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57화 (157/245)

< 47. 지니 스카우트 (3) >

삑, 삑, 삐이이익!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경기 종료 휘슬을 듣자마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관중석 하나에 대충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2026년 월드컵 J조 1경기.

뉴질랜드 vs 크로아티아라는 인기 없는 팀들의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유니폼을 교환하고 있었다.

나는 필드와 관중석을 번갈아 보는 행동을 반복하다가 결국 필드로 시선을 내렸다.

"못 찾았네···."

등 번호 22번. 이번 경기 내내 부지런히 뛰던 뉴질랜드의 왼쪽 윙 오웬 브라운이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크로아티아의 주장 코바치치에게 유니폼 교환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오웬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미국까지 와서 찾으려는 스카우트가 '몇 년 뒤면 유럽 최상위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수.'라고 처음으로 호언장담했던 선수가 오웬이었다. 회귀 전에는 그 스카우트의 말대로 오웬은 2~3년 뒤에 프리메라리가의 유로파리그에 진출하는 팀으로 이적했다.

나는 얼굴을 모르는 스카우트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며 중간마다 오웬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도저히 재능이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회귀 전의 정보는 늘 옳으니 영입 제안은 할 생각이었다. 벨기에 2부 리그에서 이태양과 함께 성장시키면 금방 쓸 수 있는 자원이 될 테니까.

호주 리그에서도 두각을 못 드러낸 선수였기에 에이전트도 없었다. 그래서 축구협회에 연락을 넣어놓았다. 답변이 올 때까지는 원래 목적대로 스카우트를 찾기 위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찾는다는 사람은 찾았어?

"아니. 사실 이름이랑 단서 몇 개만 아는 수준이라··· 좀 걸릴 것 같아."

-뭐? 그거 갖고 어떻게 축구 경기장에서 사람을 찾아?

"괜찮은 단서긴 해서··· 그리고 꼭 잡아야 하는 사람이고···."

호텔에 돌아온 나는 조이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조이는 황당해 했지만, 그동안 내가 이뤄놓은 성과가 있어서 그런지 별말 않고 넘어갔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근데 많이 대단한 사람인가 봐?

"응. 적어도 우리 팀의 5년을 책임져 줄 사람이야."

축구팀의 핵심 자원은 선수고 그 선수를 알아보는 역할이 바로 '스카우트'들이 하는 일이었다.

내가 찾는 특별한 스카우트의 이름은 조슈아 힐.

얼굴은 모르고 성별과 나이 정도만 알고 있었다. 또한, 이 시기 조슈아가 축구계와는 하나도 상관없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조슈아는 축구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사람이었다.

조슈아는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난 이번 월드컵의 하위권 팀 중에 딱 두 선수를 분석해 뮤튜브에 영상을 올리며 모든 유럽 축구팀에 메일을 보낸 패기 있는 아마추어였다.

선수를 분석하는 영상은 조슈아 본인이 직접 찍은 거로 보이는 조잡한 구도의 영상을 기본으로 만들었었다.

나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영상을 토대로 조슈아를 찾아다녔다.

찍은 위치가 벤치 반대편 정도라는 건 기억하고 있었기에 경기장의 한 면을 쭉 돌았다. 오늘은 못 찾았지만, 적어도 조별예선이 끝나기 전에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날 위로하고 있었다.

아무튼, 조슈아는 그 영상을 올리고 메일을 보냈어도 아무 축구팀에게도 제안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일 년이 흐르고 조슈아가 말한 선수 중 하나의 포텐이 터지며 본격적으로 조슈아는 유명해지게 됐다.

나도 처음에는 메일을 무시했다가, 나중에 그 소식을 듣고 영상을 찾아본 기억이 있었다. 그 덕에 지금 조슈아를 찾으러 다닐 수 있는 거였다.

조슈아는 그 이후 빅 3리그의 한 1부 리그 팀에 스카웃 된다. 그리고 1년 후, 레알 마드리드로 팀을 옮겼다. 아마추어가 단 1년 만에 세계 최고의 팀 중 한 곳에 소속된 것이니 큰 화제가 됐었다. 본인이 신상을 공개하는 걸 꺼려 얼굴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나중에 관계자에게 조슈아가 레알 마드리드로 가게 된 이유도 들었는데, 정말 놀라웠었다.

조슈아가 원소속팀에 있을 때, 혼자 영상을 분석해 유망주를 열 명가량 찾아 영입을 제안했는데, 그 선수들이 전부 레알 마드리드의 초호화 스카우트들이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수들과 겹쳤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레알 마드리드는 망설임 없이 조슈아를 영입했다고 했다.

