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13번째 선수 (1) >
전우진은 송민재의 라커 안을 보며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전우진이 뒤에서 그런 얼굴을 하는 걸 모르는 송민재는 자신의 라커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전우진이 물었다.
"그렇게 좋아? 기어코 노팅엄 시절 유니폼까지 채워놨네."
"당연하지.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선수가 뛰었던 팀에 왔는데."
노팅엄은 선수들이 각자의 라커를 알아서 꾸미게 두는 편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각자의 성격이나 취향 등을 라커에 드러내곤 했다. 그건 유소년 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외 유학 프로젝트로 한국에서 건너온 셋도 라커를 배정받은 지 시간이 꽤 흘렀기에 그들의 라커들은 전부 다른 모습이었다.
전우진의 라커는 지저분했고, 김율의 라커는 마치 군인의 관물대처럼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으며 지금 얘기하는 송민재의 라커는 송민재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칼 슈나이더'에 대한 물건으로 채워져 있었다.
"노팅엄이 4부에 있을 때 에이스였다고 했지?"
"응. 진짜 멋있지 않냐. 딱 한 시즌 동안 승격시키고 빅클럽으로 떠나서 에이스 자리를 꿰찬 거잖아. 플레이 스타일도 얼마나 화려해? 최소한의 드리블로 가장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골도 잘 넣잖아. 한국에서부터 칼 영상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었어."
송민재의 재잘거림을 가만히 듣던 전우진이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너 공격수잖아. 칼은 오른쪽 윙 아니야?"
전우진의 물음에 송민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너 분데스리가 안 보지?"
"프리미어리그 보기도 바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송민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에는 윙으로 뛰었지만, 지금은 윙이랑 스트라이커 자리를 넘나들며 뛰고 있다고. 두 개 다 수준급이라서 지난 시즌 전반기에는 오른쪽 윙으로 리그 베스트 11에 들었고, 후반기에는 스트라이커로 리그 베스트 11에 들었어."
"대단하긴 하네."
이 정도로 좋아하는 티를 내니 전우진은 할 말이 없어 짧게 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우진은 대충 걸치고 있던 훈련복을 제대로 입고, 옆에 앉아서 한마디도 않고 책을 읽고 있는 김율에게 말을 걸었다.
"미쳤다. 미쳤어. 원서를 보냐? 역시 전교 1등 출신은 달라."
"오오, 정말이네. 역시 율느님이야."
송민재도 끼어들었다.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노는 거였다. 노팅엄에 온 지 몇 주 안 됐지만, 숙소 외에는 늘 같이 생활하는 셋이었기에 금세 친해져 있었다.
김율이 한숨을 내쉬며 둘을 무시했고, 전우진과 송민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때였다. 드레싱룸의 문이 열렸다.
전우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훈련 시작하기 한 시간 반 전이였다. 오늘은 영어수업이 없는 날이었기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일찍 모인 거였다.
그러니까, 다른 선수들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이들이 함께 훈련하는 U18 팀의 실세인 잭, 조, 존, 레오 4인방이었다.
전우진은 긴장했다. 왜냐면···.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율느님. 살려주세요."
아직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었다. 전우진은 어학당에서 가장 못 했다. 얼마나 못했냐면 어학당의 연락을 받은 구단에서 영어 가정교사를 따로 붙여줄 정도였다.
김율이 책을 덮고 일어나 전우진의 옆에 와서 통역을 시작했다.
"잭이 '너희가 오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는 걸 들었다. 도와주고 싶다. 같이 하자.' 라는데?"
"당연히 좋지··· 그런 말이었으면 좀 웃으면서 하지 왜 그렇게 험악한 인상으로 있는 거래."
"그것도 통역해줘?"
"미쳤어?"
김율은 전우진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옅게 웃고, 다시 잭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던 송민재는 알아들으려 애썼지만, 들리는 건 단어 몇 개뿐이었다. 전우진은 동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한참 얘기하던 김율은 잭과 주먹 인사를 했고, 나머지 세 선수와도 했다.
전우진과 송민재도 얼결에 김율을 따라 넷과 인사했다.
