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70화 (170/245)

< 51.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2) >

"으하하, 내 골 봤지? 멋있었지?"

할리가 경박하게 웃으며 노팅엄 선수들에게 자랑했다. 로드가 꼴불견이라는 눈빛과 함께 한쪽 입꼬리만 올린 미소를 지으며 할리에게 말했다.

"코너킥 찰 때마다 그 말을 해야겠냐? 벌써 세 번째야."

"좋은 걸 어떡해.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내가 골을 넣었다고! 단장님한테 영상 만들어달라고 할 거야."

"그래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집중해. 오드리오솔라가 왜 자기 마크 안 하는지 쳐다보고 있잖아."

"아."

그제야 할리가 자신이 수비해야 하는 선수인 레알 마드리드의 오드리오솔라 근처에 섰다. 경기가 시작하고 17분. 노팅엄은 레알 마드리드와 1-1로 팽팽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레알 마드리드의 코너킥 공격 상황이었다.

키커는 아센시오.

이 선수 또한 스페인 국가대표이자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는 월드클래스 선수였다.

그가 공을 찰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노팅엄의 중앙수비수 킹이 불평했다.

"라인 뒤로 내리고 싶다. 수비하기 너무 힘들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킹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들떠 있었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수준이 다른 일방적인 공세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하지만, 할리와 로드를 뺀 두 선수만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 루카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라는 사실에 좀 과격해진 상태였다. 불과 2분 전에 옐로카드를 받을 정도로 말이다. 루카의 원소속팀이었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라이벌 관계였고, 루카는 어린 시절부터 레알 마드리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루카의 파트너인 라이언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었다. 라이언의 얼굴은 마치 새로운 놀이를 발견한 아이 같이 즐거워 보였다.

그런 라이언에게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뭐야? 잉글랜드 국가대표 맞지?"

"라이언 브라우니예요. 국가대표 맞아요."

호드리구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공격수로서 지난 시즌 총 40골을 넣은 명실상부 월드클래스라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다만 키가 큰 편이 아니었기에 코너킥 공격 때 페널티박스 밖으로 나와 있었고, 마찬가지로 키가 작은 라이언이 그를 마크하고 있는 거였다.

호드리구가 말했다.

"오늘 정말 열심히 뛰던데··· 친선경기잖아. 살살 하자고."

라이언은 한 선수를 바라보며 답했다.

"저분은 안 그러는데요."

"아, 우리 캡틴은 예외. 워낙 진지한 사람이라서 말이야. 친선경기든 중요한 경기든 늘 똑같이 경기하지."

라이언의 시선 끝에 있는 건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완장을 달고 있는 크리스 앨런이였다.

라이언은 경기가 시작한 직후부터 계속 충격을 받고 있었다.

컵대회에서 맨시티 같은 팀을 만나며 높은 수준의 선수를 충분히 만나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는 차원이 달랐다. 열 한 명 다 월드클래스로 이루어진 팀, 그리고 이 팀은 호흡까지 완벽하게 맞고 있었다. 친선경기라고 힘을 빼고 하고 있었지만, 라이언의 눈에는 보였다.

무엇보다 저 크리스 앨런이라는 선수는 영상으로 봤던 것보다 더 괴물이었다. 그는 내로라하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당연하다는 듯 지휘하고 있었다.

삐익!

더 생각하고 싶었지만, 심판이 코너킥을 차라는 휘슬을 불었기에 라이언은 공에 집중했다.

아센시오의 날카로운 코너킥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날아갔다. 다행히도 킹이 먼저 뛰어 공을 머리로 걷어냈다.

하지만, 루즈볼은 중앙선에서 뛰어온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수비수 바예호가 잡았다. 바예호는 코너킥을 찬 아센시오에게 다시 패스해줬다.

아센시오가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았다. 아센시오에게는 로드가 달라붙었다. 아센시오는 왼쪽으로 치고 나가며 패스하는 척하다가 백힐로 뒤로 공을 빼돌렸다.

그리고 그 공을 크리스 앨런이 잡았다.

앨런은 오른쪽 측면에서 페널티박스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코너킥 후 아직 페널티박스 안을 빠져나가지 않은 루카와 중앙수비수 킹이 앨런의 슈팅 각도를 막으며 외쳤다.

