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2) >
"고마워. 내가 해야 했던 일인데."
로드는 선수들의 분위기를 잡아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다. 바비는 민망한지 손사래 치며 말했다.
"뭘, 챔피언스리그 주제곡 듣자마자 긴장하는 선수를 많이 봤거든. 안 그래 보이는 선수들이 더 그런다니까?"
바비는 맨체스터 시티에 있을 때 많은 선수를 봐 왔다.
하위 팀이나 리그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이적해 온 선수들은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괜찮은 활약을 펼치다가도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때는 굳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바비는 성격 때문인지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때부터 잘 적응해서 그런 선수들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불평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바비의 불평을 들은 건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이었던 케빈 데브라이너였다.
케빈은 예전 토트넘에서 뛰었던 오리에가 챔피언스리그 전주를 들으며 입술을 부르르 떠는 게 영상에 남아 있을 정도로 챔피언스리그에서의 긴장은 다반사라고 말해줬다. 선수들의 성격에 따라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면서 비난하지 말고 다독여주라고 했다.
그들도 함께 시즌을 치러야 하는 팀 동료임을 절대 잊지 말라고 했다.
바비는 노팅엄에서의 생활 이후 팀 동료라는 걸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비는 그날 이후 긴장하는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아가 격려해 줬다. 빨리 경기력을 회복하도록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맨체스터 시티에 큰 도움이 됐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비를 따로 칭찬할 정도로.
맨시티에서 있던 일을 잠시 떠올린 바비는 로드의 초롱초롱한 눈이 부담스러웠다.
바비는 팀 동료를 중요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오글거리는 건 싫어하는 편이었다.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았으니까.
바비는 일부러 헛기침한 후에 말을 돌렸다.
"아무튼, 너희들이 멍청한 플레이를 하면 우리(칼, 테오, 알버트, 바비)가 너희들 등짝 때려주기로 했어."
"그거 괜찮네."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오늘 자신의 상대인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크리스 앨런을 바라보았다. 로드가 또 한 번 말했다.
"꼭 그래 줘."
바비가 대답하기도 전에 주심이 삐이이이익-! 하고 힘차게 휘슬을 불었다. 이어서 베르나베우(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에 모인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가자."
바비는 그렇게 말하며 미드필더 위치로, 로드는 수비 라인으로 이동했다.
노팅엄의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가 시작했다.
**
스페인의 햇살은 따사로웠고, 공기도 정말 쾌적했다.
"날씨만큼 경기도 술술 풀리면 좋을 텐데···."
로드는 상태가 좋지 않은 자신의 컨디션을 의식하며 중얼거렸다.
로드는 자신의 상태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다.
월드컵보다 더 긴장됐다.
국가대표팀도 당연히 명예로운 일이지만, 노팅엄을 정상에 올려놓는 게 로드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로드는 생각을 멈췄다. 후이가 자신에게 패스했기 때문이었다. 로드는 상대 진영 쪽으로 몸을 돌려 패스할 곳을 찾았다.
여기에서부터 자신이 긴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패스할 길이 세 개 이상 보일 텐데 지금은 자신에게 패스를 받기 위해 내려온 바비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어? 휴우···."
로드가 패스하는 순간 귀신처럼 나타난 크리스 앨런이 공을 빼앗으려 했다. 아슬아슬하게 빨리 패스한 덕에 공을 빼앗기지 않았지만,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앨런은 침착한 얼굴로 몸을 돌려 돌아갔다.
로드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평소였다면 상대 공격수가 접근하기도 전에 안전하게 패스했을 것이다. 로드는 미드필더와 공격수에게 공을 보내주는 최후방 빌드업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안전한 패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방금 벌어진 일은 어디로 패스해야 할지 순간 뇌 정지가 와서 벌어진 일이었다.
로드는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두드렸다. 노팅엄의 엠블럼을 달고, 주장 완장까지 달고 뛰는데 이렇게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득점 2위, 도움왕, MVP. 크리스 앨런은 만능형 선수였다.
'그래도 너는 막을 수 있다. 자신감을 가져라.'
로드는 며칠 전 알렉산더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바비와 칼이 패스를 주고받는 걸 바라봤다.
'앨런을 막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핵심 정보는 세 가지다.'
