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91화 (191/245)

< 58. 필드에서 가장 외로운 두 명 (2) >

어떻게 하면 몸에 익은 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강압적인 방법이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로드는 그래서 주장의 권위를 이용한 방식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로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갖고 있었다.

직접 더 좋은 걸 경험해보게 하는 것이다.

더 좋은 게 있는데 좋지 않은 방법을 계속 고집하는 사람은 어지간하면 없다. 만약, 후이가 그런 사람이라면 로드는 후이의 안 좋은 습관을 잡아주는 걸 포기하고 분위기를 망치는 걸 확실하게 막을 생각이었다. 주장의 역할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기에.

로드는 연습경기 사이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잭슨에게 걸어가 질문을 하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독님. 이번 주 내로 연습경기가 또 있나요?"

"내일 할 거다."

다행이었다. 로드는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을 건넸다.

"그럼 그때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내용만 괜찮다면 얼마든지. 괜히 연습경기가 아니니까. 그런데, 뭘 실험해 볼 거지?"

쉬는 시간에도 표정이 좋지 않은 후이 쪽을 로드가 슬쩍 바라보았다. 잭슨도 후이를 봤다.

"녀석과 내기를 해서 수비 리딩을 할 사람을 확실히 정하려고 합니다."

"내기?"

로드는 내기 내용을 설명했다. 잭슨은 왠지 모르게 흐뭇해 보이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재미있겠군."

그렇게 감독의 허가까지 받은 로드는 바로 필드로 돌아갔다. 로드가 들어가는 걸 본 코치가 다시 휘슬을 불었다.

연습경기가 재개됐다.

*

"캡틴! 좋아!"

후이의 목소리가 밝았다.

연습경기가 재개되고 얼마 안 있어서 로드가 코너킥에서 동점 골을 넣었고, 프리킥에서 역전 골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캡틴! 골 감각 미쳤잖아!"

"미할리스랑 자리 바꿔도 되겠는데?"

"할리는 무조건 후보네."

동료들이 이런 농담을 하는 와중에도 로드는 후이를 보고 있었다. 늘 저런 상태라면 참 좋을 텐데 싶었다.

잠시 후, 연습경기가 끝났다. 아예 훈련 자체가 끝난 거기도 해서 선수들은 각자 모여 스트레칭을 하거나 바로 드레싱룸으로 돌아갔다.

로드는 근처에 있던 한스를 불러 후이에게 향했다.

"한스, 이번 경기에서 네 태도는 잘못됐다고 전해줘."

한스가 후이에게 말했고, 후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로드를 보며 독일어로 되물었다.

다시 한스가 말했다.

"내 태도가 어때서? 란다."

"팀에 혼란을 끼쳤다. 노팅엄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챔피언스리그 경쟁을 하는 팀이고, 우리는 그 전술을 토대로 움직이고 있지. 그런데 너는 개인감정을 우선시해서 셰이(2군 중앙수비수)를 혼란스럽게 했어."

한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스는 성실하게 말을 전해줬다.

"지금부터 다른 말 없이 통역만 할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보이네."

"고마워요."

한스는 후이의 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정신 못 차리는 것 같아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전술이 어떻든 수비에 구멍이 나 있는데 그걸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나? 나는 내 방식에 확신이 있다."

로드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가 뛰던 리그는 베트남 리그잖아. 이곳은 축구가 탄생한 곳이자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라고. 베트남 리그를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차가 나지. 그런 데서 해온 수비 리딩이 우리가 해온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심으로?"

"처음에는 얘도 그렇게 생각했대.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경기들을 직접 관전하고, 함께 훈련을 해보며 깨달았대. 나보다 잘하는 골키퍼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금세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스가 한창 통역하고 있는데 후이가 한스의 어깨를 잡으며 로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 발음이 어색한 영어로 말했다.

"난 내 실력에 자신이 있다."

로드는 잠시 말을 잊었다.

재능있는 골키퍼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후이는 훈련에서 놀라운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엄청난 신체 능력으로 선방을 해내고, 킥 또한 수준급이었다.

정말 수준 낮은 리그에 있다가 최상위 리그에 와서 활약하는 일이 없던 건 아니었다.

로드는 과거가 어땠든 지금 그런 기량이라는 게 중요했다. 로드는 노팅엄을 위해서 후이가 팀에 잘 적응해 팀을 위해 뛰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번거로운 방법을 쓸지라도 노팅엄을 위해 뛰는 선수가 되어줬으면 했다.

그래서 마음 굳게 먹고 따끔하게 말했다.

"그래도, 수비 리딩만큼은 수준 이하야. 수비 리딩은 실점을 좀 감수하더라도 팀 전체의 흐름을 보고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너는 너 중심으로만 수비 리딩을 하고 있지."

한스에게 말을 전해 들은 후이의 표정이 구겨졌다.

