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A매치데이 (3) >
"몇 년 뒤에는 저 자리에 당신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나는 이태양에 대해 서로 감탄을 늘어놓고 있는 세 명의 고등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셋이 설마···라고 말할 것 같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여러분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 드릴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몇 년 동안 쌓아왔거든요."
그리고 나는 전우진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지. 나는 이태양이 골을 넣으면 그에게 해줄 말을 준비해온 차였다. 꼭 정식 영입해야 할 선수였기에 호감도를 쌓아두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어리고 재능있는 선수가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까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우진 선수. 그때, 당신에게 유언비어를 말했다는 사람이 강민철이라는 공격수 맞죠?"
"아··· 네."
그도 스카우팅 리포트에 있었기에 스카우트 팀에 요청해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대회에서 득점 랭킹 2위를 했더군요. 전부 송민재 선수에게 밀려서요."
얘기를 듣던 송민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그런 성적 따윈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참고 정도만 할 뿐이죠. 저희가 보는 건 가능성입니다. 예를 들면 송민재 선수는 양발, 괜찮은 주력, 깔끔한 퍼스트 터치라는 기본기와 축구 지능이 좋아 보여 뽑았습니다. 두뇌로 축구 하는 선수들은 발전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리고 김율 선수는 어마어마한 연습량을 소화하는 거로 유명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경기 전체에 대한 이해도를 갖고 있었고, 훌륭한 패스 솜씨를 갖고 있어 뽑았습니다. 성실함을 본 거죠."
송민재는 기쁜 듯 웃었고, 김율은 우리 팀의 조사가 예상보다 꼼꼼해서 놀란 건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우진에게 말했다.
"전우진 선수는 긴 부상이 있긴 했지만, 피지컬과 기본기가 좋고··· 무엇보다, 루앙 선수 아시죠?"
"아, 네."
"우리 팀에는 월드컵이 시작하기 전부터 루앙 선수를 점찍어놓았던 유능한 스카우트가 하나 있어요. 그 스카우트가 전우진 선수를 찍었죠. 원래는 두 명만 뽑으려고 했었는데··· 전우진 선수를 보며 완성되지 않은 네스타를 보는 것 같다고 해서 안 뽑을 수 없었어요."
"오오, 대단한데요? 우진이 너 굉장한 놈이었구나."
대답한 건 송민재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모를 줄 알았는데 네스타라는 선수의 이름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전우진도 그런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전에 파견했던 계약 협상팀에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상할 때 이런 마음을 동할 말을 해줬더라면 지금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그렇게 대단한 가능성을 가진 전우진 선수를 귀찮게 만든 강민철은 전적으로 피지컬에만 의지하고, 기본기와 축구 지능은 하나도 단련하지 않은 프로에 데뷔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유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거죠. 그런 놈의 말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이겁니다."
더 자극적인 워딩을 사용할 수 있긴 했지만, 지양했다.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셋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우리 팀의 어린 선수들에게도 가끔 하는 말이었다.
"저는 유망한 사람들이 쓸데없는 유언비어에 휩쓸려 그 시기에 해야 할 걸 놓치는 걸 싫어해요. 여기 모인 세 명은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에요.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 말을 들으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하세요. 진짜 루머 같은 게 돈다면 우리 구단에서 처리해 줄 거예요. 선수는 축구를 잘하면 됩니다. 구단에서 원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알겠죠?"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이문국 기술위원장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제 경기나 즐기죠. 이태양 선수가 한 골 더 넣으면 좋겠네요."
*
"우진아. 안 자니?"
"응."
"출국 날까지 훈련 없다고 너무 늦게까지 하지는 마."
"알겠어요. 귤 고마워요."
콜롬비아와의 친선경기를 보고 집에 돌아온 전우진은 컴퓨터 앞에 붙어 있었다. 전우진의 어머니는 귤을 담은 접시를 컴퓨터 책상에 올려놓고 방을 빠져나갔다.
전우진은 모니터에 계속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올라온 스포츠 기사의 제목을 보며 어이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콜롬비아전 2골! 인맥 논란을 단숨에 잠재워버린 이태양]
전우진은 이 기사를 쓴 기자를 검색했다.
[인맥 논란 이태양, 김종학 감독은 해명해야 한다!]
"하."
진짜로 어이가 없었다. 오늘 기사의 댓글 또한 마찬가지였다.
BEST 1) 난 이태양이 이렇게 잘할 줄 알았음. 역시 김종학 감독님의 눈이 틀릴 리가 없지.
