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개막전 (1) >
"내일이 개막전이다. 늦잠을 자도 되고, 술을 마셔도 상관없다. 하지만! 컨디션이 떨어진다면 선발 명단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드레싱룸에서 잭슨이 선수들을 상대로 마지막 당부를 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한 시간가량의 짧은 훈련을 마치자마자 이곳에 모여있었다. 그중 칼은 눈을 부릅뜬 채로 잭슨의 말에 집중했다.
"임시 선발 명단을 발표하겠다."
부동의 주전은 로드와 테오뿐이었다. 프리시즌 내내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잭슨의 전술에 맞춰 선발되었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긴장하며 잭슨의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골키퍼는 후이."
잭슨은 선발 명단을 발표할 때, 자석 판을 애용했다. 착 소리가 나며 골키퍼 자리에 후이의 이름이 적힌 자석 말이 붙었다.
"수비 전술은 4백이다. 왼쪽부터 테오, 사무엘, 로드, 테디."
네 개의 자석 말이 차례로 붙는 동안 감자 머리 2호라고도 불리는 사무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칼은 자신의 포지션 경쟁상대인 테디가 오른쪽 풀백에서 뛴다는 말에 긴장을 살짝 풀 수 있었다.
"중앙 미드필더는 3명, 바비-루카-라이언 순으로 선다. 당연히 공격수도 3명이다. 왼쪽부터 루앙-제롬-칼이다. 우리는 내일 경기에서 C플랜으로 나설 예정이다. 참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칼은 힘차게 대답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C플랜은 스트라이커 제롬이 가짜 공격수처럼 움직이고 칼 자신과 루앙, 그리고 라이언이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해 골을 노리는 전술이었다.
특히, 자신과 라이언의 스위칭이 핵심이었다. 라이언은 측면으로 움직이고 자신은 중앙으로 이동해 최종 패스와 득점에 더 신경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전술이었다.
칼은 미소를 지었다.
공식 복귀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이 기뻐서.
명단 발표를 마친 잭슨이 다시 한번 선수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여기까지다. 그럼 수고했다. 내일 보자."
"예! 수고하셨습니다!"
잭슨은 그렇게 나갔고, 드레싱룸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선발 명단에 뽑힌 선수들은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눴고, 선발 명단에 뽑히지 못한 선수들은
"못하기만 해 봐라. 평점 6점에서 0.5점씩 떨어질 때마다 딱밤 때릴 거야."
와 비슷한 말들로 주전 선수들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고 있었다.
칼은 그 모습을 보며 점점 실감했다.
정말 내일이면 프리미어리그가 시작하는구나, 라고 말이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누군가 칼의 어깨를 잡았다.
칼이 움찔하며 돌아보니 그곳에는 라이언이 있었다.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내가 멍하니 있었다고?"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의 루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라이언이 말했다.
"점심 먹자고 말을 세 번이나 했는데 멍하니 앞만 보고 있던데."
구체적인 말에 칼은 목을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 첫 경기를 한다는 게 설레서···."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밥은? 나 아침 못 먹고 와서···."
루카가 말했다. 배가 많이 고픈 얼굴이었다. 루카와 칼은 프리시즌 동안 함께 다니며 꽤 친해진 사이였다. 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안될 것 같아. 에이전트랑 점심 먹기로 했거든."
"오케이. 그럼 주차장까지만 같이 나가자."
"응."
셋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다들 내일 봐."
"수고해."
다른 선수들에게 인사하며 드레싱룸을 나섰다. 선발 명단에 뽑히지 못한 선수들도 오늘은 추가 훈련을 해선 안 됐다. 왜냐면 내일 최종 명단을 결정할 때 선발될 수도 있어서 몸 관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칼은 주차장에서 두 선수와 헤어지고, 에이전트를 만났다.
"오오, 슈퍼스타가 왔네."
"오버하지 좀 마."
거의 한 달 만에 만나는 에이전트의 과장된 인사에 칼은 질색하는 얼굴을 하며 손을 내저었고, 잠시 후 둘은 웃으며 주먹을 부딪쳤다.
칼이 부탁했다.
"운전 좀 해주라."
"예스예스."
