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18화 (218/245)

< 69. 개막전 (2) >

칼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응원가가 점점 더 커졌다.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순간부터는 마치 응원가에 둘러싸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경기장의 모두는 칼의 응원가를 합창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어떤 팀이든 상관없어. 우리에게는 칼 슈나이더가 있으니까!>

경기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칼은 벌써 이긴 것처럼 너무 기분이 좋아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골 넣어야 응원가를 불러줄 거라고 해 놓고서.

정말 예측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너 정말 사랑받네. 좋은 경기 하자."

스토크시티의 주장 레온도 악수 도중 한마디 할 정도로 팬들은 소리높여 응원가를 불렀다. 양 팀 선수단의 악수가 끝나고, 노팅엄의 선수단이 원을 그리며 모였다.

칼은 선수들에게 합류하기 전 팬들을 향해 박수를 쳐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이어지는 환호성에 칼은 씩 웃고 몸을 돌려 원에 끼어들었다.

노팅엄의 모든 선수가 칼을 보고 있었다.

칼 옆의 루카가 단어 하나를 툭 던졌다.

"이 언론 플레이어."

이어서 다른 선수들도 장난 섞인 말들을 툭툭 던졌다.

"이미지메이킹이 너무 잘 됐어."

"칼이 얼마나 연애 하고 싶어 하는지 알면 팬들도 저러지는 못할 텐데."

"나 칼이 쉴 때마다 찾아보던 연예인 SNS 계정 아는데. 기자들한테 유포할까?"

"그 가수?"

구체적인 언급 직전에 칼은 다급히 선수들을 제지했다.

"야, 야, 야."

선수들은 칼의 새빨개 진 얼굴을 보며 킥킥거렸다.

잠시 후, 코인토스를 마친 로드가 돌아왔다.

"선공권 가져왔어. 우리가 먼저 공격이야."

"오, 역시 캡틴이야."

"근데 뭐 하는 거야? 칼 왜 삐졌어."

"삐지다니."

칼 특유의 놀림 받았을 때 나오는 표정이 있었다. 로드는 테오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듣고, 픽 웃었다.

"나도 응원가 듣고 싶었는데. 칼, 너 오늘 잘해야겠다."

"당연하지. 아까 말한 대로 잘할 거야."

"좋아. 그럼 파이팅 한 번 하고 경기 준비를···."

그때, 칼의 응원가가 끝나고 새로운 응원가가 시작되었다.

<로드 테일러에겐 아빠가 있지! 아빠가 있지!>

로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젠장, 저 응원가 듣고 싶다고 한 건 아닌데···."

자기의 응원가이긴 한데, 가사가 마음에 안 드는 응원가였기 때문이었다. 저 응원가를 들을 때마다 로드는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팬들이 다 함께 외쳤다.

<로드 테일러에겐 아빠가 있지!>

이어서 노팅엄의 선수들이 외쳤다. 살짝 삐져 있던 칼도 함께였다.

"알렉산더!"

<알렉산더!>

이어지는 팬들의 합창에 선수들이 웃었다. 이번 타겟은 로드였다. 로드는 계속 놀림받을 생각이 없었다. 로드는 선수들을 흘겨보다가 경기 시작 전에 늘 외치는 구호를 갑작스럽게 내뱉었다.

"노팅엄!"

웃던 선수들은 순간 멈칫하고 중구난방으로 소리를 질렀다.

"가자!"

"이기자!"

"뭉개버리자!"

각자의 방식으로 파이팅을 외친 선수들은 서로 주먹을 부딪치며 자신의 자리로 움직였다. 칼도 라이언과 잘 해보자고 눈빛을 교환한 후, 오른쪽 윙 자리에 섰다.

그렇게 잠시 후, 주심의 힘찬 휘슬과 팬들의 함성을 신호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

경기가 시작하고 10분.

칼은 공을 다섯 번 만졌고, 세 번의 패스를 성공하고 두 번의 실수를 했다.

"미안."

경기 초반 테디에게 찌르는 쓰루 패스가 너무 길었던 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한 실수는 정말 어처구니없었기에 칼은 근처의 라이언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칼은 라이언이 침투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공 위로 가볍게 헛다리를 짚고, 상체 페인팅을 섞으며 상대 수비수에게 혼란을 줬다.

