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크리스마스 (1) >
훈련장에 서 있는 나무들에 눈이 쌓여 있었다.
새 수석코치 로건이 여름에 부임하고 벌써 두 계절이 흘렀다. 로건은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얼굴을 한 채로 한창 침투 후 슈팅 훈련 중인 공격수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할리가 침투까지는 괜찮게 했으나 눈 때문에 젖은 잔디 때문인지 이상하게 미끄러지며 골대 근처에도 가지 않는 어이없는 슈팅을 날렸다.
할리는 바로 잭슨에게 불려갔고, 따끔하게 혼났다.
로건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가 축 늘어진 할리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슈팅은 아쉬웠지만, 움직임은 아주 좋았다고."
"정말요?"
"당연하지. 감독님이 혼낸 이유도 간단해."
"뭔데요?"
"슈팅까지 잘했으면 조지 웨아의 재림 같은 완벽한 플레이였을 테니까, 아쉬워서 그러시는 거지."
먹구름이 잔뜩 꼈던 할리의 얼굴이 금세 개었다.
할리는 의욕에 찬 얼굴로 돌아가서 다시 침투 전술 훈련에 힘썼고, 곧 슈팅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로건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더니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 또한 로건을 따라 움직였다.
선수들과 코치들은 내가 어디에 있든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다. 훈련 참관은 아주 흔한 일이어서 그럴 것이다.
"루앙, 얼마나 더 잘해지려고 그래?"
"루카의 볼 다루는 기술은 정말 예술이라니까?"
"라이언 너 정말 똑똑하다."
로건을 이렇게 자세히 관찰한 건 처음이었다.
로건은 선수들에게 들은 대로 잘한 선수들과 못한 선수들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힘이 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잭슨도 자신이 혼을 내면 로건이 칭찬해주며 선수단 분위기를 잡아줘서 좋다고 말하더니··· 정말인 것 같았다.
멀리서 들어도 로건의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그의 칭찬에 거북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직원에게 받은 로건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잘하고 있는 수석코치에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그의 가족 관계는 우리 구단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확인해야 했다. 나중에 괜한 구설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수들과 훈련 용품을 정리하고 있는 로건에게 다가갔다.
"단장님! 언제 왔어요?"
로드를 비롯한 로컬 보이 3인방이 내 앞을 막아섰다.
"단장님! 놀지 말고 같이 치워요."
할리의 어이없는 말에 라이언이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나는 훈련장 건물로 멀어지고 있는 로건을 흘긋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따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우리는···
"파티장으로는 어떻게 가요?"
"구단 원정 버스로. 차 있는 선수들은 알아서."
연례행사인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전날이었다.
"단장님! 이거 무거워요!"
할리의 재촉에 나는 한숨을 쉬며 작은 골대의 모서리를 잡았다. 친근해서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단장 겸 사장의 위엄, 이대로도 괜찮을까.
로드와 라이언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과 코치들 또한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괜히 민망해서 할리에게 투덜거렸다.
"이게 뭐가 무겁다고 엄살이냐?"
"저는 구단의 귀중한 자원이잖아요. 더 아껴주셔야죠."
"그래그래."
할리가 빙그레 웃으며 능글맞게 말했고, 난 어이가 없어서 적당히 대꾸하고 말았다.
이어서 할리가 물었다.
"오늘 파티 음식은 뭐뭐 있어요?"
"건강식?"
"네?"
"잭슨 감독님의 주문에 따라 전부 건강식으로 준비해 놨다. 사흘 후에 경기 있는데 몸 관리해야지."
"아니, 그래도 크리스마스 파틴데···."
사실 거짓말이었다. 대만, 프랑스, 이탈리아, 베트남의 수준급 요리사들을 섭외해서 휘황찬란한 파티를 준비해 놨다.
"단장님? 진짜 건강식들만 있는 거 아니죠?"
나는 할리에게 작은 복수를 했다고 생각하며 대답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
"음음."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냈다.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선수, 코치, 직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파티를 잘 즐기고 계신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그냥 조용히 즐기고 가려고 했는데, 구단주님께서 한마디 하라고 쫓아내는 바람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제임스를 째려봤다.
