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노팅엄 테마파크 계획 (3) >
"저는, 아니 우리 UEFA는 노팅엄 테마파크에 투자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던 UEFA의 회장, 에드윈이 그렇게 말했다.
제임스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아주 놀라고 있었다. 에드윈이 더 말했다.
"그러니까 제임스. 노팅엄 테마파크 계획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축구리그들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그 유럽의 축구팀들과 국가대표팀을 관리하는 UEFA는 유럽 챔피언스 리그와 유로를 주관하는 FIFA 다음의 세력이었다. 아니, 어떨 때는 FIFA보다 UEFA가 입김이 더 셀 때도 있었다.
김도운도 UEFA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런 UEFA에서 먼저 노팅엄에게 관심이 있다 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계획서는 없지만! 도니··· 아니 킴 단장과 많이 의논해왔기 때문에 내용은 다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천천히 말해주시죠. 아까 우리 커머셜 디렉터에게 말씀하셨던 내용과 중복돼도 좋으니 최대한 정확히 듣고 싶습니다. 이 자리가 끝나면 계획서도 받아보고 싶고요."
"얼마든지요. 그럼···."
제임스는 김도운이 부임할 때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었다.
그 시절부터 김도운은 노팅엄 FC라는 구단을 테마파크화 하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김도운은 첫 시즌부터 전 세계의 요리사들과 노팅엄의 실력자들을 모아 <노팅엄 푸드 리그>를 열어 <노팅엄 푸드 코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길거리 공연가들에게 자신들의 실력을 뽐낼 기회를 만들어줬다.
처음에는 시들했지만, 지역 서포터즈와 연계되기 시작하며 규모가 커지고 지금은 각종 장기를 가진 공연가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장소가 됐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이 늘어났고, 노팅엄시의 시장이 경기장 근처에서 열릴 지경에 이르렀다.
경기장 근처의 부지를 빌려 노팅엄 FC의 구역을 넓힐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킴 단장이 진행한 프로젝트들은 팀이 승승장구함에 따라 더 큰 효과를 봤고, 자연스럽게 관광객이 정말 많아지게 됐죠. 이제는 지금 마련한 공간으로도 관광객을 다 수용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킴 단장은 테마파크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렇군요."
제임스는 김도운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말을 추가했다.
"그리고 킴 단장은 우리가 1부리그에 너무 빨리 올라왔기 때문에 이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제는 팀의 성적에만 기댈 때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에드윈은 보지도 않은 김도운의 말을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1부리그, 그것도 프리미어리그라면 더 이상의 동화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죠."
"예. 꾸준히 모이는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팬으로 만들고, 우리는 돈을 얻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더라고요. 빅클럽은 어느 정도 성적만 유지된다면 팬들과 돈이 만드는 거라고요."
"재미있는 말이군요. 킴 단장을 꼭 만나보고 싶어요."
"전달할게요."
제임스는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차가 없었다. 얘기하면서 다 마셔버린 것이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제임스는 생각에 잠긴듯한 에드윈을 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할 말을 다 해 버려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에드윈이 말했다.
"사실 노팅엄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노팅엄은 최근 몇 년 동안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으니까요."
"···대단한 승격이었죠?"
"3연속 승격도 대단하지만, 저는 운영 쪽을 봤습니다. 최근 3년간 노팅엄보다 팬이 많이 늘어난 구단은 전 세계에 단 한 팀도 없습니다. 스폰서의 숫자와 규모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 최고죠. 또, 노팅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닙니까? 지역과의 완벽한 결합이야말로 모든 클럽이 추구하는 방향인데, 그걸 빅클럽이 되기도 전에 해냈어요."
"···감사합니다."
에드윈의 평가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노팅엄에 대해 많이 알아본 것 같다고 제임스는 생각했다.
"최근 UEFA에서 스포츠 경영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노팅엄 FC를 사례로 가져옵니다. 또, 스포츠 경영학을 배우는 젊은 지망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구단이 노팅엄 FC입니다. 그런 환경이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알아보게 되더군요."
"아··· 그렇군요."
