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3) >
두 시간 후, 중국의 대도시 충칭에서 가장 큰 축구경기장인 이곳에서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인 뉴캐슬과 승격팀인 노팅엄의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팬들은 아직 경기장에 입장하지 않았고, 노팅엄과 뉴캐슬의 선수들은 잔디 적응 훈련을 겸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자유로웠냐면 노팅엄과 뉴캐슬의 선수들이 함께 공을 찰 정도였다.
"알버트, 나이 들더니 실력이 녹슨 거 아녜요?"
"네가 아무리 젊어도 내가 너보다 트래핑은 잘해. 봐."
두 시즌 전, 노팅엄에서 감자 머리 선수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공격수, 알버트가 할리 앞에서 멋들어지게 공을 다루고 있었다.
"에이, 이 정도는 해야죠."
할리는 알버트에게서 공을 달라고 한 후, 공을 무릎으로 튕기고 발등으로 뒤로 튕긴 후, 발뒤꿈치로 다시 앞으로 가져오는 등 풋살 경기에서나 볼 수 있는 묘기를 선보였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라이언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었다.
라이언이 알버트에게 물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했을 때 느낌 어땠어요?"
할리에게서 공을 넘겨받은 알버트가 공을 통통 튀기며 잠시 생각하고 할리에게 공을 높게 차 줬다.
"뭐 하는 거예요!"
할리가 높게 뜬 공을 잡기 위해 우왕좌왕하며 불평하는 동안 알버트가 라이언에게 말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최고였어."
"그래요?"
"음··· 더 좋은 표현이 있나··· 아,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 정말 멋지네요. 챔피언스리그는 어땠어요?"
뉴캐슬은 지난 시즌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했던 괴물 같은 팀이었다. 알버트는 뉴캐슬로 이적한 후, 후보 선수로 시작해 로테이션 선수로 정착해 두 업적에 큰 공헌을 했다.
알버트는 조금 씁쓸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결승에서 떨어진 게 너무 아쉬웠지. 벤치에서 지켜봐야만 한다는 게 정말 슬펐어···."
"아니 아니,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 처음 나갔을 때요."
알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첫 출전 때는 눈물 찔끔했어."
"뭐야, 알버트 울었어요?"
어느새 할리가 공을 잡아서 둘에게 다가와 있었다. 알버트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도 챔피언스리그 나가보면 그럴걸."
"에이, 저는 안 울어요."
"두고 보자 그럼."
"네네~."
할리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라이언은 그게 옛 동료 알버트와 이야기하고 공도 찰 수 있어서 그런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라이언은 둘이 투닥거리는 걸 흐뭇하게 보다가 정말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
"또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마카키스는 평소에 어떤 식으로 훈련해요? 대표팀에서는 특별한 건 안 하거든요."
"왜 그런 게 궁금해?"
"지난 경기에서 앨런이랑 붙어보고 정말 차원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따라잡고 싶어요. 마카키스는 앨런이랑 발롱도르를 경쟁하는 선수니까···."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라이언의 뒷말을 이해한 알버트가 말했다.
"아쉽겠지만 특별한 건 없어. 훈련 전에 삼십 분에서 한 시간, 훈련 후에 한두 시간 정도 개인 훈련을 하는 정도가 다야. 일정이 빡빡하면 팀 훈련만 하고. 그 정도는 너도 하잖아?"
"그런가요···."
시무룩해진 라이언에게 알버트가 말했다.
"닉이 그랬어. 훈련은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효율이 중요한 거라고."
"효율이요?"
"그래. 부족한 걸 채우는 것도 좋고, 장점을 살리는 것도 좋을 거라고 했지. 막 입단했을 때 물어본 적 있거든."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고마워요."
둘이 대화를 마치자마자 멀뚱멀뚱 서 있던 할리가 라이언에게 말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네··· 훈련 상대 필요하면 말해."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이려 하는데 알버트가 말했다.
"너희들은 여전하구나."
"라이언이 로드보다 착하거든요."
알버트가 픽 웃었다. 라이언이 이어 말했다.
"고마워. 그럼 이제 몸이나 풀어볼까요. 저도 껴도 되죠?"
셋은 본격적으로 공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
"이 배신자야.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지? 어때, 혼자 사니까 좋아?"
"형··· 진짜 좀···."
경기장의 또 다른 곳에서는 헌터 형제와 로드가 함께 몸을 풀고 있었다.
큰 헌터인 테디가 작은 헌터인 테오를 한참 괴롭히는 모습을 로드가 재미있다는 듯 보고 있었다.
물론, 셋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몸을 풀고 있었다.
불과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같은 팀이었던 테오는 뉴캐슬의 검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테오가 로드를 보며 말했다.