제임스는 오히려 노팅엄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아무튼, 그래서 짧게 몇 마디만 하고 다시 내려가겠습니다."
"계속 계셔도 돼요!"
"노래라도 한 곡 하는 건 어때요?"
나는 그들도 째려본 후에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했다. 칭찬 말이다.
"벌써 시즌의 절반이나 왔습니다. 우리 팀은 언론들이 잘 쳐줘서 10위 정도를 할 것이다, 라는 기대를 깨부수고 현재 리그 6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리그 3위 리버풀과는 4점 차죠. 우리는 지금 챔피언스리그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팅엄의 사람들이 박수와 함께 휘파람을 보내줬다. 이어서 노팅엄! 노팅엄! 을 외친다.
"승격팀으로서는 정말 놀라운 결과입니다. 이제 프리미어리그 팀 중에서 우리를 우습게 볼 팀은 없을 겁니다. 이 성과를 이뤄낸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제임스가 줄 연말 보너스도 함께요."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큰 함성이 파티장을 가득 채웠다. 보너스는 미리 정해놓은 것이었기에 제임스는 주변 사람들의 호응에 우쭐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3년 동안 기적을 만들어낸 팀입니다. 이번 시즌에도 기적을 이뤄내면 좋겠습니다. 일단, 사흘 앞으로 다가온 박싱데이부터 힘을 합쳐 잘 헤쳐나가 봅시다."
보통 승격팀들이나 상위권 다툼을 하지 못할 팀들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부터 새해 1월 2일까지, 약 8일 동안 3경기를 연달아 치르는 이 박싱데이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진다.
박싱데이를 잘 견뎠다 하더라도 흐름을 잃고 1월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는 내 말에 힘차게 답해줬다.
"예!"
"그럼 파티 재밌게 즐겨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곧 파티장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나는 원래 테이블로 돌아와 잔을 챙겼다.
"어디 가게?"
"스카우트팀이랑 코치진에 볼일이 있어서. 재밌게 놀고 있어."
"응."
제임스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고, 바로 스카우트팀이 모여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단장님, 오셨습니까."
수석 스카우트 블레이크가 가장 먼저 날 반겨줬다. 블레이크부터 시작해 쭉 인사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조슈아에게 말을 걸었다.
"구단에서 주최하는 파티는 처음이죠? 어때요?"
음식을 양 볼이 튀어나올 정도로 가득 넣고 열심히 씹고 있던 조슈아는 더 빠르게 입을 움직이더니 어렵게 대답했다.
"···정말 맛있어요!"
"다행이네."
조슈아가 스카우트팀에서 막내로서 잘 지내고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조슈아를 향해 작게 웃어주고, 스카우트들에게 말했다.
내가 스카우트팀을 찾은 건 오늘 아침에 생긴 업무 때문이었다.
"잠깐만 다 집중해 주시겠습니까."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다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무슨 일입니까?"
블레이크의 물음에 나는 주변 테이블에서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스카우트팀의 테이블은 일부러 다른 테이블과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배치했기에 주변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마르코스의 에이전트가 오늘 아침,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 무조건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얘기가 잘 되고 있던 게 아니었나요?"
마르코스는 지난달부터 후이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기고 자존심이 몹시 상했는지 잭슨과 내게 직접 항의했었다. 자신이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며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팀을 떠나겠다고 한 거다.
그래서 잭슨과 나는 의논 끝에 붙잡아두자는 결론을 내리고, 한동안 로테이션을 돌리겠다는 제안을 했다. 마르코스를 그냥 주전으로 쓰기에는 실점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르코스는 그 제안도 거절하며 오늘 떠나겠다는 통보를 한 것이다. 심지어 지금 파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마음이 완전히 떠난 모양이었다.
잭슨과는 훈련이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눴다. 새 골키퍼, 그것도 후이 대신 뛸 수 있는 경험 많은 골키퍼를 데려오자고.
