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63화 (163/245)

< 49. 흙속에 파묻힌 보석 (2) >

해외로 파견한 스카우트가 뇌물을 받고, 구단에 허위 보고서를 보내고 있었다니.

노팅엄의 규모가 커져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기 어렵게 되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었다.

회귀 전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선한 뒤통수였다.

화도 안 났다. 그저 허탈함이 날 감싸고 있었다. 그래도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시간을 가지니 해야 할 일이 천천히 생각났다.

"녹음본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보자 티엔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러운 얼굴의 한 남자를 불러서 내게 음성을 들려줬다.

나는 5분가량의 음성을 30초도 못 듣고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티엔린과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한데 통역 좀···."

심각했던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며 티엔린과 남자가 작게 웃었다.

이어서 녹음파일을 재생했고, 티엔린이 한 마디 한 마디 통역해줬다. 절정은 이 내용이었다.

"<5,000만 동(한화 약 250만 원)에 보고서를 올려주고, 그 이상 주신다면 적극 어필까지 해 보겠습니다. 물론, 꼭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원하신다면···.>라고 하네요."

"미쳤군요. 미쳤어요."

틀림없는 두두의 목소리였고 내용 또한 그러했기에 정말 화가 났다. 그래도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1% 정도는 있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걸 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녹음이 확실한 증거가 된다면··· 티엔린과 제보자님 덕분에 노팅엄 FC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아, 녹음만으로는 부족하죠. 깜빡했네요. 그래서 이 친구가 가게에서 CCTV 영상을 받아 가져왔는데···."

남은 희망마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꼼꼼하시네요."

"저희야 뭐 사회생활 해 볼만큼 해 보고, 해외 축구가 낙인 사람들이니까요. 특별히 좋아하는 팀인 노팅엄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는 당연한 거죠."

둘의 말에 나는 살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영상도 제게 주실 수 있을까요? 복사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당연하죠."

내 표정이 계속 안 좋은 모양이었다. 티엔린과 제보자가 날 안타깝다는 듯 보고 있었다. 나는 우리 구단을 위해 노력해준 두 사람을 위해 애써 미소지으며 말했다.

"한 번은 뿌리 뽑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 두 분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나중에 노팅엄시로 초청하고 싶은데···."

해외의 팬이면서 이 정도 행동을 해줬다는 점이 정말 감명 깊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입이 간지러우시겠지만, 며칠 동안은 조용히 계셔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스카우트들도 전부 조사할 거거든요."

티엔린과 제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렇게 됐어요."

-하아···.

수석 스카우트 테일러 블레이크, 우리 팀의 주장 로드 테일러와 헷갈린다고 구단 내에서는 미스터 블레이크라고 불리는 영감님은 내 말을 듣는 내내 침묵하다가 이윽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사숙고해서 고용한 스카우트인데도··· 하아···.

스카우트 선발은 기존의 스카우트들이 주도해서 한 일이었기에 수석 스카우트인 블레이크는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잘 됐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으면 꽤 오랫동안은 괜찮을 테니까.

"한숨만 쉴 때가 아니에요. 또 다른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요."

-···조사할 생각이신 건가요?

"예. 맞아요. 우리 팀에서 영국 외의 나라로 보낸 스카우트가 몇 명 있었죠?"

블레이크는 고민 없이 바로 답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한 명씩, 아프리카에 두 명, 유럽에 다섯 명, 동남아시아에 한 명, 동북아시아에 한 명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 꼼꼼하게 조사할 거예요. 조사를 시작한 직후에 두두를 처벌할 거고요."

-처벌이라면 어떤···?

"뭐, 별거 없어요. 우리 팀의 명예를 실추시킨 거로 손해배상 청구하고, 당연히 해고하고··· 마무리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겠죠."

-깔끔하군요.

나는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구단이 위세를 이용해 이런 일을 저지를 정도로 컸다는 게 감회가 새로웠지만,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다.

문제가 너무 커지기 전에 잡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그리고 베테랑 스카우트 중에 한 분 보내주시겠어요? 표는 준비해 둘 테니까 다음 경기 전에요. 2차 검증해야 하는 선수가 있어서요."

-설마 베트남 선수인가요?

"맞아요. 제 눈이 맞다면 우리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시장을 그 어느 팀보다 가장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닐 에더리지라는 선수가 있었긴 했지만, 그 선수는 사실 잉글랜드에서 나고 자란 선수였잖아요?"

나는 낮에 본 후이라는 선수가 적응만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충분히 뛸 수 있는 선수라고 판단했다.

내 말을 이해한 블레이크가 이렇게 답했다.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군요.

"아··· 그렇네요."

계속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그제야 살짝 웃을 수 있었다.

**

"만나서 반가워요. 후이. 노팅엄 FC의 단장 김도운이라고 해요."

"안녕하십니까. 판 딘 후이입니다. 제가 영어를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준비해온 것 같은 어색한 영어로 내게 인사를 건네는 거한, 후이를 올려다 봤다. 짙은 눈썹과 굵은 턱선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니··· 혼혈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로드처럼 백인과 동양인의 느낌이 동시에 나고 있었다.

어제는 그런 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고, 늦은 아침에 일어나니 약속 시각이라 하노이 FC의 훈련장으로 부랴부랴 오느라 혼혈에 관한 정보까지는 알 수 없었다. 두두가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기에 이 선수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하노이 FC의 단장에게 물었다.

