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05화 (205/245)

< 64. 동화 (2) >

프리미어리그 득점 1위를 두 골 차이로 쫓고 있는 레스터시티의 에이스, 제롬이 단장실 문을 거칠게 두들기고 있었다.

제롬은 최근 있었던 FA컵 4강전 패배 후, 드레싱룸의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제롬은 그날 아주 큰 좌절감을 느꼈다. 레스터시티의 선수들과 큰 말다툼을 했기 때문이었다.

'4강이면 충분하지 졌다고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좁힐 수 없는 관점 차이가 원인이었다.

제롬은 우승컵들을 수없이 들어 올린 역사가 있는 기존의 강팀들이 아닌 리그 상위권의 가능성 있는 팀에서 우승해보겠다는 목표를 동기부여로 삼는 선수였다. 그래서 제롬은 레스터시티가 챔피언스리그 경쟁을 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우승도 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기적적으로 우승을 해본 적 있는 팀이라는 점에서 더.

자신을 설득했던 단장 또한 앞으로 3년 안에 우승을 목표로 하겠다고, 그에 맞는 영입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제롬은 FA컵이라는 중요한 트로피를 꼭 들고 싶었다. 그만큼 졌을 때의 좌절감도 커서 드레싱룸에서 평소보다 설렁설렁 뛰는 것 같았던 선수들에게 한마디 한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몇몇 코치까지 제롬에게 반박했었다.

'제롬, 너는 가끔 지나칠 때가 있어. 우리 팀이 상위권이긴 하지만 우승은 다른 얘기라고. 그런데 맨날 우승~우승~ 하고 떠들고만 다니고.'

'우승을 생각해 볼 순 있지. 그래도 그건 운이 따라줬을 때나 가능한 거잖아.'

'너 말고 다른 선수들도 각자 열심히 하고 있어. 더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마.'

이 팀의 구성원들은 우승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다. 제롬은 그날 이후 드레싱룸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 제롬이 단장실까지 찾아온 이유는 그와의 약속마저 박살 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들어와요."

제롬은 거칠게 문을 열며 단장실로 들어가 말했다.

"다음 시즌은 유망주만으로 시즌을 보낸다는 말이 있던데요. 사실입니까?"

레스터시티의 내부 출입 기자에게서 나온 얘기였다.

제롬이 들어오자마자 한 말에 단장은 당황했는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발 늦게 답했다.

"제롬, 미안하네. 구단주 측에서 지원금을 깎는 바람에···."

"제가 이 팀에 온 이유는 우승을 목표로 계속 발전하겠다고 해서인데요."

제롬의 차가운 말에 단장은 제롬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래도 단장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이야. 원래 자넬 부르려고 했었거든."

"절요? 왜요?"

"구단주 측에서 승인한 이적 제안이 들어와서 말이야."

"이적이요? 하."

제롬은 몹시 기분이 나빴다. 제롬이 느끼기에는 자신을 한 시즌 이용하고 버리려는 것 같았으니까.

선수들부터 수뇌부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롬은 이 팀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질문했다. 마음에 드는 팀이 아니라면 에이전트를 통해 다른 팀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팀입니까?"

"노팅엄 FC야."

"뭐라고요?"

이것도 의외였다.

제롬이 노팅엄을 상대로 잘한 건 맞았다. 노팅엄을 만날 때마다 골을 넣어서 3경기 6골이었고, 자길 디스하는 응원가까지 만들어질 정도였으니까.

물론 싫은 팀은 아니었다.

노팅엄과 만날 때마다 선수들은 꾸준히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고, 팬들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응원해줬다. 모든 게 잘 맞아들어가는 팀은 저런 거구나 싶을 정도였다.

특히, 매번 경기에서 질 때마다 분함을 감추지 못하는 주장 로드의 얼굴이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

제롬은 생각을 잠시 멈추고 단장을 바라보았다. 단장은 어찌할 줄 몰라하고 있었다. 자신이 물건이라도 집어 던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가보겠습니다."

짧게 인사하고 문밖을 나온 제롬은 건물 안에 마련된 라운지 소파를 찾아 주저앉았다. 이어서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노팅엄에서의 제안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관에도 부합 하는 팀이었으니까. 하지만, 방금 뒤통수를 맞아서 그런지 괜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제롬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노팅엄 FC의 단장 김도운입니다. 레스터시티에서 우리의 이적 제안을 수락해서 직접 연락드려요. 연락처는 에이전트에게 받았어요.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랑 협상할 생각 있어요? 이적을 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제롬과 접촉할 시간이 없었네요.

"관심은 있습니다만··· 절 만나기 전에 확실한 목표와 그걸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뭘 할 건지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협상은 그 이후에 하겠습니다."

스마트폰 건너편의 김도운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제롬은 김도운이 준비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잠시 후, 김도운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의 목표는 리그, 챔피언스리그, FA컵 우승이에요. 장기적인 목표가 아니라 다음 시즌 목표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신이 필요해요. 제롬.

"예···?"

-저는 지금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영입을 진행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칼 슈나이더를 영입했고, 당신이 두 번째에요.

"잠깐, 칼 슈나이더를요? 도르트문트의 칼 맞습니까?"

-예.

엄청난 목표와 그에 어울리는 영입까지 해냈다고 한다. 제롬은 순식간에 마음이 변하는 걸 느꼈다.

차갑고 우울했던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기대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도운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말이죠.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당신을 영입하는 걸 확정 지은 후에는 중앙 미드필더 하나와 수비수 하나를 더 영입할 거예요. 그리고 로테이션 선수들로는···.

한참 동안 김도운의 계획을 들은 제롬은 이렇게 답했다.

