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지니 스카우트 (2) >
"테오. 넌 왜 아직도 글썽이고 있냐."
"그렇지만··· 너무 슬프잖아요···."
복도 디자인에 관한 발표를 마치고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나는 선수들, 코치들, 직원들 할 거 없이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발표 후 거의 대성통곡을 하는 테오를 위로해주기 위해 녀석의 옆에 앉았다가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교대로 우리의 테이블에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나에게는 이번 시즌 너무 행복했고, 다음 시즌에는 더 열심히 하겠다는 얘길 했고 테오에게는 그동안 정말 즐거웠다고 가서 행복 하라는 말을 해 줬다.
이번에는 선수들이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찾아왔다.
내가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한 선수에게 물었다.
"네 동생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아?"
테디 헌터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뇨. 저런 식으로 우는 건 진짜 어릴 때 말곤 본 적이 없는데··· 창피하게 왜 저러는지···."
"테디, 너무해. 테오는 진지해 보이는데."
이어서 라이언이 말했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할리와 로드도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가지 말라니까아···."
"왜 다 가는 거야···."
인사불성이 되기 직전의 로드는 아까 세자르 앞에서 눈물을 보였었다. 아무래도 주장이라서 그런지 정이 더 많이 든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할 얘기가 있었다.
로드가 또 감성적으로 변하면 내가 얘기할 분위기가 안 만들어질 것 같아 나는 옆옆 자리에 앉은 로드의 어깨를 툭 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로드가 중얼거린다.
"···그래요. 슬퍼하기보다는 응원해 줘야죠."
나는 픽 웃고 탁자를 양 손바닥으로 탁 소리 나게 쳤다.
"자, 여기 있는 모두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잘 왔어. 테오도 비록 우리 팀을 떠나지만, 내 말을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
여섯 명의 선수가 진지한 얼굴이 되어 날 바라보았다.
나는 바로 입을 열어 또박또박 말했다.
"월드컵에 가자마자 자책골 넣고 빨리 돌아와."
"예! 알겠··· 잠시만요. 뭐라고요?"
로드가 씩씩하게 대답하다가 의문을 제기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날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린다. 선수들은 잠시 후 한 가지 결론을 만들어 로드가 내게 대표로 말했다.
"···술 취하셨죠? 생각해보면 몇 시간 동안 여기서 몇 사람을 상대했는데, 안 취할 리가 없죠."
나는 좀··· 아니, 사실 많이 취한 상태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아지랑이가 피어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술기운에 입을 열려고 하다가··· 선수들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월드컵이 비록 나 같은 클럽 관계자에게는 최악의 축제지만, 일반적으로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이기도 했다.
또한, 축구선수라면 꼭 뛰어보고 싶은 무대이기도 했다.
로드, 할리, 라이언이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불려갔을 때, 애들이 얼마나 기뻐했었는지가 저절로 떠올랐다.
아무리 술주정이라 해도 악담을 하는 건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농담이야. 내가 부탁할 건 딱 하나, 다치지만 않고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거야. 다들 신경 써줄 수 있지?"
사실 가장 바라는 건 이들이 속한 잉글랜드의 조기 탈락이었다. 그래야 체력 관리가 될 테니까.
생각할수록 잉글랜드 국가대표 놈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다. 고생고생해서 키워놨더니 지난 시즌 위기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쭉 빨아먹고 돌려주겠지.
"감사합니다. 절대 안 다칠게요··· 그런데 단장님. 표정이 왜 그래요?"
"그냥. 너희들이 월드컵에서 잘할 모습을 상상하니까 좋아서?"
되도 않는 변명이었지만, 다들 어느 정도 취해서 그런지 잘 먹혀들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노팅엄의 명예를 드높이고 올게요."
"제가 세계에 얼마나 먹히는지 느끼고 올게요."
선수들이 하나둘 입을 열어 결의를 다졌다. 다들 설레하는 게 느껴져 나는 피식 웃고 말했다.
"그래. 월드컵 이후에 급성장하는 선수들도 많으니까, 잘해 봐라. 이놈들아."
"예!"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슬슬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고, 파티는 점점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더 있다가는 필름이 아예 끊겨버릴 것으로 보이는 로드와 할리도 라이언이 데려다주러 갔다. 테디는 스칼렛과 함께 사라졌다. 이따 테오를 데리러 다시 온다고 했다.
슬슬 나도 일어나봐야 하나 생각하는데 세자르가 연인 오리아나를 데리고 우리 테이블에 찾아왔다.
