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프리 시즌 개막 (4) >
-하노이와의 친선경기는 6-0으로 끝났어.
-새로 온 선수들은 어땠어?
-응. 전반전은 기존 선수들 위주로, 후반전은 새로 온 선수들 위주로 경기했는데 합만 안 맞았지 다 잘하는 거 같았어.
-부상자는 없었지?
-없었어. 그런데 루앙은 만났어?
-아직, 도착은 했는데- 시상식 준비해야 해서 못 만났어. 시상식 끝나고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어.
-오케이. 좋은 소식 기대할게!
나는 제임스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걸 멈추고, 축제 분위기인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월드컵 결승전이 막 끝났다. 옆에 앉은 사람이 이 경기에 대한 해설을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었는데, 해설자가 지금 상황을 아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2026 북아메리카 월드컵 우승은 아르헨티나입니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마지막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2009년 바르셀로나에서 전관왕을 함께 이뤘던 펩 과르디올라가 메시의 국가대항전 징크스를 깨부쉈어요!]
경기 결과는 회귀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크리스 앨런, 니콜라스 마카키스, 첸 웬, 킬리얀 음바페, 비니시우스, 카이 하베르츠 등의 젊거나 전성기를 맞이한 선수들의 팀이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는데 결국 만 39세의 메시가 유종의 미를 거뒀다.
메시는 이제 골든볼(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받고, 인터뷰 자리에서 "절 지지해주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결말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쁩니다. 이제 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은퇴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메시! 메시! 메시!>
경기장에 들어찬 관중 대부분이 메시의 이름을 연호하며 양팔을 뻗어 몸을 숙이는 시늉을 하며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호날두도 은퇴를 선언했다. 축구계를 휘젓던 두 선수가 떠나게 된 것이다.
FIFA의 직원들이 시상식을 위한 시상대를 만들고, 선수를 불렀다. 개인상을 시상하고, 마지막에 월드컵 우승팀이 메달을 받고 트로피를 드는 게 순서였다.
그래서 나는 루앙이 앞으로 나서길 기다렸다. 영플레이어상을 가장 먼저 주기 때문이었다.
조지도 실시간 중계를 보며 루앙의 노팅엄 이적 기사를 올릴 타이밍을 엿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루앙이 아닌 엉뚱한 선수가 앞으로 나섰다.
당황해서 전광판을 바라보니
2026 월드컵 영플레이어상
막시 페르난데즈
(아르헨티나)
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을 잊었다. 뭐가 잘못된 건가 싶었다.
어시스트상, 득점왕, 그리고 야신상 수상자가 차례로 나오는 동안에도 루앙은 들뜬 얼굴로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대회에서 세 번째로 잘한 선수에게 주는 브론즈볼을 관계자들이 들고 오자 루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2026 월드컵 브론즈볼
루앙 카를루스
(브라질)
"미친···."
전광판에 적힌 이름을 보며 나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가 기억을 더듬으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브라질은 준결승전에서 웨일스에게 패배하고, 3·4위전에서 독일을 이겨 대회를 3위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루앙은 첫 출전이었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부터 3·4위전까지 6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영플레이어상은 당연히 루앙이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가 루앙을 저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월드컵에 이어 2연속 준우승을 한 크리스 앨런이 우울한 얼굴로 실버볼을 받았고, 메시는 환한 얼굴로 골든볼을 받아 갔다.
이어서 선수단에 메달 수여식을 하는 걸 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단장님, 저 기사 진짜인가요?
-킴! 전화 좀 받아줘요.
-거짓말이죠? 가짜 뉴스죠?
기자들의 온갖 메시지가 내 업무용 스마트폰에 쏟아지고 있었다. 또한, 전화까지 걸려 오고 있어 스마트폰은 진동을 멈출 줄 몰랐다. 나는 업무용 스마트폰을 망설임 없이 꺼버렸다.
그리고 몇 번만 진동한 내 개인용 스마트폰을 꺼냈다.
-기사 올렸습니다.
조지는 친절하게 링크도 달아줬다. 나는 기사 내용을 확인했다.
