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브라질리언 (1) >
한참 동안 필드를 살펴봤지만, 17번 선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슈아에게 물었다.
"경기장에 없는 거 맞지?"
"네. 벤치에 있어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브라질 국가대표는 2000년대만큼은 못 했지만,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팀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브라질 국가대표의 BEST 11 멤버라면 축구계 관계자인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나중에 꼭 영입하고 싶은 선수들일 테니까.
"벤치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에 앉아있는 선수예요."
살짝 까무잡잡하고 장난기 많게 생긴 선수였다. 머리는 곱슬에 분홍색으로 염색한 게 자기 개성이 강해 보이기도 했다.
어떤 외향이든 축구만 잘하고 마약만 안 하면 됐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슈아에게 말했다.
"잠시만, 저 선수 정보 좀 확인할게."
"네. 경기 보고 있을게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루앙 카를로스'를 검색했다.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기사 몇 개가 나왔다.
<네이마르, 링콘 연쇄 부상. 대체자는 루앙 카를로스?>
<루앙 카를로스, 그는 누구인가?>
<최근 리그 10경기 3골 7어시스트, 루앙 카를로스는 셀레상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는가?>
죄다 물음표가 달린 기사였다.
현지에서도 잘 모르는 선수였던 모양이었다.
기사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루앙이 어떤 선수인지 대략 알 수 있었다.
네이마르라는 전설적인 선수와 그 후보 선수가 부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최근 브라질 1부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던 루앙을 어쩔 수 없이 월드컵에 데려온 것이었다.
나는 축구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루는 빅데이터 사이트에 들어가 내 관계자 계정으로 로그인하고 루앙의 기록을 찾아봤다.
나이는 스물한 살이고, 작년까지 브라질 1부 리그 출전기록도 없었다. 이번 시즌 초반에도 후보로 간간이 출전하다가 월드컵 직전에 갑자기 기용되기 시작하더니 10경기 10 공격 포인트(3골+7어시스트)를 달성했다.
나는 일단 '싸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오늘 경기에서 대활약을 펼치는 것만 아니라면 예전 브라질 대표팀에서 뛰었던 '조'나 '프레드'처럼 애매한 선수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수에 대해 파악을 마친 나는 경기에 집중하는 조슈아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부터 알게 된 선수야?"
"일 년 전에 미국 프로팀이랑 하는 친선 경기에서 출전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열심히 관찰했어요."
기분이 좋아졌다. 월드컵이나 최근 활약이 아닌 예전부터 관찰해왔다는 건, 선수에게 당연히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테니까.
"좋아. 그럼, 네가 봤을 때 루앙은 어떤 선수가 될 것 같아?"
"화려한 제 호베르투요."
"탐나네···."
제 호베르투는 인터 밀란의 영원한 주장 하비에르 사네티와 맞먹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한 브라질의 왼쪽 윙이었다.
성실함이 워낙 부각 돼서 그렇지 브라질리언다운 화려한 개인기도 갖고 있었고, 정확한 킥력 또한 일품이었던 선수였다.
무엇보다 그는 여러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이기도 했다.
그래서 물었다.
"멀티 플레이어도 가능할까?"
"되긴 하겠지만, 공격적으로 쓰는 게 더 효율적일 거예요."
"되긴 된다는 거지?"
조슈아의 끄덕거림을 보며 나는 만족했다.
멀티 플레이어는 늘 스쿼드에 여유를 만들어주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더 뒤적여 선수의 에이전트까지 확인했다.
"음···."
에이전시 카스텔로(Castelo, 성) 소속.
나는 이 에이전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남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에이전트 로널드 캄푸스가 대표로 있는 에이전시였다.
수수료가 많이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싼값에 유망주를 데려온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나는 일단 잭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슈아는 내가 뭘 하든 말든 경기를 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오, 킴.
"잭슨, 이제 슬슬 주무실 때죠?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음··· 뭐 그렇죠. 허허.
"···사무실인가요? 설마?"
-으음··· 허허.
"쉴 땐 제대로 쉬어야 한다니까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다음 주까지는 쉬라고 신신당부해놨는데 잭슨은 그 새를 못 참고 훈련장에 나와 이번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돌아가면 내가 직접 끌고라도 휴식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용건을 말했다.
"정말 못 말리겠네요. 아무튼, 이번에 유능한 스카우트를 하나 영입하면서 즉시 전력감으로 쓸만한 왼쪽 윙 하나를 찾았거든요. 지난번에 말했던 노르웨이 중앙 미드필더 말고요."
-정말입니까? 어느 나라 선수인가요?
"브라질이요. 제 호베르투 같은 스타일의 선수예요. 오늘 영입 제안을 할 거예요."
잭슨은 잠시 이번 시즌 구상을 해 보는지 조용해졌다. 그리고 말했다.
