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75화 (175/245)

< 53. 동화 더비 (1) >

노츠 카운티의 단장 스콧이 우울한 목소리로 불평했다.

"이제 우리랑 경기한 건 기사화도 안 되네요."

"기사화됐죠. 근데··· 묻혔죠."

위로의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 솔직히 말했다. 스콧이 씁쓸한 얼굴로 위스키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우리는 내 사무실에서 훈련장을 내려다보며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리그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노츠 카운티가 소속된 챔피언십리그(2부리그)는 프리미어리그보다 팀과 경기 숫자가 많아서 8월 초에 개막한다. 그래서 노츠 카운티는 이미 리그 두 경기를 치렀다. 참고로 두 경기 다 이겨서 현재 리그 1위였다.

원래는 오늘 친선경기 상대로 같은 프리미어리그 팀을 잡으려고 했다. 그게 안 된다면 스코틀랜드 팀으로. 하지만, 어느 날 스콧이 먼저 제안해 왔다.

시즌 중에 괜찮겠냐고 진지하게 물으니 스콧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면 노츠 카운티가 이번 시즌 무려 더블 스쿼드를 완성했기 때문이란다. 더블 스쿼드는 주전급 선수 22명을 확보한 걸 얘기한다.

아무튼, 그렇게 친선경기가 성사될 수 있었다.

나는 며칠 전 열렸던 친선경기에서 스콧 옆에서 경기를 보며 이 친선경기를 제안한 진짜 이유 두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선수단에서는 노팅엄을 쫓아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어요. 그래서 노팅엄에게 한 대 제대로 얻어맞을 기회를 만들어준 거고요. 더 자극받을 수 있게.'

'분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더비 경기를 할 수 없잖아요. 팬들을 위해서 이런 식으로라도 열어주는 거기도 해요.'

두 번째 이유가 특히 와닿았다. 그날 우리 팀의 팬들도 노츠 카운티를 욕하면서 경기를 즐겼으니까. 이런 면 때문에 라이벌 팀의 단장이라지만, 스콧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수긍하며 그날의 경기를 즐겼었다.

경기는 과격하지도 않고, 서로 수비적으로 나오지도 않으며 팬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선사했다.

골도 다섯 골이나 나왔다.

노팅엄 4 – 1 노츠카운티

노팅엄의 팬들은 <빨리 올라와라. 너희들이 없으면 재미없을 거다.>라는 내용의 챈트를 불렀고, 노츠 카운티 팬들은 <기다려라! 노팅엄 놈들아.>라는 내용의 챈트로 답했다.

노츠 카운티가 무리하기도 했고, 스토리와 볼거리도 많은 친선경기라 나도 충분히 화제가 될 줄 알았다.

스콧이 한 손으로 옆 의자에 널브러져 있는 신문을 집어 들며 투덜댔다.

"동화 더비라니. 노팅엄은 더비가 많아서 좋겠네요."

"기자들이 막 붙인 거니까요. 저도 보고 그럴듯해서 놀랐다니까요?"

언론은 오히려 우리의 개막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노츠 카운티와 한 친선경기는 한두 줄로 처리해버리고 동화를 쓰고 있는 팀인 우리의 발자취와 동화 한 편을 마무리한 팀인 레스터시티의 발자취를 비교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의 전설이자 이제는 해설 겸 비평가인 게리 네빌이나 제이미 캐러거 같은 사람들도 개막 전 분석 프로그램에서 우리 경기를 콕 찝어 '동화 더비'라고 언급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고로 더비는 근본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노츠 카운티와 노팅엄은 노팅엄이 창단하자마자부터 시작된 더비잖아요. 우리 경기장도 얼마나 가까워요?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데."

사실 개막전이 동화 더비라고 화제가 되는 게 좋았다. 그만큼 이번 경기의 중계권 수익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콧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라이벌이라고 여기던 친구가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관계를 개무시한다면 정말 열 받겠지.