'첫째, 앨런은 패스할지 슈팅을 할지 끊임없이 심리전을 건다. 심지어 개인 돌파도 가능하지. 하지만, 앨런도 선호하는 플레이는 있다. 바로 팀원들을 이용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앨런이 너에게 심리전을 건다면 앨런 본인의 움직임보다 주변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
'둘째, 앨런은 드리블 모션과 비슷한 패스 기술을 갖고 있다. 즉, 드리블할 것 같은 순간에 패스하는 게 가능하다는 거다. 이게 첫 번째 심리전과 합쳐지면 무시무시한 위력이 발휘되지. 그러니까 늘 그런 패스가 가능하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정석적인 패스 자세와는 다르기 때문에 위력이 약해 충분히 가로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네 위치에 대해서다. 이번 시즌 크리스의 포지션은 펄스나인이다. 크리스가 공을 잡고 있더라도 주변에 킹이 없다면 무리해서 압박하지 말아라. 그랬다간 양 측면의 호드리구와 비니시우스가 중앙으로 침투해 득점할 수도 있으니까.'
생각하기가 무섭게 앨런이 공을 몰고 달려오고 있었다. 로드는 차분하게 일정 거리만 유지하며 자세를 낮췄다.
로드의 깔끔한 수비에 앨런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로드 바로 앞에서 약 올리듯 공을 뒤로 빼냈다.
로드는 알렉산더의 조언을 떠올리며 앞으로 가지 않고 수비라인을 유지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은 거기서 멈췄고, 바비 라이언 등이 합류해 공을 빼앗아 낼 수 있었다. 노팅엄의 선수들은 재작년 프리시즌처럼 무력하게 당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다른 선수들을 대처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해라. 그리고, 행운을 빈다. 내가 이루지 못했던 걸 꼭 이뤄다오.'
알렉산더의 분석은 정확했고, 이제 자신만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면 됐다.
로드는 빨리 몸을 뜨겁게 달궈야겠다고 생각하며 더 적극적으로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긴장을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잭슨은 그런 순간이 온다면 더 과감한 플레이를 하라고 했다.
아무것도 못 하고 뒤로만 물러나다 보면 흐름을 잃는다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실점하더라도 흐름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게 잭슨의 지론이었기 때문이었다.
"받아!"
"좋아!"
로드는 바비가 말했던 대로 바비, 테오를 향해 패스하며 일부러 큰 목소리를 냈다.
레알 마드리드의 거센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었고, 슬슬 노팅엄의 공격력도 살아나고 있었다.
자신의 시야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킹, 커버해줘!"
로드는 페널티박스 앞에서 앨런과 일대일로 맞서며 외쳤다. 로드의 시선은 앨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잠깐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았다. 앨런은 일대일 상황에서 지금처럼 끊임없이 무언가 할 듯 말 듯 한 움직임을 보였으니까.
오른쪽을 슬쩍 보며 패스하는 시늉을 하는 건 무시했다. 호드리구를 테오가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중거리 슈팅을 날리는 시늉을 해 슈팅 각도를 막는 방향으로 살짝 몸을 움직였다. 앨런은 로드의 몸이 쏠린 반대 방향으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려는 것 같았다.
그때, 로드는 위화감을 느꼈다. 경기 내내 봐 왔던 드리블 폼과는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패스구나!"
로드가 크게 외치며 다리를 쭉 뻗었다. 드리블마저도 속임수였다. 로드의 예상대로 앨런은 패스했고, 로드는 공을 완벽하게 막아내진 못했지만, 발끝으로 살짝 건드려 공의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방향은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속도가 확실히 느려졌다.
로드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공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오른쪽 풀백 테디와 킹이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테디와 킹보다 레알 마드리드의 왼쪽 윙 비니시우스가 한 걸음 더 앞서 있었다.
비니시우스가 공을 잡는 순간 로드도 재빨리 자세를 추슬러 슈팅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이미 비니시우스의 발을 떠나 멋지게 휘어지고 있었다. 아주 멋진 감아 차기였다.
후이가 손을 뻗어봤지만, 공은 그의 손에 걸리지 않았고···
<와아아아아!>
노팅엄 홈 경기장의 두 배가 넘는 큰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공이 골망을 흔들고, 골라인 안에 떨어져서 구르고 있었다.
로드는 표정이 굳은 테디와 킹을 보며 깨달았다. 다른 선수들도 자신만큼이나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선수 하나의 역할은 어떻게든 해냈지만, 선수들을 챙겨야 하는 주장으로써의 역할은 다하지 못했다는 걸.
로드는 멍하니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세레머니 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어깨동무를 해오며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괜찮아. 칼이랑 알버트가 득점해 줄 거야. 정 안되면 내가 중거리 슛으로 한 골 꽂아 넣을게."