"붙지 말고 거리 둬!"

그래서 라이언은 앨런에게 태클하기 위해 다가갔으나 앨런은 망설임 없이 라이언이 마크하던 호드리구에게 패스했다.

호드리구는 공을 잡고, 중거리 슈팅을 하는 시늉을 했다.

그 순간 노팅엄의 선수들은 다 속아서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라이언만은 앨런에게 리턴패스가 올 거라고 예상하고 패스 길을 막았다.

"역시!"

앨런도 미리 호드리구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라이언은 앨런이 공을 받는 순간을 노려 태클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앨런은 패스를 받지 않고 점프해서 공을 흘렸다.

"어?"

언제 돌아온 건지 오른쪽 측면에서 한 선수가 더 쇄도하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월드클래스 윙 비니시우스였다.

라이언은 순간 머릿속에 혼란이 왔다. 비니시우스의 슈팅을 막아야 하는가 앨런을 막아야 하는가.

하지만, 라이언의 짧은 머뭇거림은 월드클래스 선수들에게 있어 큰 시간이었다.

비니시우스는 노팅엄의 선수들이 우왕좌왕하며 자기에게 몰리는 순간 다시 앨런에게 패스했다. 페널티박스 안에는 노팅엄의 선수 일곱 명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지만, 아무도 그걸 제지하지 못했다.

라이언은 황급히 앨런을 향해 달리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라이언은 엎어진 채로 고개를 들어 앨런이 슈팅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뻥!

축구공이 터질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노팅엄의 골키퍼는 팔도 못 뻗어본 채 골망을 흔들고 튀어나온 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어서 이곳이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큰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앨런! 앨런!>

그는 개인 기량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들을 완벽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라이언이 머릿속에 그리던 이상적인 움직임이 눈앞에 있었다. 라이언은 앨런이 세레머니를 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

"일어나. 왜 계속 그러고 있어."

라이언의 눈앞에 루카의 손이 내려왔다. 라이언은 루카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났다.

루카는 실점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이언이 그런 루카를 불렀다.

"루카."

"왜?"

"내가 앨런을 막을 수 있을까?"

"저걸 어떻게 막아. 수비 두셋이 협력해서 막아야지."

"나중에는 어떨까?"

라이언이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루카가 말했다.

"뭐,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루카의 시니컬한 말에 라이언이 환하게 웃었다. 지난 시즌 후반부에는 '이 정도면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폼이 좋았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라이언은 이번 경기를 통해 자신이 한참 부족하고, 올라갈 곳이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경기에서는 지고 있었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라이언이 말했다.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 나중에 발롱도르 타면 내 이름이나 불러줘."

"하하하."

라이언이 미소지었다. 둘은 걷기 시작했다. 라이언은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는 앨런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루카, 나 오늘 앨런한테 집중해보고 싶은데···."

라이언의 말을 이해한 루카는 잠시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 그럼 포지션을 조금 깨도 좋으니까 한번 제대로 막아봐. 내가 커버해줄게. 이 정도는 감독님도 뭐라고 하지 않으실 거야."

잭슨은 선수들이 현장에서 판단하고 전술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걸 좋아했다. 밖이 아닌 선수들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이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루카에게 어깨동무를 했고, 둘은 그대로 중앙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대화를 전부 들은 노팅엄의 신입 선수 코너는 멍하니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앨런을 막아보겠다고···?"

*

"아깝다···."

공을 빼앗는 걸 실패하자마자 중얼거리는 라이언을 보며 앨런이 고개를 갸웃했다. 앨런은 아무 말 없이 다시 공격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거의 일대일 마크를 하고 있는데 공을 빼앗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앨런은 직접 개인기를 해서 돌파할 수도 있었고, 중거리 슈팅을 때릴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동료를 이용한 패스를 할 수도 있었고 아예 공을 터치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도 있었다.

라이언이 생각해야 하는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또, 이걸 천천히 생각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루카의 외침이 들렸다.

"라이언! 막아!"

앨런이 패스를 받아 노팅엄의 골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언은 순간 앨런이 슈팅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본능적으로 슬라이딩 태클을 했다.