<월드컵 브론즈볼 루앙 카를루스, 노팅엄 FC 이적 초읽기>
내용 또한 관계자에게 들었다는 식의 일반적인 기사였다. 하지만, 이 기사 때문에 기자들이 내게 마구 연락한 것이다. 왜냐면 조지는 노팅엄의 전지훈련까지 따라가 무인도 체험 수기를 작성했고, 이 수기가 프리 시즌에서 가장 화제가 된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프리미어리그의 팬들에게 우리가 독특한 전지훈련을 한다는 사실을 친근하게 알릴 수 있었고, 조지가 노팅엄 FC 관련 공신력 1위 기자라는 사실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 정보를 조지에게 넘겨줬다.
-직원들을 시켜 각 협회에 최종 서류를 제출했어요. 곧 그쪽에서도 소문이 날 거예요. 오피셜은 아마 내일 낼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것도 기사로 쓸게요.
-마음대로요. 합류 시기도 정해지면 알려드릴게요.
-사랑합니다.
-사랑은 하지 마시고요.
나는 큭큭 웃으며 조지에게 답장을 보내고, 다시 경기장을 내려다 봤다.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이 한창 세레머니 중이었다. 루앙은 보이지 않았다.
나도 루앙을 만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에서 나왔다.
*
"축하해!"
"깜짝 놀랐죠? 저도 상 받기 직전에 들었어요. 자, 만져보세요."
나는 루앙이 건네준 브론즈볼을 만지작거렸다. 동색이었지만, 내 눈에는 백금처럼 아름다워 보일 뿐이었다.
브론즈볼은 굉장한 상이였다.
2000년대로만 봐도 홍명보, 안드레아 피를로, 다비드 비야, 아르옌 로번, 앙투안 그리즈만, 첸웬이 받았던 상이였다.
전부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이었다.
나는 루앙을 보며 모처럼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다.
"최고예요."
"뭘요. 내 가치를 가장 빨리 알아본 킴이 최고죠. 국가대표팀 숙소에 있는데 얼마나 많은 팀이 나랑 접촉하려고 하는지···."
"어떤 팀이 붙었었어요?"
"열 팀이 넘어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맨유, 리버풀, 맨시티, 아스널,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같은 팀들에서요."
월드컵 스타를 영입했다는 실감이 다시금 들었다. 팬들이 정말 기뻐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계약은 했기에 뺏길 것에 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루앙 또한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고.
루앙이 말했다.
"아무튼, 지금 저는 노팅엄에서 보낼 이번 시즌 생각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런데 언제까지 어디로 합류하면 될까요?"
"얼마나 쉬고 싶어요? 잭슨 감독이 루앙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겠대요."
"일단 노팅엄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메디컬 테스트를 받아야 할 텐데···."
"뉴욕 시티(미국의 프로축구팀)에 미리 협조를 구해 뒀어요. 내일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저랑 사진 한 장 찍고 휴가 떠나시면 돼요."
나는 준비해온 대답을 했고, 루앙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월드컵이 끝난 직후이기 때문에 영국까지 왔다 갔다 하는 건 피곤하니까.
루앙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뗐다.
"솔직히 2주 정도 쉬고 싶은데···."
"괜찮아요."
"1주일만 쉬겠습니다. 이 폼을 유지하고 싶기도 하고··· 노팅엄 선수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서요."
"···그렇게 조금 쉬어도 괜찮겠어요?"
"예."
뭐, 메디컬 테스트도 있고, 합류 후에는 스태프들이 몸 상태를 점검할 테니 괜찮을 것이다.
"좋아요. 그럼 내일 같이 메디컬 테스트 하고, 오피셜 기사 내고 일주일 후에 베이징 공항으로 오면 될 거예요. 운이 좋으면 레알 마드리드와의 1차전에서 뛸 수 있겠네요."
루앙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 기대되는군요."
**
영국의 여러 스포츠 채널에서는 프리 시즌 기간에 '이적시장 특별 방송'을 진행한다.
종일 이적시장 특별 방송만 틀어주는 채널도 있고, 하루에 몇 시간씩만 틀어주는 채널도 있었다.
지금 스카이스포츠 방송국에서 생방송으로 진행 중인 <오늘의 이적> 또한 그런 방송 중 하나였다.
여자 아나운서의 인사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본격적인 이적시장이 시작됐습니다!"
"오늘만 해도 프리미어리그에 열다섯 건의 이적이 동시에 일어났어요."