그리고 라이언이 침투하는 타이밍에 맞춰 상대 수비수의 무게중심을 흐트러뜨리고 직접 공을 몰아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하려고 했다.

상체 페인팅으로 상대 수비수를 속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칼은 한 템포 빨랐다. 상대 수비수가 속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전에 침투하려다가 공을 빼앗긴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본다면 상대 수비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칼 혼자 춤을 추다가 공을 갖다 바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괜찮아. 괜찮···앗!"

라이언은 말하다 말고 맹수처럼 뛰어가 막 패스를 잡은 레온의 뒤를 향해 깔끔한 백 태클을 시도했다.

<와아아아!>

라이언의 태클이 성공했다. 자신의 실수를 완벽하게 메꾸는 라이언의 플레이에 칼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앞으로 달릴 준비를 했다.

라이언의 선택은 2:1 패스였다. 라이언은 칼에게 짧게 패스했고, 칼은 공을 받아 라이언이 침투하는 타이밍에 맞춰 패스해주려고 했다.

"아···."

하지만 패스하는 순간 칼은 자신이 너무 약하게 패스했다는 걸 깨달았다.

느린 패스는 공을 빼앗긴 레온이 다시 돌아올 시간을 줬고, 레온은 패스를 막 잡고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려는 라이언을 막을 수 있게 해 줬다.

삐익!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라이언은 레온의 몸싸움 때문에 슈팅을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레온의 몸싸움이 거친 편이었기에 페널티박스 바로 밖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어낼 수 있었다.

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잔디밭을 한 바퀴 뒹군 라이언이 자신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그때, 누군가 칼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악!"

"정신 차려. 오늘 잘할 거라며."

주장 완장을 찬 로드가 그렇게 말하며 칼을 지나쳐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로드의 말대로였다.

칼은 경기 시작 후부터 생각과 몸의 움직임이 어긋났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내가 찰까?"

볼 보이에게 공을 받은 루앙이 물었다.

노팅엄의 프리키커는 루앙, 루카, 칼이였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자리에서 얻은 프리킥이었기에 데드볼을 왼발로 차는 칼이 키커로 나서는 게 맞았으나 루앙이 보기에도 컨디션이 나빠 보였던 모양이었다.

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여긴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위치야."

"맡길게."

루앙은 그렇게 말하고, 주심이 지정한 위치에 공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후우···."

칼은 심호흡을 몇 번 했다. 칼은 높은 수준의 리그와 대회에서 오랜 기간 뛰며 늘 완벽한 컨디션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칼은 차분하게 자신의 상태를 들여다보았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는데도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았다.

칼은 금세 자신의 플레이가 이상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들떴기 때문이었다. 팬들의 환영이 너무 기쁘고, 더 잘하고 싶어서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 있었다.

칼이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팅엄에서 첫 시즌을 보냈을 때보다 자신은 훨씬 성장해 있었다.

이 정도 마음의 흐트러짐은 금세 다스릴 수 있었다.

칼은 자신의 루틴(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하는 다양한 방식의 행동들)을 시작했다.

"Shit(염병할), God damm(제기랄), FucXXXXXX···."

노팅엄에서 영어를 처음 배웠을 때, 과외 선생이 말했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건 욕설이라고.

칼은 분데스리가에서 뛴 첫 시즌에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을 때 오늘 경기처럼 엉망이었다.

그때, 칼을 구해줬던 주문이 바로 이 영어 욕 모음이었다.

처음에는 자기도 웃겼지만, 그날 이후에도 영어 욕을 중얼거리면 마음이 안정되고 폼이 돌아왔다. 알렉산더에게 도움을 받아 한층 더 성장했을 때의 초심을 찾을 수 있어서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삐익!

마음이 많이 안정됐을 때,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칼은 상대의 수비벽을 확인하고, 상대 골키퍼의 위치를 확인한 후 망설임 없이 도움닫기를 시작해 공 왼쪽 아래를 발 안쪽으로 강하게 찼다.

공은 전력으로 점프한 키 큰 스토크시티의 벽을 아슬아슬하게 넘어 급격히 휘어지기 시작했다. 공은 스토크시티의 골키퍼가 손을 뻗을 수 없는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아아아아아아!>

공이 골망을 흔드는 순간 칼은 홈 서포터즈 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왼쪽 가슴에 새겨진 노팅엄의 앰블럼을 두드리면서.