-이해하기 쉽군요. 선수의 됨됨이만 괜찮다면 꼭 영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과 스타일도 다르니 전술을 다양화하기에도 좋고, 경쟁도 될 테니까요. 고인 물은 썩어버리거든요.
"좋아요. 그럼 영입 진행할게요."
-예. 기대 하겠습니다.
잭슨의 짧은 허락이 끝나자마자 나는 먼저 루앙의 소속팀 플라멩구에 연락했다.
약 10분간의 통화 후, 루앙과의 접촉을 허락받았다. 그래서 나는 루앙의 에이전트인 로널드에게 연락하기 위해 다시 한번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통화 중이라는 안내가 나와 나는 경기를 보는 틈틈이 전화를 걸었다. 전반전 종료가 거의 다가왔을 때, 드디어 전화가 연결되었다.
-에이전시 카스텔로입니다~.
"영어로 가능할까요?"
-네.
"프리미어리그의 팀, 노팅엄의 단장 김도운이라고 합니다. 에이전시에 소속된 선수, 루앙 카를로스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데 담당 에이전트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아아, 안녕하세요!
내 신분과 목적을 밝히자 푹 잠겨있던 사무직원의 목소리도 밝아졌다.
인사를 받아주자 사무직원이 말했다.
-루앙 선수는 최근 국가대표에 승선하면서 로널드 대표님이 직접 맡고 계세요. 대표님 번호를 알려드리면 될까요?
"예."
혹시나 다른 에이전트가 담당하고 있다면, 잘 구슬려서 수수료를 낮춰볼까 생각했는데 허사가 됐다.
-메시지로 보내뒀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나는 잠시 기다렸다. 아마 사무직원이 로널드에게 통화내용을 전달할 거고, 로널드가 바쁘지만 않다면···.
띠리리리.
이렇게 직접 전화를 할 게 뻔했으니까.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로널드입니다. 노팅엄 FC의 킴 단장님 맞으십니까?
"예. 반갑습니다."
-이야, 정말 영광이군요. 노팅엄의 전설을 직접 만들어내신 분 아니십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루앙에게 관심이 있으시다고···.
"예. 오래전부터 관찰하고 있었는데, 오늘 결정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루앙이 기뻐하겠네요.
에이전트와의 첫 통화는 보통 이적 의사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플라멩구에 접촉 허가는 받았습니다. 혹시 루앙과 직접 만나볼 수 있을까요?"
-지금 어디십니까?
"LA입니다. 브라질의 경기를 직접 보고 있습니다. 오늘 루앙이 출전할까 기대하며 왔는데, 아쉽군요."
-하하, 아마 후보로 출전할 겁니다. 저도 LA에 있는데··· 경기가 끝나기 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로널드와의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서 조슈아가 말을 걸었다.
"누구누구랑 통화한 거예요? 경기 내내 전화만 하시던데."
"우리 팀 감독님, 루앙의 팀 단장, 루앙의 에이전트."
"와···."
"너도 나중에 해야 할 것들이야. 스카우트들이 직접 영입을 진행할 때도 있거든."
"정말요?"
"그래, 나중에 차근차근 알려줄게."
"네!"
조슈아의 씩씩한 대답을 들으며 난 픽 웃었다. 그리고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전반전 추가시간이었다. 월드컵 경기를 아예 못 봤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조슈아가 말했다.
"에이전트랑 얘기가 잘 된 것 같아요. 계속 좋은 말만 하시던데."
"아니야. 긍정적인 말은 돈이 안 들잖아. 돈이 들어가게 되면 에이전트들은 돌변해."
"그런가요···."
"이것도 나중에 알려줄게."
나는 조슈아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조슈아가 기대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우트에서 단장이 되는 경우도 꽤 있으니, 어떻게 보면 조슈아는 내 후계자인 셈이기도 했다.
뭐, 그건 훨씬 뒤에 있을 미래의 이야기일 테니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관중들이 하프타임이 되자마자 다들 터널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조슈아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사줄게."
"정말요? 핫도그 먹고 싶은데."
"그래, 나가자."
나는 조슈아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터널로 향했다. 그러면서 우리 구단 자랑도 잊지 않았다.
"우리 구단 푸드코트에 있는 음식들 맛이 정말 기가 막히거든. 나중에 해외 출장 가기 전에 꼭 먹고 가. 알겠지?"
*
삑, 삑, 삐이이익!
"하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브라질의 상징인 노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루앙이 뿌듯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서 있었다.
루앙은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브라질 축구 협회 마크에 키스까지 하고 있었다.
자랑스러울 것이다.
축구 국가대표 최고의 명문 브라질 소속으로 월드컵 경기에 뛰었고, 데뷔골까지 넣은 거니까.
