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12화 (212/245)

< 66. 전지훈련 (2) >

"괴상하게도 요즘 운수가 좋더니만···."

나는 점심으로 나온 꼬리곰탕을 한 입 먹으며 중얼거렸다.

우울했다. 몹시 우울했다.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앞에 앉은 로드가 실실거리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단장님? 왜 한국어로 중얼거려요? 썬 욕한 거 아니죠?"

"슬퍼하는 중이니까 말 걸지 마. 너희도 한패인 거 다 알아."

식당으로 오면서 선수들이 전부 내 망연자실한 얼굴을 보며 실실거리는 걸 봤다. 지금 촬영 중인 마리아도 날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여러 명이 연관된 음모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마리아를 보며 눈썹을 꿈틀대자 마리아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도니, 너무 상심하지 마요. 팬들이 정말 좋아할 거예요."

그 말에 마음이 조금 좋아지려는데 할리가 놀리듯이 말했다.

"맞아요. 아까 썬이 '1번 올빼미, 당황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을 때 단장님 표정 정말 예술이었거든요. 팬들이 그걸 보면 당연히 좋아할 거예요. 저도 나중에 영상 캡쳐해서 제 라커에 붙여놓으려고요."

나는 할리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몹시 얄미웠지만, 애초에 내가 선수들을 골탕 먹이려다 역으로 당한 것이었기에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래, 어차피 망한 거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이런 식으로 다시 유격훈련을 하게 될 줄이야."

"단장님. 죽어도 같이 죽어야죠. 어딜 빠져나가시려고 하셨어요. 우리가 단장님이랑 함께하는 전지훈련을 얼마나 기대했는데요."

내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드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로드를 비롯한 선수들에게 말했다.

"그래. 일단, 너희를 골리려고 해서 미안했다."

선수들이 날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거 훈련 제대로 즐겨보자. 이제 잔머리 굴리지 않으마."

"예!"

선수들이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

식사 후, 생활관으로 돌아온 우리는 유격훈련장으로 이동하는 행군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직접 군장을 싸는 건 아니었기에 우리는 장비를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장비가 있으면 조교들에게 교체를 받는 식으로 진행했다.

전투용 배낭의 무게는 다행히도 원래의 절반이었다. 할리 같은 부상이 잦은 편인 선수들은 단독 군장(전투용 배낭을 메지 않는 군장)으로 행군을 할 것이다.

원래는 선수들의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내가 직접 훈련을 하게 된 지금은 배낭의 무게를 줄인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위복이라는 단어가 잘 맞는 상황이었다.

다시는 올 줄 몰랐던 이곳에 오니 신기한 게 많았다.

"요즘에는 정글모를 쓰네."

"원래는 이 모자 아니에요?"

"나 때는 말이야. 방탄모를 쓰고 했었어. 통풍이 안 돼서 더럽게 더웠었는데···."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칼이 말을 걸어왔다.

"조교 모자가 아니라서 아쉽죠?"

"야."

칼의 농담에 베스테를로에서 이적해 온 두 신입 선수도 다른 선수들과 어우러져 킥킥거렸다. 칼, 바비, 감자 머리 선수들 등은 돌아온 선수들이라 그런지 하나의 어색함도 없이 아주 순조롭게 적응한 상태였다. 저 두 신입 선수와 이태양만 잘 적응하면 될 것이다.

잠시 후, 여기까지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깨닫고 직업병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마리아가 카메라 뒤에서 웃는 걸 보며 살짝 심통을 부렸다.

"선수들이 절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

"네. 삼촌이랑 조카들 같아요."

너무 빨리 대답이 와서 나는 뚱한 표정만 지었다.

그때, 감자 머리 선수 중 하나인 사무엘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단장님. 배낭 무게 원래대로 하면 안 됩니까?"

"예?"

"지금은 너무 가볍습니다. 몸 상태도 좋은데 최고 무게로 하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생활관에 있는 코치와 눈을 맞췄다.

코치들과 걱정했던 대로 감자 머리 선수 중 하나인 사무엘이 배낭 무게를 올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설득하겠다고 눈짓하고 사무엘에게 말했다.

"안 돼요. 제가 해봐서 아는데 당장은 괜찮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문제가 생겨요. 사무엘에게 중요한 건 이 전지훈련이 아니라 이번 시즌 맞죠?"

"으음··· 예."

"무게를 줄인 건 우리 코치진의 판단이에요. 꼭 지켜줬으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혹여나 운동량이 적다며 무게를 올릴까 봐 단호하게 말했다. 다행히도 설득이 잘 된 것 같았다. 사무엘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차근차근 행군 준비를 마쳤다.

