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50화 (150/245)

< 46. 28년 17일 (1) >

"저기··· 형제, 자매님들···."

노팅엄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신부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대성당은 거의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신자들은 말없이 조용했다.

"제발··· 붙어 앉아 주시면 안 될까요? 거기, 킴 단장님이랑 스콧 단장님부터 모범을 보여주셨으면···."

신부의 간곡한 부탁에 김도운과 노츠 카운티의 단장 스콧이 긴 의자 사이에 사람 셋 정도 들어갈 공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봤다. 잠시 후, 김도운은 피식 웃고, 스콧은 고개를 홱 돌렸다.

신부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도운과 스콧만 이랬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문제는 성당의 신자들이 둘을 기준으로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정체는 김도운을 중심으로 한 노팅엄 FC의 팬들과 스콧을 중심으로 한 노츠 카운티의 팬들이었다. 물론, 이들은 원래 천주교의 신자이기도 했다. 김도운과 스콧만 빼고.

두 무리는 미사에 집중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서로를 향해 도발과 말싸움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대로 뒀다가는 큰 싸움이 될 것 같아 신부가 미사를 멈추고 얘기한 거였다.

하지만, 이들은 쥐뿔로도 안 들었다.

그래서 신부는 일단 미사를 계속 집전했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강론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잠시 후, 강론시간이 되었고 신부는 드디어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아니··· 제가 이러자고 노팅엄과 노츠 카운티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겠다고 한 줄 아십니까?"

서로 눈을 부라리던 양측의 팬들은 신부의 일침에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신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 대치 구도를 만든 두 원흉에게 말했다.

"단장님들도 여기가 축구장인 줄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여기는 영국에 처음 세워진 가톨릭 성당입니다. 두 분이 운영하는 축구 경기장들보다 훨씬 역사 깊고,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라 이겁니다."

미사 내내 마음을 계속 졸였던 신부는 울분이 올라와서 점점 센 어조로 말했다. 다행히도 김도운과 스콧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흥분했습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둘이 붙어 앉지는 않았다.

신부는 사람들이 전부 얌전해진 걸 보고 만족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좋아요. 그럼 얘길 시작해보죠. 노팅엄과 노츠 카운티 모두 훌륭합니다. 승격 첫해에 최종순위 3위, 7위라니··· 겹경사에요!"

3위와 7위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노츠 카운티 팬의 표정은 나빠졌고 노팅엄 팬들은 의기양양해졌다.

이 미사는 시즌 최종전이 끝난 직후 주말 미사였다. 신부는 영국 사람이었기에 영국인들의 축구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신부조차도 고향 팀인 에버튼의 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영국의 많은 사람에게 있어 축구는 그저 공놀이가 아닌 삶의 일부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부는 이 성당에서 5년째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노팅엄 FC의 팬인 신자들은 노팅엄이 5부 리그에 처박혀있을 때 정말 늘 우울해 보였다. 하지만, 눈앞에 앉아 있는 저 동양인, 김도운과 그의 친구 제임스를 시작으로 노팅엄이 차근차근 위로 올라오자 노팅엄의 팬인 신자들은 매주 행복해 보였다.

이유를 물어보면 늘 '노팅엄이 잘해서.'라고 답했다.

노츠 카운티도 마찬가지였다. 챔피언십으로 올라왔을 때, 그들의 팬 또한 정말 즐거워했었다.

그래서 신부는 오늘 미사를 통해 두 팀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두 팀이 잘 돼야 노팅엄시 전체의 행복도가 올라갈 테니까.

신부가 말했다.

"노츠 카운티의 시즌은 끝났지만, 노팅엄의 시즌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노팅엄은 3위에서 6위까지 진출하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었다. 네 팀 중 가장 높은 순위였지만, 3위와 6위의 승점 차는 불과 6점. 전력이 아주 크게 차이 나지는 않았다.

신부는 노츠 카운티의 신자들을 슬쩍 봤다.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긴 했지만, 험악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부는 노츠 카운티의 팬들과 노팅엄의 팬들에게 차례로 말했다.

"노츠 카운티의 팬 여러분도 노팅엄이 승격하는 걸 응원해주세요. 그리고 노팅엄의 팬 여러분은 노츠 카운티가 내년에 꼭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올 수 있길 응원해주세요."

신부는 에버튼 출신이었고, 에버튼은 리버풀과 머지사이드 더비를 이루고 있었다. 노팅엄, 노츠 카운티와 비슷하게 같은 도시의 더비 관계였다.

에버튼과 리버풀의 더비 관계는 보통 생각하는 험악한 더비 관계와는 다르게 순한 편이었고, 장난스러운 느낌이 많았다.

리버풀의 선수들이 크리스마스에 에버튼 팬에게 가서 리버풀 옷을 입히는 장난을 쳐도 다들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신부는 착각하고 말았다.