"요약하면 '유소년 전용 웨이트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 기본적인 건 우리가 알려주겠다. 옷 갈아입을 테니까 기다려라. 같이 가자.'란다."
"얘네 보면 볼수록 진짜 착해···."
"인정."
이 넷이 하루 이틀 이러는 게 아니었다. 온 지 첫날에 연습경기를 하고 나서부터 계속 셋에게 시설 등을 직접 알려주며 잘해줬다. 심지어 이 넷은 실력도 압도적이었다. 유소년 리그 경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유망주로 유명한 아스날의 유소년들을 넷
이 박살 내는 걸 보고 정말 감명받기도 했었다.
전우진은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라도 영어를 빨리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송민재와 김율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르유르율~."
"이름 똑바로 불러."
"역시 너밖에 없어. 우리의 통역가 율느님."
"미친놈아, 으아. 달라붙지 마!"
전우진은 둘의 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텃세도 없고, 영어만 빼면 더 재밌고 수준 높은 곳에서 축구를 배울 수 있었으니까.
그때, 가장 먼저 옷을 갈아입고 온 잘생긴 선수, 레오가 김율에게 무어라 말했다.
김율이 고개를 끄덕이고, 전우진과 송민재에게 말했다.
"'어제 알피 감독님이 성인팀이랑 같이 훈련하는 날이라고 한 거 기억하냐고, 힘 너무 빼지 말고 적당히 해야 해.'라고 말하네."
"아이 언더스탠드. 땡큐."
전우진의 어색한 발음에도 레오는 비웃음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성인팀이랑 하는 훈련이라니 정말 기대된다. 무슨 훈련을 할까?"
송민재의 말을 들으며 전우진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우리 팀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뭔 개소리야."
할리의 투정에 로드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할리는 기죽지 않고 당당히 의견을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정이 이럴 수가 없잖아."
라이언과 테디가 옆에서 웃었고, 로드는 할 말이 없어져 다음 경기 상대가 적혀있는 전술 지시 판을 바라보았다.
[리버풀]
끔찍한 일정이긴 했다. 노팅엄은 두 경기 전까지만 해도 리그 3위까지 올라갔었는데, 우승 경쟁을 하는 맨시티와 뉴캐슬을 연달아 만나며 6위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리버풀도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이었다. 경기까지 아직 5일이나 남아있는데도 로드는 괜히 긴장됐다.
로드가 그러든 말든 할리는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망했어··· 세자르가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단 말이야."
"왜?"
"내가 조금, 아주 조오금 놀려서."
"뭐라고 놀렸는데?"
테디의 물음에 할리가 갸웃하며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물었다.
"아니, 세자르는 클롭 감독이 불러서 간 거잖아. 근데 그 클롭 감독이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리버풀이랑 계약을 해지하고 독일대표팀을 맡는다고 떠났잖아?"
"그랬지."
라이언이 할리의 물음에 대답해줬다. 할리는 자신을 항변하듯 열심히 말했다.
"그래서 세자르한테 '사기당했대요. 에베베.' 하면서 놀렸거든?"
"미친놈."
"야이씨. 이번에 지면 다 너 때문이다."
"세자르가 이 갈고 나올 거 아냐."
선수들이 할리에게 야유하며 휴지 등을 집어 던졌고 할리는 물건들을 피하려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로드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로드도 국가대표팀에 있을 때 리버풀의 아놀드에게 감독 교체 얘길 직접 들었고, 리버풀이 이번 시즌 휘청할 줄 알았다.
그래서 세자르도 고생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클롭의 후임으로 온 감독이 리버풀을 2위로 이끌었으니까.
리버풀의 새 감독은 2000년대 리버풀 그 자체였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였다. 현역 시절 우승컵을 따내지 못한 한을 풀겠다는 듯 정말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모습을 시즌 시작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리버풀은 정말 무서운 팀이었다. 그리고 세자르는 지난 시즌 동료였다는 게 잊혀질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자르는 리그 14경기에서 13골을 집어넣으며 당당히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옛 동료에게 지는 건 참 찜찜한 기분을 낳았다. 지난 경기에서 테오의 어시스트에 이은 마카키스의 결승 골로 패배하고, 테오를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진 게 억울해서.
