시켜보고, 설명을 듣고 있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평균적으로 열흘 정도에 한 번씩 2만 5천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오고···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이 공연을 보러 온다고 했죠? 확실히 괜찮군요. 이 팀이 아래 리그에 있을 때 메인 스폰서를 제안했다니··· 매튜의 큰 그림도 정말 멋지군요."

중년 남자의 말에 매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경기장으로 가볼까요? 브랫?"

"좋습니다."

브랫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매튜의 평소 걸음걸이보다 훨씬 느리게 걸었다. 중간마다 멈춰 노팅엄 푸드코트를 보기도 하고, 팬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매튜는 별말 없이 브랫의 속도를 따랐다.

왜냐면 브랫은 매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성공한 사업가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매튜는 브랫과 함께 사업을 하고 싶었다.

브랫 밀러는 미국 최고의 가전제품 회사 BM의 대표였다. 미국 가정의 절반 이상이 BM의 제품을 쓸 정도였다.

매튜는 VR이 일상에 녹아들길 원했기에 가전제품 일인자인 브랫과 만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매튜가 노팅엄의 초청 때문에 런던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서를 통해 브랫이 사업차 런던에 와 있다는 얘길 들은 것이다.

매튜는 브랫의 회사를 통해 브랫과 통화할 수 있었고, 식사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매튜는 브랫과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브랫이 왜 여기에 왔냐고 물어봐서 '메인 스폰서를 하는 노팅엄 FC라는 팀에서 초대를 받았다.'라고 말해줬는데, 브랫이 시간이 남는다며 최근에 축구에 관심이 생겼는데, 따라가도 좋겠냐고 물어봐 여기에 함께 온 거였다.

매튜는 브랫과 친분을 쌓을 계획이었기에 브랫에게 계속 친절하게 대하며 VIP석까지 안내했다.

그곳에는 노팅엄의 구단주 제임스와 단장 김도운이 먼저 와 있었다.

매튜는 둘과 반갑게 인사하고, 브랫을 소개했다.

"어제 미스터 킴에게 미리 말했죠? 브랫 밀러입니다."

"제임스 휘팅엄입니다!"

"BM의 대표님이시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노팅엄의 사장 겸 단장, 김도운이라고 합니다."

브랫은 정중한 태도로 제임스와 먼저 악수했고, 이어서 김도운과 악수하며 말했다.

"킴, 만나서 반갑습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는데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둘의 그 모습을 보며 매튜는 친절함을 발휘했다. 제임스에 관해서는 잘 몰랐기에 김도운에 관해 짤막하게 설명해준 것이다.

"브랫, 킴은 참 대단합니다. 이 팀의 유소년 출신으로 스무 살이 되자마자 한국에서 군대와 대학을 마치고 축구계에 맨몸으로 뛰어든 사람입니다.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아 이 팀에서 첫 단장직을 맡았고, 팀을 4부에서 2부까지 끌어올린 아주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오··· 몸으로 직접 부딪친 거군요. 정말 멋집니다."

브랫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다시 한번 김도운에게 악수를 청했다. 김도운이 부끄러워하며 악수를 받자, 브랫이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경기장을 쭉 돌아봤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팬이 2500여 명밖에 없었다죠? 정말 굉장합니다. 역시, 일은 현장에서 배워야죠.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는 제 아들놈에게 본받으라고 하고 싶군요."

"하하···."

아들놈이 누군지 모르는 김도운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받았다.

브랫이 계속 말했다.

"사실, 축구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저 경기를 한번 보고 싶어서 온 거예요."

"그렇습니까?"

"예,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팬이거든요. 축구보단 야구를 좋아하죠."

"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의 팀이죠? 팬들이 열정적인 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도운은 속으로 야구의 밀월, 훌리건들의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입밖에는 순화해서 내놓았다.

덕분에 브랫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잘 아시는군요. 저는 그 팀의 메인 스폰서를 하고 있습니다."

"와우··· 대단하군요."

"별거 아닙니다. 아무튼, 오늘 경기 잘 보겠습니다. 영국에 온 김에 축구의 본고장에서 하는 리그 경기를 꼭 보고 싶었거든요. 야구와 다른 매력이 어떤 건지 눈으로 꼭 보고 싶었습니다."

"하하, 좋은 경기를 보여 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때였다. 경기 시작 10분 전, 선수들이 몸을 풀고 들어가자마자 장내 아나운서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관중석이 어두워질 겁니다. 팬분들은 놀라지 말고 자리에 앉아 계시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 받은 '노팅엄 볼'을 가슴 앞에 들어주십시오.>

팬들이 웅성거리면서 노팅엄 볼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관중석을 비추고 있던 불이 꺼졌다.

"뭐죠? 뭘 하는 겁니까?"

브랫의 물음에 김도운은 명쾌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특별한 응원을 하려고 합니다."

"특별한 응원이요? 기대되는군요."

그 순간, 어두웠던 관중석이 일제히 밝아졌다.

붉게 빛나는 수만 개의 노팅엄 볼들이 모여 관중석을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솔직히 예쁘기는커녕 무서운데···.'

김도운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노팅엄과 헐 시티의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고, 홈 서포터즈 석에서 응원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너희들은 노팅엄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음산하고 어두운 노래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헐 시티의 선수들이 주춤거리고 당황하는 게 보였다. 겁먹은 것 같았다.

김도운은 허허하며 웃었다. 옆의 제임스는 "이거지!"라고 외치고 있었다.

김도운은 옆에 앉은 브랫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맨날 이런 응원을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브랫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야구 경기를 봐 왔을 브랫은 마치 문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붉어진 경기장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 43. 제임스가 돈을 쓰는 방법 (4)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