"그럼 다시 투자 얘길 해 보죠. 저는 말입니다··· 노팅엄에 UEFA의 축구 박물관을 세우고 싶습니다."
"예?"
"축구 테마파크라고 하지 않았나요? 박물관은 계획에 없는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닌데···."
당연히 원하는데 그 제안이 UEFA의 회장에게서 먼저 나온 게 놀라웠다. 김도운과의 대화에서도 2차 공사 때 제안할 거라고 했었으니까.
제임스는 계획에는 있었으나 UEFA와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할 것 같아서 다음 공사 때 제안할 거였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렇게 물었다.
"그 박물관에 관해 설명을 더 해 주실 수 있나요?"
에드윈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다.
"챔피언스 리그, 유로 박물관을 노팅엄에 세우고 싶습니다. 포르투갈에 이미 박물관이 하나 있긴 하지만, 제 목적은 유럽 5대 리그를 형성하고 있는 국가들에 박물관을 전부 세우는 거거든요. 그중 영국에 세울 박물관의 위치를 노팅엄시로 하고 싶은 겁니다."
챔피언스 리그와 유로. 월드컵 바로 다음가는 규모의 두 대회의 이름에 제임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도 이유를 캐묻는 건 잊지 않았다.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을 두고요?"
"수익을 비롯한 여러 외부 요소를 따져봤습니다. 맨체스터에는 이미 국립 축구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런던은 각 빅클럽들마다 박물관을 갖고 있고, 땅값도 너무 비쌉니다."
에드윈은 살짝 미소를 짓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리버풀과 이 노팅엄 중에 저울질했는데··· 오늘 테마파크 얘기까지 듣고 노팅엄으로 마음을 굳힌 겁니다."
제임스는 입을 다문 채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윈은 진심으로 노팅엄에 박물관을 세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권리만 주고 공사는 노팅엄에서 알아서 할 것인지, 아예 우리가 건물까지 투자할 것인지는 더 의논해봐야겠지만··· 아무튼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임스.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임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축구 테마파크에 박물관이 빠질 수는 없죠."
"역시 그렇죠? 그럼 바로 계획서를 보내주세요. 내부 논의도 바로 들어갈 수 있게."
에드윈의 말에 제임스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뭐?"
-잘 안 들렸어? UEFA에서 우리 테마파크에 박물관을 세우고 싶대!
"···제대로 들은 거였네."
UEFA에 자기 사업하러 간 제임스가 또 행운을 불러 왔다.
부지를 추가로 임대하고 다시 만든 계획서를 또 수정해야겠지만, 무척이나 행복한 고민이었다. 노팅엄이 대단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었다.
-당연히 찬성이지?
"응응."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머리를 굴렸다.
제임스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면 나는 그 행운을 현실화하고, 더 나은 기회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생각하니 금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돌아갈 테니까 축배를 들자!
"아니, 괜찮아. 돌아오지 마."
-응? 왜? 여기 오게?
제임스는 지금 스위스의 니옹이라는 도시에 있었다.
"니옹이 아니라 취리히로 갈 거야. 그다음에 거기로 들를게. 같이 압생트(Absinthe, 스위스의 대표 술)를 마시자."
-취리히는 왜?
"FIFA(국제 축구 연맹) 본부가 있는 곳이잖아."
챔피언스 리그, 유로 박물관이 테마파크에 들어온다면 월드컵도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욕심 많은 사람이니까.
-뭐?
제임스의 당황하는 목소리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FIFA 본부의 연락처를 찾았다.
*
"갑자기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급히 제안할 게 있어서요."
"스위스까지 날아올 정도로 급한 제안이 뭘까요?"
궁금해하는 표정이 사내의 얼굴에 드러났다. 그는 FIFA의 커머셜(상업, 광고) 부서 디렉터인 케빈이였다.
시간이 없다 하니 잡담은 넣어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우리 노팅엄에서 주변 부지를 이용해 축구 테마파크를 조성하려고 합니다."
"네."
"그 테마파크에 월드컵 박물관을 유치할 수 있을까 합니다."
"아···."
케빈이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 건 예상했기에 나는 바로 치고 나갔다.