"좋습니다. 오늘 바로 만나고 싶습니다."

**

"왜 이제야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어차피 끝난 일이었으니까요. 당장 만나고 연락해야 할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거든요."

내 말에 테디의 에이전트 로빈이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할게요. 진심으로 죄송해요. 꼭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나는 그녀가 이러는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이적한 로테이션 선수 중 둘, 아르망과 페린은 그녀가 담당하던 선수였으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저도 뒤통수를 맞았어요. 로널드는 제가 킴과 친분이 있다는 걸 알았는지 아르망과 페린에게 따로 접촉했어요. 그리고 셋이 작당해서 그 팀들이랑 계약하는 날에 저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한 거죠."

자존심이 무척 상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로빈의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로빈은 금세 평정심을 찾았다. 내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래도 선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책임이에요. 미안해요. 킴."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로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빈은 우리 구단에 미안한 거죠?"

"예. 면목 없죠. 구단과의 신뢰를 저버린 일인데요."

"미안하다면 로빈이 맡고 있는 선수 하나만 소개해줘요."

"누구요? 얼마든지···."

"테오요. 테오 헌터."

"···네?"

로빈은 진짜 당황스러운 건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빈은 더듬더듬 내게 이 이적이 왜 안되는지 말했다.

"저기, 킴. 테오가 이적한 지 아직 한 시즌도 안 지난 거 알아요? 보통 이적이라면 두 시즌은 지나야 한다고요."

"보통 이적이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거금을 투자할 겁니다. 뉴캐슬에서 경험을 쌓은 테오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왼쪽 풀백이 됐잖아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엄지와 검지로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린 로빈이 다시 한번 내게 이 이적이 왜 이상한지 말했다.

"제가 노팅엄에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만, 뉴캐슬에서 노팅엄으로 이적할 이유가 없잖아요. 뉴캐슬은 이번 시즌 우승을 앞두고 있고, 챔피언스리그도 곧 4강 경기를 치른다고요."

기다렸던 말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준비한 말을 꺼냈다.

"그러면 우리 팀이 뉴캐슬에 버금가는 가능성을 보여주면 되지 않겠어요? 조금 부족한 부분은 충분한 급료로 메꾸고요."

이제 로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오늘 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였다.

"저도 노팅엄을 좋아하고, 유망한 팀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미소를 짓고, 이번에는 질문을 던졌다.

"저기 로빈. 뜬금없지만 리그 내에서 우리 팀의 전력을 평가하면 어떨까요?"

로빈은 갸웃하면서도 대답해줬다.

"4-4-2 포메이션으로 생각해 봤을 때, 중앙수비수 둘, 왼쪽 윙과 중앙 미드필더 둘, 그리고 공격수 한 자리는 리그 최상위권이에요. 양쪽 풀백은 아쉽고, 오른쪽 윙에서 뛰는 우리 테디와 공격수 한 자리인 할리도 아쉬운 편이죠. 최상위권은 아니니까요.

골키퍼 둘은 계속 발전하고 있어서 다음 시즌에는 기대되는 수준이고요. 아, 전술상 중앙 미드필더 자리가 많이 뛰어야 해서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선수 하나 정도 더 필요하겠네요."

역시 에이전트라 그런지 평가가 정확했다.

나는 로빈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하며 내 계획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에 올 선수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이적에 실패하더라도 덜 실망할 테니까.

"그렇죠? 그럼 말이에요··· 테디를 오른쪽 풀백으로 내리고, 그 자리에 월드클래스 윙 칼 슈나이더를 넣으면 어떨까요?"

"칼을 영입했어요?"

로빈이 놀라서 되물었지만, 나는 내 얘길 계속했다.

"미드필더 자리에는 작년과 올해 연속으로 시즌 베스트 11에 들어간 미드필더 바비를 데려와 루카, 라이언과 함께 3 미드필더 전술도 유연하게 쓸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공격수 한 자리에는 이번 시즌 득점 2위 제롬을 데려오는 거죠. 이렇게 되면 우리 팀의 예상순위는 몇 위가 될까요? 테오까지 온다고 가정하면요."

"···잠깐만요. 바비요? 제롬이요?"

"또, 우리 팀에서 감자 머리 선수들이라고 불렸던 프리미어리그의 알짜배기 노장 선수들 있잖아요. 그 선수들이 우리 팀의 로테이션 선수가 되어준다면요? 더해서 제휴구단에서 뛰고 있는 프리미어 리그급 선수 세 명도 우리 팀에 데려온다면요?"

"잠깐만요. 머릿속으로 정리 좀 할게요."

"얼마든지요."

로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우스꽝스러웠지만, 그게 그녀 나름의 생각 정리법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로빈이 돌아와 앉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대체 몇 명, 얼마, 아···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요. 방금 말한 게 가능한 일이에요?"

"테오를 재영입하는 게 가장 어려울 것 같고, 나머지는 될 거예요. 칼은 계약 확정에 제롬은 챔피언스리그 진출 확정 지으면 효력이 생기는 계약을 마쳤어요."

"···대체 얼마를 쓰려는 거예요?"

나는 잠깐 심호흡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4억 5천만 파운드(약 7,000억 원)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5억 파운드 정도로 올라가요. 우리 팀이 이번 시즌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면 칼을 바이백으로 데려올 수 있거든요."

얼마나 충격을 받은 건지 로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재촉했다.

"이제는 테오와 협상할 차례에요. 어쩔래요? 나랑 뉴캐슬 단장의 자리 좀 만들어 주시겠어요?"

로빈은 대답 대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미친···."

< 64. 동화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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