BEST 2) 이번 경기 MOM 축하합니다. 간만에 물건 하나 나왔네요. 이번 아시안컵도 우승할 수 있을 거 같네요 ^^
BEST 3) 벨기에 2부에서 썩기는 아까운 재능인 듯.
"아까까지만 해도 다 축구협회 해명해라, 감독 해명해라, 이태양은 적폐다 하시던 분들이···."
여론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전우진은 점점 깨닫고 있었다. 별의별 악성 댓글이 가득했었는데 이제 그런 댓글들은 전부 비추천을 맞거나 심지어 신고까지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루머는 어차피 곧 사라질 거예요. 이태양 선수가 머지않아 실력으로 증명할 테니까요.'
전우진은 김도운의 말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축구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경기를 뒤집는 이태양의 두 번째 골]
단순한 제목이었지만, 커뮤니티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글이었다. 아마 가장 빨리 움짤을 만들어 올린 글일 것이다.
전우진은 글을 클릭했다.
베테랑 스트라이커 석대호가 상대 공격진 근처에서 공을 잡고 드리블하며 지켰고, 이태양이 갑자기 급가속하며 석대호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는 장면이 나왔다.
이 골이 정말 대단한 이유는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의 공간이 정말 좁았는데도 이태양이 순간 가속도로 슈팅할 시간을 만들어 낸 점이었다.
댓글 또한 감탄 일색이었다.
-미친 저게 뭐야
-산체스(콜롬비아 중앙수비수) 중앙수비수중에 가장 빠른 편 아니냐? 뭔 느림보가 다 됐네.
└이태양이 비인간적으로 빠름. 오늘 최고속도 시속 39km였다고 기사도 나왔더라
└└코리안 월콧 ㅅㅅ
└└└베일이라고 해라. 어딜 개집이.
└└└└뭐? 너 닭집 놈이지.
-다들 스프린트에 빠져서 못 보고 있는데 아웃프론트 킥으로 구석에 꽂은 거임. 기술도 있네.
얘가 왜 벨기에 2부에서 썩고 있냐?
└안 그래도 오늘 경기 끝나자마자 이적설도 몇 개 떴더라. 독일 1부 리그 팀 스카우트가 경기 보러 왔다가 깜짝 놀라면서 구단에 전화했대
└└그걸 어떻게 앎?
└└└축구 관계자들 모여있는 곳에서 그랬다더라. 기사도 났음 ㅋㅋㅋ 얼마나 놀랐으면···
스포츠 기사란보다 더 강렬하게 이태양을 깠던 게 축구 커뮤니티들이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여론은 전부 뒤집혀 있었다. 오히려 인맥 논란을 갖고 드립을 치며 놀고 있었다.
두 번째 베스트 글은 김종학 감독에 대한 내용이었다.
[??? : 이태양을 인맥으로 데려왔다고요?]
(김종학 감독이 인터뷰하는 사진)
"맞습니다. 제가 인맥으로 빌어서 데려왔습니다. 뭐, 불만 있습니까?"
-아뇨!!! 사랑합니다!
-외쳐 갓종학!!!
-믿고 있었습니다 갓동님 ㅠㅠ
그리고 세 번째 베스트 글은 이미 한국 축구 팬에게 널리 알려진 김도운 단장의 사진이 있었다.
[??? : 제가 인맥으로 이태양 선수를 넣었다고요?]
(비행기에 타기 전 김도운이 손을 흔드는 모습)
"다시 데려갈까요?"
-죄송합니다 ㅠㅠㅜㅜ
-이제 안 그럴게요...
-몇 명 더 키워주십쇼. 단장님! 앞으로 노팅엄만 응원하겠습니다. 맨유랑 경기할때만 빼고
└맹구 ㅎㅇ
└└ㅗ
-축협이랑 해외 유학 프로젝트도 협약했다던데, 우리나라 유망주도 많이 키워줄 듯. 적어도 저 팀 가면 동양인이 인종차별 당하지는 않을 거 아녀 ㅋㅋ
└오 그러네 ㅁㅊㄷㅁㅊㅇ
└└매국태와는 차원이 다른 그저 빛빛빛
물론, 아직도 인맥 축구 OUT을 외치는 유저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비추천 폭탄을 받으며
-ㅂㅅ
-어그로 먹이금지
-근거 없는 헛소리하지 마셈
-잘 나가는 선수 질투 ㄴㄴ
-너나 OUT!
