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21화 (221/245)

< 71.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1) >

"잭슨 감독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요? 바비 선수에게요?"

방금까지도 태연한 얼굴이었던 인터뷰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 인터뷰어는 다큐멘터리 촬영팀 중 한 명으로 '슈퍼스타들은 왜 노팅엄에 돌아왔는가.'라는 주제로 세부 촬영을 하고 있었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팅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바비는 자신의 인생이 크게 바뀌었던 순간을 설명하기 위해 잭슨과의 대화를 막 공개한 참이었다.

그녀의 촬영을 도와주던 마리아 또한 놀란 얼굴을 했다.

바비가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로 말했다.

"아직도 생생해요. '100% 못 이긴다고 생각하는 선수를 경기에 내보낼 수는 없다. FA컵은 관중석에서 지켜봐라.'라고 하셨었어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노팅엄에 임대와 있던 그 시절, 노팅엄은 FA컵 상대로 자신의 친정팀인 맨체스터 시티를 만났다. 그 경기를 앞두고 잭슨은 당시 팀의 핵심이었던 자신을 명단에서 빼 버리겠다고 했다.

경기 전 잭슨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천재들이 가득한 맨체스터 시티에게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하자마자 잭슨은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마리아가 감탄사를 내며 말했다.

"그때 부상인 줄 알았는데 거짓말이었군요?"

"네, 감독님이랑 단장님 그리고 당시 캡틴이었던 알렉스 정도만 진실을 알고 있었죠."

"맨시티와 비긴 경기 맞죠?"

"기억하시네요."

"3부 리그 시절 몇 없는 빅경기였잖아요. 당연히 기억하죠."

다큐멘터리 팀의 인터뷰어는 마리아에게 어떤 경기였는지 물었고, 마리아는 친절하게 연도와 날짜까지 알려 줬다. 마리아의 스마트폰을 통해 경기 결과가 1-1이었다는 것까지 확인한 인터뷰어가 물었다.

"얘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감독님이 시킨 대로 단장님이랑 구단주님 옆에서 경기를 봤어요. 그리고··· 90분 동안, 정확히 말하면 후반전에 알렉스가 교체 투입되고부터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죠."

바비는 그 당시 최상위권 수준으로 갈 수 없다고 스스로 벽을 세우고 있었다.

축구를 비즈니스만으로 대할 생각이었고, 불가능한 상대에게 리그에 영향이 갈 정도로 전력투구한다는 게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노팅엄은 그 경기에서 감자 머리 선수들의 투혼과 알렉산더의 시즌 1호 골로 맨시티와 비기는 쾌거를 달성했다.

바비는 이 내용을 인터뷰어에게 차분하게 설명해줬다. 이제는 인터뷰어뿐만 아니라 카메라맨들과 PD 등도 자신의 얘길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바비는 옛날얘기를 하는 게 부끄럽긴 했지만 즐겁기도 해서 열심히 말했다.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니까요? 맨시티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고, 경기 끝난 다음에 누워서 치료받을 정도로 무리하는 미친놈들이 세상 어디 있어요? 그런데··· 있더라고요."

마리아는 그때가 떠오르는 건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바비가 계속 말했다.

"그때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끙끙 앓다가 할리 덕분에 그 당시 캡틴이었던 알렉스와 상담을 하게 됐죠. 알렉스는 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면 2부 리그 승격이 더 쉬워질 거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고민을 해결해주겠다고 했어요."

"어떻게요?"

"유소년 선수들과 축구 한 경기를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참고로 열 다섯 살도 안 된 꼬맹이들이었어요."

다큐멘터리 팀이 동시에 갸웃하는 모습은 꽤 웃겼다. 바비는 웃음을 참았고, 인터뷰어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게 도움이 됐나요?"

"네. 순수하게 축구를 즐길 수 있었고, 축구는 즐거운 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어요. 그리고 저는 FA컵 재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할 수 있게 됐고··· 결국 맨시티에게 졌지만,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어요."

"뭘···."

"불가능에 도전하는 건 즐거운 거라는 거요."

그날부터 바비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재능에 한계가 있다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변화하고 한 계단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곳이 바로 노팅엄 FC였다.

돌아간 맨시티에서 바비는 우승컵을 몇 번 들어 올렸고, 프리미어리그 최고 수준의 중앙 미드필더가 됐다.

고개를 끄덕이던 인터뷰어가 들뜬 목소리로 질문해왔다.

"그래서 노팅엄에 돌아온 거군요."

"에이, 영향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저는 로드나 칼, 알렉스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인터뷰어가 묻기도 전에 바비가 말했다.