잠시 후, 연병장에 모두 모인 우리는 유격훈련장으로 출발했다.

*

짝짝짝짝.

기계가 치는 것 같은 박수가 우리를 맞이했다.

앞에 보이는 유격훈련장 입구 양쪽으로 조교들이 나란히 서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중, 이태양의 얼굴을 보며 점심 때쯤 속았던 게 다시금 떠올랐다.

선수들은 이태양에게 농담 한마디씩 던졌지만, 이태양은 무뚝뚝한 얼굴로 박수만 쳤다. 부러웠다. 나도 저 자리에 있어 보고 싶었는데.

우리는 먼저 숙영지(군대가 병영을 떠나 묵는 장소)에 도착해 텐트를 설치했다.

다들 군용 텐트는 설치해본 적 없었기에 조교 두 명이 공터로 나섰다.

"본 조교가 먼저 설치하는 방법을 보여줄 테니 잘 따라 하길 바란다."

"예스!"

조교들은 우리들의 대답에 잠시 멈칫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축구 스타들이 이곳에 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텐트 장비를 내려놓던 조교는 입꼬리가 살짝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잠시 후, 조교들은 훌륭하게 설치 시범을 마쳤다.

이어서 선수들이 본 대로 따라서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조교들이 당황할 정도로 능숙하게 텐트를 설치했다. 다들 매년 전지훈련마다 설치를 해봐서 그런지 금세 감을 잡는 것 같았다.

"저는 휴가 중에 예습해왔어요. 잘했죠?"

전지훈련 경험이 없는 칼은 연습까지 해 왔단다. 스스로 뿌듯해하는 것 같아 나는 엄지를 내밀어 칭찬해줬다.

무사히 텐트 설치가 끝나고, 우리는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며 CS복(폐기 대상이지만 아직 사용 가능한 군복, 유격훈련을 할 때 입는다)으로 갈아입고 연병장에 모여 입소식을 시작했다.

나는 1번 올빼미이자 군필자였기 때문에 노팅엄의 사람들을 대표해서 맨 앞에 섰다.

입소 신고를 하기 위해서.

···이 나이에 별걸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신고합니다. 노팅엄 FC 소속 단장, 감독, 코치, 선수 총 34명은 2027년 6월 28일부로 유격훈련 입소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유격!"

신고내용은 영어로 했고 경례 구호인 유격만 한국어로 했다.

선수들은 신고 직전 조교들과 연습한 대로 다들 각 잡힌 인사를 보여줬다. 이어서 교관이 인사를 받아주고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몇 가지 알아야 할 내용을 설명했다.

"여기서는 '악!'으로 대답한다."

"이곳에서는 교관과 조교를 제외한 모두가 유격훈련을 받는 '올빼미'다.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여러분들이 프로 선수라지만, 힘들 거다."

주의사항을 다 설명한 교관은 원어민 수준의 유창한 발음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이 연병장에는 아주 훌륭한 야간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밤에도 낮처럼 활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우리 훌륭한 조교들과 함께 3박 4일 내내 계속할 PT 체조를 배운다. 취침은 그 이후에 한다. 알겠나?"

"악!"

이제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1번 올빼미! 더 빨리!"

"악!"

절반 이상이 해본 적 있는 동작이었지만, 스텝 래더가 각자의 앞에 놓이고, 아예 새로 추가된 동작도 있었기 때문에 더럽게 헷갈렸다.

또, 한 동작을 가르칠 때마다 교관이

"이번 체조는 10회다. 10회!"

"10회!"

"목소리가 작다. 20회 몇 회?"

"20회!!"

"아직도 부족하다. 22회 몇 회?"

"22회!!!"

이 짓을 해대니 추억도 새록새록 살아나고 열도 받고 그랬다. 역시 유격훈련의 꽃은 PT 체조가 틀림없다.

아까까지만 해도 헤실거리던 선수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심각한 얼굴들로 체조를 하고 있었다.

"휘슬 소리에 동작을 맞춰라! 여러분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악!"

선수들은 현역 선수였기에 금세 감을 잡고 훌륭하게 체조를 해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코치와 잭슨은 현역이 아니었기에 가끔 동작이 굼떴다.

그래도 어찌어찌 템포를 맞추고 있는데, 교관의 본격적인 교란이 시작되었다.

"자, 이제 체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 이제부터 마지막 숫자를 외치면 안 된다! 마지막 숫자를 말하는 올빼미는 '열외' 해서 특별한 훈련을 받게 될 거다."

특별한 훈련이라는 말에 선수들이 긴장했다.

나는 옆의 선수들과 뒤의 선수에게 말했다.

"얘들아. 절대로 틀리면 안 된다."