"도와줘요···."
"내가 왜?"
로드는 그렇게 말하고 테디와 눈을 맞춘 후 낄낄거리며 웃었다. 테오가 삐질 것 같은 표정을 하자 테디가 급히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이제 그만해야겠다."
그때, 노팅엄의 요한과 한스가 지나가며 테오에게 말했다.
"배신자야!"
"오늘 얼마나 잘하나 보자!"
둘 다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테디가 계속 놀려서 분노 게이지가 쌓여있던 테오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로드가 움찔하는 요한과 한스에게 말했다.
"우리가 계속 놀려서 화난 상태야."
"···그런 것 때문에 화난 거 아니거든요? 저 그렇게 쪼잔하지 않거든요?"
노팅엄에 있을 때도 테오는 주전 선수 중에 가장 어렸기에 간혹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다른 팀에 갔어도 변하지 않은 테오의 모습에 한스와 요한은 미소를 지었다.
둘은 한스의 말을 마지막으로 떠났다.
"그래그래. 안 그런 거 아니까 잘해 봐라."
테오는 맘에 안 드는 얼굴이긴 했지만, 둘에게 인사했다.
둘이 가자마자 또 한 명의 선수가 다가왔다.
"야, 로드, 테디. 우리 테오 좀 적당히 괴롭혀라."
이번에는 노팅엄의 선수가 아닌 뉴캐슬의 선수였다. 테디와 로드가 화들짝 놀랐다.
거의 2m에 달하는 거구의 흑인 선수가 여유로운 웃음을 띠고 있었다.
"옆에서 계속 듣고 있었어."
거구의 선수, 그러니까 뉴캐슬의 에이스 니콜라스 마카키스는 테디, 로드와도 친분이 있었다. 같은 잉글랜드 국가대표로서 함께 월드컵에 나간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테오가 기가 살았는지 어깨가 쭉 펴졌다.
테디가 웃으면서 말했다.
"적당히 할게요."
"그래. 너무 심하게 했다가는 이따 얘가 너한테 백 태클할 수도 있어. 둘이 포지션도 겹치잖아."
테디는 오른쪽 윙, 테오는 왼쪽 수비수였기 때문에 경기 내내 부딪칠 것이었다. 니콜라스의 말에 테디는 테오에게 눈빛으로 '그럴 거야?'라고 물었고, 테오는 '생각해 보고···.'라는 몸짓을 했다.
니콜라스는 그 모습을 보며 둘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얘기는 경기 끝나고 하고··· 자,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예?"
갸웃하는 테오에게 니콜라스가 말했다.
"감독님이 부르시거든. 다 모이라고 한다."
"아··· 네."
"그럼 이따 좋은 경기 하자. 테디."
"알겠습니다. 닉."
테디가 경례하는 시늉을 하며 장난스럽게 인사했다.
이어서 니콜라스는 로드에게 말했다.
"로드 너도 좋은 경기 하자."
"예!"
니콜라스와 테오는 그렇게 사라졌다. 로드는 테디와 공을 주고받다가 이렇게 말했다.
"역시 존경스러워."
로드의 말에 테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한테는 알렉산더만 있는 거 아니었어?"
"알렉산더가 1번이면 니콜라스는 2번이거든."
"너 공격수 페티쉬 있냐? 뭔 존경하는 사람이 다 공격수야."
테디의 말에 로드가 말없이 노려봤다. 테디가 농담이라며 웃었다.
로드가 이유를 말했다.
"포지션은 중요한 게 아냐. 닉은 말하자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선구자 같은 사람이라고. 니콜라스는 자기가 월드클래스가 됐는데도 빅클럽으로 이적하지 않고, 뉴캐슬을 빅클럽으로 만든 로컬보이잖아. 그게··· 은퇴할 때까지 이루고 싶은
내 목표거든."
**
"우악."
로드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월드컵을 치르며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압도적인 피지컬 앞에서는 모든 게 의미 없었다.
<와아아아!>
1초도 안 되는 짧은 몸싸움으로 로드를 가볍게 튕겨낸 니콜라스는 망설임 없이 골대를 향해 슈팅을 날렸다.
<아아···.>
관중이 탄식하는 소리가 경기장을 채웠다.
슈팅은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빗나갔다. 로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친선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번 경기의 목적은 공격이 아닌 수비&역습 전술의 실험이었고, 로드는 역습의 선봉장이었다.
그래서 골키퍼의 재빠른 패스를 받자마자 로드는 긴 패스를 발사했다. 같은 국가대표이자 전 노팅엄 선수였던 맨시티의 바비에게서 배운 패스였다. 발사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고 높은 패스가 적 진영 한복판에 떨어지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 개인기는 좋았지만, 호흡이 안 맞아 존재감을 못 보여준 루앙이 공이 떨어지는 지점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로드의 예상대로였다.
