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전지훈련 (1) >
감자 머리 선수들은 식사 내내 전지훈련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드러냈다.
"암벽등반 같은 것도 할 수 있습니까?"
"재작년에는 산, 작년에는 밀림이 있는 섬에 갔다고 해서 부러웠는데 이번이 더 재밌겠군요."
"이번 전지훈련은 규율이 있다는 게 신선합니다."
"총도 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정말 아쉬워요."
감자 머리 선수들은 내가 조교가 되더라도 즐겁게 훈련을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감자 머리 선수들에게서 이전 구단 생활이 어땠는지에 대해 들으며 시끌벅적한 식사를 했다. 감자 머리 선수들은 식사 후 오늘은 오후 훈련이 없는 날이라며 퇴근했고, 나는 다시 훈련장 건물로 돌아왔다.
오후에도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훈련장 관리인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 후, 곧장 잭슨과 코치들이 사용하는 회의실로 향했다.
"식사는 하셨나요."
"네. 감자 머리 친구들이랑 먹고 왔어요. 여러분은요?"
"오는 길에 먹고 왔습니다."
회의실 안에는 코치들 세 명이 출근해 있었다.
수석코치 로건을 비롯한 피지컬 분야의 코치 둘이었다.
나는 벽면 디스플레이에 내가 이들에게 준 영상 자료가 재생되고 있는 걸 보며 물었다.
"벌써 시작하신 건가요?"
"아뇨. 킴이 올 때까지 그냥 훑어만 보고 있었습니다. 킴. 이쪽에 앉으세요."
로건이 가리킨 의자에 앉자마자 로건이 물었다.
"바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예."
"그럼··· 유격 체조 1번부터."
로건의 말에 나이 어린 피지컬 코치가 영상을 재생했다.
유격 훈련의 꽃인 유격 체조의 원본 영상과 선수들의 훈련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변형한 유격 체조를 차례로 보여주는 동영상이었다.
세 코치는 어제까지 휴가였기 때문에 유명한 프리랜서 피지컬 코치를 고용해 변형 유격 체조를 만들어 달라고 한 결과가 이 영상이었다.
나는 이 영상을 베이스로 우리 선수들을 가장 잘 아는 우리 코치들에게 이 변형 유격 체조 프로그램을 점검해달라고 부탁했다. 바로 오늘.
세 코치뿐만 아니라 코치 대부분이 다음 시즌에 꼭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며 휴가를 짧게만 다녀올 거라고 구단에 통보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부터 코치진은 오전은 쉬고 오후마다 출근할 거라고 말이다.
영상이 계속 재생됐고, 코치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군대 안 갔다 온 사람도 아는 6번, '발 벌려 뛰기'를 보면서는
"6번을 가장 먼저 하면 되겠군요. 몸풀기로 적합해 보여요."
라고 말했고, 유격 체조의 상징 같은 악명높은 8번, '온몸 비틀기'를 보면서는
"이 사람이 짠 대로 이 유격 체조 8번이라는 건 살려도 되겠습니다. 프리시즌에 풀어진 코어를 확실하게 잡아줄 수 있겠어요. 하하."
라고 말했다.
코치들의 의견은 계속되었다.
"9번,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에 보류라고 적혀있는데 이 체조는 무조건 삭제하는 게 맞습니다. 그대로 했다가는 무릎 박살 나요. 이걸 대신해 선수들 앞에 스텝 래더를 배치해 단체로 훈련하는 것처럼 스텝을 밟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단체로 리듬을 맞춰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난이도도 있을 것 같고요."
나는 그 얘길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9번이 좀 문제긴 하죠. 그런데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혼자 해도 가끔 삐끗하는 훈련이 스텝 래더를 이용한 스텝 훈련인데 이걸 단체로 했다가는 대참사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유격 체조는 아무리 힘들어도 동작은 바로 해야 하니까.