나는 이 얘기를 스카우트들에게 천천히 해 줬다.
얘기가 끝나자마자 수석 스카우트 블레이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파티가 끝나는 대로 지금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의 프로필을 뽑아서 넘기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파티도 파티지만, 우리 팀의 전체적인 시즌이 더 중요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이들의 프로필을 기다리기 위해 오늘 밤을 새우겠다고 말했기에 스카우트들은 큰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나는 스카우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자리를 옮겼다.
"단장님! 술 한잔하시죠!"
"미안해요. 오늘 새벽에 업무 있어요."
"으음, 나 단장님한테 퇴짜맞았다."
한 직원의 말에 직원들이 모인 테이블에서 와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을 지나치니 이번에는 선수들이 모인 테이블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잔소리하며 지나갔다.
"너희들 음료수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돼. 음식이 워낙 화려하니까, 균형은 맞춰야지."
선수들은 은근슬쩍 내 눈을 피하며 들고 있던 음료수들을 내려놓았다. 나는 몇몇 선수와 잡담을 나누며 테이블을 지나쳤다.
그렇게 또 다른 목표, 아까 대화를 나누지 못한 로건이 있는 코치들의 테이블에 도착했다.
"왔냐."
전력분석팀도 이곳에 있었다. 알렉산더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고, 나도 거기 앉으며 테이블을 둘러봤다.
참 황당하게도 이곳은 파티장이라기보다는 요양원 같은 느낌이 나고 있었다.
코치들 네다섯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잭슨은 로건과 아주 조용히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전력분석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너도 일정 알잖아."
알렉산더의 말에 나는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26일에는 중위권 스토크시티, 29일은 리그 1위 뉴캐슬, 1월 2일에는 개막전 패배를 안겨준 챔피언스리그 경쟁자 동화더비 레스터시티.
더불어 FA컵이 열리는 1월 5일에는 2부리그 팀 입스위치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게 있으니 코치들은 그만큼 밤을 새우며 상대팀 분석에 한창인 거였다.
"근데, 왜 셋은 멀쩡해요?"
"우리는 워낙 야근에 익숙해서··· 하하."
자기가 말하고도 우스운지 알렉산더는 평소답지 않은 웃음소리를 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졸고 있는 코치들을 보며 작게 말했다.
"저 정도로 피곤하면 그냥 나오지 말고 잠이나 자지···."
"자기들이 나오겠다고 했어. 전력분석실이나 미디어실 같은 음습한 공간이 아니라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공간에 오고 싶다고 하더구나."
그 말에 더 슬퍼지는 나였다.
박싱데이가 끝나는 대로 코치들을 더 충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알렉산더와 전력분석팀의 사람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잭슨과 수석코치 로건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둘의 대화는 끝났고, 나는 잭슨과 몇 마디 나눈 후 로건에게 말했다.
"로건, 잠시 할 얘기가 있는데, 시간좀 내 주시겠어요?"
*
"킴? 왜 여기까지···."
나는 로건과 함께 사람이 없는 구석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노팅엄의 사람들이 뭘 하나 궁금해서 보긴 했지만, 내가 진지한 얼굴로 있자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요."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로건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왜 숨겼어요?"
"뭘···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줬다. 로건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스마트폰 사진 속, 어린 로건의 옆에 무뚝뚝한 얼굴로 서 있는 우리 팀의 서브 스폰서이자 미국의 거대기업 BM의 대표 브랫을 가리키며 물었다.
"진짜 브랫의 아들이에요?"
스폰서를 담당하는 커머셜 팀 직원 중 하나가 브랫의 성과 로건의 성이 똑같다는 걸 깨닫고 별생각 없이 검색해본 게 이 일의 시작이었다. 인터넷에서 브랫의 아들 이름이 로건이라는 걸 보고 호기심이 더 생긴 직원은 밤새 계속해서 검색하고 또 검색해 미국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을 찾아냈다. 그게 바로 이 사진이었다.