"설마요. 마지막 숫자만 말 안 하면 되는 거잖아요?"

할리의 여유 있는 말이 몹시 불안했다.

"21번 올빼미 열외!"

잠시 후, 할리가 끌려갔다.

이어서 믿었던 라이언도 마지막 숫자를 말하는 바람에 끌려갔고,

"11번 올빼미 열외! 2번 올빼미도 열외!"

둘을 보며 킥킥거리던 로드가 자세를 완전히 틀리는 바람에 열외 됐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마지막 숫자를 말할 때마다 체조를 두 배, 세 배 더하다가 계속 고문관 짓을 하면 열외가 되는 건데 왜 바로 열외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18! ···젠장."

잡생각으로 정신을 팔다 힘차게 마지막 숫자를 외친 나는

"1번 올빼미 열외!"

라는 말을 들으며 먼저 떠난 로컬 보이 3인방이 향한 곳으로 갔다.

그리고 왜 교관이 체조를 더 안 시키고 바로 열외 시켰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열외자 들을 따로 훈련 시키는 곳에 이태양이 있었다.

로컬 보이 3인방은 이태양이 부는 휘슬에 맞춰 체조하고 있었다.

"24! 아···."

"21번 올빼미! 연병장 정 반대에 있는 가장 큰 느티나무를 찍고 옵니다. 뛰어!"

"악!"

할리가 셋이 하는 체조에서도 마지막 숫자를 말하고, 느티나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할리가 돌아오는 동안 이태양은 내게 말을 걸었다.

"1번 올빼미?"

"악."

"목소리가 작습니다."

"악!"

"1번 올빼미는 이 자리에 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목소리가 작았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태양의 입가에는 희미하지만, 분명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옆에서 마리아가 이 광경을 찍고 있었다.

또, 라이언과 로드가 끅끅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이태양은 공평했다.

"올빼미들, 웃지 않습니다."

라이언과 로드는 언제 웃었냐는 듯 정색했다.

로컬 보이 3인방과 PT 체조를 하고 있으니 다양한 선수들이 열외 돼서 왔다. 아마 나 대신 이태양을 조교로 쓰며 세운 계획 같았다. 이태양과 새로운 선수들이 얼굴을 익힐 수 있도록 말이다.

이태양은 선수들에게 알게 모르게 장난도 치며 과하지 않게 조교 역할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 대신 이태양이 조교를 한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열외 되기도 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도 하며 한 시간가량의 PT 체조를 마쳤다.

우리는 샤워장에서 다 함께 씻고, 바로 텐트로 들어갔다.

모두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한국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고, 오늘 20km 걷고, 한 시간 동안 PT 체조까지 했기 때문에 무척 피곤할 것이다.

나도 금방 잠자리에 들 것 같았다. 선수들의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교가 아닌 선수로 전지훈련에 참여한 게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단장님. 저 왔습니다."

"아이고, 우리 조교님 오셨습니까."

"하하하···."

다음 날, 아침에 PT 체조를 한 직후 이태양이 조교 모자를 반납하고 우리 분대로 들어왔다. 나를 시작으로 선수들이 이태양을 놀리기 시작했다.

"빨간 모자님이다."

"당황하지 않습니다!"

"웃지 않습니다!"

나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선수들의 성대모사가 정말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이태양이 당황해서 손을 어정쩡하게 움직이며 변명했다.

"다들 미안해. 일부러 살살 한 거라고."

"즐기는 거 같던데?"

"맞아맞아."

아무래도 이태양에게 새로운 캐릭터가 잡힌 것 같았다. 금방 친해질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이태양이 합류한 후, 우리는 3개분대로 나뉘어서 기초 장애물 훈련을 시작했다. 참고로 선수들과 코치들의 화합을 위해 분대 구성원을 어제와 달리했다. 내일도 섞을 예정이었다.

오늘은 할리와 잭슨이 같은 조가 됐다. 잭슨은 노익장을 과시하듯 조금 느리긴 했지만, 능숙하게 훈련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통나무 건너뛰기, 외줄 타고 급경사 오르기 등을 하고 이번에는 물웅덩이를 외줄을 잡고 타잔처럼 건너는 줄건너 뛰기 훈련의 차례가 됐다.

다른 훈련에서는 기초 장애물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PT 체조를 시켰지만, 이곳의 조교는 우리에게 편히 앉으라고 했다.

조교들이 어떻게 물웅덩이를 넘는지 시범을 보여주고, 첫 타자로 할리가 나섰다.

조교는 할리에게 농담을 던지는 여유도 보여줬다.

"21번 올빼미. 여기 있는 분대원 중에 평소 불만 있던 사람 없습니까?"

