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13번째 선수 (3) >
"끝났다!"
노팅엄의 전력분석실에서 막내 이민호가 큰 목소리로 업무의 끝을 알렸다.
알렉산더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퇴근하자."
"옙!"
이민호는 평소답지 않게 씩씩하게 답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무려 2개월 만의 정시퇴근이었기에 그럴 만했다.
이번 주 전력분석팀의 업무는 적은 편이었다. 리버풀을 비롯한 3주간의 상대 팀에 대한 분석은 진작 끝나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은 한 명의 직원인 김건혁은 짐을 싸지 않고 오히려 모니터에 눈을 갖다 대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이민호와 알렉산더의 대화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의 업무가 진작 끝난 걸 알고 있는 알렉산더가 김건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김건혁이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돌렸다.
"건, 퇴근 안 해?"
"저는 할 일이 남아있어서요. 두 사람 먼저 퇴근하세요."
"뭔데? 이번 주에 업무 별로 없잖아. 개인적인 일이야?"
"그게 말이죠···."
김건혁은 알렉산더와 이민호에게 천천히 낮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전우진을 비롯한 유소년 선수들을 내일 도와주기로 했다고.
"일이 없어지니 일을 창조해내다니···."
알렉산더가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쥐며 중얼거렸다. 이민호 또한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건혁이 어색하게 몇 번 웃고 말했다.
"어린애들이 눈에 밟혀서요. 아무튼, 먼저 퇴근하세요."
하지만, 알렉산더는 그 자리에서 한숨을 쉴 뿐이었고, 이민호는 몸을 숙여 김건혁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민호가 말했다.
"성인선수용 전술 자료네요? 이거 편집해서 애들 보여주려고요?"
이 자료는 성인팀의 신입 선수들을 위한 코치들의 교재 같은 거였다.
"응. 이것만큼 정리 잘 된 게 없잖아. 그냥 이거 좀 더 요약하고, 예시 영상 몇 개 붙여서 보여줄 거야. 오래 안 걸릴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퇴근해."
이민호는 고개를 젓더니 김건혁 옆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형, 제가 해야 할 거 정리해서 주세요. 저도 할래요."
"아니, 괜찮다니···."
"제가 형의 넓고 따뜻한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유소년 선수들을 위해서라는데 어떻게 안 도와드려요."
이어서 이민호와 김건혁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알렉산더도 다가왔다.
"줘 봐."
"알렉스도요?"
"우리는 정시퇴근할 팔자가 아닌가 보다··· 빨리 끝내고 다 같이 퇴근하자."
김건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전력분석팀장 알렉산더 샌더스다."
"와아아아!"
박수와 함께 큰 함성이 미디어 실을 가득 채웠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앞에 앉은 U18 유소년팀 선수들 전원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일을 키울 생각은 아니었다.
알렉산더는 그저 전력분석팀에 소속된 김건혁이 유소년 선수를 코칭 하는 거나 다름없게 됐기에 유소년 팀 감독 알피에게 양해를 좀 구하려고 전화했을 뿐이었다.
더해서 알렉산더도 유소년 선수들에게 설명하는 걸 선수 시점에서 도와준다고 말했고.
그런데, 전화기 너머의 알피는 옆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옆의 누군가의 정체는 유소년 단장 토비였다.
토비는 알피와 함께 전력분석실로 찾아와 부탁 하나를 했다.
'다른 유소년들도 함께 들을 순 없을까요? 팀의 레전드이자 성인팀 전력분석관인 알렉스가 강의를 해주면 유소년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알렉산더는 당연하게도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 토비의 말빨에 넘어가고 말았다.
'원래 하려고 했던 걸 하면 돼요. 그저 듣는 사람의 숫자만 늘어날 뿐이잖아요.'
메인 강의를 맡을 김건혁 또한 옆에 있다가 고개를 끄덕여버렸기에 결국 이런, 전술 강의라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자기소개를 한 알렉산더는 옆으로 물러났다.
김건혁이 강의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더는 속으로 한숨을 쉬다가도 눈을 똘망똘망 뜨고 있는 어린 선수들, 그러니까 노팅엄의 미래들을 보니 다시금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이 슬펐다.
이어서 이 일의 발단이 된 한국인 꼬마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꼬마라고 하기에는 다들 키가 컸지만, 김도운의 유소년 시절이 잠시 떠올랐다.
"외부의 전문가들은 우리 팀이 상대에 맞춰 수많은 전술을 사용한다고 해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벌써 어려워할 필요 없어요. 우리 팀의 다양한 전술은 두 가지 운영법을 중심으로 자잘한 부분 전술만 바뀌는 거거든요."