라이언이 잔디밭에 미끄러지며 눈을 크게 떴다. 공이 드디어 자신의 발에 스쳤기 때문이었다.

앨런의 슈팅은 라이언의 발에 맞고 궤도가 틀어졌다.

앨런이 눈썹을 찡그렸다. 라이언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잔디를 박차고 일어나 앨런을 다시 쫓기 시작했다.

**

나는 경기를 보는 틈틈이 인터넷 반응도 확인하고 있었다.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은 뮤튜브에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기 때문에 전 세계의 팬들이 노팅엄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리가 골을 넣었을 때는 노팅엄의 팬들이 채팅창에서 난리를 피웠다.

-할리신!!!

-신이시여!

-킹할리!!!

-할리를 경배하라!

-역시 우리 복권할리

-백덤블링 세레머니 멋져

-도니가 실실거리면서 웃는다

이어서 할리를 처음 보는 팬들의 질문과

-쟤 누구냐 발목 힘 미쳤네

-헤딩 따 준 선수도 몸 몸 좋다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여유로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노팅엄 놈들 귀엽네

-곧 골 먹히고 조용해질 듯

-얘넨 뭐 이렇게 사람이 많냐? 채팅창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그리고 잠시 후, 레알 마드리드의 환상적인 팀워크에 이은 앨런의 역전 골이 나왔을 때는 비슷한 내용이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신이시여

-신이 왔다

-신

-축구의 신

인터넷을 비롯한 언론에서 앨런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일종의 밈 같은 거였다.

지금은 자그마한 라이언이 빨빨거리며 앨런을 쫓아다니다 결국 태클로 슈팅을 막아낸 것에 대한 여러 채팅이 쏟아지고 있었다.

-친선경기인데 과몰입하네

-아까 태클 위험하지 않았어?

-어차피 질 건데 왜 저렇게 한대

-열심히 하는 건데 왜 그럼?

-우리 라이언은 원래 저렇게 열심히 뛰거든요?

영어로 온 세계의 사람들이 떠들고 있었다. 노팅엄의 팬들은 인터넷에 특히 많았기에 화력이 딱히 밀리지 않아 채팅창이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재미있었다. 우리 팀이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를 하고, 팬들이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과 다투고 있다니.

그때, 옆에서 페레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꼬마 선수 정말 열심이군."

"우리 팀 감독이 가장 기대하는 선수니까요."

라이언은 친선경기인데도 정말 열심히 뛰고 있었다.

페레즈가 말했다.

"괜히 저 선수가 좌절할까 걱정이야. 슈팅 한두 번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일방적으로 당할 텐데."

페레즈의 말에는 확신과 신뢰가 들어 있었다. 나라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메시와 호날두의 자리를 이어받은 선수 중 하나고··· 3억 파운드를 들여 영입한 선수이니까.

하지만, 기분은 별로였다. 라이언은 우리 선수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대답하지 않고 라이언을 보며 잘해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그때였다.

앨런이 볼을 몰고 천천히 걷고 있는데, 라이언이 측면에서 급가속하더니 태클하는 시늉을 해 앨런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발을 뻗어 공을 빼앗은 거였다.

라이언은 앨런이 쫓아오기 전에 강력한 발목을 이용해 전방으로 패스를 보냈다.

"뭐야?"

페레즈가 당황하든 말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이언의 낮고 빠른 패스가 전반전 30분에 미할리스와 교체돼 들어온 이태양의 발 앞에 딱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이태양은 긴장도 안 되는지 뻥 차고 달려 일대일 찬스를 만들더니 경기를 2-2로 만드는 동점 골을 집어넣었다.

나는 제임스와 주먹을 부딪치며 기뻐했다.

페레즈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경기가 재개된 후 몇 분이 지나고서야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 보고 있었군. 괜찮은 선수들이 많아. 특히 저 작은 선수는 이름이 뭔가."

"라이언 브라우니예요."

"기억해 둬야겠군."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페레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 팔 겁니다···."

"그건 선수가 선택할 문제지."

내가 당황하는 게 보였는지 페레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로드, 테디도 우리 스카우트들의 추천 명단에 있네.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말문이 막혀 억울한 얼굴로 페레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을 쥐어짜 말했다.