칼의 에이전트 뮐러는 노팅엄이 4부리그에 있을 시절부터 함께했던 에이전트였다. 뮐러는 칼 덕에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선수만 6명, 도르트문트 선수만 4명을 데리고 있는 꽤 유망한 에이전트가 됐다.
함께 성장한 만큼 둘은 가족만큼이나 친한 관계였다.
뮐러가 운전석에 들어가고 칼이 조수석에 앉았다. 주차장 관리인에게 인사하고 도로로 나섰다. 칼은 창밖으로 보이는 노팅엄시의 정겨운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일부터 시작이네."
"긴장이라도 돼? 웬일로 운전을 해 달라고 하는 거야?"
뮐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칼은 독일에 있을 때 자기 차는 자기가 몰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늘 운전석에 앉았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부상이라도···."
"아니. 몸 상태는 최고야."
뮐러의 걱정 어린 물음에 칼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내일 경기가 기대되면서도 꽤 긴장돼서 그래. 괜히 운전하다가 실수할까 봐."
"네가 긴장을 한다고?"
"어, 월드컵 첫 경기보다 더 떨려."
"호들갑은. 너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때도 그 소리 해놓고 두 골 넣었잖아."
"진짜야. 그때보다 더 두근거려."
"안 믿는다."
뮐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칼은 어느 경기에서든 늘 제 몫을 해주는 선수였다.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에서도 저게 첫 경기를 뛰는 선수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칼이 긴장한 모습은 뮐러의 기억 속에 없었다. 뮐러는 칼
이 농담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뮐러의 머릿속에는 점점 걱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뮐러는 말없이 운전을 계속하며 창밖을 보고 있는 칼을 훔쳐보며 생각했다.
'호들갑이 아니라 정말 긴장하는 거라면 어떡하지? 엄살을 피우는 게 아니라면?'
에이전트는 선수의 대리인, 선수가 최상의 상태로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돕는 역할도 한다.
뮐러는 칼이 노팅엄에 돌아올 수 있게 됐을 때, 자신이 최종적으로 서류 작업을 마무리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고 있었다. 칼이 도르트문트에 있을 때도 수시로 노팅엄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고, 경기 영상을 늘 챙겨보는 것도 기억했다.
한참 생각하던 뮐러는 예약을 잡아둔 레스토랑의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다가, 차를 멈추자마자 말했다.
"점심 먹고 바로 집으로 가지 말고 산책이라도 하는 게 어때?"
문을 열고 내리려 했던 칼이 멈췄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뮐러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긴장된다며. 너 4부리그에 있을 때 번화가 걸어 다니는 거 좋아했잖아. 초심을 되살려 보자 이거지."
"오."
뮐러가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는 사실에 칼은 살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노팅엄에 돌아온 후, 가사도우미를 고용한 바람에 칼은 집-훈련장만 오가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
"···다 그대로 있네."
칼의 감상대로 번화가는 그대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게들의 간판은 전부 새 걸로 바뀌었고,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많은 사람이 관광객 같았다. 훨씬 더 번성한 번화가가 되어 있었다.
칼은 뮐러가 빌려준 선글라스를 깊게 눌러 쓰고 마스크까지 쓴 뒤 걸었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혹시라도 몰려들면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칼은 일단 가사도우미에게 부탁해 옷을 맡겨둔 세탁소에 들렀다. 세탁소는 건물 안이었고, 번화가 구석에 있었기에 사람이 적은 편이었다. 이용객들도 노팅엄시 사람들뿐이었으니까.
몇 년 전에는 직접 옷을 맡기러 오곤 했었는데.
칼은 감회에 젖으며 세탁소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실력 있는 세탁소 주인 브랜은 옷을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정체를 숨긴 칼을 바라보았다. 브랜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의 눈만큼이나 동그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칼에게 다가와 말했다.
"칼! 이게 얼마 만이야!"
자신의 정체를 한 번에 알아보는 브랜의 눈썰미에 칼은 속으로 많이 놀랐다. 칼은 브랜과 포옹하며 물었다.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우리가 얼마나 오래 봤는데. 네 정장도 여기 있고. 언젠가 한 번 올 줄 알았어."
"직접 찾아뵀어야 했는데···."
"뭘! 이제는 함부로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사람이 됐는데."