내 의견에 코치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고, 로건이 대표로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원래는 더 쉬운 프로그램을 넣고 싶지만···."
참고로 코치들도 이 유격 훈련을 함께 받는다. 그동안 전지훈련에서도 늘 선수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잭슨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코치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너희가 훈련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 전지훈련을 쉽게 할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을 거다. 내가 최종적으로 다 점검할 테니까.'
그래서 이들은 일을 두 번 하지 않도록 한 번에 어렵게 만들어버리고 있는 거였다.
나는 코치들을 향해 다 안다는 듯한 눈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코치 하나가 영상을 보며 말을 돌렸다.
"11번은 조금 고민되긴 하지만··· 부상위험 때문에 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유명한 유격 체조는 8번이지만, 실제로 해 본 사람은 11번, '쪼그려 뛰기'를 최악으로 치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힘들고, 무릎 관절이 다칠 우려가 있는 체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코치들은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며 끊임없이 의견을 냈고, 가끔 저 체조를 실제로 했을 때 어땠는지에 대해 내게 물었다. 나는 친절하게 답해주며 회의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왔다.
최대한 체조의 느낌을 살리면서 부상위험은 줄이고, 선수들의 몸 상태에 도움이 되도록 유격 체조를 변형하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코치들은 논문들과 최신 포럼에서 나온 운동법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체조를 더 좋게 만들었다.
한참 후,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끝났다!"
이제 잭슨에게 검사만 맡으면 됐다.
코치들은 진이 빠진 얼굴이 돼 의자에 더 편하게 앉았다. 곧, 두 피지컬 코치는 창고에서 음료수 좀 챙겨오겠다며 나갔고, 나는 로건과 단둘이 대화를 나눴다.
로건이 먼저 물었다.
"그런데 이런 군사훈련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한국축구협회의 아는 분을 통해 국방부 허가를 받았어요. 그리고 노팅엄이 우리나라에까지 유명해진 건지 국방부에서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훈련을 지원해주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로건의 물음에 나는 술술 얘기했다.
"꼭 군대 시설이 아니라 유격 훈련 체험시설을 사용해도 괜찮았는데, 병사들이 실제로 훈련하는 훈련장을 내줬고요··· 훈련을 도와줄 조교와 교관도 원래는 예비역들 아르바이트 비용 주고 고용할 생각을 했는데, 현역에서 뛰고 있는 군인들이 도와주기로 했어요."
"예?"
"괜히 군인들 고생시키는 거 아닌가 싶어서 국방부에 직접 물어봤는데요. 그냥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람 있냐고 공문 보내니까 전군에서 난리가 났다고···."
"아, 그럼 다 자발적으로···."
"예. 경쟁률이 몇십, 몇백대 일에 다다라서··· 정말 최고의 조교와 교관을 모았다고 해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축구 스타들을 직접 볼 기회이니 놓치기 싫었을 거다. 20대 초반이라는 나이는 한창 해외 축구 스타들을 동경할 나이니까. 국방부 관계자는 심지어 휴가까지 반납하고 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에 가면 그 조교들에게 휴가증을 더 줄 방법이 없나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때, 로건이 물었다.
"그런데 단장님은 괜찮으시겠어요? 선수들이랑 함께 군사훈련 받는 거 절대로 안 쉬울 것 같은데··· 코치 애들은 휴가 때도 가끔 체력단련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정말 걱정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획이 있어서 괜찮았다. 씩 웃으며 말했다.
"잘 준비하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
"지금 녹화할 영상이 2026-27시즌 첫 영상이 될 거라는 거죠?"
"네."
"잠시만요."
나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깔끔하게 매만졌다.
마리아의 옆에는 카메라가 세워져 있었다. 나와 마리아는 지금 선수들이 복귀하자마자 노팅엄 FC에 올라갈 영상을 촬영하려 하고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마리아가 시킨 대로 앉은 나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마리아가 큐 사인을 내리자마자 나는 잠깐의 텀을 둔 후,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전지훈련이 시작되는 날, 이 영상을 볼 노팅엄 팬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노팅엄 FC의 단장 겸 사장 김도운입니다."