"절대 안 뺏길 겁니다. 그 선수들에게 있어 우리 구단이 레알 마드리드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들도록 열심히 할 거니까요."

"오호."

페레즈가 날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거 기대되는군."

프리미어리그에 올라간다는 건 빅클럽들의 시선에 우리 선수들이 더 자주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페레즈의 말을 통해 그걸 다시금 깨달은 나는 쉴 틈 없이 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하아··· 졌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라이언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푹 숙이고 숨을 골랐다.

친선경기였지만, 잭슨에게 부탁해서 풀타임을 뛴 라이언이었다. 앨런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풀타임을 뛰었기에 라이언은 90분 내내 죽어라 뛰었다.

라이언은 고개를 슬쩍 들어 팬들에게 손뼉을 치고 있는 앨런을 바라보았다.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앨런은 후반전 내내 진심으로 뛰는 것 같았다. 전반전에 한 번 슈팅을 막고, 한 번 공을 빼앗은 거 이후로는 앨런에게서 공을 한 번도 빼앗지 못했다.

후반전 내내 그랬다.

그래서 앨런은 어시스트 두 개와 한 골을 더 넣었다. 자신이 일대일 마크를 했는데도 말이다.

앨런과 관계없는 골도 있었는데 사실상 오프 더 볼로 공간을 만들어줬기에 후반전의 모든 골에 앨런이 관여한 거나 다름없었다.

6-2라는 스코어만큼이나 라이언의 완벽한 대패였다.

하지만, 라이언은 패배감보다는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조금만 몸을 더 키웠더라면··· 더 빨리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왠지 모르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앨런은 닿을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에게 잡히지 않았다.

라이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드레싱룸으로 돌아가야 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른 지역의 호텔로 이동할 거라고 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라이언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자 예상 못 한 선수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뭐야?"

"···라이언 브라우니요."

땀에 젖은 크리스 앨런이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라이언이라··· 좋아, 기억할게. 덕분에 재밌었거든. 데이봇이랑 붙을 때 이후로 이렇게 즐거웠던 적은 오랜만이야."

앨런이 자신의 손을 안 잡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라이언은 허겁지겁 앨런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라이언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 앨런이 말했다.

"닉은 너 같은 동료를 데리고도 월드컵에서 초반에 탈락한 거야? 에휴··· 멍청한 자식."

닉은 잉글랜드의 핵심 선수이자 다음 경기 상대인 뉴캐슬의 니콜라스 마카키스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둘은 같은 에이전시 소속으로 친분이 있을 테니까.

앨런이 계속 말했다.

"너희 중앙 수비수도 그렇고 잉글랜드는 맨날 좋은 선수가 나오네. 부러워 죽겠다. 아무튼, 라이언··· 유니폼 교환할 사람 없지?"

경기 중에는 괴물 같았던 앨런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고, 유니폼을 벗어 건넸다.

앨런도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 라이언의 손에 건네줬다.

라이언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뭘, 내가 바꾸고 싶어서 온 건데. 아, 슬슬 가봐야겠다."

라이언이 둘러보니 선수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앨런과 함께 터널로 향했다.

둘의 대화는 앨런이 주도했다. 앨런은 라이언의 고향과 유소년 시절 등 사소한 것들을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둘은 터널로 들어와 양 팀의 드레싱룸으로 갈라지는 장소에 도착했다.

앨런이 라이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경기 중에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으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오늘 정말 아까웠어."

"아···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재밌는 경기 하자. 더 대단한 선수가 돼 있길 기대할게."

앨런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고 레알 마드리드의 드레싱룸으로 사라졌다.

라이언은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라이언은 레알 마드리드의 등 번호 10번이 적혀있는 앨런의 유니폼을 펴 보며 천천히 상황을 깨달았다.

라이언은 오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앨런의 인정을 받은 거였다.

하지만, 너는 아직 부족하다는 얘기도 함께 들었다.

분하면서도 기쁜 감정이 라이언을 감쌌다.

라이언은 앨런의 유니폼을 꽉 움켜쥐었다.

라이언의 이번 시즌의 목표는 명확했다.

월드클래스가 되는 것.

그것뿐이었다.

< 51.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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