"최근 1년간 유럽에서 가장 많이 여행객이 증가한 지역이 어딘지 아십니까?"
"예? 갑자기 그건 왜··· 아, 노팅엄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순수한 관광객 수는 유명 관광지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증가 폭이 압도적입니다. 저희 테마파크의 목표는 이 관광객들입니다."
케빈이 그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어서 이번 계획에 대해 쭉 설명했다. 케빈은 진지한 얼굴로 계속 끄덕이며 듣고, 가끔 내게 다시 질문도 하며 자신의 스마트폰에 메모하는 정성도 보여줬다.
그리고 내 얘기가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나는 준비한 결정타를 날렸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유로 박물관은 있는데 월드컵 박물관만 없으면 아쉬울 것 같거든요."
"···예? 챔피언스 리그, 유로 박물관이요?"
"UEFA 측에서 먼저 제안을 해 왔거든요. 거의 협상 완료 단계까지 왔습니다."
케빈은 머리를 굴리는지 인상을 잔뜩 썼다. 그제야 나는 여유 있게 의자에 등을 기댈 수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유로 박물관이면 이미 있지 않나요? 진품을 옮겨오기 어려울 텐데···."
"진짜는 차근차근 채우면 되고, 일단 레플리카와 즐길 거리부터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팀의 메인스폰서는 VR 업계 1위인 엑스피아거든요. 최신 기술을 섞어 재미있는 박물관을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스위스로 넘어오며 UEFA의 회장 에드윈과 얼추 정한 내용이었다.
케빈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리도 엑스피아와 협업할 수 있나요?"
"당연합니다."
"진품이 바로 필요한 것도 아니라···."
"예. 그리고 건설 비용을 우리가 댈 수도 있습니다."
FIFA에서 하는 투자가 적을수록 박물관 수입 자체가 우리에게 들어오니 좋았다.
이는 장기적으로 FFP(재정적 페어플레이 룰)를 여유롭게 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든든한 자금줄이 될 수도 있으니까.
"UEFA와는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요?"
"딱 절반만 투자해주기로 했습니다."
"흐음···."
케빈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얼굴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케빈이 말했다.
"좋아요. 빠르게 검토해보죠. 금방 연락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와 악수했다.
*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노팅엄시의 시장, 칼럼이 새 계획서를 받아든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시장은 계속해서 계획서를 읽고 또 읽었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여러 크기의 축구장 몇 개와 가장 큰 축구장을 야외 응원장 정도로만 활용할 수 있는 구역을 조성하려고 했었다. 거기에 다목적 건물 달랑 하나 붙여서.
하지만, 지금은 쇼핑센터에 챔피언스 리그, 유로, 월드컵 박물관까지 유치하게 됐고, 대형 축구장은 최신 시설이 집약된 5,000명가량의 진짜 경기장 형태를 띠게 됐으며 기념품 판매점 정도로만 쓰려고 했던 다목적 건물에는 프로 선수들이 하는 최첨단 훈련 체험장을 비롯한 각종 체험시설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실내 풋살장은 덤이었다.
투자하는 곳이 여러 개라 디자인적 통일성은 없겠지만, 축구라는 테마로 이어져 있으니 상관없었다. 구역만 확실하게 나누면 될 테니까.
나는 눈을 떼지 못하는 시장에게 당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빨리 허가해 주실 수 있죠?"
테마파크 등을 건설할 때, 큰 문제 중 하나는 지역민들의 동의와 시를 포함한 정부의 허가였다.
기업이나 축구팀들은 이 단계에서 몸살을 많이 겪는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노팅엄시의 시장을 비롯한 시민들이 전부 우리 편이었다.
내가 제출한 계획서에는 시민들의 동의서도 포함돼 있었다.
시장은 얼마가 기쁜 건지 어깨를 살짝 떨었다.
"노팅엄시 인구가 얼마나 늘지 감도 안 잡히는군요."
시장의 말에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잠시 후, 한참 계획서를 보던 시장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 안으로 공사에 들어갈 수 있게 서두르겠습니다."
노팅엄 테마파크 계획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 56. 노팅엄 테마파크 계획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