이어서 마리아가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노팅엄 TV 담당 PD 마리아예요. 노팅엄 팬 여러분, 보고 싶었어요!"
마리아가 장난스러운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자연스럽게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단장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원래였다면 선수 이적으로 무척 바빴을 테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팀의 이적은 진작 끝나서요. 지금은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빨리 처리해 놓고, 훈련장이나 경기장을 산책하며 여유 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전지훈련을 기대하면서요."
"전지훈련, 이번에는 단장님도 참여하시게 됐는데요. 걱정되시진 않나요?"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참고로, 계획은 영상 마지막에 말해드릴 거예요."
짜둔 대로 술술 말하는 날 보며 마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마리아가 말했다.
"먼저, 단장님에게 이번 프리시즌이 어떤 순서로 진행될지에 대해 들어볼 건데요. 다들 집중해주세요!"
마리아가 CG를 넣어줄 거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내 바로 아래에 전지훈련 일정표가 있는 것처럼 팬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팬분들이 가장 기대하는 전지훈련은 한국의 군부대에서 치러질 겁니다. 선수들과 코치들은 3박 4일 동안 유격 훈련 체험을 할 거예요. 전지훈련이 끝나면 베트남으로 이동해 베트남의 두 팀과 친선경기를 치를 겁니다. 그다음은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 참가합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이어 말했다.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은 같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싱가포르에서 열립니다. 이동 동선이 짧아 선수들의 체력을 많이 보전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 참가한 후에는 영국으로 돌아와 홈 친선경기를 한 경기 치를 계획입니다."
문득 생각난 게 있어 다음 질문을 할 준비를 하는 마리아에게 손짓하고, 말했다.
"참고로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은 안 치릅니다. 우리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처음이다 보니 팬분들이 헷갈릴 수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예전에는 리그 4위로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면 최종예선에서 이겨야 조별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꽤 오래전에 규정이 바뀌어 리그 4위도 바로 조별리그부터 시작합니다."
일정을 최대한 요약해서 잘 말한 것 같았다.
나는 준비해왔던 프리시즌에 대한 마지막 말을 꺼냈다.
"친선경기 사이사이에 잭슨 감독님과 코치진이 준비한 프리시즌 훈련을 진행할 겁니다. 그렇게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면··· 우리의 두 번째 프리미어리그가 시작될 겁니다. 프리시즌 계획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잘 들으셨죠? 단장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이해하기 쉬우셨을 거예요."
나는 마리아가 줄줄 말하는 걸 들으며 얌전히 있었다. 이어서 마리아가 부탁했던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됐다.
"단장님께 이번 전지훈련을 특별히 즐겁게 만들 계획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계획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계획 얘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아까 전지훈련을 기대한다고 하고, 걱정되지 않는다고 했죠? 바로 제게 선수들과 코치진을 놀려 줄 몰래카메라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이 영상에서 말해도 되나요?"
마리아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예! 이 영상이 올라갔을 때, 선수들은 스마트폰을 구단에 제출하고 군대 안으로 들어갔을 테니까 괜찮습니다."
"몰래카메라 계획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나요?"
"얼마든지요. 그러니까······."
나는 카메라가 꺼질 때까지 신나게 촬영했다.
**
휴가를 마친 선수들이 한국에 하나둘 도착하고 있었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선수들은 구단 관계자와 현지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서울에서 가장 좋은 호텔 중 한 곳으로 이동했다.
선수들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선수들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마리아와 조이가 꼭 봐야 할 영상이 있다며 이들을 찾아왔다.
이들은 마리아와 조이가 내민 태블릿을 통해 김도운의 음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몰래카메라 계획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나요?
-얼마든지요. 그러니까······.