내가 먼저 오리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파티 어땠어요?"
"좋았어요. 그리고, 이번 시즌도 정말 감사했어요. 세자르가 이렇게 즐겁게,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은 처음 봤어요."
나는 말 없이 씩 웃었다. 세자르가 말했다.
"슬슬 가보려고요."
"그래. 그래야지. 테오 너도 슬슬 갈 준비해라. 모레 소집이면 내일도 몸 관리해야지. 아, 그럼 마지막으로 주스나 한 잔 마실래? 미스 오리아나도 함께요."
눈을 감고 있던 테오가 어영부영 몸을 일으켰다. 나는 셋에게 오렌지 주스를 조금씩만 따라서 나눠줬다.
그리고 먼저 세자르에게 말했다.
"1억 파운드짜리 선수가 되는 게 네 목표였지? 평범하지 않은 이유긴 했지만, 이번 시즌 내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인 게 더 와닿더라."
현대판 로미오 같은 세자르에게 그렇게 말하니 쑥스러운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세자르는 이번 시즌 리그 득점왕이었다. 46경기 동안 39골. 틀림없이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거부인 오리아나의 아버지가 주장하는 '1억 파운드짜리 선수'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결혼 허락받으면 청첩장 꼭 보내. 갈 테니까."
"예···!"
오리아나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세자르가 힘차게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테오를 바라보았다.
"너도 너만의 목표가 있지. 꼭, 해결하길 바라마. 뉴캐슬의 리찌 감독이라면 널 틀림없이 잘 써줄 거야."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를 대단한 선수가 된 채로 만나고 싶다고 했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테오가 고개를 숙이며 작게 대답했다.
"예···."
나는 테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둘 다 노팅엄에서 뛰다 온 선수들은 정말 알짜배기라는 소리 듣게 열심히 뛰어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구단 이미지가 좋아져."
농담이 담긴 말에 둘 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둘에게 나는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그럼, 또 만나자."
"네!"
*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바로 훈련장 건물에 있는 내 사무실 천장이었다.
"···나 왜 여기서 일어나냐."
"오, 일어났어?"
이어서 제임스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몸을 일으키다가 머리를 찌르는 것 같은 두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왜 여기에서 깨어나게 됐는지 생각해봤다.
제임스가 냉장고를 뒤적이더니 붉은 음료가 담긴 잔을 꺼내오며 내게 내밀었다.
"자, 마셔. 노팅엄의 진-아일랜드-도그 씨. "
"뭐? 진···섬···개··· 진돗개?"
제임스가 내민 건 영국에서 해장용으로 사용하는 블러드메리라는 보드카와 토마토즙을 섞은 음료였다.
나는 일단 마시면서 제임스가 왜 저런 개소리를 하는지 생각해봤다.
하지만,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내 마지막 기억은 선수들을 다 떠나보내고 제임스와 잭슨을 비롯한 몇몇 직원들과 남아서 또 한 번 술판을 벌인 일까지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제임스에게 물었다.
"그게 뭔 소리야?"
"네가 술 마시다가 중간에 '나를 진돗개라고 불러주시겠어요?'라고 헛소리하더라고. 그래서 진돗개가 뭐냐니까 네가 한국에 사는 개라고 해서 테이블이 뒤집어 졌잖아. 기억 안 나?"
그 와중에 진돗개는 한국어로 말했나 보다. 젠장.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또 뭐했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엄청나게 욕했지. FIFA랑 UEFA도 욕했어. 월드컵이랑 유로 일정이 너무 가혹하다고."
"그리고?"
"한 2~3주짜리 부상을 입으면 선수들도 월드컵에 못 나가지 않겠냐면서 중간에 돌아온 라이언의 다리를 빤히 바라보았지."
"···망할. 술 좀 작작 마셔야지."
"그 타이밍에 내가 딱 네 뒤통수 쳐서 재웠지."
"영화 찍냐···."
나는 또 한숨을 내쉬며 뒤통수를 만졌다. 제임스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괜히 아픈 것 같았다. 나도 나중에 꼭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다행히 안 늦었네. 야, 그런데 넌 왜 여깄어?"
제임스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기쁜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일하냐? 최소 인력만 남겨두고 회사 전체 휴가 때려버렸지. 오늘 저녁도 너랑 조이랑 술 마실 거야. 내일은 스페인의 섬으로 놀러 갈 거고."
"망할 놈. 구단주라 좋겠다. 오늘은 적당히 먹을 거다."