하지만, 나는 긴장돼서 죽을 뻔했다.
한 골을 넣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루앙이 두, 세 골을 집어넣었으면 단숨에 주목받았을 테니까.
오늘 활약은 딱 이 정도였다.
'어차피 기세가 꺾인 팀을 상대로 골을 넣은 땜빵 선수.'
그래도 몸값은 조금 올라갔을 것이다.
나는 첫 제안을 1,000만 파운드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조슈아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루앙의 에이전트 로널드였다.
-킴! 협회 사람과 얘기해봤는데, 오늘 루앙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때요. 시간 되나요?
"예. 당연하죠."
로널드는 빨리 계약을 진행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월드컵 참가라는 프리미엄을 빨리 활용하기 위해서 일 거다. 왜냐면 루앙은 몇 년간의 리그 기록으로 추론해봤을 때, 월드컵에서 잘할 확률이 적은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이었기에 때문에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빨리 만나고 싶네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메시지를 보내죠. 그 주소에 있는 호텔 로비로 오시면 돼요. 브라질 국가대표팀이 머무는 곳이죠.
"알겠습니다."
**
호텔 로비에는 브라질의 유명 선수들이 가족들과 만나는 게 보였다.
감독에 따라 가족과의 접촉조차 전부 금지할 때도 있는데, 이번의 브라질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운 모양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게 순조로웠다.
로비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조슈아와 노팅엄에 관해 잡담을 나누고 있으니 익숙한 두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확인한 에이전트 로널드와 아까 경기에서 본 루앙이었다.
나는 로널드와 조슈아는 루앙과 악수했다. 로널드는 전화가 오는 바람에 잠시 자리에서 물러났고,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라고 했다.
루앙과 악수한 조슈아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루앙은 그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나와 인사를 나눈 직후 이렇게 말했다.
"사인해줄까요? 혹시 단장님 아들?"
"아들이라뇨. 어엿한 우리 팀의 스카우트입니다. 루앙의 잠재력을 알아본 게 바로 조슈아입니다."
"와우, 정말인가요."
루앙은 인상이 좋은 선수였다. 루앙은 기분이 좋아졌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관계자에게 유니폼을 두 벌 받아왔다. 그리고 사인해서 나와 조슈아에게 선물로 줬다.
나는 조슈아에게 말했다.
"잘 간직해. 네가 발굴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게 될 첫 선수니까."
"네!"
우리의 대화를 들은 루앙이 크게 웃었다. 기분이 정말 좋아졌는지 웃음을 그친 뒤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노림수가 통했다. 시작부터 호감을 얻었으니까.
나는 로널드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최대한 루앙의 마음을 이쪽으로 끌어당길 생각이었다.
루앙이 말했다.
"내가 이미 그 팀에 간 것처럼 말 하시는군요."
"뭐. 정말 좋은 제안을 할 거니까요. 워크퍼밋을 받으려면 우리 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주급을 줘야 하거든요. 그리고, 유럽에서 한번 뛰어보고 싶지 않나요?"
내 물 흐르듯 나오는 말에 루앙이 씩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일단은 많이 뛸 수 있는 팀에 가고 싶었는데, 가능한가요?"
"이 친구와 내가 본 루앙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걸요? 물론, 게을러지거나 실력이 떨어지면 불가능하겠지만요."
루앙이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나는 루앙이 웃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 말했다.
"노팅엄에 대해 아시나요?"
"솔직히 잘 몰라요.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 말고는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당연한 거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 루앙에게 우리 구단에 관해 짧게 설명했다.
2부리그에서 5부 리그로 추락했고, 5부 리그부터 1부 리그까지 최단 기간에 승격해낸 팀이라는 걸.
"굉장하군요···."
"우리는 언론에서 '동화를 쓰는 중인 팀'이라고 불려요."
"멋진 호칭이네요."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루앙이 궁금해할 걸 먼저 물었다.
"우리가 루앙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지 궁금하죠?"
"어··· 네. 궁금해요."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제안을 섞었다.
"브라질의 전설 제 호베르투 정도의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록 지금은··· 월드컵에도 보결로 들어가는 선수지만, 우리 팀에 온다면 틀림없이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당연히 뽑힐 만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흥미가 막 생기지 않나요?"
나는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쓰며 루앙의 눈을 바라보았다.
루앙은 내 눈을 빤히 보다가 씩 웃었다.
"정말 좋네요. 이렇게 시원시원하고 적극적인 제안은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거기에 절 알아보다니 당신들도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고요."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루앙은 자존감도 굉장히 강한 선수인 것 같았다.
"좋아요. 날 처음으로 인정해 준 사람들인데, 꼭 계약하고 싶네요. 혹여나 계약이 이상하게 틀어지더라도 반드시 약속을 지킬게요. 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요."
< 48. 브라질리언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