수준 이하라는 말은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이 가장 납득하지 못하는 말이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후이가 무슨 말을 한스에게 늘어놓았지만, 로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연히 이해 못 할 거라고 예상했어. 그래서 말인데, 내일 연습경기에서 내 말이 옳다는 걸 증명해줄게. 방식은 간단해. 전반전은 수비수들이 온전히 네 리딩에 따를 거고, 후반전에는 내 리딩에 너도 따라. 내기에서 지는 쪽이 남은 시즌 동안 말을 잘 듣는 게 내 조건이야."

후이는 한스에게 로드의 선전포고를 전해 듣고, 질문 하나를 했다.

"수비수들은 어차피 네 말을 들을 거잖아. 불공평한 거 아냐? 라는데?"

로드가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인맥을 왜 써? 너랑 나랑은 아주 큰 수준 차이가 나는데?"

한스에게 말을 전해 들은 후이는 분개하며 내기를 받아들였다.

*

"한스! 뒤로요!"

"로드! 왼쪽 돌파 신경 쓰면서 물러나!"

로드를 비롯한 선수들은 정말로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 후이가 뭐라고 하든 전부 들어줬다.

연습경기는 전반전 30분, 후반전 30분만 치른다.

"5분 남았다!"

심판을 보는 코치의 말에 후이는 미소를 머금었다. 25분 내내 수비수들을 조종해서 슈팅을 딱 두 개밖에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후이는 나머지 5분도 잘 틀어막을 자신이 있었다.

'네 수비 리딩이 수준 이하래.'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찝찝했다. 한스에게 전해 들은 로드의 말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후이는 로드를 쳐다봤다. 로드는 여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이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남은 5분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로드와 한스가 후이에게 다가왔다. 후이는 미소를 지은 채로 한스의 통역을 기다렸다. 로드가 한스에게 말했고, 한스가 이어 말했다.

"너한테는 라인 올려, 물러나. 딱 이 두 가지만 말할 거래. 자기도 진심으로 경기에 임했으니까 너도 열심히 하라고 하고."

후이는 로드에게 직접 대답했다.

"알겠어."

*

후반전이 시작하고 불과 2분 만에 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이게 뭐야."

바짝 긴장했던 게 뭔가 싶을 정도로 로드의 리딩은 빈틈투성이였다.

후이는 방금 라인을 내리고 있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드는 평소보다 몇 미터나 더 위로 라인을 올렸고, 자신에게도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후이는 불쾌한 기분으로 동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는 미할리스를 바라보았다.

미할리스는 로드의 파트너 수비수인 셰이의 뒷공간으로 파고들어 몸싸움으로 셰이를 버텨내고 슈팅 각도를 좁히려는 후이의 머리 위로 칩샷을 시도해 선제골을 넣었다.

후이는 바로 로드에게 다가가 짧은 영어로 말했다.

"네가 졌어."

"아직 안 끝났어."

후이는 갸웃했지만, 로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계속 봐."

어차피 연습경기였기에 다른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평온한 얼굴들이었는데, 로드만큼은 진지했다. 후이는 그 얼굴을 보며 몸을 홱 돌려서 골대로 돌아갔다.

이어서 심판을 맡은 코치가 휘슬을 불었고, 경기가 재개됐다.

"한스! 적극적으로 나가."

"후이! 페널티박스 앞까지 나와!"

이번에도 로드는 라인을 앞으로 당겼다. 후이는 지고 있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반대편에 있는 골키퍼는 1군 골키퍼 마르코스. 괜히 이번 연습경기 때문에 자신의 평가가 내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입술을 씹으며 억지로 참았다. 약속은 약속이고, 로드도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으니까.

치열한 공방이 반복됐다.

상대 팀은 한 골을 넣어서 그런지 뒤로 물러나 역습을 노렸고, 로드와 후이의 팀은 공격을 몰아치는 와중에도 착실하게 역습 수비를 해냈다.

그러던 와중, 상대의 롱패스를 로드가 헤딩으로 따냈다.

로드는 경기장 전체를 훑고, 공을 발로 잡더니 바로 후이에게 백패스했다.

로드의 지시대로 앞으로 나와 있던 후이는 공을 잡았다.

"왼쪽 윙, 요한한테!"

후이는 망설임 없이 공을 세게 찼다.

공은 정확히 요한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요한은 가슴 트래핑을 한 후, 왼쪽 터치라인을 돌파하는 척하다가 방향을 꺾었다. 그리고 오른쪽 터치라인을 따라 달리고 있는 한스의 앞으로 패스를 찔러 줬다.

후이가 눈을 크게 떴다.

선수들이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 수비수가 한스를 잘 막아내는 바람에 한스가 백패스를 했는데, 로드가 기다렸다는 듯 오른쪽 측면으로 빠져서 공을 받았다.