"혹시 혼혈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친할아버지가 독일인이십니다."

"그럼 혹시 독일어도···?"

"물어보겠습니다."

단장은 후이에게 베트남어로 무언가 물었다. 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몇 마디 대답했다. 그때, 후이의 말 속에서 익숙한 단어 하나가 들렸다. 은퇴한 독일의 전설적인 골키퍼의 이름이.

나는 그 이름을 중얼거려봤다.

"노이어?"

후이가 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단장이 후이의 말을 통역하기 시작했다.

"후이는 전성기의 마누엘 노이어를 존경해서, 언젠가는 그가 뛰었던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기 위해 독일어를 열심히 연습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는군요."

노이어는 호날두와 메시라는 괴물만 없었다면 야신에 이은 골키퍼 출신 두 번째 발롱도르를 탈 만한 기량을 가졌던 선수였다. 그는 골키퍼가 패스 플레이에 참여하는 새로운 전술을 유행시키기도 했었다.

후이의 기량은 단장이 제공해 줄 영상 파일과 우리가 직접 찾아볼 경기 영상, 그리고 다음 주 경기에 스카우트가 방문해 최종적으로 확인할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동남아 선수는 여러 번의 교차검증이 필요했다. 후이는 회귀 전에 본 적 없었던 선수이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방금의 정보로 킥 기량까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 경기를 볼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으니까.

독일어도 가능하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내 계획대로라면 바로 써드(세 번째) 골키퍼로 성인팀 훈련에 합류할 텐데 우리 팀의 오른쪽 붙박이 풀백인 한스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독일 사람이니 말이다.

그리고, 문득 놓치고 있던 게 생각났다.

"잠깐,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독일 이중국적도···."

"당연히 있습니다. 저희가 고생고생해서 얻어냈죠. 후이는 우리 하노이 FC와 베트남 사람들의 염원을 모아 만든 선수니까요."

무리해서 워크퍼밋을 발급받을 필요도 없다니··· 이만큼 완벽한 조건을 가진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낸 선수를 한 스카우트의 욕심 때문에 놓칠 뻔했다는 사실이 무척 열 받았다.

나는 애써 침착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통역 좀 부탁드릴게요."

나는 후이와 몇 가지 대화를 나눴다. 가정환경부터 시작해서 언제 축구를 시작했는지 등의 여러 가지 신변잡기들을.

후이는 무뚝뚝한 태도였지만, 전부 착실하게 대답해줬다.

"우리 팀에 관해 알고 있었냐고 물어봐 주세요. 꼭 솔직하게 통역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니까."

"네."

단장은 후이와 대화를 나누고 이렇게 말해줬다.

"할아버지가 말해줘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멋진 팀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그래서 이런 기회가 생긴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맙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후이 선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경기장에 나서나요?"

골키퍼만큼 정신력이 중요한 포지션이 없었다. 열 한 명의 선수 중 유일하게 손을 쓸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후이와의 대화를 마친 단장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며 내게 말했다.

"'상대 골키퍼보다 무조건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기에서 적어도 지진 않을 테니까요.'라고 합니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미소지으며 악수를 제안했고, 후이의 큰 손을 맞잡았다.

나는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며 단장에게 말했다.

"좋아요. 다음 경기에서 다른 스카우트들이 파견 와서 후이 씨를 최종 점검할 거예요. 그리고 결과가 좋다면··· 다음 날, 계약서를 쓰고 바로 프리시즌 캠프에 합류할 겁니다."

단장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후이에게 내 말을 전달해줬다.

잠시 후, 후이의 눈동자가 활활 불타오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이는 그 상태로 오후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 단장실을 나갔다.

후이가 나가고 몇 초가 지난 후에 단장이 말했다.

"후이 얘기는 끝났으니···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겠네요. 어젯밤에 보내주신 메일로 상황은 다 파악했습니다. 감히 우리 선수들과 리그를 가지고 놀다니···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현지 경찰들과의 협조는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후이와 두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제 물어도 괜찮죠?"

두두는 후이에 대해 심할 정도로 비판했었다. 그래서 원래는 오늘 둘이 만나서 무슨 일 있었냐고 직접 물으려고 했었다. 증인이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단장실에 들어올 때 단장이 이따 얘기해 주겠다며 그건 묻지 말라고 해서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

"후이 본인은 아예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 두두라는 망할 스카우트가 후이의 어머니에게만 접근했었거든요."

"그렇군요. 어떤 제안을 했다고 합니까?"

"2억 동(한화 약 1000만 원)을 달라고 하면서 무조건 노팅엄에 입단시켜주겠다고 접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들은 후이의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뺨을 후려쳤다고 합니다. 어차피 우리 후이는 실력으로 유럽에 갈 선수라면서요."

"정말요?"

나는 잠시 기분 좋게 웃었다.

거기에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보고서가 아닌 입단 보장이라니 두두도 후이가 무척 재능있는 선수였다는 걸 알아본 모양이었다.

실력은 있는데 그걸 불법적인 방식에 사용하다니.

더 악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웃음을 멈추자 단장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수사는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제 얘길 들은 경찰의 고위 관계자가 특별팀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이 김에 베트남 축구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병폐도 뿌리 뽑고요."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그럼 최대한 빨리 움직여볼게요. 우리 선수들의 휴가가 끝나기 전까지요."

< 49. 흙속에 파묻힌 보석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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