김건혁은 <우리가 공격을 해야 하는 경기의 운영법>과 <우리가 수비를 해야 하는 경기의 운영법>이라는 두 가지의 운영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모두 <우리가 공격을 해야 하는 경기의 운영법>을 사용할 때는 강한 압박과 느린 템포의 전개를 생각하며 뛰고, <우리가 수비를 해야 하는 경기의 운영법>을 사용할 때는 압박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빠른 템포의 역습전개를 늘 생각하며 뛴다.
이 두 개의 운영법을 기준으로 경기마다 핵심이 될 선수들 몇에게 상대 팀의 약점을 공략하는 특별한 부분 전술을 지시하는 게 바로 잭슨이 만들어놓은 체계였다.
"느린 템포에서 모든 선수는 위험한 시도를 아예 하지 않고, 안전한 패스 위주로 상대 진영으로 천천히 전진해요. 빠른 템포 때는 가까이에 패스를 받을 선수가 있더라도 더 좋은 위치에서 공을 받을 선수가 있다면 과감한 패스를 시도하죠. 열한 명의 선수들이 이 점들을 명심하고 뛰었을 때, 느린 템포와 빠른 템포의 팀이 만들어지죠."
유소년 선수들은 벌써 머리가 아프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건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고 말했다.
"여러분은 이미 이게 뭔지 알아요. 말로 설명하니까 헷갈리는 거죠."
노팅엄의 유소년팀은 성인팀과 같은 기본 전술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소년 선수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말이 너무 길었네요. 영상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김건혁은 준비해온 자료를 화면에 하나하나 띄우며 간단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다음 리버풀전에서 우리가 공을 잡는다면 빠른 템포로 공격해야 할 거다. 그때, 이 세 명의 선수 중 어떤 선수가 주로 패스하게 될까?"
알렉산더는 영상자료를 끄고, 축구장을 축소해놓은 보드판과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자석 말들을 가져왔다.
알렉산더는 지금 로드, 라이언, 루카의 이름이 붙은 자석 말을 보드판에서 움직여 보이며 묻고 있었다.
한발 늦게 김율에게 통역을 전해 들은 전우진은 바로 생각에 잠겼다.
다른 유소년 선수들이 로드, 라이언, 루카의 이름을 차례로 말했다.
전우진은 그 모습들을 보다가 김율에게 말했다.
"셋 다 아니야? 패스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줘야 할 거 같은데."
"오, 그건가? 나 말한다?"
"김율, 출동!"
전우진의 장난스러운 말에 이어 김율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알렉산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멈췄던 말을 다시 시작했다.
"맞다. 선수 하나만 생각하고 있으면 전개가 꼬인다. 빠른 템포라는 건 보통 정도의 정확도만 있다면 속도를 우선시하는 거다. 그래도 전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패스 능력이 가장 좋은 루카에게 주는 게 맞겠지.
하지만, 실전은 그렇지 않으니 세 선수 중 무조건 빨리 패스할 수 있고, 마크가 없는 선수에게 줘야 한다. 이 셋 말고는 패스 능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니 되도록 패스하지 말아야 하고."
문제를 맞히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김율에게서 정답이라는 말을 들은 전우진은 헤실헤실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알렉산더는 선수들이 실전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일지에 대한 설명을 주로 해줬다.
전우진과 송민재는 김율 덕에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흐름을 생각하기 힘들면 일단 어떻게든 빨리 건네주면 된대. 어차피 우리 선수들이 알아서 할 거라고."
전우진은 김율의 통역을 전해 들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알렉산더와 딱 눈이 마주쳤다.
알렉산더는 전우진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우진아. 왜?"
"아니야···."
알렉산더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실제 프로선수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뛰고, 언제가 약점인지 설명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설명과 질문을 끝내고 유소년 선수들이 대답할 때마다 김율에게 설명을 듣는 전우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전우진은 알렉산더와 몇 번이나 눈을 마주쳤다.
전우진은 처음에 착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금세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알렉산더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건지 생각하는데, 어느새 강의가 끝났다.
전우진은 알렉산더가 자길 자꾸 쳐다본다고 김율과 송민재에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더 빨랐다.
"···전우진. [email protected]&*#@!*&$^."
알렉산더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걸 알았기에 전우진은 알렉산더를 보고 김율을 바라보았다. 김율 또한 당황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 부르는데? 같이 가 줄까?"
"응."
"난 여기서 기다릴게."