그만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근데 무슨 분야 사람인데?

"비밀이야."

-뭐?

"하하···."

조슈아를 만나기도 전에 조슈아를 찾아다녔다는 얘길 조이가 알게 되면 날 수상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슈아를 영입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사람은 못 찾았다고 할 생각이었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너무 답답해서 가끔 이런 식의 은근한 거짓말로 답답함을 풀곤 했다.

"아무튼, 뉴질랜드 선수 하나 영입할 건데 우리 팀에서 바로 뛰는 게 아니라 베스테를로에 임대 보낼 거거든? 공문으로 좀 보내놔 줘."

뉴질랜드 협회에서 아까 경기에서 본 오웬과 접촉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오웬을 만나 구두계약을 완료하고 온 참이었다.

오웬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월드컵이 끝나면 우리 구단에 방문해 최종 계약을 하기로 했다.

-예이. 단장님.

"하하, 선물 사갈게. 뭐 필요해?"

-정말? 그럼 나 향수.

나는 조이를 적당히 달래주며 통화를 더 하다가 잠에 들었다.

*

"하느님, 부처님. 오늘은 꼭 찾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나는 믿지도 않는 신들에게 기도하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경기는 노르웨이 vs 이란.

지난 경기와 마찬가지로 비인기 팀들의 대결이었다.

아무리 월드컵이라 해도 이런 경기는 만원 좌석이기 힘들었다. 나는 휑한 티켓박스 앞을 보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운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터 킴?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기는요. 딱 맞춰 오셨는데요. 그럼 올라가 볼까요?"

"예."

노르웨이에는 스카우트 조슈아가 엄선한 두 번째 선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와 만나는 이 사람은 그 선수의 에이전트였다.

이미 영입하기로 마음먹은 거 속전속결로 움직이자는 생각에 미리 연락했고, 이렇게 만나게 된 거였다.

나는 에이전트와 악수를 하며 벤치 반대쪽 좌석으로 움직였다.

"프리미어리그 팀에서 이렇게 관심을 주시다니, 악셀이 정말 행복해할 거예요."

악셀 플로베르그. 이번에는 즉시 전력감 선수였다.

에이전트에게는 후보로 쓸 거라고 말했다. 그래야 이적료나 급료가 상대적으로 적어져 계약 협상이 쉬워지니까.

에이전트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후보로 쓰면서 키워볼 거라고 하셨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악셀은 워낙 성격이 호탕해서 적응에도 문제없을 거고요."

"포지션 변화는 괜찮을까요?"

"중앙에서 뛰는 거면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늘 경기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좋군요."

회귀 전, 스카우트 조슈아는 악셀 플로베르그에 관해 분석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중앙에서 뛰고 있어야 할 선수가 측면에 박혀 있는지 모르겠어요. 프로팀 감독이나 국가대표팀 감독 모두 선수의 장점을 전혀 모르고 있어요. 플로베르그는 당장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수 있는 자원이에요.>

악셀은 원래 오른쪽 풀백으로 뛰던 선수였다. 그런데 악셀이 속한 노르웨이 팀의 중앙 미드필더가 3명이나 부상을 입었고, 악셀이 어쩔 수 없이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게 되어 전설이 시작되었다.

비록 노르웨이 1부 리그라지만, 후반기 10경기에서 MOM 6번. 8골 5어시스트 정도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이 희미했기에 정확한 수치는 아니었다.

아무튼, 조슈아가 말한 대로 악셀이 당장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도 부족하지 않은 선수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악셀이 뜨거운 매물로 떠오르며 조슈아가 과거에 보냈던 메일과 영상이 재조명되었고, 조슈아의 인생도 날개를 펴게 된 거였다.

뭐, 이번에는 악셀도 바로 포텐을 터뜨려줄 거고, 조슈아도 우리 팀에 데려와 바로 꿈을 펼치게 해 줄 거지만.

"킴. 콜라 드시겠습니까 스프라이트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맥주?"

"스프라이트로 할게요."

일단은 경기를 보며 계약 얘기를 마무리 짓고, 조슈아를 찾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

"또 옮길까요?"

"예."

에이전트는 여러 시점에서 악셀 선수를 관찰하고 싶다는 내 말에 왠지 모르게 감명을 받고, 5분마다 한 번씩 자리를 옮기는 걸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참고로, 좌석이 절반 넘게 비어있어서 이게 가능했다.

봉사자들도 표를 보여주면 별말 없이 수긍해줬다.

새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숨은 조슈아 찾기를 시작했다.

에이전트는 내게 악셀에 관해 설명해주고, 막 연락받은 내용을 말해주기도 했다.

