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62화 (162/245)

< 49. 흙속에 파묻힌 보석 (1) >

"투어를 올해 하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게 됐어요."

하노이 FC의 단장이 괜찮다는 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능숙한 영어로 내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거였습니다. 작년에 투어 계획을 구상할 때까지만 해도··· 월드컵에 그렇게 많은 선수가 나갈 줄은 몰랐잖아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오히려 내년에 투어를 진행할 때,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느릿하게 대화를 나눴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이 시기 나는 한창 바쁘게 투어를 준비하고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올해 초까지 우리의 젊은 잉글랜드 선수들이 계속 대표팀에 차출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열심히 준비해 온 투어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게 바로 로컬 보이 3인방이었으니까.

베트남 쪽에서 내년에 다시 한번 투어를 진행하자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직 홍보 등도 하지 않았으니 위약금도 받지 않으셨고.

더불어 하노이의 단장님은 내게 또 다른 도움도 주었다.

단장이 말했다.

"위험한 생물들이 가장 적은 무인도와 가장 경험 많고 노련한 가이드들을 선별해 뒀습니다. 아무쪼록 전지훈련이 잘되었으면 좋겠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저희도 같은 섬에 가서 전지훈련을 해 보려고 합니다. 노팅엄 흉내를 내다보면 저희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하하··· 응원하겠습니다."

베트남 투어는 밀렸지만, 우리는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하면서 프리시즌의 챔피언스리그라고 불리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ICC)'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번 ICC는 중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대회 직전까지는 베트남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ICC에 참석할 계획이었다.

"아무튼, 이것저것 편의를 봐 주시는 대신 하노이 FC와 친선 경기를 해주길 바란다고 하셨죠? 비공개도 괜찮고?"

"예. 우리 선수들에게 프리미어리그 팀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잭슨 감독님의 허가는 받아뒀으니 공식 일정에 넣어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페어플레이하자고 전달해달라 하셨어요."

"감독과 선수들에게 꼭 전달하겠습니다."

역시 베트남 리그 1위를 달리는 팀의 단장다웠다.

노팅엄과 친선 경기를 치르면 티켓과 중계 수익이 꽤 괜찮을 텐데도 경기 자체에 의미를 두는 모습이 훌륭하다고 생각됐다.

"정말 맛있네요."

또한, 그가 안내해 준 고급 음식점 또한 완벽했다.

영국 음식에 길들어 있던 내게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척 기분 좋은 베트남 방문이었다.

"좋아 해주신다니 기쁩니다."

나는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집어 먹느라 느린 속도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후의 일정이 떠올랐다.

"좀 더 빨리 먹는 게 좋을까요? 경기에 늦진 않겠죠?"

"관계자 전용 통로로 들어가면 괜찮을 겁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완벽하네요."

*

<와아아아!>

나는 함성으로 가득 찬 하노이 FC의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조슈아도 데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슈아는 스카우트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서류 작성, 외국어 배우기 등을 이유로 영국에 남아 있었다. 수석 스카우트에게 맡겨두고 왔다. 몇 년 뒤에 은퇴할 영감님이니 손주처럼 잘 해주실 거라고 믿고 있다.

아무튼, 리그 1위 하노이 FC와 리그 2위 호찌민의 경기가 시작하기 전인데도 경기장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중국은 가끔가다 종잡을 수 없기에 그 다음가는 시장인 동남아를 노리는 유럽 팀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베트남의 팬들은 축구에 정말 큰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떠십니까?"

"아주 좋네요. 베트남에서 가장 수준 높은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좋고요."

내 립서비스에 왼쪽에 앉아 있는 하노이의 단장이 부드럽게 웃었다.

곧 경기가 시작할 것 같았는데, 마침 기다리던 사람이 관계자 석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 사람을 위해 단장에게 한 자리를 더 마련해달라고 했었다.

"킴! 오랜만입니다!"

"두두! 잘 있었어요?"

"여기서는 뚜라고 불러주세요. 여기서는 그렇게 불립니다."

"그래요. 뚜."

노팅엄은 작년부터 전 세계로 스카우트를 파견했다. 물론, 빅클럽처럼 해외에 몇십 명씩 보낼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리그를 한 명의 스카우트가 담당하는 식이었다.

두두는 동남아 프로 리그를 관찰하기 위해 파견한 스카우트였다.

딱히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고, 작년 초에 고용해 가끔 얼굴을 본 게 다였다.