로건이 말했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저는 저니까요."
"맞는 말이죠. 그런데, 구단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거든요. 브랫은 우리 팀의 메인 스폰서를 노리고 있는 분이에요. 실질적으로 투자도 많이 해주시고 계시죠. 그런데 그런 브랫의 아들을 이번 시즌에 갑자기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별의별 구설수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로건은 반박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로건이 이 사실을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거예요. 만약 우리가 먼저 못 알아내고, 못된 파파라치에 이 사실이 걸렸으면 도덕적인 문제로 골머리를 썩을 뻔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사실인 거 알았으니 됐어요. 앞으로 문제 생기면 알아서 해줄게요."
내 말이 의외였는지 로건이 고개를 들고 날 빤히 바라보았다.
"뭘 놀라요. 해고라도 할 줄 알았어요?"
"아니, 그 정도 상상은 안 했지만···."
"가정사에 깊게 파고들 생각은 없어요. 그냥, 우리 구단에 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은 제가 미리 다 알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야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여기까지 말하고 말려고 했지만, 괜히 궁금증이 생겼다. 이 사진부터 그렇고, 로건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기업 대표의 아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게 입고 다녔고, 굴곡 있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브랫은 로건이 여기 있는 걸 알아요?"
"아마 모를 겁니다. 연락 안 한 지 십 년은 됐어요."
"···브랫이랑 사이 안 좋아요?"
나는 필리스의 열정적인 팬인 브랫을 떠올리며 물었다. 성격이 좋아 보였는데, 가정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로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예. 어린 시절부터 제가 축구 쪽으로 진로를 잡는 걸 탐탁지 않아 하셨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싫어했어요."
"축구를 싫어하는 분 같지는 않던데···."
"저는 어릴 때 수학을 참 잘했었거든요. 지역 신문에 날 정도로 천재라는 소리도 들었었죠. 그렇지만, 아버지는 제가 수학자가 되거나 공학 쪽으로 진로를 잡아 그 분야의 최고가 되길 바라셨어요. 아버지는 늘 최고를 추구하시는 분이거든요."
로건은 뭔가 생각난 듯 피식 웃더니 이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노팅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그걸 거예요. 최고가 될 팀으로 보이셨겠죠. 뭐, 아버지가 응원하는 필리스는 대형 포수가 오지 않는 한 많이 틀린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말은 브랫이 로건을 축구에서 최고가 못 될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건가요?"
"예. 저는 아버지에게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제 성격으로는 감독을 못 할 거라고 말씀하셨죠."
역시 가정사는 듣는 게 아니었다. 브랫을 볼 때마다 살짝 불편하게 될 것 같았다.
로건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처음인지 묻지 않은 것도 술술 말했다.
"그래도 저는 최고의 감독이 되지 못하더라도 축구계에서 일하고 싶었고, 그걸 말했더니 앞으로는 지원 같은 건 없다고 하셨어요. 저는 독립하겠다고 말했고, 그 이후로는 가끔 전화해봤는데 받지도 않으시더군요."
"어머니는요?"
"어릴 때 돌아가셨어요."
로건이 이제 다르게 보였다. 젊은 나이부터 축구계에서 외롭게 버텨오며 1부 리그 팀 수석코치까지 올라온 사람이었다. 거기에 힘든 가정사까지 더해져 더 대단하게 보였다.
수석코치를 제대로 뽑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리고, 그가 크리스마스 때 가족이랑 보내본 게 십 년도 더 넘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이런 얘기 하기 힘들 텐데, 얘기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직원 입 단속해서 로건의 가족사가 안 퍼지게 노력해볼게요."
"감사해요."
"그리고··· 꼭, 이 팀에서 뭐든 한 계단이라도 이뤘으면 좋겠네요."
최고의 감독이 되는 길이든 큰 성과든, 뭐든 이뤄서 브랫에게 본때를 보여주든 가족 관계를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팅엄은 팀의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구성원들이 자신만의 목표를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는 팀이 되었으면 하니까.
< 59. 크리스마스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