바비였다.
바비가 이어서 계속 말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만 하면 돼. 난 네 실력을 아주 잘 알아. 월드컵에서도 멋진 활약 보여줬었잖아?"
주장이라는 부담을 덜어주는 말이었다. 로드가 픽 웃으며 바비에게 물었다.
"···맨시티에서 말만 배워왔냐?"
"흐흐."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는 바비를 보고, 로드는 왠지 안심할 수 있었다. 선제골을 먹히긴 했지만, 바비는 전혀 좌절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로드는 자신의 몸 상태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로드가 말했다.
"아무튼 고맙다. 이제 긴장 안 되는 것 같아."
"좋아. 그럼 반격을 시작해보자고."
"나는 테디랑 킹 위로하고 올게."
뭘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로드는 바비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어깨를 힘있게 탁 쳐주고, 시무룩해져 있는 테디를 향해 달려갔다.
"괜찮아. 네 장점은 수비보단 공격이잖아? 제대로 반격하러 가보자고."
**
"루카! 방금 좋았어!"
로드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인 로드가 경기장에 완벽하게 적응하자 노팅엄의 선수들도 대부분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노팅엄은 모처럼 25m 정도 되는 거리에서 프리킥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바비는 공을 집어 든 채로 말했다.
"나 차고 싶은데."
"내가 찰래. 내 폼이 더 좋아."
"나도 좋은데."
노팅엄에는 프리키커가 많아서 코치진에서 그날 경기에서 공을 찰 선수를 정해준다. 오늘 키커로 뽑힌 건 바비와 칼이였다. 둘은 서로 프리킥을 차고 싶어 했다.
둘은 잠시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칼이 말했다.
"골대 기준으로 살짝 오른쪽이잖아. 내가 차는 게 맞아."
"···좋아. 대신 꼭 넣어라. 못 넣으면 점심 사."
"오케이."
"차는 시늉 해줘?"
"응."
바비와 칼이 공을 가운데에 두고 나란히 섰다.
<우우우~>
둘은 홈 관중의 야유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심판의 휘슬이 불리자마자 바비가 먼저 뛰었다. 바비는 도움닫기를 하고, 공을 차는 시늉만 하고 공을 지나쳤다.
그리고 미리 도움닫기를 한 칼이 프리킥을 찼다.
"아아···."
바비가 아쉬워했다. 공을 찬 칼 또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공은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벽을 날카롭게 휘어져 넘어가 골대 안으로 향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루닌의 멋진 선방에 막혔다.
<아아아···.>
노팅엄의 원정 팬들이 아쉬워하는 소리도 이어 들렸다.
바비는 좌절한 칼에게 다가가 한마디 했다.
"점심 비싼 거 먹을 거다."
"알겠어··· 대신 오늘 공격포인트 올리면 취소해 줘."
"좋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전반전 종료까지 1분가량이 남았다. 바비가 공을 잡고 있었다. 추가시간이었기에 공을 빼앗기거나 질질 끌면 바로 전반전 종료 휘슬을 불 게 틀림없었다.
그때, 칼이 외쳤다.
"바비!"
이번 경기에 대비해 칼과 몇 가지 연습했던 게 있었다. 바비가 칼에게 어시스트하는 부분 전술도 있었지만, 지금은 칼이 바비에게 어시스트하는 부분 전술임이 틀림없었다. 칼이 바비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바비는 망설임 없이 근처로 다가온 칼에게 패스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바비가 공격수 진영까지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는지 더 뒤로 물러났다.
예상한 대로였다.
칼이 바비가 뛰어오는 곳으로 살짝 공을 밀어줬다.
페널티박스 밖, 최소 25m가 넘는 거리.
마크가 없다면 바비는 이곳에서도 골을 넣을 자신이 있었다.
바비는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이 황급히 튀어나오는 순간, 온몸의 체중을 실어 공을 때렸다. 발등에 묵직하게 얹히는 감각, 완벽한 무회전 슈팅이었다.
공은 골대 위로 날아가 골대 근처에서 말도 안 되는 각도로 뚝 떨어졌다.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가 손을 뻗어봤지만, 공은 야속하게도 골키퍼를 지나쳐 골라인 안으로 빨려 들어가 골망을 찢을 듯 흔들었다.
"으아아아!"
바비가 포효하며 제 자리에서 주먹을 치켜 올렸다.