두두는 포르투갈&베트남 혼혈이었다. 그래서 베트남어를 어느 정도 사용할 줄 알았기에 만장일치로 동남아로 파견되었다. 본인도 동의했고.

"노팅엄 FC 베트남 지부, 펍 cây tre(대나무)의 맥주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오늘 경기 끝나면 같이 가시죠."

두두는 예전과 똑같이 싹싹했다. 거의 일 년 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살이 후덕하게 쪄 있었다. 한 1.5배 정도 불어난 것 같았다.

내가 두두의 턱살을 빤히 보고 있자, 두두가 하하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기 음식이 워낙 맛있다 보니···."

두두는 일 년 동안 괜찮은 태국 유망주 하나를 유소년 팀으로 보내줬었다. 그리고 꾸준히 보고서를 보내고 있었다. 동남아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스카우트들이 찾아와서 2차 검증을 할 때, 대부분 탈락했지만, 두두가 놀고먹고만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씩 웃으며 두두의 어깨를 톡 쳤다. 외국에서 지내는 게 힘들 텐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아서.

"그럼 앉죠. 인사하세요. 하노이 FC의 응우옌 민 투안 단장님이에요."

"아, 저희끼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단장은 그렇게 말하며 두두와 가볍게 악수했다. 두두가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 안면을 튼 모양이었다.

단장, 나, 두두가 차례로 앉았다.

나는 두두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때 보내준 보고서 내용··· 바뀐 거 없죠?"

"예."

두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두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2차 검증이 필요한 선수들의 보고서를 구단에 보내곤 했었다.

원래는 다른 스카우트가 왔어야 했지만, 내가 베트남에 오는 김에 직접 선수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단장과의 친목뿐만 아니라 선수 스카우트를 위한 자리기도 했다.

하노이 FC에 두 명, 호찌민에 한 명.

나는 스마트폰에 미리 적어온 선수들의 이름, 포지션, 등 번호를 확인하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삐이이익!

<와아아아!>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과 함께 관중이 함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

"혹시, 정말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우리 팀에 괜찮아 보이는 선수는 없습니까?"

"어느 정도 수준을 생각하시나요?"

"유럽에 갈 만한···."

나는 하노이 단장이 부끄럼을 무릅쓰고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베트남뿐만이 아닌 동남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은 동남아 축구계 전체의 꿈과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의 나라 중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편인 베트남조차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만드는 건 줄줄이 실패하고 있었다.

동남아 시장이 큰 만큼 유럽의 많은 팀도 동남아 선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실제로 뛰고 있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었는데, 크게 실력 문제와 체격 문제가 있었다. 특히 동남아 선수들의 타고난 체격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두두가 추천한 세 선수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한 명은 기술이 좋아 보였지만, 키가 160 초반대였고, 심지어 말라 보였다. 나머지 둘은 그냥 실력이 부족해 보였다. 왜 추천했나 싶을 정도로 별로였다.

하지만.

"한 명 있습니다."

내 말에 단장과 두두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선수를 하나 데려가고 싶다고 말하면 두두는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고, 단장은 유럽 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나는 검지를 들어 경기장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저 골키퍼 이름이 뭔가요?"

베트남 1부 리그 1, 2위 팀 간의 경기였지만, 우리 팀이나 우리 팀이 리그에서 상대했던 팀들과 비교하면 수준 차이가 크게 났다. 그만큼 잉글랜드와 베트남 리그의 격차는 컸다.

하지만, 하노이 FC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저 선수는 챔피언십 리그에 데려다 놔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는 느낌이 팍하고 왔다.

단장이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판 딘 후이라고 합니다. 구단에서는 후이라고 부르죠."

"하노이 FC의 경기당 평균 실점은···."

"0.3입니다."

"대단하네요."

"역시, 킴 단장님이 봐도 그렇습니까? 우리 후이는 하노이에서 애지중지하며 키운 스타 골키퍼거든요."

후이라는 선수는 마치 한 마리 짐승 같았다.

골키퍼는 다른 포지션과 스카우트 방식이 아주 달랐다. 다른 포지션이 경기의 흐름을 볼 줄 아는 두뇌 플레이에도 큰 점수를 준다면··· 골키퍼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개인 기량이었다.

후이는 지금까지 자기 바로 앞에서 역동작이 걸리는 헤딩을 막아내는 모습과 무조건 들어갈 것 같았던 완벽한 궤적의 멋진 감아 차기를 말도 안 되는 점프력과 긴 팔로 막아내는 묘기를 보여줬다.