그렇게 말하는 브랜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뿌듯해 보였다. 브랜이 계속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가게에 칼이 옷을 맡겼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랑했었는지 몰라."
"하하하, 앞으로 자주 놀러 올게요."
"그럼! 내일은 선발이야?"
마치 고향에 돌아와 몇 년 만에 만난 동네 사람과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밀이에요."
"선발이겠지. 칼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데."
칼은 민망해서 웃었다.
"내일 과일가게 제이미랑 정육점 스벤이랑 함께 경기 보러 가기로 했으니까, 잘해야 해. 알겠어?"
"제이미 아주머니랑 스벤 아저씨도 여전하신가 보네요. 여기에서 나가면 둘 다 들를 건데··· 장사 잘 되신데요?"
"당연하지. 노팅엄 FC가 커지면서 시 인구랑 관광객이 동시에 잔뜩 늘어났거든. 주말 되면 길에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브랜의 표정은 정말 밝았다. 브랜이 이어서 말했다.
"다 칼이 3부 리그 승격을 이끌고 가 준 덕이지."
"에이, 뭘요."
"이번 시즌도 잔뜩 기대하고 있다고."
브랜이 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다 브랜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칼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부담을 줬나?"
"제가 이런 거로 부담 갈 나이는 아니잖아요. 저 월드컵도 주장으로 뛰고 온 선수라고요."
"오오, 그렇지?"
"예,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슬슬 가봐야겠네요. 다른 가게도 들러야 하고, 일찍 들어가서 컨디션 관리해야 하거든요. 내일 선발일지도 모르니까."
브랜은 아쉬운 얼굴으로 칼을 보내줬다.
"얼마든지 놀러 와."
"예. 가끔은 직접 세탁물 갖고 올게요. 사람들 없는 시간에요. 그리고··· 내일 경기 기대하세요."
"오? 역시 선발인 거야?"
"비밀이라니까요."
"하하, 기대할게!"
칼은 4부리그 시절 맺었던 인연들을 하나하나 만나 인사를 나눴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녁에는 김도운과 따로 만나 식사까지 했다. 김도운은 또 상담이냐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그냥 저녁만 먹고 갈 거라고 말하니 이윽고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칼은 이날 밤, 정말 푹 잠들었다.
**
노팅엄의 선수들은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해 몸 상태 최종 점검을 하고, 최종 명단을 축구협회에 보낸다.
♫♬
"예에!"
그리고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풀 시간이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킹과 미할리스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책을 읽고 있었고, 루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라이언은 오늘 상대인 스토크시티의 경기 영상을 보고 있었으며 나머지 선수들은 드
레싱룸 한가운데 펼쳐진 춤판을 구경 하고 있었다.
"잘한다!"
"역시 브라질리언!"
드레싱룸 한가운데서 할리와 루앙, 바비와 제롬이 삼바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칼은 로드와 함께 앉아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드레싱룸의 문을 열고 잭슨과 코치들이 들어왔다.
드레싱룸에 펼쳐진 광경에도 잭슨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썹만 꿈틀했다.
선수들은 알아서 스마트폰을 통해 흘러나오던 음악을 끄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잭슨이 말했다.
"개막전에 뛰고 싶다고 무리하는 선수는 없지?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해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칼을 포함한 모든 선수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좋아, 그러면 명단 수정은 없다. 오늘 상대는 만만한 팀이 아니다. 작년에 두 경기 다 이겼다지만, 스토크시티는 전력 보강을 알차게 했거든."
칼은 잭슨을 비롯한 코치들의 전술 지시사항을 집중해서 들었다.
오늘은 프리미어리그 전체의 개막전이기도 했다. 어제 김도운에게 들었는데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서 노팅엄이 화제라며 개막전을 떠맡겼다고 했다.
꽤 부담이 갈 수도 있었지만, 김도운은 괜찮다고 말했다. 너희들이 이겨줄 거라고 믿고 있다면서.
"칼, 집중해라."
"예!"
칼은 괜히 두근거려 다리를 떨었다.
경기 시작까지 두 시간도 안 남았다. 칼은 빨리 경기가 시작하길 고대했다.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친선 경기가 아니라 진짜 경기에서.
*
"야, 저기 봐."
칼은 로드와 공을 주고받으며 몸을 풀다가, 로드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필드와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관중석에 한 아이가 칼의 등 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들고 있었다.