거기에 술까지 취했다면··· 더 슬플 것이다.

나는 그런 스콧을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노팅엄이 가진 최고의 더비는 노츠 카운티와의 노팅엄 더비죠."

하지만, 스콧은 내 호의를 배반했다.

"노팅엄 더비가 아니라 노츠 더비입니다··· 원래 노팅엄을 줄여서 노츠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먼저 이름을 가져가 버렸다고 줄임말도 안 쓰고 노팅엄이라고 길게 부르는 거잖아요."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전혀 아닌데요? 노팅엄이 애초에 짧아서 안 줄인 건데요? 그리고 노츠 카운티는 노팅엄셔의 줄임말인 노츠를 따서 지은 이름이잖아요. 하지만, 우리 두 팀은 노팅엄시 내에 있고요. 그러니까 노츠 더비가 아니라 노팅엄 더비라고 부르는 게 맞습니다."

누가 보면 30대 중반의 어른들이 그런 거로 말싸움을 하느냐고 할 수준의 대화였다. 하지만, 나와 스콧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는 서로를 째려봤다.

그리고 말없이 앞에 놓인 위스키를 홀짝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먼저 말했다.

"이런 건 언론을 통해 기사화가 돼야 우리도 재미있고, 팬들도 재미있는데··· 안 그렇습니까?"

"동감합니다."

스콧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울한 얼굴을 했다.

최소 일 년 동안은 언론으로 이런 걸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작은 확률로 컵대회에서 만나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리그만은 못 했다.

나는 그런 아쉬움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꼭 올라오세요."

"···걱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챔피언십리그를 완벽하게 깨부수고 올라가겠습니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진심으로."

스콧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살짝 오글거렸기 때문에 나는 말을 덧붙였다.

"유벤투스와 뉴캐슬의 유니폼에 영향을 준 세계 최초의 프로클럽이 프리미어리그에 한 번도 올라온 적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 악물고 열심히 하세요. 알았죠?"

은은한 미소를 짓던 스콧이 대번에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요? 왜 갑자기 시빕니까?"

역시, 우리는 이런 관계가 어울린다.

나는 노츠 카운티가 다음 시즌에 꼭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오길 축구의 신에게 기도하며 스콧과 밤새 떠들었다.

*

"미스터 포터. 첫 프리미어리그 인터뷴데 기분이 어떤가요?"

동화 더비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경기가 우리 홈에서 열리기 때문에 우리의 감독 잭슨은 노팅엄에 마련된 인터뷰 공간에서 기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창단 첫 프리미어리그 공식 인터뷰라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에 나 또한 기자들 뒤에서 잭슨을 지켜보고 있었다.

잭슨이 첫 질문에 답했다.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늘 보던 기자님들이 많이 보여서 비슷한 기분입니다."

기자회견장에 웃음이 번졌다.

한 기자가 말했다.

"노팅엄이 승격하는 덕분에 우리도 덩달아 승격했습니다. 하하.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절대 강등당하면 안 된다고요."

한둘은 4부리그 때부터 우리 팀을 전담했었고, 나머지 기자들도 2, 3부리그 시절부터 전담해온 분이 많긴 했다.

이런 분들은 대체로 좋았다.

기자들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여정을 함께해오며 정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잭슨이 질문할 기자를 지목했다. 얼굴이 익은 BBC의 기자였다.

"프리시즌 준비가 얼마나 잘 됐는지 궁금한데요."

"제가 원하는 수준까지는 올라왔습니다. 실전에서도 제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데일리 메일.

"동화 더비라는 이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선수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 또한 동화 더비라는 이름이 붙으니 더 의욕을 보이고 있고요. 더비 경기에는 그런 매력이 있죠."

다음은 스카이스포츠.