그 모습에 팬들은 전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더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잘했어 망할 자식아!"

"최고야!"

선수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짝! 짝!

선수들의 등짝 스매시도 시작됐다.

"아야! 아파! 왜 때려! 나 데뷔골은 예전에 넣었잖아!"

"복귀 골이니까!"

"그게 무슨 억지야!"

"억울하면 팀에 계속 있었어야지."

라이언이 그렇게 말하며 칼의 등을 짝 때리고 갔다.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팬들은 그 모습을 보며 와하하 웃었고, 선수들의 표정도 무척 밝았으니까. 무엇보다 전광판에 새겨진

노팅엄 vs 스토크시티

1 0

득점자, 칼 슈나이더(`14)

라는 스코어와 문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고향에 돌아왔다는 완벽한 신고식을 한 것 같아서.

세레머니를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지나가는 로드가 보였다. 칼이 로드를 툭 치며 말했다.

"내가 보여준다고 했지?"

"한 골만 보여주려고? 아직 부족하지 않아?"

로드의 말에 칼은 씩 웃었다.

로드도 주장직을 오래 맡으며 자극하는 법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참 능글맞아진 친구다.

칼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래, 더 보여줄게."

*

잭슨이 진지한 얼굴로 칼에게 말했다.

"솔직히 넌 잘하고 있다. 하지만 긴장 풀지 마라. 아직 경기는 절반이나 남았다."

"예!"

잭슨은 살짝 웃어 보이고는 제롬에게 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말했다.

"두 번째 골 어시스트는 좋았다. 하지만 미드필더 쪽으로 내려오는 움직임이 부족해. 더 적극적으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더 할 말은 없다. 방금 각자에게 말한 것만 신경 쓰면서 경기에 임하면 틀림없이 이길 거다."

"예!"

잭슨은 그 말을 끝으로 수석코치 로건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밝은 얼굴들로 스포츠 치료사와 코치들의 케어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칼, 오늘 MOM 받으려고 작정했어?"

"당연하지. 복귀전이잖아. 내가 돌아왔다는 걸 제대로 보여줘야지."

칼은 경기 종료 직전 제롬의 쓰루 패스를 받아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제롬이 공을 잡은 채 중앙 수비수들을 끌고 내려오고, 라이언과 칼이 동시에 침투할 때 제롬이 칼에게 패스를 찔러줬다. 쉽게 만들어진 일대일 찬스에 칼은 침착하게 골키퍼 다리 사이로 골을 굴려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전술적으로 준비해온 플레이를 통해 넣은 골이었기에 선수들 뿐만 아니라 잭슨과 코치진도 정말 좋아했다.

그때, 두 사람이 말했다.

"야, 너만 너무 잘하면 우리가 뭐가 되냐."

"맞아맞아."

바비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며 테오와 어깨동무를 했다. 테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선수들이 일제히 웃었다.

칼이 말했다.

"걱정 마 후반전에는 어시스트에 집중할 거니까."

*

칼은 드레싱룸에서 말한 대로 어시스트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두 골이나 넣은 만큼 상대 수비수들은 칼을 신경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칼은 수비수들이 자기에게 몰리면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해 득점을 노릴 계획이었다.

도르트문트나 오스트리아에서 늘 그랬듯이.

후반전이 시작하고 약 10분 정도는 칼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경기가 점점 흐를수록 의외의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패스!"

"나 줘!"

바비와 오버래핑으로 올라온 테오가 큰소리로 외치며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페널티박스 우측면에서 루앙의 롱 패스를 잡아 발밑에 둔 칼은 시간을 끌다가 그 둘 중 하나에게 패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비수들의 시선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계속 어시스트 시도를 하니 수비수들은 칼이 골을 덜 노리고 어시스트에 완전히 집중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압박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특히 왼발보다는 살짝 숙련도가 떨어지는 오른발로 찰 준비를 하는 지금은 더.

칼에게는 수비수들이 비워준 공간과 바비와 루앙 쪽을 흘깃흘깃 보는 골키퍼의 옆으로 골망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칼은 크로스를 올리는 척하며 바로 슈팅을 때렸다.

크로스 폼으로 시작했기에 평소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공은 정확히 칼이 본 공간으로 날아갔다.