또 그런 기분을 느끼긴 싫었다. 그래서 로드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자자, 빨리 훈련장으로 나가자고. 이 시간에도 리버풀 놈들은 훈련하고 있을 거야. 우리, 3연패 하긴 싫잖아?"
이틀 전 경기를 치렀었기에 오늘은 한 시간 일찍 소집해 자율적으로 가벼운 훈련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코치들 몇 명만 회복 훈련을 도와주기로 했다.
정식 훈련은 한 시간 뒤였지만, 로드는 빨리 몸을 풀어 지난 경기를 잊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다른 선수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은 당연하게도 로드의 말을 듣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어. 캡틴. 이번 경기는 이겨보자."
**
"우리 감독님은 특별히 비싼 거로 사 왔어요."
"우우. 차별이다."
나는 코치들의 장난스러운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잭슨에게 벨기에에서 사 온 최고급 초콜릿 박스를 건넸다. ㄷ자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코치들의 자리에도 내가 선물한 고급 초콜릿 박스가 있었다.
우리는 맨시티, 뉴캐슬과의 경기에서 2연패를 했다. 비록 두 팀이 강팀이라지만, 분위기는 처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코치들은 더.
그래서 나는 그들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벨기에 출장을 간 김에 초콜릿 선물세트를 사 와서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좋은 소식도 전했다.
"좋은 소식 하나 더, 방금 토비에게 듣고 왔는데 우리 유소년 팀이 Tier 2까지 올랐어요. 이제 더 넓은 지역에서 유망주들을 수급할 수 있게 된 거죠."
유소년 아카데미 단장인 토비가 큰 성과를 냈다. 원래 Tier 4였던 우리 아카데미가 벌써 Tier 2가 된 것이다.
영국의 유소년 아카데미들은 이 Tier에 따라 권한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팀에 아주 좋은 일이었다.
코치들은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기에 다들 환호했다.
분위기가 좋아진 걸 보며 나는 미소를 짓고, 옆의 잭슨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지금 전술 회의하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어떤 전술로 나설지 아직 확실히 정하지 못해서요."
잭슨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리그 1, 2, 3위 팀과의 연전인데 그럴만했다. 코치들과 의논은 하지만, 다른 코치들의 조언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듣는 모습도 그가 고민이 많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잭슨이 걱정되기도 했고, 새 수석코치들을 비롯한 몇 코치들이 더 들어오고 전술 회의를 구경한 적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이렇게 물었다.
"그럼 구경 좀 해도 되죠? 한 마디도 안 할 거예요."
"당연히 되죠. 여기 앉으세요."
나는 테이블의 구석에 앉았다.
코치들은 딱히 격식 같은 것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먼저, 전력분석팀 팀장 알렉산더가 앞으로 나와 리버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길게 설명할 거 없습니다. 리그 2위고, 한 판만 더 이기면 뉴캐슬을 제치고 1위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승점이 1점밖에 차이 안 나니까요."
잭슨과 코치들이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산더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짧은 패스가 무척 많이 늘어났고, 점유율이 늘어났다는 그래프가 화면에 나왔다.
"제라드 감독은 그의 선수 시절과는 다르게 짧은 패스 위주의 점유 전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술을 통해 작년에 우리 팀에 있었던 머리 좋고 기술 좋았던 세자르를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만들어냈죠."
알렉산더는 순수하게 데이터와 영상을 기반으로 리버풀에 대한 분석을 늘어놓았다.
잭슨과 코치들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알렉산더의 발표가 끝나자 짧게 손뼉을 쳤다. 그리고 잭슨이 말했다.
"느린 템포, 짧은 패스 위주의 팀이라···. 나는 지금 두 가지 방안이 떠올라. 상대 템포를 무시하고 우리 스타일대로 웅크리고 있다가 반격하는 방법, 그리고 상대 템포 자체를 부숴 버리는 방법. 어느 쪽이 더 괜찮을 것 같나?"
잭슨의 말에 코치들은 조용히 있었다. 대답을 일부러 안 하는 건 아니고 아직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잭슨은 가장 평온한 얼굴로 있는 수석코치에게 말을 걸었다.
