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90화 (190/245)

< 58. 필드에서 가장 외로운 두 명 (1) >

"후이···? 좀··· 이상한 녀석이야."

2군 중앙수비수에게 2군 골키퍼 후이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뿐인데 바로 질색하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질문한 로드는 이렇게 물었다.

"뭐가 이상한데? 성질부리는 것 때문에? 그런 골키퍼는 흔하잖아."

로드는 후이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골키퍼 중에 1군 골키퍼를 제외한 나머지 골키퍼들에 관해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훈련 자체를 따로 받기도 하며 함께 훈련할 때는 보통 1군 골키퍼와만 합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이성을 쉽게 잃는다고 해야 하나··· 같이 경기하기 싫은 타입이지."

로드는 후이의 경기 모습들을 떠올려봤다. 연습경기 상대였을 때도 있었고, 2군 경기를 구경했던 적도 있었다.

여러 방면으로 지켜본 후이는 정말 재능있는 선수였다. 특히 선방만큼은 1군 골키퍼보다 훨씬 나았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베트남 리그에서 뛰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금세 팀에 자리를 잡았고, 1군 세컨 골키퍼 자리까지 올라와서 지금은 2군 리그에 출전하고 있었다.

2군 리그에서도 최고의 골키퍼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후이는 수비수들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잡아주는 스타일의 골키퍼였다.

아직 영어가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수비리딩은 선수들의 이름과 뒤로 물러나라, 앞으로 나가라 등 쉬운 단어만 사용하면 됐기에 두 달 전쯤부터 직접 한다고 코치들에게 건너 들었다.

처음에는 노팅엄의 전술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잭슨의 코치를 몇 번 받으니 금세 배워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평가가 좋을 줄 알았는데, 2군 중앙수비수는 후이가 실수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해 길길이 날뛴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짜 피곤할 정도라니까. 이겨도 기분이 찝찝할 정도야."

"그래?"

"근데, 후이에 대해서는 왜 물어봐?"

느닷없는 타이밍의 질문이었기에 로드는 솔직히 대답할 뻔하다가 미리 생각해놨던 적당한 변명을 말했다.

"감독님이 후보 선수들과도 친해지면 좋을 거라고 해서. 나 주장이잖아."

"그래? 후이는 경기 때만 빼면 괜찮은 녀석이니까 친해지긴 쉬울 거야."

후이에 관해 묻고 다니는 진짜 이유는··· 후이가 다음 주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데뷔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로드는 어제 훈련이 끝나고 잭슨에게 불려갔고, 후이를 선발로 기용할 거라는 얘길 들었다.

잭슨은 이유도 함께 설명해줬다.

지금 노팅엄은 평균 실점 1.4점으로 한 경기에 한 골은 무조건 먹힌다고 보면 됐다. 잭슨은 그 이유를 1군 주전 골키퍼 마르코스의 기량 문제로 본다고 말했다.

그래서 잭슨은 2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후이를 실험적으로 몇 주 정도 기용해보기로 했다고, 수비수들과 골키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니냐며 로드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로드는 잭슨이 자신에게 미리 선발 명단을 얘기해준 이유를 고민해봤고, 금세 결론을 내렸다.

후이와 합을 미리부터 맞추라는 뜻일 것이었다.

수비수와 골키퍼의 호흡은 정말로 중요하니까.

경기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로드는 2군 중앙수비수에게 인사했다.

"얘기해줘서 고마웠어."

"그래, 캡틴. 수고해."

앞으로 훈련 시작까지 50분가량이 남아있었다.

후이는 이 시간이면 피트니스 룸에서 가벼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곤 했었다. 로드는 바로 피트니스 룸으로 향했다.

*

"잘 부탁해. 캡틴."

후이의 짧은 인사를 들으며 로드는 미소를 지었다.

후이에게 '축하해. 너 오늘부터 1군 선수들이랑 훈련 한대.'를 독일어로 통역해준 한스 또한 후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로드는 후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스는 후이와 독일어로 몇 마디를 더 나눴다. 아마 이따 경기장에서 재밌게 해 보자는 식으로 농담을 건네고 있는 것 같았다. 한스의 말을 듣자마자 후이가 대답하며 둘이 크게 웃었기 때문이었다.

