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67화 (167/245)

< 50. 프리 시즌 개막 (3) >

<무인도에서의 첫날>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이번 무인도 생활에서 특혜는 없습니다. 모든 분이 평등하게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무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가이드의 말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사실 나는 무인도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선수들만 고생하고 직원들은 따로 쉴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사실 쉴 수 있는 곳이 있지 않냐고 묻고 다녔다.

하지만, 그게 헛된 기대였다는 걸 알게 되는 건 불과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차별을 둘 순 없어요."

노팅엄을 세 시즌 연속으로 승격시킨 명장 잭슨의 말과

"제가 차별은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팬들 사이에서 기적의 단장이라고 불리는 김도운의 말을 듣고 나는 완벽히 체념했다. 나는 노팅엄의 선수들이 생존 전쟁을 펼치는 전장에서 종군기자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처음 이 기사를 제안한 팀장님과 날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김도운 단장을 떠올려 봤다. 인간은 빌어먹을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남 탓을 하면 평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노팅엄의 전지훈련에 따라가서 체험 수기를 써 보는 건 어때?'

프리시즌의 어느 날, 이적 소식 기사만 반복해서 쓰다 지친 내게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노팅엄은 승격 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팀이었기에 노팅엄의 유일한 내부 출입 기자인 내가 전지훈련을 따라다니며 수기를 쓰면 정말 좋은 기사가 될 것이라는 게 팀장님의 생각이셨다.

나 또한 모처럼 기자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현장에 직접 가서 생생한 기사를 쓰는 건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의 내가 갖고 있던 로망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말했고, 김도운 단장에게 전화해서 부탁했다.

-좋아요. 좋긴 한데 조금 많이 힘들 수도 있는데··· 이번은 특히 더··· 선수들이랑 직원들이 차별 없이 동등한 조건에서 무인도 생활을 할 거거든요. 괜찮겠어요?

생각해볼수록 팀장님과 김도운 단장에겐 죄가 없었다. 그저 취재를 나간다는 것에 신나 김도운 단장이 그렇게 주의했는데도 무인도행을 적극적으로 진행한 내가 문제였다.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면 이 상황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요즘 좋아하는 콘솔 게임도 힘들다는 이유로 CD만 사 두는 내가 5일 동안 텐트에서 지낼 수 있을지 걱정됐다.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동전은 던져졌고 나는 무인도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서 김도운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긴장을 풀어보려 애썼다.

그렇게 걱정뿐이던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노팅엄의 캡틴 로드를 비롯한 노팅엄의 팬들에게 익숙한 선수들이었다.

"조지, 뭐 하고 싶어요? 취재하고 싶은 거 하게 해줄게요."

마치 동네 놀이터에 놀러 나온 것 같은 로드의 태연한 모습에 나는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나는 무인도 하면 생각나는 물고기 잡기를 돕기 위해 할리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팀이 정해진 후에도 나는 로드와 선수들이 팀원들을 나누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로드는 베이스캠프에서 텐트 설치나 요리 준비 등을 하겠다고 말하며 인원을 모았고, 할리는 낚시 담당, 라이언과 루카는 열매 찾기 겸 동물 흔적 찾기 담당, 킹과 테디가 땔감을 구하겠다고 각자 말하며 자연스럽게 팀이 나뉘었다.

신입 선수들은 여러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와 같은 팀이 된 셰이를 제외하면 모두 나처럼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보면서 동질감을 느낄 정도로.

하지만, 이들도 나처럼 로드와 기존 선수들의 능숙한 태도 덕에 쉽게 긴장을 풀고 기존 선수들과 뒤섞여 팀을 나눠 본격적으로 생존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기자님, 프로 낚시꾼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태어나서 낚싯대를 처음 잡아보는 나는 할리의 족집게 강의 덕에 한 시간 만에 처음 보는 종류의 물고기를 세 마리나 낚았다. 우리를 따라온 가이드는 이 해역에서 가장 맛있는 물고기라고 말해줬고, 나는 낚시팀의 영웅이 되었다.