짜릿할 정도로 완벽한 골이었다. 바비는 활짝 웃으며 달려오는 칼을 보며 자신이 점심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바비! 미친 골이었어!"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골로 뽑힐 거 같은데."
"얘들아, 나도 칭찬해 줘. 내 어시스트가 기가 막혔다고."
하프 타임 드레싱룸 분위기는 최고였다. 바비는 전반전 막바지에 넣은 골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아직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선수들이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처음에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이제는 괜찮지 않냐?"
"나는 5분 만에 괜찮아졌었어."
"거짓말, 너 아까 혼자 손 떠는 거 봤거든?"
다들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전부 괜찮아 보였다. 바비는 후반전에 꼭 역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로드가 외쳤다.
"후반전에 꼭 역전하자! 우린 이길 수 있어!"
"좋아!"
선수들이 일제히 외쳤다.
그 들끓어 오르는 분위기에 스포츠 치료사들도 코치들도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드레싱룸의 문을 열고 잭슨이 들어왔다.
"자! 전반전은 괜찮았다. 후반전에는···."
선수들은 잭슨의 전술 지시를 진지하게 들었다. 많이 헤맸던 전반전과는 달리 진짜 노팅엄의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서.
*
"이길 수 있었는데···."
후반전이 끝난 후, 노팅엄의 드레싱룸은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테디가 투덜거렸다.
"레알 마드리드가 홈에서 잠그는 게 말이 돼?"
테디는 초반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기에 어떻게든 공격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테디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그랬다.
노팅엄은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루앙-알버트, 라이언-칼, 바비-칼-루카, 칼-테디-라이언, 테디-바비 등의 부분 전술로 레알 마드리드를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바비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노련한 감독인 지네딘 지단이 호드리구와 비니시우스를 빼며 미드필더 둘을 투입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에만 집중하며 드러누웠다.
골키퍼마저 월드클래스인 레알 마드리드는 경기 종료까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노팅엄의 선수들은 75분가량부턴 지쳐서 날카로운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였다.
선수들은 이길 수 있었다는 걸 직접 실감했기에 이만큼 아쉬워하는 거였다.
잭슨도 오늘 경기 정말 잘했다고 말해줬지만, 땅을 파는 선수들이 몇 있었다.
"미안해. 내가 전반전에 빨리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나도 잘못했지. 멍청히 있다가 비니시우스를 놓쳤는데."
테디와 킹이 연달아 말했다. 뭔가 실수했던 다른 선수들도 한마디씩 했다. 로드 또한 초반에 안 좋은 모습을 몇 번 보여줬기에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바비는 그런 선수들을 보며 고개를 젓고, 라커를 팡팡 두드렸다.
시선이 모이자 바비가 말했다.
"이거 원정 경기잖아. 우리가 사실상 이긴 거야. 원정 점수를 더 높게 치는 거 몰라?"
그리고,
"홈 경기도 남았잖아. 거기서 깔끔하게 이기면 돼.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은 아직 다섯 경기나 남았잖아. 후반전 초반에 보여준 모습을 우리가 계속 보여줄 수 있게 된다면 우승도 트레블도 꿈은 아닐 거야."
90분 내내 완벽한 선수는 없다. 훌륭한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이 땅을 파는 모습은 바비를 조금 흥분하게 만들었다.
"나는 오늘 경기를 하면서 이 팀에 돌아오길 잘했다고 확신했어. 우린 틀림없이 트레블을 이룰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다들 기운 내서 다음 리그 경기도 이기자고··· 음··· 큼, 크흠, 아무튼 그렇다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바비가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그런 바비를 보며 장난기 어린 얼굴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
"존경해 바비."
"경기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바비가 못하는 게 뭐야?"
선수들은 바비가 싫어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선수들은 바비를 지나칠 정도로 띄우며 괴롭혔다.
"오글거려! 이 자식들아 그만해!"
바비는 질색했고, 선수들은 바비를 놀리기 위해 작게 헹가래 치려 했다. 바비는 유니폼을 휘두르며 저항하다가 결국 잡혀 천장에 닿지 않을 정도로 살살 헹가래 당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알렉산더가 보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시선은 바비에게 꽂혀 있었다.
몇 년 전, 현실주의자인 척했던 바비가 이제는 트레블이라는 세계 최고의 팀도 쉽기 달성하기 어려운 꿈같은 목표를 입에 담고 있었다.
선수가 성장한 모습은 보기만 해도 좋았다.
알렉산더는 바비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 71.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