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98화 (198/245)

< 61. 촬영팀의 힘 (2) >

<어우···.>

노팅엄의 홈 관중이 일제히 탄식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래시포드가 필드 위에 쓰러져 있었다. 래시포드의 갑작스러운 돌파를 저지하기 위해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다 래시포드를 걸어 넘어뜨린 로드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삐익!

심판이 황급히 뛰어와 로드에게 옐로카드를 보여줬다. 로드는 항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래시포드 옆에 쪼그려 앉았다.

평소의 로드를 잘 알기에 고의가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드의 태클이 래시포드의 발목을 건든 건 사실이었기에 저렇게 미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내 옆에 앉은 제임스가 안타까워했다.

"아이고, 로드도 저런 실수를 하네."

로드의 프로 데뷔 두 번째 옐로카드였다. 심판이 더 엄격했다면 레드카드를 받을 만큼 위험한 태클이었기에 나는 말 없이 필드를 내려보았다. 간혹 위험한 태클을 한 선수가 상대가 큰부상을 입은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소극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래시포드가 무사하길 빌면서.

다행히 래시포드는 금세 일어났고, 로드에게 웃어주며 장난스러운 헤드락을 걸었다. 로드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경기장에 모인 팬들이 박수를 쳐 줬다.

제임스가 말했다.

"다행이다. 안 다쳤나 봐."

"그러게."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상당히 과격한 태클이었다. 방송이 어떻게 나가냐에 따라 논란이 될지도 몰랐다.

나는 논란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오늘 상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가진 맨유였기에 괜히 머리가 아팠다.

나는 맨유의 프리킥으로 재개되는 경기를 찜찜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

"신입!"

"넵!"

"방금 내가 뭘 한지 알겠어?"

노팅엄의 홈 경기장 내부에 있는 경기 송출실에서 신입 브리는 상사이자 업계 선배인 디렉터 해밀턴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모르겠어?"

옆에서 지켜본 해밀턴은 정말 대단했다. 브리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눈은 수십 개의 분할화면에, 손은 버튼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해밀턴은 전체 시점을 프리킥을 누가 찰지 의논하는 선수들을 클로즈업한 시점과 프리킥을 찰 것 같은 래시포드를 클로즈업한 시점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능숙하게 바꾸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괜히 기가 죽은 브리는 솔직하게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난 방금 노팅엄의 캡틴 로드 테일러의 이미지를 아주 좋게 만들어줬어. 아주 비싼 술을 얻어먹어도 될 만큼 말이야."

"예? ···아!"

힌트를 듣자마자 브리는 이해했다. 해밀턴은 거친 태클이 나오는 장면을 여러 번 반복송출해주는 일반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드가 옐로카드를 당연한 듯 받아드는 영상과 래시포드의 부상을 걱정하는 로드를 클로즈업한 영상을 반복 송출했다.

또한, 의료진에게서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은 래시포드가 로드에게 장난스럽게 헤드락을 거는 영상도 길게 여러 각도로 송출해줬다.

해밀턴이 말했다.

"이해했지? 우리 역할이 이만큼 중요해. 우연히 한 번 거친 태클을 한 선수 A가 있고, 매 경기 거친 태클을 하는 선수 B가 있다고 생각해봐.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선수 A가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B가 좋은 선수로 보이게 할 수 있어. 그게 우리가 가진 힘이야. 어지간히 선을 넘는 게 아니면 협회나 방송국에서도 우리에게 별말 안 하거든."

"아···."

"우리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알고 일을 배워야 해. 자,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또 하자. 내가 왜 로드의 이미지에 좋은 방향으로 영상을 편집해 송출했을까?"

브리는 노팅엄에만 오면 화기애애해지는 촬영팀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노팅엄이 우리에게 잘 해줘서요?"

"아니야. 그런 식으로 노팅엄을 편향 중계하는 건 불법이잖아. 노팅엄이 우리에게 잘 해주는 건 사실이지만, 선은 지켜야지. 내가 로드에게 좋은 방향으로 영상을 뽑은 건 로드가 평소에 그런 태클을 안 하는 선수였기 때문이야. 영상을 통해 확인한 결과 방금 태클도 고의가 아니었고."

이곳에서는 선수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여러 각도로 볼 수 있었다. VAR 판정실 만큼이나 정확한 판단이 가능했다.