전우진은 송민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렉산더에게 다가갔다. 다른 유소년 선수들의 시선이 전우진에게 꽂혔다.
알렉산더는 김율에게 넌 가라는 제스쳐를 했다.
김율은 알렉산더에게 전우진이 영어를 못한다고 설명했다. 알렉산더는 단호한 목소리로 김율에게 말했다.
김율이 전우진에게 알렉산더가 한 말을 전했다.
"단어 하나하나 천천히 말해줄 거래. 스마트폰 써도 된대. 그러니까 일대일로 얘기하재. 길게 얘기 안 할 거니까 괜찮을 거래."
"그럼···."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자길 일대일로 보고 싶어 하는 이유를 몰랐기에 전우진은 고민에 잠겼다.
전우진은 알렉산더를 따라 옆의 작은 방으로 따라갔다.
'혹시 좋은 일 아닐까? 예를 들면 내 재능이 뛰어나서 바로 성인팀으로 가야 한다는···.'
전우진의 희망은 알렉산더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에 실망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실망했다 disappoint'라는 영어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우진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자 알렉산더는 단어 하나하나 끊어가며 말했다.
전우진은 스마트폰까지 동원해 알렉산더의 말을 해석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의 말은 <네 태도에 실망했다>였다.
알렉산더는 이어서 아주아주 긴 문장을 말했다. 냉정한 목소리로 한 문장씩.
오랜 시간에 걸쳐 다 해석한 결과 전우진은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킴 단장도 너처럼 우리 유소년 팀 출신이었다. 심지어 십 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여기에 왔지. 킴 단장은 축구를 괜찮게 하긴 했지만, 외국의 유소년 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축구도 다른 선수보다 훨씬 더 잘하려고 열심히 훈련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지.
그런데도, 킴 단장은 프로에 가지 못했다. 강의 내내 친구에게 도움받기만 하는 널 보니 갑자기 킴 단장 생각이 났다. 킴 단장은 네가 재능있는 선수라고 나한테 자랑까지 했는데, 친구에게 모든 걸 맡기는 네 태도는··· 뭐지? 적응할 생각은 있는 건가? 전우진, 넌 언어를 초월할 정도로 재능있는 선수인가?"
알렉산더는 전우진이 다 알아들었다는 말을 하자마자 할 말이 끝났다며 떠났다.
전우진은 한참 동안 그 방에 우두커니 있었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영어를 못하니까.
무엇 보다 말해봤자 말 그대로 '나름'일 뿐이었으니 알렉산더에게 무시당할 게 뻔했다.
그래서 전우진은 송민재와 김율이 찾아올 때까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날 내내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전우진은 다음 날부터 모든 생활방식을 바꿨다.
*
"안 도와줘도 돼."
"정말?"
"혼자 해 볼게."
장비관리사에게 축구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일이었다. 김율은 걱정했지만, 전우진은 당당하게 걸어 장비관리사에게 다가갔다.
전우진은 장비관리사 앞에 서면서 왜 자신이 영어가 금방 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가 무서웠던 거였다. 전우진은 중학대회 결승전에 진출했을 때 보다 더 긴장한 상태로 더듬더듬 말하며 손짓발짓을 시작했다.
전우진은 장비관리사가 비웃어도 할 말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자길 지켜보는 유소년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하지만, 장비관리사는 예상과는 다르게 전우진의 말과 손짓을 진지하게 바라봐주었다.
그리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우진을 배려했는지 천천히.
"빨간 축구화?"
전우진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관리사는 느릿느릿 계속 말했다.
어떻게든 알아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들으니 모르는 단어도 있었지만, 맥락이 이어지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름을 안 적어놔서 따로 빼뒀어. 바로 가져올게."
"고마워요."
장비관리사는 그렇게 밖으로 나갔고,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김율이 전우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우리 전우진이 많이 컸네."
"무슨 소리야."
왠지 모르게 뿌듯했기에 전우진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전우진은 같은 한국인인 김율과도 훈련장에서는 영어로 대화했다.
그리고, 앞으로 며칠 안 남은 볼 보이 임무를 위한 공부에도 애썼다. 과거 노팅엄이 강팀을 상대했을 때의 영상을 시간 날 때마다 돌려보며 빨리 던져줘야 할 때, 시간을 끌어야 할 때를 공부했다.
퇴근한 후에도 방에 들어가지 않고, 집주인과 이야기를 하려 애썼다. 그동안 방에 들어가서 말을 많이 못 붙였다고, 적극적으로 변한 게 보기 좋다고 집주인은 말해줬다.