"지난 시즌의 저는 맨시티에 오래 있다 보니 동기부여가 점점 떨어지는 걸 느끼고 새 팀을 물색하고 있었죠. 조건은 단순했어요. 더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전력을 가진 클럽. 그러던 중, 단장님이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을 주셨어요. 칼 슈나이더 영입,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조건으로 노팅엄에 돌아올 생각이 있냐고."

"오···."

노팅엄의 지난 시즌 말 이적은 앞으로도 회자 될 이야기였기 때문에 관련 내용이 나오자마자 다큐멘터리 팀원들이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사실 칼만 영입해도 충분히 우승컵을 들어 올려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친한 할리도 있고 성장 가능성이 큰 젊은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칼을 영입했다고 하자마자 사인했는데··· 영입 발표 날 정말 놀랐어요. 칼뿐만 아니라 테오에 제롬에 알버트······."

바비는 감자 머리 선수들이 이름을 줄줄 언급했다. 바비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해졌다.

"슈퍼팀이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은 선수들이 모였더라고요. 단장님 말대로 트레블에 도전해 볼 만한 스쿼드였어요. 그렇지 않나요?"

인터뷰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노팅엄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었다. 리버풀 원정에서 한 번 무승부를 하긴 했지만, 현재 5승 1무로 프리미어리그 1위였으니까.

"빨리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를 치르고 싶어요. 제 지금 목표는 단장님이랑 똑같은 '트레블'이거든요."

그런 바비에게 인터뷰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별리그 첫 경기가 지난 시즌 챔피언인 레알 마드리드고 심지어 원정경기인데 걱정되지 않으시나요? 심지어 노팅엄 선수들의 절반 이상은 챔피언스리그에서 한 번도 안 뛰어 봤는데요."

인터뷰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비가 차분하게 답했다.

"월드컵에서 뛰어 본 선수들이 많으니까 괜찮다고 말 하고 싶지만···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은 느낌이 좀 다르죠. 특히 노팅엄에서 뛴 선수들은 꽤 긴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클럽에 애정이 큰 만큼 긴장되는 게 바로 챔피언스리그니까요. 하지만."

바비는 칼 등과 이 주제에 대해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잠깐 긴장하는 것 정도는 저나 칼, 테오 같은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이 도울 수 있어요."

"그렇군요."

이후 인터뷰어는 바비에게 몇 가지를 더 묻고, 꼭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바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리아가 다가왔다.

"수고 많았어요. 바로 퇴근하면 돼요."

"뭘요. 인터뷰 어땠어요? 실수한 거 없죠?"

"깔끔했어요."

바비는 만족한 듯 웃었다. 그런 바비를 보며 마리아가 말했다.

"인터뷰 내용 쭉 들으니까 훨씬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 보이는 데요?"

마리아는 본래 선수단과 무척 친밀했기에 3부 리그 시절 바비를 기억하고 있었다. 바비도 그걸 알았기에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겸손하게 말했다.

"이곳에서 배운 걸 토대로 많은 걸 경험하고 왔거든요. 실력도 좋아졌고 마음가짐은 더 단단해졌어요."

바비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말은 자신만만했다. 그런 바비를 보며 웃음을 머금은 마리아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오, 정말이죠? 그러면 레알 마드리드전도 기대해도 되죠?"

바비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

바비는 마리아와 인사하고 훈련장에서 나와 자신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요즘 칼은 다른 사람처럼 변장하고 노팅엄의 번화가를 걷는 걸 즐긴다고 하는데, 바비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자신도 노팅엄시가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칼처럼 제2의 고향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칼은 조금 오글거리는 면이 있는 녀석이었다.

"오···."

하지만, 막 보이기 시작한 번화가의 풍경은 바비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번화가에는 온갖 간판과 현수막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노팅엄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D-3>

<레알 마드리드전 승리 시 일주일 동안 50% DC!>

<레알 마드리드전 첫 득점자를 맞춰보세요>

<구단 공식제휴) 챔피언스리그 한정 특별 유니폼 판매 중!>

<라이언이 골을 넣으면 은행나무 펍에서 라이언의 아버지 미스터 브라우니씨가 한턱 쏩니다!>

···

···

챔피언스리그를 향한 염원들이었다.

노팅엄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챔피언스리그를 기대하고 있었고,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바비는 그 풍경을 눈에 담으며 동료들을 떠올려 봤다.

노팅엄에 모인 슈퍼스타들은 제롬 빼고 모두 잭슨 밑에서 뛰어본 선수들이었다. 기존 선수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덕분에 기존 팀원과의 호흡은 프리시즌 몇 경기 만에 얼추 맞아 들기 시작했고, 리그가 시작할 때쯤에는 테오나 칼 같은 선수들과도 마치 몇 년 뛴 선수처럼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대단한 일이었다.