후이가 사용 가능한 언어는 베트남어와 독일어.

이 팀에서 독일어가 가능한 1군 선수는 한스밖에 없었기에 후이는 이적해온 날부터 한스와 친하게 지냈다.

같이 식사도 하는 사이라고 알고 있었다.

원래는 후이와 좀 더 얘길 나눠보고 싶었지만,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드는 한스를 향해 말했다.

"한스, 잠깐 얘기 좀 해요."

*

한스 슈테른베르크.

멋진 발음의 성과 평범한 이름의 조합을 가진 그는 노팅엄이 4부 리그 시절에 영입된 선수였다.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BEST 11인 칼, 루앙 때문에 최근에는 로테이션 선수가 된 요한과 함께 벨기에에서 데려온 김도운의 첫 영입 작품이었다.

한스는 어느 리그에서도 늘 중간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건 정말 굉장한 거였다. 4부 리그에서는 딱 4부 리그 중상위권의 플레이를 보여줬고, 현재의 프리미어리그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중상위권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매년 꾸준히 성장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슈퍼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기복도 없었다. 즉, 안정감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기에 잭슨은 4시즌 동안 한스를 주전으로 뽑았다. 로드 자신과 라이언, 루카만큼이나 꾸준히 말이다.

또한, 그는 생긴 게 딱 30대 아저씨 같아서 선수들이 아저씨라고 놀리곤 했지만, 성격이 워낙 좋아서 늘 허허 웃기만 했다.

그래서 한스는 작년에 로드가 주장직을 완전히 물려받았을 때, 노팅엄의 부주장으로 임명됐다. 선수 중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마치 동네 펍 주인 같은 푸근한 인상을 보며 로드가 물었다.

"아저씨. 후이는 어떤 선수야? 경기장에서 이성을 쉽게 잃는다는 말이 있던데···."

*

로드의 질문을 들은 한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로드가 진지한 얼굴로 얘기할 게 있다고 해서 당연히 주전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로드는 주장이었고, 자신은 부주장이었으니까.

왜 후이에 대해 물어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드가 하는 일이니 중요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스는 후이에 대해 어떻게 말해줘야 하는지 고민했다.

후이는 가끔 자신을 초대하고, 주변 이웃들과도 금세 친해질 정도로 좋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경기 때는 이상한 집착증세가 있었는데 바로

'한스, 난 상대 골키퍼보다 내가 못하는 상황을 도저히 못 참겠어요. 막 속에서 화가 나요.'

였다.

처음 이 말을 들은 건 후이가 노팅엄에 오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당연하게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한스 또한 상대 수비수보다 못하면 열 받을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10월에 2주가량 전술상의 이유로 경기에 못 나설 때 2군 리그를 뛰게 됐는데··· 그때, 후이의 말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함께 경기를 뛴 첫인상은 정말 좋았다.

후이는 적극적으로 수비수들의 위치를 지정해주는 골키퍼였다.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뒤로! 너무 앞으로 쏠렸어요."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됐는데도 긍정적인 말을 참 잘해준다고, 좋은 골키퍼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1실점을 하자마자 방금의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스, 너무 앞으로 간 거 같지 않나요?"

"공격수들 똑바로 안 해요? 뭐 하는 거예요?"

후이는 점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지기 시작하더니 노팅엄의 선수들이 변변한 공격을 못하고 얻어맞길 5분 정도 지나자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스! 뒤로! 뒤로! 오라고요!"

"하아아안스!"

"오버래핑하지 마요! 뭐 하는 거예요? 적 공격수가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만 노리는 거 안 보여요?"

한스는 '공격수니까 당연히 공격할 기회를 노리지···.'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후이가 수비수들에게 쉴 틈 없이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자기가 생각한 자리에서 벗어나면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한스는 경기가 잠깐 멈췄을 때 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후이, 침착해져 봐. 우리가 골을 넣으려면 내가 공격진영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단 말이야."