무려 4년 전 유니폼이었다.
칼은 로드에게 받은 공을 되돌려주지 않고, 그 아이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아이는 칼의 유니폼을 마구 흔들며 기뻐했다.
칼은 다시 시선을 옮겨 로드에게 패스하며 말했다.
"경기 끝나고 사인해줘야겠다."
이런 소소한 동기부여는 경기력으로 이어진다. 칼은 이런 식으로 경기를 이겨야 할 이유를 늘리는 걸 즐겼다.
로드가 칼의 높은 패스를 깔끔한 트래핑으로 잡고, 다시 넘겨주며 말했다.
"그럼 무조건 이겨야겠네."
"당연하지. 내가 원조 에이스의 위엄을 보여줄게."
"뭐?"
잠시 후, 칼의 말을 이해한 로드가 크게 웃었다.
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 공식 복귀전이야. 화려하게 치러야지."
"그래, 기대할게."
그때, 코치들이 칼을 비롯한 선수들을 불러들였다. 칼은 로드와 함께 드레싱룸으로 향했다.
칼은 드레싱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친선 경기를 치를 때와는 느낌이 아예 달랐다.
진짜로 돌아왔다. 잠시 후에 시즌이 시작된다는 설렘에 칼은 입가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다들 힘내."
"못하면 우리랑 교체다."
후보 선수들은 주전 선수들을 격려하며 밖으로 나갔다. 주전 선수들과 잭슨만 드레싱룸에 남았다.
잭슨은 선수들에게 한두 마디씩 했다. 프리시즌 때와는 다르게 살짝 흥분한 것 같은 목소리로 선수들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핵심만 콕 찝어 주는 그의 방식은 그대로였다.
"칼, 넌 뭘 해야 하지?"
"라이언과 수시로 위치를 바꿔 중앙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테디가 오버래핑하지 않았을 때는 측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에 머무를 때는 공격수처럼 적극적으로 골을 노립니다."
"좋아. 완벽해."
잭슨은 마지막으로 제롬의 역할을 확인한 후, 중앙에 서 주전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우리가 프리시즌 동안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지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칼은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열한 명이 동시에 같은 대답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팀워크가 올라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잭슨이 한마디를 더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번 시즌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해라."
갑작스럽게 벅차오르는 감정에 칼은 침묵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든 선수의 눈은 열의로 번득이고 있었다.
잭슨은 선수들의 눈을 쭉 보고 만족스럽게 웃은 후 드레싱룸을 나갔다.
칼과 선수들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심판이 오길 기다렸다. 칼은 이 감정을 유지한 채로 경기장에 나서고 싶었다.
잠시 후, 심판이 드레싱룸에 들어와 물었다.
"반지나 팔찌, 목걸이 같은 거 착용하신 분 있습니까?"
"없습니다."
로드가 대표로 대답했다. 심판은 고개를 끄덕이고 선수들에게 손짓했다.
"그럼 나오세요. 입장 준비해야 합니다."
"예. 가자."
칼과 선수들은 복도로 나가 필드 위로 향하는 터널에 도착했다.
스토크시티의 빨간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원정팀 선수들은 벌써 줄을 서 있었다. 주장인 로드가 맨 앞에 섰고, 그다음에는 골키퍼인 후이가 섰으며 세번 째로는 칼이 섰다.
<넌 내게 그럴 가치가 있어···.>
경기장에서는 팬들이 입을 모아 노팅엄의 응원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사를 보니 거의 끝부분인 것 같았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경기 시작까지 5분 정도 남았다.
그렇게 잠시 후, 시계를 보던 주심이 양 팀의 주장에게 출발하자는 신호를 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노팅엄의 두 번째 응원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칼은 힘차게 걸으려다가 순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칼의 당황한 얼굴을 카메라가 찍고 있었다. 아마 경기장에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을 것이다.
<칼 슈나이더~ 칼 슈나이더~ 우리에겐 칼 슈나이더가 있지~>
칼 뒤에 서 있던 라이언이 칼의 등을 살짝 밀며 말했다.
"멈추지 말고 가야지. 사람들이 우리 경기를 기다리고 있잖아."
칼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내딛기 시작했다.
< 69. 개막전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