할리의 칭찬에 나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큰 행복을 느꼈다.

"바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요."

특히, 맨시티의 주전 미드필더인 바비보다 낫다는 말을 들으니 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해가 지기 시작하고 모두 함께 잡은 물고기들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니 라이언의 팀이 딸기 비슷하게 생긴 과일뿐만 아니라 토끼를 두 마리 보여줬다.

깜짝 놀라 어떻게 잡았냐고 물으니 라이언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밀림에 갈 것 같아서 함정 만드는 방법을 몇 개 배워왔어요."

나는 물고기를 총 일곱 마리나 잡았다는 걸 자랑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할리도 막판에 잠수해서 물고기를 스무 마리나 잡았다. 기존 선수들이 이런 일에 얼마나 능숙한지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우리 기자님이 일곱 마리나 잡으셨어. 로드보다 훨씬 나아. 로드 저 바보는 저번에 한 마리도 못 잡았잖아."

그래도 우리 할리는 날 칭찬해줬다. 이어서 로드만 빼고 다른 선수들도 날 칭찬해줬다. 헤벌쭉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햇볕을 맞으며 낚시하느라 진이 다 빠졌었는데 그 순간 힘들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로드의 베이스캠프 팀에 소속된 잭슨 감독은 우리가 잡아 온 것들로 요리를 해 줬다. 특히, 잭슨이 직접 끓여준 물고기 스튜는 의외로 맛있었다. 할리가 실력이 많이 느신 것 같다고 했다가 지옥훈련 1회권을 받았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은 모든 사람이 웃었다.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려는지 로드가 주장의 권한으로 새로 온 선수들에게 장기자랑을 지시했다. 지난 시즌 중 후반기에 계약한 이태양은 자신은 신입 선수가 아니라며 빠지겠다고 하다가 처음으로 장기자랑을 시작해야 했다.

이태양은 군대에서 휴가증을 받기 위해 배운 거라면서 여성 K-POP 그룹의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춤을 췄다. 선수들은 자지러졌고,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이건 노팅엄 TV에 영상이 올라올 것이다. 정말 어마어마했었다. 사실 덩치 큰 남자가 귀여운 춤을 추는 게··· 좀···.

이어서 다른 선수들의 자기소개에 이은 각국의 장기자랑이 펼쳐졌다. 가이드들은 장기자랑을 잘한 선수들에게 과자나 맥주 등을 지급하며 흥을 띄웠고, 나 또한 비장의 스코틀랜드 전통춤으로 초코바를 얻어냈다.

그렇게 첫날이 끝났다.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나는 별로 가득한 하늘과 모닥불을 조명 삼아 이 수기를 쓰고 있다.

첫날을 선수들과 함께 보내며 노팅엄 FC의 끈끈함의 비밀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나 같은 이방인을 선수들은 편안하게 맞이해줬다. 또, 함께 힘든 하루를 보내니 나도 모르게 선수들을 무척 친근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입 선수들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지금도 저 멀리에서 라이언, 루카와 셰이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사실 무인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축구와 전혀 관련 없는 전지훈련이었기 때문에 단점이 보일 거라 걱정했었다. 그런 부분을 덮어두고 좋은 점에 관한 수기만 쓰는 건 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우였을 뿐이었다.

최근 축구 팀들에게는 기술적인 부분과 체력적인 부분만 강조되고 있다.

이번 전지훈련에 함께하며 나는 축구팀에게 꼭 필요한,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선수뿐만이 아닌 모든 팀 구성원 간의 유대였다.

바로 이렇게 조금씩 쌓아가는 끈끈한 유대가 노팅엄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었다.

내일도 무슨 일이 있을지 정말 기대된다.

By George Webb, Skysports football writer.