오늘 술을 안 마실 거라고 못하는 내가 미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게도 아직 프리미어리그 승격의 여운이 남아있었으니까.
제임스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나랑 조이만 실컷 먹을게."
"아, 조이도 안 돼."
나는 그 말을 하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옷장에 미리 준비해놓은 새 와이셔츠를 꺼내 입었다.
제임스가 말했다.
"왜! 아직 선수들 협상 중이라며. 본격적으로 계약 완료되면 바빠질 거라며. 지금은 아니잖아."
"그건···."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가 찾아온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미할리스, 잠깐만요."
나는 와이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잠그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미할리스가 부인과 함께 문 앞에 서 있었다. 제임스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
"여기에 사인만 하면 됩니까?"
"맞아요. 그런데 에이전트 없이 괜찮겠어요?"
"킴이 사기 칠 사람도 아닌데··· 수수료 아깝습니다."
나는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계약서를 알기 쉽게 다시 한번 설명해줬고, 미할리스의 사인을 받았다.
그렇게 미할리스는 임대 신분에서 3년 동안 우리의 선수가 되는 계약을 맺었다.
미할리스의 나이는 서른이었기에 사실상 최전성기를 우리 팀에서 보내게 되는 거였다.
미할리스를 보내고 나는 제임스에게 말했다.
"미할리스 뿐만 아니라 오늘 모든 재계약을 마무리 지을 거야. 그래서 조이가 내일 엄~청 바쁠 거라 술 많이 못 마시게 해야 해."
"아···."
제임스는 안타까워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이제 계속 선수들이랑 직원들이 여기 오는 거야?"
"응? 그렇지? 약속장소를 여기로 잡았으니까. 제임스, 미안하지만 저녁에 봐야 할 것 같아."
휴가까지 냈다고 하니 일을 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휴가 내길 잘했다! 옆에서 구경해도 되지? 나도 이김에 선수들이랑 좀 얘기도 나누고 그래야겠어."
선수들이 전부 왔다 갔다. 선수가 없으면 선수의 가족이나 에이전트가 왔다 갔다. 또한, 코칭스태프들도 모두 들렀다.
시즌 중에 전부 얘기 나눠놓고 협상도 마쳐놨기에 최종 사인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계약서를 갑자기 바꾸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니 순조롭게 흘러갔다.
훈훈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최소 25% 이상 인상된 계약서에 서명했고, 버는 돈이 커진 만큼 우리 노팅엄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열심히 노력한 보상을 받는 거니 성취감이 더 클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종 사인을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존···."
"여기서 정말 즐거웠지만, 새 도전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존은 잭슨의 부임과 함께 데려온 수석코치였다.
존은 잭슨의 선수로 뛴 적이 있었기에 잭슨의 스타일에 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중간 가교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숨은 공신 중 하나였다.
방금 막 5년 계약을 한 잭슨은 존이 떠난다는 걸 이미 들었는지 평온한 얼굴이었다.
나는 존에게 물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거겠죠?"
"예."
"감독직 정도는 제안받은 거죠? 그것보다 낮은 제안이면 제가 아쉬워요."
"당연하죠. 잉글랜드 3부리그에 있는 콜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좋아요. 그 정도는 돼야죠. 행운을 빌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존과 악수했고, 떠나기 전에 식사 한번 하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꼭 수석코치는 아닐지라도 자리 하나는 마련해 줄 테니까요. 물론,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요."
"예. 감사합니다."
이어서 찾아온 건 알렉산더와 전력분석관 한국 친구들이었다.
한국 친구들은 챔피언십리그에 일하는 게 처음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그렇기에 한 번에 두 배를 올려줬다. 업계 평균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었다.
"충성하겠습니다!"
"저도요!"
두 한국인의 진심 반, 장난 반의 맹세를 들으며 나는 알렉산더에게 물었다.
"캡틴. 혹시, 수석코치 자리에 관심 없어요?"
"존이 떠나는 건가?"
"예. 3부 리그에 감독하러 간대요."
"음···."
알렉산더는 코치 자격증도 갖고 있고, 전력분석관 일을 하며 틈틈이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능력도 있었다.
무엇보다 잭슨과 선수들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알렉산더가 당연히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미안하지만, 거절하겠다. 전력분석관 일을 계속하고 싶다. 이게 힘들긴 해도··· 묘하게 즐겁거든."
이렇게 됐다.