로드가 감상을 말했다.
"···괘씸하네요."
"아주 괘씸해."
이어서 할리가 말했다.
마리아는 로드와 할리의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말을 카메라에 다 담았다. 몰래카메라 연출에서 중요한 건 다양한 시간대의 여러 시점을 효율적으로 편집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다큐멘터리 팀도 이 해프닝을 재밌다는 얼굴로 찍고 있었다.
전지훈련은 당장 내일이었다.
선수들은 어떻게든 김도운을 골려줄 방법이 없을까 마구잡이로 의논했다.
할리가 의견을 말했다.
"단장님이 조교가 되면 일부러 말을 안 듣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조교들은 어쩌고. 전지훈련이 엉망이 될 거야."
로드가 단호하게 반대하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때, 이태양이 말했다.
"저기, 캡틴. 고민할 필요 없어. 나랑 마리아와 조이가 대책을 세웠거든."
"응?"
로드를 비롯한 선수들의 시선이 이태양에게 모였다. 이태양은 살짝 민망한지 목덜미를 긁고, 선수들에게 김도운 속이기 계획을 쭉 말했다.
"···이렇게 진행할 거야. 그래서 짧게 조교 훈련도 받았어."
"오오."
"재밌겠다."
"단장님 얼굴만 보고 있어야겠는데."
로드, 라이언, 칼이 차례로 말했다. 다른 선수들도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이어서 선수들이 이태양에게 한마디씩 했다.
"썬, 우리 너무 괴롭히지 마."
"적당히, 적당히 하자고."
계속 말하다 보니 민망함이 많이 사라진 이태양이 또박또박 말했다.
"당연하지. 딱 하루만 하고 말 거야."
선수들의 대화가 끝나자 마리아와 조이가 끼어들었다. 마리아와 조이는 몰래카메라가 진행돼도 선수들은 놀라지 않고, 덤덤하게 있어 달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알았다고 말하며 내일 있을 역 몰래카메라에 대해 얘기하며 희희낙락했다.
그러는 동안 영상은 계속 재생됐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다.
영상 속의 김도운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선수들을 심하게 굴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신선한 기분으로 즐겁게, 전지훈련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한 거거든요.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애들 표정도 기대되고요.
-이번 시즌 목표는 그때 말했듯이 트레블입니다. 전지훈련을 시작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시끌시끌하던 선수들이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선수들은 영상이 끝나고 나온 노팅엄 FC의 엠블럼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잠시 후, 로드가 입을 열었다.
"단장님을 골리는 것도 좋은데··· 단장님이 부임하고 이렇게 여유롭게 있을 수 있는 프리시즌도 처음이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단장님한테······."
로드가 김도운을 위해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했다.
마리아와 조이는 로드의 계획을 듣고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로드의 말이 끝나자 선수들은 그렇게 하자며 의기투합했고, 조이가 말했다.
"도운이가 좋아하겠다."
마리아는 선수들이 새로운 계획을 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다 담았다.
마리아는 카메라를 끄기 전, 나중에 이 영상을 보게 될 팬들에게 소감을 말했다.
"음모에, 음모에 음모가 이어지는 프리시즌이네요."
**
열한 살의 남자아이와 이십 대 중반의 여성이 전투복을 걸치고, 서로를 보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휴고 리처드.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GRANDAD-DAD-SON 유니폼을 입고 화제가 되었던 리처드 삼대의 아들이었다.
여성의 이름은 히메나. 우리 팀 팀닥터 보조인 마야의 친구로 우리 팀의 응원가를 만들어준 <작은 방> 밴드의 일원이었다. <작은 방> 밴드는 이제 유럽 공연까지 하러 다닐 정도로 커져 히메나는 그냥 연예인이었다.
나는 둘에게 다가가 물었다.
"둘 다 사이즈 괜찮아요?"
"네!"
둘은 이번 전지훈련에 함께할 수 있게 당첨된 팬이었다.