당황한 수비수와 골키퍼가 다급히 막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칼의 발을 떠난 공은 이번 경기에서 세 번째로 골망을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아!>

팬들의 함성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칼은 코너플래그 쪽으로 달려가 멋지게 슬라이딩하고 그대로 잔디에 엎어졌다.

어시스트 해 줄 거라 기대하던 바비와 루앙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활짝 웃으며 칼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노팅엄의 선수들은 복귀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한 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하나둘 칼을 위에서 포갰다.

잠시 후, 노팅엄의 선수들로 이뤄진 작은 동산이 만들어졌다.

동산의 가장 밑에서 칼이 외쳤다.

"무거워! 살려줘!"

*

<노팅엄! 노팅엄! 노팅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전광판에 새겨진 숫자는 4-0.

후반전 38분에 칼의 멋진 크로스를 제롬이 받아 헤딩골을 넣어 만들어낸 스코어였다. 스토크시티는 슈팅을 세 개밖에 하지 못했다.

팬들은 입단식부터 보여온 노팅엄의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습을 보고 노팅엄이라는 구단의 이름을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3골, 1어시스트를 올린 칼은 주심과 포옹하고 있었다.

"오늘 멋진 경기 고맙다. 자, 받아."

심판들도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주심은 해트트릭을 달성한 칼에게 기쁜 얼굴로 공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칼은 부심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자신을 찍는 수많은 카메라를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보였다.

그때 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 빨리 와!"

로드를 비롯한 선수들이 홈 서포터즈석 근처에 모여 있었다.

팬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칼은 감회가 새로웠다. 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사진을 찍자고 알렉산더에게 제안한 건 자신이었다. 그 제안이 아직 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홈 서포터즈석 근처에 가자 서포터즈들이 한마디씩 했다.

"칼! 고향에 잘 왔다!"

"오늘 최고였어!"

"다음 주에도 잘해야 한다! 못하면 바로 욕할 거야!"

"하하하하!"

오랜만에 만난 동네 아저씨들처럼 서포터즈들은 마구잡이로 떠들었다. 그 웃음소리와 말들이 칼에게는 무척 정겹게 들렸다. 칼은 말없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서포터즈는 환호했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본 칼은 몸을 돌려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칼과 선수들은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칼! 나 그 공 주면 안 돼요?"

어떤 아이가 이런 말을 걸어왔지만, 칼은 이렇게 답했다.

"줄 사람이 있어서 안 돼. 대신 이거 받아."

"오오오!"

칼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유니폼 상의를 벗어 건네줬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기뻐서 울려고 했다.

칼은 부드럽게 웃고, 훈련 때 봤던 꼬마의 위치를 떠올리며 걸었다. 4년 전 자신의 유니폼을 들고 와 준 고마운 팬에게 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 꼬마는 경기 내내 자신의 유니폼을 흔들며 열심히 응원해줬다.

칼은 그렇게 터널 근처에 도착했다.

터널 근처에는 칼이 찾던 꼬마가 있었다.

칼은 관중석에 가까이 갔다.

"와아아아!"

팬들의 환호 속에서 칼은 꼬마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꼬마는 처음에 자신인 줄 모르고 당황하다가 아마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너 맞다며 등을 두드려준 덕에 광고판에 바짝 붙어 칼에게 유니폼과 매직을 내밀었다.

칼이 물었다.

"이름이 뭐야?"

"폴, 폴이요!"

"응원해줘서 고마워."

"도, 돌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꼬마의 힘찬 말에 칼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칼은 '친애하는 폴에게'라고 적고 자신의 사인을 했다. 그리고 해트트릭 기념으로 받은 공에도 오늘의 날짜를 적고 사인했다.

"자, 받아."

"둘 다 주는 거예요?"

"당연하지. 대신 다음 주에도 꼭 응원하러 와줘야 한다?"

"네! 네! 평생 응원할게요!"

꼬마가 힘차게 대답하고 주변 팬들이 부럽다는 듯 바라봤다. 꼬마의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칼은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 이들에게 평생의 소중한 기억이 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칼은 기뻐하는 꼬마와 꼬마의 아버지를 보며 더 많은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짓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좋은 경기를 보여줘야 했다. 칼은 더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칼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주변에 모인 팬들에게 말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은 머리 위로 손뼉을 치며 터널로 돌아갔다.

다음 홈 경기에, 또 그다음 홈 경기에 이 터널을 통해 필드로 나오는 걸 상상하면서.

< 69. 개막전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