로드는 이 전술의 공격 및 역습 상황에서 패스 경로를 선택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루앙에게 패스한 이유는 루앙의 폼이 지난 경기에 비해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경기의 전술이 역습이었기 때문에 잭슨의 요구사항이 무척 간단해진 덕이었다.
루앙은 공을 발로 받지 않고, 선 채로 이마를 이용해 자신을 수비하러 달려오는 뉴캐슬 오른쪽 수비수의 키를 넘겼다. 수비수가 당황하는 사이 루앙이 달렸다.
"와···."
로드는 루앙의 브라질리언다운 센스에 감탄하면서 수비라인을 조금 올렸다.
루앙은 부드러운 헛다리로 수비수 한 명을 더 제치고 미할리스와 원투패스를 주고받은 후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아···."
아쉽게도 빗나갔지만, 틀림없이 좋은 찬스였다.
월드컵 브론즈볼이라더니 적응만 한다면 정말 대단한 선수가 될 게 틀림없었다. 이번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이번에도 잘 막아 봐."
이 니콜라스를 실수 없이 막아낸다면 노팅엄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두렵긴 했지만, 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게 로드의 목표였다.
로드가 니콜라스에게 말했다.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뭐?"
니콜라스가 뒤늦게 말을 이해하고 소리 내서 웃었다.
그리고 노팅엄의 신입 선수 코너는 이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
"졌네···."
"그래도 이번엔 아까웠어."
라이언이 시무룩해진 로드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2-1이면 괜찮잖아? 리그에서 복수해 주자고."
라이언의 말에 로드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로드가 드레싱룸을 둘러봤다.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로드가 말했다.
"감독님 오시기 전까지 얘기 좀 해 보자. 왜 진 거지? 난 우리 팀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테디가 입을 열었다.
"너무 왼쪽으로만 공격했어. 나도 컨디션 좋았는데 아무것도 못 했잖아."
"그리고 왼쪽 사이드로만 공격하니까 상대 팀이 더 쉽게 막기 시작했어."
중앙 미드필더 루카 또한 테디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번 경기의 패스 길을 대부분 정했던 로드가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오른쪽으로 패스하려고 할 때마다 테오가 준비했다는 듯 움직여서···."
"예측 당한 게 문제네."
테오는 지난 시즌 이 팀에 있었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이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미할리스가 말했다.
"리그에서도 이런 식으로 예측 당해서 질 순 없잖아. 그런 상황에서도 패스할 수 있어야 해."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패스 길이 막혔을 때, 감독님의 전술대로 움직이려면 우리가 좀 더 나은 움직임을 가져가야겠네. 내가 패스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준다던가 테디 네가 잘 움직인다던가."
"내가 지원해주는 움직임을 해 줘도 좋을 것 같고."
라이언도 끼어들어 이야기를 나눴다.
왜 졌는지, 무얼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선수들은 끊임없이 의견을 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코너를 비롯한 신입 선수들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코너는 지난 레알 마드리드전 이후 드레싱룸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그때도 비슷했다.
6-2라는 큰 스코어로 졌지만, 선수들은 금세 털어내고 왜 졌는지 어떻게 했으면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감독이 와서 최종 정리를 한 후에는 경기에서 좋았던 점을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코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프리미어리그의 여러 팀에서 뛸 때 봤던 몇몇 선수를 떠올릴 수 있었다. 특히, 로드와 라이언을 보며 떠오르는 선수가 몇 있었다.
바로 빅클럽 출신 선수들이었다.
이들도 왜 졌는지, 왜 이겼는지에 대한 의견을 끊임없이 나눴고 상대가 누구든 늘 자신감에 갖고 경기에 임했다.
코너는 이 마음가짐을 뭐라고 부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위닝 멘탈리티'였다.
이들은 위닝 멘탈리티를 갖춘 선수단이었다.
지나치게 밝고, 불가능한 목표를 진지하게 말하기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승리를 추구하는 승부사로서의 마음가짐도 있었다.
그때, 로드가 코너에게 물었다.
"코너,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니콜라스한테 좀 밀리긴 했지만, 나는 이번 경기에서 두 골이나 먹힐 거라고 생각 안 했거든."
단장이 무리한 친선 경기를 잡았다고 불만을 가졌을 때, 코너는 자신이 이적할 팀을 잘못 선택한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두 경기를 치르며 알 수 있었다.
우승컵을 원하는 자신이 가장 우승컵에 어울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코너는 이들처럼 변하기로 했다.
일단은 이 한 마디부터 시작이다.
코너는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말이야···."
이번 이적생들도 노팅엄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었다.
< 51.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