노팅엄과 노츠 카운티도 그럴 거라고.

노츠 카운티의 단장, 스콧이 입을 열었다.

"아니, 같이 가야죠. 어딜 먼저 갑니까?"

"같이 가다니요. 우리보고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지라는 겁니까?"

김도운이 바로 답했다.

이들은 리버풀과 에버튼보다는 조금 더··· 많이 투닥거리는 사이였다. 특히 단장 둘은 경기장에서 늘 라이벌 관계를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신부가 당황하며 마이크를 잡았지만, 김도운의 말이 더 빨랐다.

"우리는 노츠 카운티처럼 잔류 안 합니다. 이번에 프리미어리그에 무조건 갑니다."

"뭐요? 지금 우리 놀리는 겁니까? 킴도 웃기는군요. 플레이오프에서 지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무조건 이깁니다."

"한 달도 더 전에 저녁 먹으면서 그러지 않았습니까. 설마 아스톤빌라가 한 번은 지지 않겠냐고, 노팅엄은 전승해서 그 자리 차지할 거라고. 근데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한 번 예측이 빗나갔는데 또 빗나가는 건 쉽겠죠. 하하하하하하."

"이익···."

스콧이 얄밉게 웃자 김도운이 부들부들 떨었다.

노팅엄은 레딩전부터 시작해 남은 경기에서 전부 이겼다. 무려 6연승이었다. 하지만 1, 2위 팀인 아스톤빌라와 리즈도 6연승을 해 버려 그대로 3위에 머물러 버렸다.

"그러는 노츠 카운티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스콧이 말한 식사 자리는 노팅엄이 레딩전에서 승리한 다음 날, 김도운의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스콧에게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제안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둘이 더비마다 투닥거리기는 해도 둘은 노팅엄과 노츠 카운티가 둘 다 잘돼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노츠 카운티도 5위를 달리고 있었기에 스콧도 오픈 마인드였다.

그래서 둘은 그날 '노팅엄은 승격 직행!', '노츠 카운티는 플레이오프 우승!'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화기애애하게 놀았다.

하지만, 두 팀 다 1위 차이로 목표달성에 실패했다.

"어어, 다들 진정하세요!"

단장들을 시작으로 노팅엄과 노츠 카운티의 팬으로 이뤄진 신자들이 양쪽에서 언성을 조금씩 높이기 시작했다.

노츠 카운티는 '어차피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노팅엄은 '플레이오프도 못 간 놈들.'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노팅엄이 훨씬 우위였지만, 노츠 카운티의 팬들은 자존심 때문인지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망했다···."

신부는 괜히 두 팀 다 초대했다며 후회했다.

토요일은 노츠 카운티, 일요일은 노팅엄 FC를 초대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

노팅엄의 한 가정집의 TV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챔피언십리그 플레이오프 특집방송, <최후의 네 팀>의 진행을 맡은 조쉬 베르너입니다.

조쉬는 미소를 지으며 한 템포 쉬고, 이어서 자신과 함께 방송을 진행할 앙 옆에 앉은 패널들을 소개했다.

-오늘은 두 분의 패널이 함께해주셨는데요. 먼저 얼마 전까지도 BBC의 스포츠 기자였다가, 최근 풋볼 저널리스트가 된 제럴드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축구 중계를 보시는 분이라면 익숙한 해설이죠? 잉글랜드의 영원한 미드필더이자 명 해설가! 데니스 캐머런입니다.

-반갑습니다.

조쉬는 둘을 소개한 후, 방송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챔피언십리그의 1위와 2위는 프리미어리그로 바로 승격하지만, 3위부터 6위까지는 플레이오프를 치러 단 한 팀만이 프리미어리그로 가게 됩니다. 프리미어리그 승격의 가치는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라면 알 겁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2억 파운드의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중계권은 끊임없이 오르고··· 스폰서들이 더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두고 3억 파운드(약 4,500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조쉬의 물음에 데니스가 자연스럽게 답했다.

-날이 갈수록 리그 규모가 커지네요. 저 있을 때만 해도 리그 전체 운영비가 저 정도였던 것 같은데.

-하하, 데니스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이적료로 최소 3억 파운드는 받을 수 있는 선수였을 텐데요.

-그렇죠. 제가 지금 축구 하면 크리스 앨런 정도는 할 수 있죠.

3억 파운드는 현시점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받는 크리스 앨런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기록한 금액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었다.

조쉬가 부드럽게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이번에 승격하는 팀에서 크리스 앨런 같은 선수가 나오면 잉글랜드 축구계에도 좋을 텐데요. 프리미어리그 승격은 그만큼 팀이나 선수가 성장하기 아주 좋은 기회니까요.

-맞습니다. 승격하자마자 바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이나 팀들이 있죠. 이번에도 그런 팀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제럴드가 대답했다.

이어서 조쉬가 방송을 진행했다.