로드의 파트너 셰이는 로드의 지시에 따른 건지 오른쪽으로 이동했고, 왼쪽 풀백 또한 거리를 좁혀 3백 형태가 됐다.

로드는 롱 패스로 압박이 헐거워진 요한에게 패스했다.

이번에는 요한이 직접 돌파해 상대 진영으로 들어가 크로스를 올렸다. 좌우로 두번 연속 흔들어대서 헐거워진 상대의 수비진은 점프하는 할리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로드와 후이의 팀은 동점 골을 넣었다.

후이는 로드가 말한 '너랑 나랑은 큰 수준 차가 난다.'라는 말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수비수들을 이용해 수비하는 데만 급급했지만, 로드는 공격에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방금의 골은 한스와 로드가 측면으로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골이었으니까.

후이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로드의 간단한 지시들과 그에 따라 움직이는 선수들을 눈에 담았다.

후이와 로드의 팀은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세 골을 더 추가했고, 결국 4-1로 승리했다.

**

"어때, 내가 이겼지?"

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는 속으로 머쓱함을 느꼈다. 애초에 질 수가 없는 내기였다.

지난번 후이가 소리지르는 걸 보면서 '후이는 수비만 신경 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로드는 수비수들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알았다. 이 팀에서 괜히 주장을 맡는 건 아니었으니까.

한스가 옆에서 시무룩해진 후이를 불쌍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후이가 무어라 말했고, 한스가 통역해줬다.

"앞으로 시키는 대로 한대. 자기가 팀 전체의 조화를 깨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대."

후이의 어깨가 축 내려가 있었다. 바로 가려고 했던 로드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한스에게 부탁했다.

"후이랑 얘기 좀 더 하고 싶은데 한스 혹시 약속 있어요?"

"없어. 도와줄 게."

로드는 후이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하고, 잔디밭에 주저앉았다. 후이가 조심스럽게 따라 앉았다.

로드는 천천히 얘길 시작했다.

"수비수는 수비를 잘해야 하고, 공격수는 공격을 잘해야 하는 게 기본은 맞아. 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있는 거야. 기본적인 건 말 그대로 기본적인 거지. 우리는 거기에 더해 수비수는 공격까지 잘해야 하고, 공격수는 수비까지 잘해야 해."

한스는 천천히 후이에게 말을 통역해줬다. 다 전해진 것 같아 로드가 또 말했다.

"베트남 리그에서는 충분했을지도 몰라. 너는 내가 봐도 정말 좋은 기량을 갖고 있었거든. 거기서는 수비진을 잘 움직여서 무실점만 하면 어떻게든 됐겠지."

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스에게 무어라 길게 말했다. 로드는 차분하게 한스의 통역을 기다렸다.

"베트남에서는 늘 혼자서 다 막아냈어야 했다고 해. 후이가 한 골이라도 먹히면 경기에서 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는 기사까지 날 정도로."

"아···."

"어느 순간부터 실점이 전부 자신의 책임처럼 되어버려서 더 지독하게 했다고 그러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단다. 상대 골키퍼와 자신, 이렇게 둘은 필드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둘의 기량에 따라 경기의 승부가 정해지는 거라고 확신했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양 팀의 골키퍼가 모든 슈팅을 막아낸다면 축구 경기는 무승부만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게 프리미어리그 급 선수들이라면 더.

로드는 후이가 많은 부담감을 느껴왔을 거라는 걸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로드가 말했다.

"고생했겠네. 하지만, 여기서는 달라. 이젠 알겠지?"

개인 기량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직 후이는 팀 전체의 전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는 혼자 부담감을 다 짊어질 필요 없어. 네가 자책골을 넣거나 누구나 잡을 수 있는 공을 놓치는 수준의 실수를 하는 게 아니라면, 팀의 실점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테니까."

한스에게 말을 전해 들은 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부담은 신경 쓰지 말고, 신경질 부리는 거 고치고··· 선수단 전체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 여긴 베트남 리그가 아니야. 수준이 높아졌으면 너도 발전해야지."

잠시 후 후이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스가 웃으며 전해줬다.

"열심히 하겠대. 많이 물어봐도 되겠냬."

"당연하지."

로드의 짧고 명확한 대답에 후이는 바로 알아듣고 아주 살짝 웃었다.

이 타이밍인 것 같았다.

로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준비해온 인사를 꺼내기로 했다. 4부리그 시절, 알렉산더가 칼에게 이 말을 해 줬다고 들어서 오늘 출근하면서 준비해온 인사였다.

로드가 입을 열었다.

"Chào m ừng bạn đến Nottingham(베트남어로 '노팅엄에 온 걸 환영한다.')"

후이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윽고 환하게 웃었다.

< 58. 필드에서 가장 외로운 두 명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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