"로건,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감독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즌 자료를 간략하게 살펴봤는데 뉴캐슬만이 리버풀이 자기들 템포로 경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 시도했고, 나머지 팀들은 전부 리버풀의 템포를 통제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스타일대로 경기를 치렀습니다."
"리버풀을 이긴 건 뉴캐슬뿐이지. 그럼 자넨 리버풀이 원하는 대로 경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하자는 건가?"
"예. 뉴캐슬이 했던 대로 공을 뺏을 때마다 바로 골문 쪽으로 패스하는 식으로 템포를 올려 그들의 흐름대로 경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석코치의 말을 시작으로 다른 코치들도 입을 열었다.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전술 코치가 말했다.
"상대 템포를 뺏는 건 어느 정도 기량이 비슷하거나 압도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리버풀의 핵심 미드필더는 미카엘 퀴장스입니다. 우리 팀엔 이 정도 되는 선수가 없습니다. 잘못했다가는 역으로 얻어맞고 초반에 경기가 끝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미카엘 퀴장스는 무려 1억 2천만 파운드(약 1,837억 원)로 뮌헨에서 이적해 온 전성기 나이를 맞이한 플레이메이커였다.
퀴장스가 경기를 지휘하고, 뒤에서 로컬 보이 조 고메즈와 아놀드가 수비와 빌드업을 완벽하게 해낸다.
맨 앞에서는 세자르가 지능적인 플레이로 상대의 압박을 헤쳐내고 골을 넣는다.
이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돼 있었기에 리버풀이 2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루카와 라이언이 잘 해주고 있긴 하지만, 퀴장스와 경험 많은 케이타와 노장 헨더슨을 상대로 이기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코치들은 대부분 이런 의견을 냈다.
잭슨은 눈을 감고 의견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코치들이 아무리 부정적인 의견을 내도 결정권은 잭슨에게 있으니까.
"루카와 라이언만으로는 자네들 말대로 부족해. 그럼, 악셀까지 추가해서 3명의 중앙 미드필더로 경기에 임하면 어떻겠나? 원톱 스트라이커로는 둔한 미할리스가 아닌 민첩한 할리를 세워 전방위 압박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거지. 이 포지션과 선수 구성으로도 어렵겠나?"
코치들은 잭슨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는 하나둘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무너질 위험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 세자르가 발만 느렸다면 라인을 더 올려 확률을 올렸겠지만···."
"일단 가능성을 올려보려면 잔디 길이를 규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길게 유지하고, 물을 잔뜩 먹여 패스를 어렵게 만들면···."
"그것도 어려울 것 같은데."
잭슨은 침착한 얼굴로 그들이 의논하는 걸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조용히 있던 수석코치가 손을 들고 말했다.
"템포를 더 올릴 수 있는 변수를 하나 추가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다른 코치의 물음에 수석코치는 이렇게 답했다.
"데드볼 상황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면 템포를 확실히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13번째 선수··· 아니,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죠."
코치들은 수석코치의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갸웃했다.
그때, 알렉산더가 탄성을 질렀고 잭슨이 씩 웃었다.
잭슨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되겠군. 그렇게 하지."
방금까지도 코치들에게 질문하던 잭슨이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13번째 선수가 뭔지 진작 깨달았기에 그게 잘 될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
"너희가 우리의 13번째 선수로서 리버풀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잭슨의 앞에는 주근깨, 여드름, 보송보송한 피부를 가진 노팅엄의 유소년 선수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유소년 선수들은 어리벙벙한 얼굴로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잭슨이 말했다.
"볼 보이는 제대로 된 연습만 한다면 경기 템포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유소년 선수들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잭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스폰서 BM에서 지급해준 이동형 거대 TV에 영상을 틀었다.
공이 나가자마자 볼 보이들이 선수에게 던져주고, 선수는 그 공을 받아 바로 공격을 시도한다. 상대 선수는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의 공격에 우왕좌왕하다가 실점하거나 큰 위기를 맞는다.
모든 영상이 그런 내용이었다.
우리의 유소년 선수들도 자신들이 뭘 해야 할지 감을 잡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잭슨이 그들에게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해보겠나."
"네!"
유소년 선수들의 힘찬 함성이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
< 57. 13번째 선수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