-우리 <최후의 네 팀>에서는 순위대로 각 팀과 감독, 그리고 선수들을 분석해 시청자 여러분들이 더 재밌게 플레이오프를 즐길 수 있게 돕고자 합니다. 그럼 3위, 노팅엄 FC부터 시작해 볼까요? 마지막까지 정말 아쉬웠는데요.

조쉬의 말에 데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6연승을 했는데, 1·2위 팀도 6연승을 할 줄이야··· 정말 지독하게 운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그 순간, 제럴드가 끼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튼 FC와의 경기가 아쉬워요. 그때, 잭슨이 후보 선수를 쓰지 않고 승부수를 던졌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 같단 말이죠.

-제럴드. 또 그 얘깁니까.

데니스가 눈살을 찌푸리자 조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이 둘은 <이 주의 경기>를 시작으로 노팅엄이 6연승을 하는 동안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이런 말싸움을 하곤 했다.

-하하, 제럴드는 SNS에서 가장 유명한 팀 중 하나인 노팅엄의 감독 잭슨의 반대파로 유명하죠. 의견은 다양한 게 좋으니까요.

-예, 저는 이 스탠스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버튼과의 경기에서 승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조쉬가 스태프가 건네주는 태블릿을 받았다. 조쉬가 잠시 스태프와 대화를 나누고 말했다.

-확실히 제럴드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네요. 방송 공식 SNS에 이런 댓글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제럴드 말이 맞다. 잭슨은 전술을 너무 자주 바꾼다.', '난 노팅엄 팬인데 불안해 죽겠다. 제럴드 말 듣고 잭슨이 과거에 거쳐온 팀들 찾아봤는데 정말 엉망이더라.'······.

조쉬가 말을 계속할수록 데니스는 눈썹을 꿈틀댔고, 제럴드는 헤벌쭉 웃었다.

조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럴드는 딱 들어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팬들도 알아주시는군요.

-제럴드가 기자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업하면서 여러 팀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해 인기가 오른 덕이죠.

조쉬의 말에 들떠 보이는 제럴드를 보며 데니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부족한 근거로 잭슨 감독을 대차게 비판한 것도 영향이 있지 않습니까. 제럴드가 예전 잭슨이 맡았던 팀의 팬이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거죠.

제럴드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생겼다. 제럴드가 말했다.

-부족한 근거라니요. 며칠 전에 올렸던 제 분석 글만 봐도 잭슨이 중요한 경기에서 지나칠 정도로 전술적 변화를 크게 가져가는 감독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요.

제럴드의 말대로 과거 잭슨은 중요 경기마다 새로운 전술을 가져오는 식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제럴드의 주장은 이랬다. 선수들이 전술에 적응할 시간도 안 주고 새 전술을 도입해 경기를 늘 망쳐버린다고.

자꾸 실패하니까,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고집을 부린다고.

데니스가 말했다.

-보긴 봤어요. 하지만, 그건 과거일 뿐이죠. 무엇보다 잭슨을 보조하는 선수들이 다르고, 단장이 다르고, 코치진이 달라요. 제가 봤을 때, 잭슨은 자신과 더 맞는 팀으로 갈수록 실력을 발휘할 감독이에요. 노팅엄은 그 최소 조건을 채운다고 봐요.

-불쾌하네요. 제 고향 팀인 루튼 타운은 그때 챔피언십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강한 팀이었어요.

데니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럴드를 바라보았다. 제럴드는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운데 끼어있는 조쉬는 둘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둘을 초청한 이유 중 하나가 둘의 의견충돌로 생기는 이슈였기 때문이었다.

데니스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이번에 잭슨이 우승하고 프리미어리그에 가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못 간다고 생각해요. 데니스는 왜 그렇게 잭슨을 고평가하죠?

-고평가할만한 감독이니까요. 잭슨은 새 시대의 축구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나이는 예순 넷에, 손자도 있는 할아버지가요?

제럴드의 말에 데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예. 잭슨이 승격했을 때를 대비해서 해설로 쓸 멋진 멘트를 준비해 놓을 정도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제럴드가 어이없다는 듯 보든 말든 데니스는 제안 하나를 했다.

-그럼 내기 하나 하는 건 어떤가요?

-내기요?

-잭슨이 승격에 성공하면 당신이, 실패하면 내가 다음에 만날 방송에서 속옷 차림으로 방송을 하는 거예요. 속옷은 상대가 골라주는 거로 입기. 참고로 저는 란제리 세트를 고를 생각입니다.

데니스의 말에 제럴드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진행자 조쉬는 무척 반겼다.

-오, 그거 재밌겠네요.

조쉬의 말에 제럴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제럴드는 잭슨이 실패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제럴드가 이렇게 말했다.

-괜히 감독 일을 시작하고 28년 동안 1부 리그에 한 번도 못 간 게 아니라고요.

< 46. 28년 17일 (1)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