"지난 시즌에 강등권 팀에서 득점 랭킹 3위를 달성하고 빅클럽들과의 경쟁 끝에 레스터시티로 무려 8,000만 파운드에 이적한 제롬 랜돌프를 상대할 비책은 마련하셨나요?"

"훌륭한 공격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준비했습니다."

ESPN.

"이 동화 더비가 앞으로도 더비로 정착하게 될까요?"

"그랬으면 좋겠군요. 라이벌이 많다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거든요."

그리고 가십 기사로 악명높은 더썬도 있었다.

"레스터시티는 지난 시즌까지 수석코치에 머무르던 제이미 바디 감독을 내세우며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했는데요. 오랜 경력자로서 바디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온갖 메이저 언론사들이 다 모여 있었다. 진짜 프리미어리그라는 실감이 들었다.

심지어는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한국의 기자들도 몇 보였다. 끝나고 와인이나 한 병씩 챙겨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부모님이 볼 수 있는 기사였으니까 잘 써달라고 부탁하려고.

아무튼, 언론사들이 다 모인 만큼 방금 질문처럼 사소한 것도 다 물어보기 시작할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의 스포츠이자 엔터테인먼트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기자들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감독이나 선수들을 화나게 만들기도 하고, 저급한 질문을 던지기도 할 것이다.

나는 잭슨이 이 질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봤다.

"제 경력이 길어봤자 1부리그는 처음입니다. 저나 그나 똑같은 신입일 뿐인 거죠."

잭슨의 능숙한 인터뷰 스킬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조언이라도 했으면 <건방진 잭슨>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든가 바디 감독과 인터뷰할 때 잭슨의 말을 비꼬는 식으로 전달해 둘 사이를 이간질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인 만큼 그 파급력은 전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또, 팀 레전드 선수가 1부리그 감독부터 시작해 업적을 쌓은 사례가 몇 가지 있습니다. 펩 과르디올라나 지네딘 지단처럼 말이죠. 저는 레스터시티의 동화를 이뤄낸 주인공이자 레전드인 제이미 바디 감독이 그런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인터뷰는 최대한 겸손하게 하는 게 조금 재미없더라도 좋았다. 잭슨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띄워주는 인터뷰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골닷컴의 기자가 손을 들었다.

"킴 단장님이 최근 '3년 만에 리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겠다.'라고 팬과 약속했는데요.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이 질문이 나오자마자 나는 얼굴을 가렸다. 내가 뒤에 있다는 걸 기자들이 알았기 때문에 다들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밖을 보니 잭슨도 날 보고 있었다.

잭슨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기자들이 다시 잭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킴이 그러겠다고 했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혹은, 더 빨리 목표를 이룰지도 모르고요."

나는 눈동자를 크게 떴다. 3년에서 더 단축이라니. 인터뷰 판을 더 키우고 있는 잭슨이였다.

기자가 다시 한번 손을 들고 물었다.

"단장님을 많이 믿으시나 봅니다."

"당연합니다. 은퇴하려던 저에게 '함께 전설을 만들어 봅시다.'라고 설득해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만들어 준 분인데요."

"오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망설임 없이 기자회견장에서 도망쳤다.

기자들의 표적이 되기에는 준비를 안 해 왔으니까. 밖에서 들으니 내 얘기를 한참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기자회견 마지막 질문을 시작한다고 직원이 알려줘 회견장으로 몰래 돌아왔다.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미 선수들에게도 말했습니다만··· 프리미어리그 첫 경기니 무조건 자신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아뇨. 친선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몇 번 보여줬더라도 진짜 리그 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갈망과 집중력은 차원이 다를 거라고 주의를 줬습니다. 또, 큰 압박감을 느낄 수 있으니 잘 이겨낼 수 있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너희들이 잘 할 수 있게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잭슨도 조금 긴장되는지 말이 길었다.

다행히 잭슨은 마지막 인사를 할 때는 여유로운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럼, 경기장에서 뵙겠습니다."

< 53. 동화 더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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