최소자격조건이 4부리그 시절부터 응원해온 팬임을 인증하는 거였고, 많은 사람이 지원해서 이 둘이 뽑혔다.
"더 살펴보고 문제 있으면 말해줘요. 알겠죠?"
"네! 단장님."
히메나는 여군용 군복을 입으면 됐지만, 휴고는 어렸기에 사이즈가 없어 특별히 준비한 맞춤 군복과 사제 군화를 지급한 거라서 최대한 빨리 확인해야 했다.
휴고는 각종 군용품을 보며 눈을 빤짝이고, 꼼꼼하게 확인한 후 내게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에 우리 생활관에 있는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선수들의 체형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즈에 맞게 전부 준비해둬 다들 거의 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같은 생활관에 배정된 이태양을 유심히 봤다. 전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군대에 끌려와서 기분이 나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태양은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심했다.
다른 생활관에 있을 선수들도 괜찮겠지.
이어서 바라본 건, 창밖에서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는 교관들과 조교들이었다.
조교들의 얼굴은 정말 앳돼 보였다. 다 20대 초반에 군대에서 고생하는데 이번 전지훈련이 그들에게도 잊지 못할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작게 윙크했다.
내 윙크를 본 몇몇 조교가 어색하게 웃었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저 조교들과 아는 사이였다. 어제, 조교 역할을 하기 위해 하루만 훈련받아도 된다고 해서 훈련을 받고 저 조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인도 해주고, 선수들에게 사인받을 기회도 달라고 해서 훈련 끝나고 시간을 마련해보겠다고 했었다.
그때, 문을 열고 교관과 조교들이 들어와 생활관 모두에게 말했다.
"다들 장비에 이상 없으면 군복부터 제대로 입겠습니다. 양말 빼서 신지 말고, 바지 밑단에 달린···."
전투화 신는 법, 장구류 착용법 등 교관은 능숙하고 친절한 영어로 쭉 설명했다.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했으니 지금은 군기를 안 잡을 모양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활관 모두가 어엿한 군인 복장이 되자, 교관은 모두를 연병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서로 다른 생활관에 있던 선수들이 서로의 모습을 보자마자 웃기도 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인종도 다르고, 머리 색이나 눈 색도 달랐기에 모두가 한국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재밌었다.
그때였다. 친절하던 교관이 단상에 올라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합니다! 줄 똑바로 섭니다!"
조교들도 똑같이 외쳤다. 달라진 분위기에 선수들이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줄을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맨 앞자리였기에 제자리에서 발만 몇 번 구르고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관이 계속 말했다.
"불의의 사고로 조교 하나가 응급실에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도와줄 조교를 한 명 새로 뽑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한 명 차출하겠습니다."
기다렸던 대사다. 이제 교관이 날 데려갈 것이다.
교관이 단상에서 내려와 뚜벅뚜벅 내게 걸어왔다.
교관이 날 보며 씩 웃었다. 노팅엄의 카메라가 우릴 찍고 있었다. 나도 마주 웃어주는 데, 교관이 갑자기 걸어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당황에서 잠시 말을 잊고 교관의 움직임을 쫓았다.
교관은 내 바로 뒤에 서 있는 이태양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떤가. 2번 올빼미. 할 수 있겠나?"
"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이태양 조교.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
"예! 감사합니다!"
이어서 준비된 것처럼 조교들이 이태양에게 조교의 복장을 갖다 줬다.
이태양은 군복을 벗고, 유격 조교의 상징인 붉은 티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호루라기가 달린 황금빛 줄을 목에 걸고, 빨간 모자를 깊게 눌러 썼다. 이제 이태양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뇌 정지가 와서 이태양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복장을 다 갖춘 이태양이 얼빠져 있는 날 향해 씩 웃었다.
그리고 이태양은 조교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1번 올빼미, 당황하지 않습니다."
영어로.
< 66. 전지훈련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