할리는 기대대로 이렇게 답했다.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시원하게 외치면서 도하합니다."

"괜찮습니까?"

"이 장소에서 여러분은 다 같은 훈련병입니다. 도하!"

"알겠습니다! 도하!"

할리가 외줄을 잡고 멋지게 물웅덩이를 건너며 외쳤다.

"12번 올빼미이이이이이!"

잭슨의 얼굴이 굳었다. 12번 올빼미는 잭슨이었으니까.

나를 포함해서 모두는 할리가 무슨 말을 할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해서 줄을 놓은 할리를 지켜봤다.

할리는 잭슨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사랑합니다!"

아무래도 할리는 겁이 났던 모양이었다. 나와 선수들은 할리에게 야유했고, 잭슨이 우리를 찌릿하고 쳐다봤다.

기초 장애물 훈련이 끝난 후에는 산악 장애물 훈련이 시작되었다. 선수들의 기본 체력이 받쳐주다 보니 훈련이 수월하게 진행됐고, 선수들은 계곡 사이를 외줄 하나만 타고 이동하는 훈련을 하며 자기들이 진짜 군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음 날에도 PT 체조, 장애물 훈련을 하고 참호격투까지 치렀다.

나는 참호격투에 내기 상품을 걸었다. 이긴 팀이 요청하는 훈련 설비를 꼭 설치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감자 머리 선수들이 모인 분대는 최신 피트니스 장비를 꼭 받아내겠다고 선언하더니 피지컬 괴물 미할리스와 킹이 있는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팀을 박살 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역시 동기부여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

참호격투가 끝난 후, 우리는 숙영지에 돌아왔다.

나는 소변이 급해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화장실에 있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3박 4일은 참 짧았다. 내일이면 우리는 유격훈련장에서 벗어나 다시 프로 축구팀의 일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쉬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서 나와 이틀 동안 묵었던 텐트에 돌아왔다. 나는 문을 걷으며 말했다.

"칼, 로드, 저녁 시간 언제래?"

그런데 텐트 안에 아무도 없었다.

"칼?"

이상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인기척이 아예 없었다.

옆 텐트의 문을 걷어내고 들어가니 역시 사람이 없었다.

"로드? 잭슨?"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나무들 때문에 숙영지는 어두운 감이 있었다. 나는 괜히 겁이 나서 목소리를 더 키워 사람들을 불렀다.

"라이언? 할리? 바비? 테디? 테오? 알버트?"

점점 오싹해졌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조교들과 교관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휘통제실이 있을 연병장으로 향하기로 마음먹고, 바로 뛰기 시작하려는데 연병장으로 향하는 길옆 나무에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무언갈 발견했다.

[단장님, 연병장으로 오세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연병장 쪽으로 가야 했기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멀리서 야간조명이 켜져 있는 연병장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이 조교들과 다 함께 축구 골대를 옮기고 있었다. 연병장에 줄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고, 음식과 음료를 세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 로드를 비롯한 사람들 몇 명이 달려왔다.

나는 로드에게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왜 말도 안 해주고 먼저 온 거야?"

"몰래카메라였어요. 그리고···."

정말 방심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로드가 이어 말했다.

"단장님 몰래 준비할 게 있어서요. 별 건 아니지만요."

"응? 나 몰래? 뭔데?"

"저기 보이잖아요. 임시 축구장이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는데 로드가 확실히 말했다.

"단장님이랑 같이 축구 좀 하고 싶어서요."

그제야 나는 선수들이 뭘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즌 시작하면 언제 다 함께 이래 보겠어요. 단장님이나 저희나 엄청나게 바빠질 텐데."

로드의 말을 들으며 나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연병장에서는 겉도는 선수 하나 없이 모든 선수와 코치진이 전지훈련의 마지막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 선수들이 내게 손짓도 하고 있었다.

그때, 미리 다가와 있던 마리아가 내게 녹색 옷을 내밀었다.

"이건···."

노팅엄의 이번 시즌 유니폼이었다. 유니폼 뒤에는 KIM이라고 적혀 있었다. 틀림없는 내 유니폼이었다.

나는 선수들과 직원들이 준비한 이 이벤트를 기꺼이 즐기기로 마음먹으며 물었다.

"로드, 너 유니폼 안 입냐?"

"이제 입어야죠. 조교들이랑 교관들한테도 줄 거예요. 아무튼, 하실 거죠?"

"당연하지."

나는 바로 겉옷을 벗고, 유니폼을 위에 입으며 중얼거렸다.

"유소년 팀 선배의 위엄을 보여주마. 내가 포기만 안 했어도 노팅엄의 스트라이커였을 수도 있거든."

< 66. 전지훈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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