갈락티코 급 선수들을 모았는데 불과 2개월 만에 완벽하게 호흡을 맞췄다는 얘기니까.

그래서, 바비는 노팅엄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염원을 들어 주겠다고 결심했다.

이들이 바라는 건 우승일 것이고, 바비 자신이 바라는 것도 우승이니까.

"반드시."

마드리드에서 꼭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 돌아오자,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하자. 조별리그는 총 여섯 경기이니 꼭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자. 시작이 좋을수록 남은 경기도 편할 테니까.

바비는 그렇게 다짐하며 차 속도를 더 늦추고, 번화가의 풍경을 더 눈에 담았다.

*

스페인어로 '너희가 만든 역사.'라는 가사가 원정 드레싱룸 안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대표 응원가 <할라 마드리드>의 첫 소절이었다. 응원가 소리는 점점 커졌고, 노팅엄의 선수들은 드레싱룸 안에 놓인 TV를 통해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가득 채운 팬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TV에서는 가끔 관중석을 확대해서 보여줬는데 노팅엄만큼이나 다양한 인종이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이 좌석의 1/4 이상 차지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조차도 다양한 발음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응원가를 합창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최근 좌석을 증축해서 무려 90,000석이다.

"역시 세계 최고의 구단이네··· 팬들이 엄청 글로벌한데 숫자도 많아."

노팅엄 경기장의 두 배를 훌쩍 넘는 규모의 팬에 라이언이 중얼거렸고,

"세계 최고는 바르셀로나거든. 누 캄프(바르셀로나 홈 구장) 좌석은 100,000석이 넘어."

바르셀로나 유스 팀 출신 루카가 라이언의 말을 정정하려 했으며

"이것들이···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이번 시즌에 뒤집힐 거야."

로드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 세 명은 나름 농담을 한 거였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많이들 긴장했다는 걸 알았기에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했는데··· 선수들은 정말 미세하게만 웃었다.

바비는 칼 옆에 앉아 선수들의 얼굴, 몸짓, 행동 등을 살폈다.

다들 그냥 긴장한 게 아니라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바비는 로드, 할리, 테디, 테오, 라이언과 국가대표팀 동료였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경험자인 테오를 뺀 나머지는 월드컵 때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킹이나 후이 같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한 마디 해주려는 순간, 드레싱룸이 열리며 주심이 들어왔다.

"노팅엄 선수들, 나오세요."

벌써 입장할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선수들은 기계처럼 일어나 드레싱룸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터널에 서니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먼저 줄을 선 게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은 아까 확인한 대로··· 전부 주전이었다.

바비 자신의 옆엔 핵심 미드필더 외데가르드가 서 있었고, 맨 앞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이자 올해 유력한 발롱도르 후보인 크리스 앨런이 로드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물론, 로드는 뻣뻣하게 대답하고 있었지만.

호드리구, 비니시우스, 암파두, 루닌 등 각 포지션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노팅엄을 상대로 총력전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바비는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만큼 노팅엄이 위협적인 상대라는 것이니까.

"가자!"

주심의 외침에 터널을 나섰다.

터널을 막 나서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챔피언스리그 테마곡, <챔피언스 리그>.

바비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These are the champions(이들은 챔피언이다)"

챔피언스리그, 챔피언들의 리그. 챔피언 중의 챔피언을 가리는 자리.

이 대회는 이름만 들어도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시즌에 왔어도 또 오고 싶은 그런 대회였다.

양 팀의 선수들은 말없이 악수를 나누고, 로드가 대표로 코인토스를 했으며 다 같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노팅엄의 선수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 과정을 치렀다.

바비는 긴장해서 말도 안 하는 선수들을 살폈다.

그리고 사진 촬영까지 마친 후, 칼·알버트·테오와 눈을 맞추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 우리 캡틴도 챔피언스리그가 처음이라 조금 긴장한 것 같은데··· 다들 잠깐 내 말 좀 들어 봐."

자신의 위치로 가려던 선수들이 멈춰 바비를 바라보았다.

바비는 가슴을 활짝 펴고, 또박또박 말했다.

"전부 처음이라 긴장하는 건 당연한 거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릴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그래도 그때까지 레알 마드리드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나, 칼, 테오, 알버트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가자. 우리가 이래 봬도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부 4강까지 가본 사람들이잖냐."

칼을 비롯한 챔피언스리그 경험자들과 어젯밤에 결정한 내용이었다.

다른 선수들의 부족한 부분은 우리가 채워주면 된다. 그게 바로 팀워크니까.

바비가 말했다.

"우리만 믿고 분위기에 적응해."

< 71.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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