남자 아나운서가 자연스럽게 말을 받고, 둘은 눈을 마주친 후 여자 아나운서가 이어 말했다.
"첫날부터 놀라운 이적이 나왔습니다.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봐도 신기한 이적이죠. 그 얘기에 앞서··· 그동안 월드컵 스타들이 어느 팀으로 갔는지 기억하시나요?"
"레알 마드리드죠. 월드컵 최고 스타를 영입하는 내부 정책이 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레알 마드리드는 월드컵 시즌만 되면 돈을 어마어마하게 풀죠."
"맞아요. 그런데, 이번에 그 레알 마드리드가 실패했어요. 레알 마드리드의 영원한 숙적 리오넬 메시가 골든볼을 받았고, 이미 레알 마드리드 소속인 크리스 앨런이 실버볼을 받았죠. 따라서, 원래였다면 브론즈볼을 받은 루앙 카를루스라는 젊은 스타가 레알 마드리드로 가야 했어요.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하고요."
여자 아나운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오늘 루앙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소식을 전하겠구나··· 생각하며 방송국으로 출근하다가 놀라운 기사를 봤죠."
"이 기사 말이죠?"
남자 아나운서의 능청스러운 말과 함께 옆 디스플레이에 사진 한 장이 떴다.
"맞아요. 바로 노팅엄 FC에서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자인 루앙 카를루스를 영입했다는 기사와 함께 단장과 찍은 사진을 올린 거죠."
"레알 마드리드의 수뇌진은 루앙이 32강 즈음에 에이전트를 해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8강 즈음에 접촉했었다고 합니다. 루앙은 이적 얘기는 월드컵이 끝난 다음에 하겠다고 했죠. 레알 마드리드는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루앙을 영입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월드컵이 끝난 후에 전화를 안 받는 것도 피곤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답니다. 그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던 거죠."
남자 아나운서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화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딱, 이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죠."
"정말 놀라워요. 승격팀에서 월드컵 스타를 잡다니요."
"맞아요. 그만큼 굉장한 영입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노팅엄 FC의 팬들이 모여있는 한 펍에 기자를 파견했습니다. 현장 연결해서 뒷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스크린에 띄워진 사진이 꺼지고, 큰 함성과 함께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도니! 도니! 도니! 도니!]
아직 대낮인데도 노팅엄의 팬들은 펍에 모여 단장의 애칭을 연호하고 있었다. 파견된 기자가 마이크를 입가에 대며 말했다.
[방금 막, 레알 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이 이번 이적에 대한 뒷이야기를 인터뷰에서 언급했는데요. 덕분에 펍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습니다.]
[도니! 도니! 도니!]
[거의 종교 수준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은 김도운 단장이 루앙이 대활약하기 전인 조별리그 때부터 접촉해 32강 시점에 계약을 체결했다는 걸 듣고 무척 허탈해 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말을 멈추자 이번에는 루앙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이었다. 기자는 팬들에게 이번 영입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팬들이 앞다투어 마이크에 달라붙으며 한마디씩 했다.
[최고입니다! 이 팀을 응원할 수 있는 건 축복이에요.]
[허허, 프리미어리그 어느 팀이 승격 첫해에 월드컵 스타를 영입할 수 있을까요.]
[도니는 여기 온 후로 늘 기적을 만들어왔어요. 이번에도 그랬죠. 내년에도 그럴 거예요!]
팬들의 찬양은 끝없이 이어졌다. 단장뿐만 아니라 감독, 선수들에 대한 칭찬까지 이어지며 난잡해지자 기자의 당황한 얼굴을 끝으로 영상도 꺼졌다.
여자 아나운서가 픽 웃으며 말했다.
"열기가 무척 뜨겁네요."
"노팅엄의 팬들은 아주 멋지군요."
남자 아나운서가 말을 받았다. 남자 아나운서가 이어서 말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영입 경쟁도 못 해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죠.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겁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레알 마드리드의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첫 경기 상대가 노팅엄인 거 아세요?"
"정말요? 신기하네요."
"중립 팬들도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노팅엄 소식은 여기까지 전하고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아나운서는 열심히 다른 팀들의 이적 소식을 말해줬다.
이렇게 노팅엄은 영국의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 50. 프리 시즌 개막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