└기자님! 아예 노팅엄에 취직하시는 건 어떨까요. 현장 특파원 같은 느낌으로

└└좋은 생각이야

└└나도 찬성

└└우리 도니가 주급 많이 챙겨 줄 거야 ££

└잘 봤습니다. 내일 글도 기대되네요

└재밌겠다 나도 가고 싶어

└└팬 참가 같은 건 안 하나? 축구 훈련하는 게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까?

└└└맞아! 우리도 구단의 일원이잖아.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우리와의 유대도 쌓아야 해!

└└└└네 말이 옳아

└└└└가즈아!

└내일은 선수들 인터뷰 같은 것도 올라오겠지? 기대된다

└└요즘 심심하지가 않네. 노팅엄 TV에 올라오는 영상도 봐야 해

└기자님 재밌는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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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좋네요."

나는 불과 사흘 만에 원주민 같아진 조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베스 팀장님도 전해달래요. '조지가 쓴 기사 덕에 신문 판매 부수랑 인터넷 조회 수가 잔뜩 늘었어요! 돌아오면 보너스 줄게요!'라고요."

"다들 좋아해 주신다니 좋군요."

노팅엄 팬들의 댓글을 어느 정도 읽었는지 조지가 내게 태블릿을 돌려줬다.

나는 태블릿을 돌려받으며 주변에 모인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로드, 할리, 라이언이 날 빤히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꾀죄죄한 그들의 몰골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대단한 선수들이 되었다지만, 내게는 열일곱 살짜리 녀석들이 겹쳐 보였으니까.

셋이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누가 보면 원주민들인 줄 알겠다?"

내 말에 라이언이 불평했다.

"너무해요."

이어서 로드가 눈썹을 꿈틀대며 물었다.

"왜 단장님은 같이 전지훈련 안 해요? 단장님도 우리 팀원이잖아요."

다음은 할리였다.

"기자님도 전지훈련에 함께하는데 단장님이 빠지는 건 말이 안 돼요."

뭔 말을 하려나 했더니···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난 너희들이 전지 훈련할 때 가장 바쁜 사람이야."

"선수 영입은 끝났잖아요."

"서브 스폰 넣어주시는 분들도 만나야 하고··· 친선경기 일정도 조율하고, 경기장 상태도 살펴야 하고···."

내 부드러운 반박에 로드는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요. 오늘 여기에 들른 거 보면 시간은 되시는 거 아녜요?"

"날 이번 전지훈련에 끌고 가고 싶은 모양인데 당연히 안 돼. 오늘 여기 들른 건 선수들과 스태프들에게 공지할 게 있어서 온 거야. 로드, 사람들 좀 모아봐."

안타까워하는 세 선수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세 선수에게 약속 하나를 해 줬다.

"이번에 유럽 대항전··· 아니,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다면 내년 전지훈련에는 시간 내서 참가해볼게."

축구계에서 세계 최고를 다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4등 안에 들어야 챔피언스 리그에 나갈 자격이 주어진다.

3연속 승격을 했다지만, 승격 직후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요즘 같은 시대에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 말에 세 선수는 눈을 반짝이며 약속 물리기 없다고 말했다.

뭐,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다면 그깟 전지훈련 따위 나가줄 수 있었다.

아무튼, 선수들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아줬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던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내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여기서 아시는 분도 있고, 모르시는 분도 있을 텐데 우리는 이번 프리시즌에 하노이 FC, 도르트문트와 친선경기를 치르고···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 나갑니다. 그 대회를 치르며 이번 시즌 준비를 할 거예요."

내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든 말든 나는 오늘의 공지사항을 말했다.

"그리고 어젯밤에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의 조가 다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조에 속한 팀들의 이름들은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잭슨도 내 말 듣고 당황해서 몇 초간 입을 다물었었으니까.

"우리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 중 세 팀인 레알 마드리드, 뉴캐슬, 파리 생제르망과 조별 예선을 치를 겁니다. 재미있겠죠?"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눈을 부릅떴다.

< 50. 프리 시즌 개막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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