두 한국인은 기뻐했고, 나는 결국 이번 프리시즌에 수석코치를 새로 구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그렇게 몇몇 스태프들과 재계약을 더 마치고, 마지막 사람 차례가 되었다.
"사과할게요. 솔직히 작년 이맘때쯤만 해도 이 팀이 프리미어리그에 간다는 게 못 미더웠어요."
헌터 형제의 에이전트인 로빈이였다. 월드컵에 나간 테디의 재계약을 위해 온 거였다.
"계약서 내용 바뀐 거 없죠?"
"당연히 안 바꿨지만, 직접 확인하세요."
로빈은 순조롭게 사인했고, 그녀가 펜을 놓자마자 나는 기쁨의 함성을 작게 질렀다.
"끝났다!"
제임스가 옆에서 손뼉을 쳤고, 로빈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그런 로빈에게 나는 책상 옆에 쌓여있는 종이무더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많이 했다고요. 이제 언론에 싹 뿌려야겠어요. 테오와 세자르를 뺀 나머지 주전 선수들은 어디에도 안 간다고. 진짜 하루에 몇십 번씩 이적제안이 들어오는데, 돌아버릴 뻔했다니까요."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를 낚아채 가기 위한 빅클럽의 수많은 구애가 있었다. 로드, 라이언, 할리는 팀에 계속 남겠다는 인터뷰를 몇 개나 했는데도 각자 7개, 10개, 5개의 이적제안이 들어왔었다.
재계약을 했다는 걸 알리면 90% 이상의 제안이 사그라들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나는 끝난 재계약들을 머리에서 지우고 이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로빈, 약속한 대로 아르망 보이스와 페린 펠란드를 만나보고 싶은데요."
두 프랑스 국적의 선수는 로빈이 만약에 우리 팀이 프리미어리그에 올라간다면 접촉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선수였다.
두 선수 모두 리게앙(프랑스 1부 리그)의 하위권 팀들에서 뛰고 있었고, 회귀 전의 정보에 따르면 곧 포텐이 터져 1부 리그 중상위권 급이 될 선수들이었다.
아르망은 공격수, 페린은 중앙 미드필더였다.
페린은 루카와 경쟁하고, 아르망은 할리와 경쟁하면 될 것이다. 미할리스는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헐크가 될 테니까.
약속을 기억하고 있던 로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잭슨과 얘기는 했어요?"
"내일 바로 얘기할 거예요. 그때, 본격적으로 얘기해봐요."
"뭐··· 알겠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확인할 게 있는데."
"확인이요?"
로빈이 물어봐도 되나 싶은지 고개를 갸웃했다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이번 이적시장에서 허탕을 많이 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로빈의 말에 나는 표정을 구기면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1월부터 회귀 전 봐뒀던 선수 중 넷에게 접촉했었다. 다들 지금 선수들처럼 인성도 바르고 실력도 괜찮은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회귀를 통해 알고 있었던 정보와는 다르게 죄다 계약이 됐거나 막 재계약을 해서 전부 허탕을 쳤다.
그래서 몇몇 선수들과 또 접촉을 시도해봤으나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거나 예상치 못한 슈퍼 에이전트의 등장에 막힌다거나 등, 회귀 전과는 다른 양상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놈의 나비효과라는 게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대비는 차근차근하고 있었으나 막상 닥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로빈이 이걸 물어보는 이유는 자신의 선수를 이적시킬 팀이 쭉정이가 돼서 선수들의 커리어에 악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계획이 있어요."
"계획이요?"
나도 선수 보는 눈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좋은 편이지만··· 전문 스카우트만 못 했다. 특히, 수많은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발굴해내는 대단한 스카우트에 비하면 더.
그래서 나는 회귀한 직후부터 스카우트 팀의 구성에 늘 신경 쓰고 있었다.
우리 팀의 스카우트들은 선수를 보는 관점이 다 달랐다. 또한, 여러 지역 출신으로 이뤄져 있어 다각도로 선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토론을 통해 몇몇 선수를 뽑아내면 나와 잭슨이 선택하는 시스템이 거의 완성돼 있었다.
하지만, 월드클래스 선수를 찾아낼 수 있는 '감' 좋은 스카우트는 아직 구하지 못했다. 그들은 빅클럽에서도 무척 귀한 대우를 받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스카우트 팀의 마지막 퍼즐을 찾기 위해서 미국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예. 빠른시일 내로 월드컵이 열리는 미국에 갈 거예요."
< 47. 지니 스카우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