"하지만, 또 실점하면 어떡해요."

"날 믿어봐. 나 이래봬도 1군 선수다."

"좋아요. 조금 참아볼게요."

다행히 5분 뒤에 한스의 어시스트로 동점 골을 만들어냈고, 경기 종료 직전 2군 공격수가 골을 넣어 2:1로 이겼다.

동점 골이 들어갔을 때부터 후이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졌고, 신경질은 사라져있었다.

한스는 후이에게 지나치게 신경질적이었다고, 대체 왜 그랬냐고 이유를 물어봤다.

후이는 이렇게 답했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골키퍼만 잘하면 절대 지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상대 골키퍼보다 더 잘하면 지지 않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렇게 훈련했고, 베트남 리그에서도 그렇게 해서 최고의 자리를 지켰어요.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지고 있는 상황을 못 견디겠어요. 또, 수비가 못할 때 못 참겠어요."

골키퍼는 11명의 필드 플레이어 중 가장 특이한 포지션이었다.

손을 쓸 수 있다는 플레이적인 면도 그렇고, 실점했을 때의 책임감을 대부분 혼자 느낀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골키퍼로 대성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극도로 이타적인 사람이거나··· 마치 공격수들처럼 극도의 또라이 기질이 사람들이었다.

한스는 여러 스타일의 골키퍼를 만나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전설적인 선수 중에도 있었다. 2002 월드컵 야신상에 빛나는 올리버 칸도 무척 신경질적이고 험악한 사람이었다.

한스는 이 스타일이 노팅엄에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조언을 해 줬다.

"어떻게 된 건지는 이제 알겠지만, 명상하든 요가를 하든 해서 그 스타일은 고쳤으면 좋겠다. 우리 노팅엄 선수들은 네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거든."

"예···."

시무룩해진 후이에게 한스는 어깨동무하며 진심 어린 칭찬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네 선방능력이 마르코스보다 나아. 나는 너랑 같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싶다. 그러니까, 꼭 해내길 빌어주마."

그제야 후이는 작게 미소를 지었었다.

"네. 마음을 다스려 볼게요."

*

한스는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후이의 특이한 기질과 자신과 약속했다는 말까지 다.

"···이런 일이 있었어."

한스의 긴말이 끝났는데도 로드는 침묵했다.

로드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노팅엄의 수비라인은 로드가 컨트롤 하고 있었다. 1군 골키퍼인 마르코스는 수비라인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로드는 적당히 한두 마디 하면 자기가 권한을 다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질이 있다면 얘기가 달랐다.

이대로 경기에 나서면 로드와 후이의 스타일이 겹쳐 충돌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로드는 곧 잭슨이 이걸 모를 리가 없다는 걸 생각해냈다.

그제야 로드는 잭슨이 미리 말해준 진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리그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둘이 알아서 수비리딩을 할 선수를 정하라는 뜻이었다.

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이가 곧 리그에 선발로 출전할지도 몰라서요. 스타일을 미리 알아두고 싶었어요."

"정말이야?"

"네. 시기는 못 말해 드리지만, 부주장이니까 말해 드리는 거예요."

"잘 됐다··· 혹시 내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해. 통역은 내가 해줄게."

"늘 고마워요. 아저씨. 아니, 한스."

"하하. 그런데 후이가 잘할 수 있을까?"

로드는 잠깐 생각해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괜찮을 거예요."

**

"진짜 시끄럽네···."

로드는 한스와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아마 독일어를 쓰는 것 같았다. 로드 자신이 아닌 파트너 중앙수비수가 방금 실수한 걸 지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로드와 후이는 한 팀으로 연습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양 팀은 1군과 2군 선수들이 고르게 뒤섞여 있었기에 먼저 실점을 한 거였다.

한스가 로드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라이언도 후이 쪽을 대놓고 쳐다봤다. 적 팀 공격수인 미할리스도 그랬다.

경기마다 저런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다.

로드는 후이를 진정시키는 한스를 보며 대화가 안 된다면 실력으로 눌러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주장답게.

< 58. 필드에서 가장 외로운 두 명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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