해밀턴이 브리에게 계속 말했다.

"너도 나중에 이 일을 하려면 너만의 원칙을 세워야 할 거야. 어떤 의도가 있든 반칙은 반칙이다 생각하면 반칙 장면을 반복 송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기준 없이 흔들리면 괜히 시청자들이나 해설자들이 혼란스러워하거든."

"넵! 명심하겠습니다!"

노팅엄이 역습하는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은 수많은 영상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멀미가 날 만큼 끊임없이 바뀌는 수십 개의 영상을 보면서도 해밀턴과 브리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밀턴이 말했다.

"그럼 다시 집중하자. 노팅엄이 전방 압박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네. 경기 속도가 더 빨라질 거다."

**

전 세계의 축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맨유와 노팅엄 경기에 대해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국의 유명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로드의 거친 태클에 대한 글이 몇 개 올라와 있었다.

처음에는

-뭐야 저 자식

-미쳤네. 우리 래시포드 괜찮나?

-동업자 정신이 하나도 없네

라는 내용의 글과 댓글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어서 중계된 로드와 래시포드의 모습에 사람들의 여론이 급격히 바뀌었다.

가장 여론이 바뀐 걸 볼 수 있었던 건 내용 없이 두 개의 짧은 영상만 올라온 아래의 글에 달린 댓글에서였다.

(심판의 경고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래시포드를 걱정하는 로드의 영상)

(래시포드와 함께 어깨동무하며 안도하는 앵글의 로드 영상)

-래시포드 괜찮아서 다행이다

-로드 쟤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실수였나 보네

└태클은 태클이지 실수가 어딨냐?

└└옐로카드에 항의 한번 안 하고, 안절부절 못 하면서 계속 걱정하는 선수가 세상에 몇이나 된다고 그러냐? 래시포드도 괜찮다고 저러는데 네가 왜 나대냐? 너는 실수 안 하냐?

-위에 왜 싸워. 둘이 훈훈하고 보기 좋구만

-나 맨유 팬인데 노팅엄 경기력 왜 이렇게 좋냐? 계속 치고 박으니 간만에 경기 재밌네

└운으로 지금 순위에 있단 말도 있는데 말도 안 되는 듯. 노팅엄이 이렇게 잘하는 줄 몰랐네

└└맞아. 뉴캐슬도 잡았었잖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또 다른 커뮤니티를 살폈다. 역시나 호의적인 여론이 많아져 있었다. 중계를 내보내는 분들이 로드에게 나쁜 여론이 생기지 않도록 편집을 해준 모양이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동안 촬영팀에게 편의를 봐준 게 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에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인 중계를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오늘처럼 큰불이 될지도 모르는 작은 불씨를 덮어주는 정도만 해 줘도 감사할 뿐이었다.

나는 이따 촬영팀에게 따로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필드를 바라보다가···.

"어, 어어? 어어어!"

<와아아아아아!>

갑작스러운 할리의 득점에 제임스와 함께 관계자 석에서 방방 뛰었다.

**

"우리가 영상을 보내면 그쪽 팬들은 달랑 영상만 볼까?"

"아뇨. 해설자들의 설명이 덧붙여지죠."

"그렇지. 그 나라의 해설자가 상황에 맞는 설명을 해준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반복재생을 해 줘야 해. 해설자들이 설명할 수 있게."

해밀턴은 버튼을 조작해 할리가 골을 넣은 과정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재생해줬다.

일단 메인 카메라 시점에서 할리가 맨유의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공을 뺏고, 미할리스와 원투를 주고받은 후 골을 넣은 일반적인 장면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의 시점과 가장 가까운 영상을 찾아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할리가 사각에서 나타났다는 걸 보여줬고, 미할리스가 논스톱으로 할리에게 준 패스가 정말 기술적이었다는 걸 클로즈업해 보여줬다.

"득점 때, 어떤 플레이가 중요했는지 알아야 적절한 영상을 고를 수 있겠네요."

"그래."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해밀턴은 흐뭇하게 웃었다.

신입 브리는 기특하게도 적극적으로 배울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해밀턴은 더 열심히 가르쳐줘야겠다고 다짐하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선제골을 넣은 노팅엄은 극단적인 잠그기 전술을 시작했다.