그렇게 해도 남는 시간에는 내일 사용해볼 문장들을 수십 수백 번 읽어봤다.
다음 날도 비슷한 패턴으로 생활했다. 조금 힘들긴 했지만, 하루가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람찬 이틀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더 흐르고 볼 보이들의 위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 유소년 감독 알피가 전우진을 불렀다.
"전, 너는 여기를 맡게 될 거야."
알피가 가리킨 곳은 리버풀의 거센 공격이 이뤄질 노팅엄의 골대 진영 옆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우진은 결국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
"귀여운 녀석."
전우진이 일부러 공을 놓쳐 느리게 공을 전달해주자 리버풀의 주전 왼쪽 윙인 우드번이 말했다.
우드번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전우진은 자신이 경기에는 하등 영향 없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잠깐 생각하다가, 멀리 유소년 감독 알피가 엄지를 치켜드는 걸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경기가 시작한 지 35분째였다.
노팅엄은 슈팅을 단 두 개밖에 쏘지 못했고, 리버풀은 열 개의 슈팅을 쐈다.
0대 0으로 무승부라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팅엄은 리버풀에게 당하고 있었다.
리버풀의 선수들은 예상보다 공을 더 잘 지켰으며 노팅엄의 선수들은 공을 잘 빼앗지 못했다.
그래서 리버풀의 선수들은 볼 보이들이 뭘 하든 태평했다.
전우진은 그 모습을 보며 분함을 느꼈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공이 밖으로 날아오기 전에는 경기 전체를 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5분이 더 흘렀다.
"아···."
경기장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리버풀이 기어코 골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골을 넣은 건 지난 시즌 노팅엄에서 뛰었다는 세자르였다. 세자르는 세레머니를 하지 않고, 바로 자기 진영을 향해 걸어갔다.
전우진은 이럴 때야말로 상대 팀이 방심할 시기라고 집중해야 한다고 했던 알렉산더의 강의를 떠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3분 후, 그러니까 경기 종료가 2분 정도 남은 시점에 기회가 왔다.
노팅엄의 우측 수비수 한스가 리버풀의 우드번을 맞춰 공을 내보낸 것이었다.
전우진은 들고 있던 공을 앞의 한스와 살짝 앞의 테디에게 던져줄지 짧은 시간 고민했다.
쓰로인은 원래 나간 라인에서 던지는 게 원칙이지만, 어느 정도 통용되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디는 딱 그 정도 거리에 앞서 있었다.
연습했을 때는 테디에게 공을 주는 게 맞는 거였다. 리버풀의 선수들도 역습을 대비해 테디가 쓰로인을 던질 수 있는 선수들에게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전우진의 눈에 루카가 노마크로 서 있는 게 보였다. 한스에게 주면 바로 전달할 수 있는 위치였다.
알렉산더가 가능하면 루카에게 공을 줘야 한다고 말한 게 떠오르며 순식간에 손이 움직였다.
전우진은 한스에게 공을 던져주며 말했다.
"루카 비었어요!"
"오케이!"
두리번거리던 한스는 시원하게 답하며 바로 루카에게 공을 던졌다. 루카는 공을 받기 전 전방을 바라보고 한 번의 트래핑으로 공을 바닥에 멈춰뒀다. 그리고 바로 공을 앞으로 뻥 찼다.
"와아아아!"
전우진이 소리쳤다. 뒤의 관중들도 기대감에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리버풀의 수비수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기 시작할 할리가 루카의 패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수비진을 한 번에 뚫어낸 거였다.
상대 골키퍼는 앞으로 나오려다가 다시 뒤로 물러났다. 루카의 패스가 완벽히 할리와 골키퍼 중간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할리가 공을 잡았다. 일대일 찬스였다.
할리는 쏟아지는 큰 함성에도 골키퍼와 골대를 보며 침착하게 구석을 노려 찼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공은 골망을 흔들었다. 노팅엄의 동점골에 관중이 일시에 환호했다.
전우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골을 넣은 할리가 선수들과 함께 가벼운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전우진의 머리에 갑자기 손이 올려졌다.
"잘했어. 키 큰 꼬마."
쓰로인을 한 한스였다. 이어서 어시스트를 한 루카와 주장 로드가 한 마디씩 던져주고, 격하게 포옹해줬다.
"좋은 판단이었어."
"잘했어! 끝까지 집중 풀지 마!"
다들 흥분해서 단어 몇 개만 들렸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우진은 환하게 웃으며 노팅엄에 울려 퍼지는 할리의 응원가를 들었다.
최고의 기분이었다.
< 57. 13번째 선수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