"국가대표팀 관계자가 선수의 사기를 올릴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접촉을 허가해줬어요. 오늘 경기 끝나고 호텔에서 잠깐 시간을 주겠다는데, 만나보시겠어요?"

"좋죠."

근처에 조슈아로 추정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나는 다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다음 시즌에 우리 팀 선수로 뛸 악셀이 흉신악살 같은 얼굴로 이란의 미드필더에게 강한 몸싸움을 걸고 있었다.

비쥬얼이 참 인상적이었다.

중세 바이킹의 재림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짧은 머리카락과 주먹 세 개를 이어 붙인 것 같은 수염이 정말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나이가 스물 셋이라는 것도 반전이었고.

하지만, 나는 이 악셀에게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잭슨에게 라이언, 루카와 비슷한 급의 경쟁 상대를 영입한다고 말했는데, 뭘 말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빨리 조슈아를 만나 대체 저 선수에게서 뭘 본 건지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때였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뿔테 안경을 쓴 빼빼 마른 남자가 터널에서 나와 근처 스탠드에 삼각대를 설치했다. 삼각대에는 이상하게도 카메라가 아닌 싸구려 스마트폰이 달려 있었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앳돼 보였다. 딱 봐도 성인 같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정보, 스카우트 조슈아의 나이는 이 시기 만으로 16세였기 때문이었다.

*

나는 악셀의 에이전트에게 '이제 혼자 경기를 보면서 다른 업무를 처리하고 싶다. 이따 경기 끝나고 만나자···.'라는 식으로 말해 관계자 석으로 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조슈아로 추정되는 빼빼 마른 청년의 옆으로 다가갔다.

청년은 내가 옆에 있든 말든 스마트폰에 담기고 있는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삼각대에 이라는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는 걸 발견하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조슈아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들고 있는 노트에 무언가 끄적이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조슈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뭐 하는 거예요?"

"···."

얼마나 집중한 건지 조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트에 뭘 적었나 궁금해서 슬쩍 봤는데, 어마어마한 악필과 끔찍한 그림 솜씨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저기 그···."

"죄송한데 전반전 끝나고 얘기하면 안 될까요?"

"아, 예."

집중하고 있는 사람을 방해한 거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근처 좌석에 앉아 얌전하게 기다렸다. 조슈아는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삼각대를 들고 이동하려 했다.

나는 조슈아를 급히 불렀다.

"저기요."

"예?"

처음으로 조슈아가 날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얼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무례할 수도 있지만, 너드(Nerd) 같다는 거였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운동하는 것보다는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할 것 같이 생겼다.

"전반전 끝났으니까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아··· 맞다. 그럼 이동하면서 하실래요? 무슨 용건인지 모르겠지만, 좀 바빠서요."

"그러죠. 뭐."

조슈아는 쫓아가기 힘든 빠른 걸음으로 경기장의 1/4가량을 이동했다.

나는 조슈아를 쫓아가며 계속 말을 걸었다.

"뭘 하고 있었어요?"

"프로 팀들에게 보낼 분석 영상을 만들기 위한 소스를 찍고 있었어요."

"분석 영상이요?"

"네. 프로팀이나 국가대표팀에서 잘 못 쓰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서, 날 고용하라고 보내려고요."

"호오. 자신 있나 보네요."

"예. 저는 선수 보는 눈에 있어서는 그 누구한테도 안 지거든요."

자신감이 넘치는 게 무척 재밌었다. 그래서 나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축구계에서 일하고 있나 봐요?"

"아뇨. 되게 어릴 때부터 혼자 공부했어요."

"뭘로요?"

"게임, 경기 영상, 뮤튜브에 올라온 수많은 분석 영상들을 보고요."

너무 당당해서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황당하기도 했다. 한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의 치트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 '지니 스카우트'라고 불리던 조슈아는 그의 말대로라면 진짜 천재인 모양이었다.

조슈아는 계속 걸어갔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전문가들은 직접 축구를 하기도 했고, 교육도 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도 선수 보는 눈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거예요?"

내 진지한 물음에 조슈아가 발걸음을 멈췄다. 바로 대답해줄 줄 알았는데, 삼각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기 어려운 상대였다.

설치를 완료한 조슈아가 내게 말했다.

"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말이죠. 아저씨는 누구길래 꼬치꼬치 캐묻는 거예요?"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솔직히 얘기하기로 했다.

"당신이 메일을 보낼 사람 중 하나죠. 이번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노팅엄 FC의 단장, 김도운이라고 해요."

그제야 조슈아는 나이에 어울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 47. 지니 스카우트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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