맨유의 공격, 노팅엄의 수비가 반복되는 지루한 경기가 몇 분간 펼쳐졌다. 맨유가 골을 넣지 않는 한 이런 양상이 계속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해밀턴이 할 일은 있었다.

"이런 지루한 양상이 되었을 때 시청자들 지루하지 말라고 해설자들이 여러 얘길 하잖아? 그때는 이렇게···."

해밀턴은 맨유의 공격수 래시포드와 교체로 들어온 윙 제임스를 번갈아 보여줬다. 둘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발이 빠르기로 유명한 선수들이었다.

이어서 라인을 깊게 내린 노팅엄의 선수들을 보여줬다.

둘의 빠른 발을 경계해 노팅엄이 수비 태세로 들어갔을 거라는 일반적인 전술을 해설자들이 설명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래도 경기 분위기가 바뀔 기미가 없다면···."

해밀턴은 코칭 스태프 쪽을 찍고 있는 영상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팅엄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사 중 하나인 알렉산더를 중심으로 한 영상이었다. 이어서 잭슨도 한 번 잡아주고, 관계자 석을 찍어 김도운·제임스도 보여줬다.

아까 골이 들어갔을 때 진심으로 방방 뛰던 김도운·제임스도 다시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 선수들 말고, 해설자들이 설명할 수 있는 인물들을 잡아주면 돼. 해설자 대부분은 팀의 세세한 부분까지 공부하니까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을 거야."

해밀턴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마음 속 어딘가가 쿡쿡 찔리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해설자들이 시간을 떼울 거리를 준다지만, 구단주와 단장이 기뻐하는 영상을 리플레이하는 건 확실히 노팅엄에 대한 편애였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도 브리는 그런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웬만한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긴 했다. 그저 양심의 문제였다.

해밀턴은 자연스럽게 노팅엄의 인물들에서 맨유의 코칭스태프들과 관계자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

경기가 루즈해진지 30분이 지났다. 경기 종료까지 10분 남은 이 시점에 나는 너무 심심한 나머지 축구 커뮤니티에 들어갔다가··· 생각도 못한 수많은 글들을 보고 당황했다.

<노팅엄 팬이 말하는 김도운 단장>

<제임스 구단주가 인수하기 전 노팅엄의 상황>

<제임스와 김도운의 어린 시절 사진>

<노팅엄의 그동안의 여정>

(중략)

나와 제임스를 비롯한 노팅엄의 이야기가 커뮤니티에 도배되고 있었다.

가끔 우리 팀이 큰 일을 해냈을 때, 이런 일이 있었긴 했지만 이번은 그 규모와 성향이 달랐다.

글마다 이런 댓글이 한가득이었다.

-알렉산더 오랜만에 보네. 전력분석관이 됐구나

-나도 링크 좀 달아줘. 해설자들이 노팅엄 단장이랑 구단주 얘기 엄청 하는데 좀 더 많이 알고싶어

└(링크1)

└└(링크2)

-노아 얘기도 노팅엄 얘기였어?

└ㅇㅇ

└└신기하네

-이 팀 매력있네. 서브 팀으로 응원할까

└컴온컴온

빅매치 위주로만 찾아보는 라이트한 팬들이 노팅엄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고, 지나가듯 들었던 감동적인 축구 이슈가 노팅엄의 이야기었다는 걸 알고 놀라고 있었다.

영국의 커뮤니티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여러 커뮤니티에서 노팅엄에 대한 관심의 글들과 정보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 내가 모르는 곳에도 퍼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육성해온 전세계에 퍼져있는 노팅엄의 팬들이 가볍게 해외축구를 즐기는 팬들에게 영업을 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깊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글과 댓글들을 살펴보고

-영상에서 골 넣었다고 애들처럼 좋아했던 사람이 구단주랑 단장이라고?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설자들이 그러더라. 유소년 시절부터 노팅엄 출신이라 웬만한 골수팬 못지 않대

중계의 힘이었다는 걸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물이 잔에 가득 차서 넘치기 시작하듯 그동안 쌓아왔던 이야기가 인기있는 팀과의 경기라는 기회를 발판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기회였다.

팬들이 많이 유입될 것이고, 한동안 언론을 떠들석하게 할 것 같았다. 방송사들은 우리의 예전 이야기를 끌어오는 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잠겨 미소지었다.

< 61. 촬영팀의 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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