유럽 리그에서 저런 선수를 발견했더라면 그 자리에서 영입 제안을 할 만큼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체구가 무척 컸다.

"키는 몇입니까? cm로요."

"193cm입니다."

어깨가 떡 벌어진 게 유럽에도 먹힐 것 같았다. 나는 골키퍼를 지그시 보다가 공이 골키퍼 근처에서 멀리 떠나자 시선을 떼고 옆을 바라보았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우리의 동남아 전담 스카우트, 두두가 이 정도 선수를 못 알아봤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두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 선수를 추천하지 않았죠?"

두두는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단장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사실··· 한 번 직접 접촉했었는데··· 정말 거만하고 빌어먹을 놈이었습니다. 구단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해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두두가 화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저 정도 기량이면 보고서는 올렸어야죠."

두두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는 후이라는 이름의 골키퍼를 빤히 바라보았다. 수비수들에게 계속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딱히 결함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우리 둘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 단장에게 말했다.

"내일 저 선수랑 만나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예!"

단장이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오늘 저녁에 저 선수의 성격이 어떤지 다른 정보통을 통해 알아볼 계획이었다.

**

"단장님··· 아까 정말 섭섭했습니다···."

"하하, 섭섭할 게 뭐 있어요. 아까는 일 적인 거라 좀 차갑게 말한 거고, 지금은 다 잊었습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나는 살짝 취해서 애 같은 말을 하는 두두를 달래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단장님. 또 와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펍의 사장이 맥주 두 잔을 직접 가져다 줬다.

"고마워요. 하오. 장사 잘되네요."

"덕분이죠."

베트남에서 노팅엄 FC의 엠블럼을 보니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하노이에 있는 펍 cây tre(대나무). 우리 노팅엄에서 직접 인증해준 공식 펍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장 하오의 얼굴이 훨씬 밝아져 있었다.

"언제까지 계시나요?"

"새벽까지 있다 가려고요.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괜찮죠?"

"영광입니다."

하오는 그렇게 말하고 다른 주문을 받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맥주를 몇 모금 더 홀짝이니 두두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 제가 추천한 세 선수가 다 별로라고 하셨지만, 내일은 다를 겁니다. 다낭에서 리그 경기가 예정돼 있는데 거기도 괜찮은 선수가 둘 있었습니다."

사실, 두두가 말한 괜찮다고 한 세 선수가 전부 마음에 안 들었기에 신뢰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는 건 멍청한 일이었기에 이렇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내일 일정이 있어서 직접 보진 못하겠네요. 다른 스카우트가 와서 확인할 거예요."

내 말에 두두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전부 가정환경도 괜찮은 착한 애들이었는데··· 단장님의 눈에 못 들 줄은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맥주를 홀짝이며 답했다. 두두와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 거의 두두가 얘기했다. 두두는 동남아의 여러 리그를 돌며 있었던 일들을 재미있게 얘기해줬다.

"아,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취한 것 같네요."

두두는 고개를 휘청거리다가 테이블에 코를 한 번 박고, 이렇게 말한 후 자리를 떠났다.

나는 혼자 남은 자리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사장 하오를 바라보았다. 하노이에 있는 축구 전문 펍이니 분명 하노이 FC의 선수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거라는 판단하에.

그때, 내 테이블에 익숙한 얼굴이 앉았다.

이 펍의 원래 사장인 티엔린이었다. 지금은 하오에게 펍을 물려주고 방금까지도 손님들 사이에 끼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티엔린 씨 맞죠? 오랜만이에요."

"이름을 기억해 주시다니 정말 고맙네요. 그런데··· 반갑게 인사도 하고 싶지만, 꼭 전해야 할 게 있어서···."

"전할 거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티엔린이 펍의 출구를 슬쩍 바라보았다. 방금 두두가 휘청거리면서 나간 곳이었다.

티엔린이 말했다.

"저 스카우트 말입니다. 제 단골 친구들이 말해줬는데··· 다른 펍이나 카페에서 선수들의 부모님을 만나 뇌물을 받은 것 같다고···."

"예?"

너무나도 의외인 말이었기에 당황해서 되물었다.

티엔린은 고개를 살살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녹음본을 엊그제 확보해서요. 노팅엄 FC가 프리미어리그 승격이 확정된 이후 더 많은 선수의 가족에게 접근했다고 합니다. 뇌물을 받고, 노팅엄에 보고서를 보내주겠다는 식으로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것 봐라···?"

< 49. 흙속에 파묻힌 보석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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