등의 댓글을 받고 글 자체가 묻혀버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태도가 바뀐 걸 보니 왠지 모르게 허무했다. 자신이 왜 그렇게 열을 올렸었는지··· 멍청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강민철이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노팅엄에서 자리를 잡으면 강민철의 비난도 아무 의미가 없어질 거니까.
무엇보다 이태양을 군대에서 뽑아갔던 김도운의 팀 노팅엄이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던 수비수인 네스타를 닮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전우진은 빨리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었고, 아버지가 자신을 슬쩍 바라보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영화를 보고 계신 모양이었다.
"우진아 벌써 자냐?"
"응. 내일 아침에 훈련할 거야."
아버지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전우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훈련 없잖아."
"혼자라도 열심히 해야지. 러닝도 하고, 패스도 연습할 거야. 이 나이에 다신 없을 기회잖아. 시간을 아껴 써야지."
"뭐?"
아버지가 이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뭐가 웃기냐고 전우진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기특한 얼굴로 전우진을 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 열심히 해라."
*
"우와···."
전우진, 김율, 송민재와 김도운은 비행기의 비즈니스 석에 앉아 있었다.
송민재의 감탄을 들으며 전우진은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국의 두 번째 친선경기시간과 비행기 탑승 수속 시간과 애매하게 겹치는 바람에 경기 내용을 지금에야 확인하는 거였다.
멕시코를 이겼다는 것과 이태양 선수가 골을 넣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짧은 영상이라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암··· 저는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한숨 잘게요. 다들 필요한 거 있으면 승무원분들께 부탁하세요."
"네."
셋이 합창하는 걸 본 김도운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안대를 쓰고 의자에 몸을 푹 기댔다.
"얘들아. 가서 잘 해보자."
송민재의 힘찬 말에 김율과 전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율은 김도운 옆에 송민재는 전우진 옆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송민재는 전우진의 스마트폰을 보며 물었다.
"뭐 봐?"
"오늘 국가대표 경기 기사 읽어보는 중이야."
"오, 같이 보자."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이태양 선수의 인터뷰가 담겨있는 기사를 찾았다.
"승객 여러분. 곧 스마트폰을 꺼 주시거나 비행 모드로 전환해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승무원의 말에 둘은 조급해졌다. 전우진이 말했다.
"인터뷰 볼까, 하이라이트 볼까···?"
"우리 선배 영상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오늘도 잘하셨나 봐. 한 골 넣었다고 적혀있네."
"오케이."
인터뷰는 1분가량의 짧은 영상에 담겨있었다.
기자 1 : 지난 경기에 이어 오늘 경기에서도 활약하셨는데요. 국가대표팀에 더 익숙해지신 건가요?
이태양 : 처음부터 긴장은 안 했습니다. 그냥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기자 2 : 지난 경기 활약에 분데스리가(독일 1부 리그)의 두 팀이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고, 겨울 이적시장에 움직일 거라고 합니다. 이적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태양은 벨기에 2부리그에서 이번 시즌을 다 보내야 워크퍼밋을 받아 노팅엄에서 뛸 수 있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는 이태양도 바로 뛸 수 있는 리그였다.
전우진은 이태양이 당연히 원론적인, 그러니까 애매한 대답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태양 : 관심 없습니다. 저는 오직 노팅엄에서 뛰는 게 목표입니다.
기자들도 당황해서 조용해졌다. 남은 시즌도 수준이 낮은 벨기에 2부리그에서 뛰겠다는 말이었으니까. 분데스리가 팀들이 관심을 보인다는데도, 오직 노팅엄에서 뛰기 위해서.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다.
송민재는 멋있다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전우진은 신기해했다.
아무리 자신을 발굴해줬더라도 노팅엄이라는 팀이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반 시즌을 더 희생할 생각을 하는 걸까 싶어서.
"스마트폰 종료해주시거나 비행 모드로 전환 부탁드립니다. 곧 출발합니다."
전우진은 승무원의 말에 스마트폰을 껐다.
창가에 앉은 송민재는 창밖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우진은 눈을 감았다.
전우진은 노팅엄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까, 자신도 이태양처럼 노팅엄을 좋아하게 될까··· 노팅엄은 어떤 곳일까 기대하며 기내방송을 들었다.
-손님 여러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비행기는 런던의 히드로공항으로 지금 출발합니다. 좌석 벨트를 매셨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주십시오.
< 55. A매치데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