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할리 콕스 (3) >
할리는 마우스를 움직여 '처음부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알렉산더에게서 받은 맨유와 AC밀란의 경기 영상이 시작됐다. 오늘만 세 번째로 보는 거였지만 할리는 영상에 쉽게 집중할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
맨유의 박이 AC밀란의 핵심 미드필더 피를로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장면에서 할리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박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를로가 전방으로 패스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할리는 어릴 때 노팅엄 경기 외에는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박의 경기를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뛴 아시아인은 정말 드무니까.
박은 정말 신기한 선수였다. 상대인 피를로가 뭘 할지 미리 알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피를로가 그저 그런 기량의 선수는 아니었다. 솔직히 피를로의 경기도 몇 번 못 봤지만 즐겨 하는 축구 게임 덕에 알고 있었다. 피를로는 어느 축구 게임에서나 패스와 시야, 천재성 관련 능력치를 늘 최상으로 받을 정도로 훌륭한 선수다. 월드베스트에 뽑힌 적도 있었고,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를 둘 다 우승해 본 전설적인 선수이기도 했다.
박은 그런 피를로를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공격 상황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패스나 슈팅이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영상을 보면 볼수록 팀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골까지 넣었다.
할리는 그렇게 경기 하나를 끝까지 보고(중간에 빨리 감기도 하면서), 영상을 껐다. 그리고 뮤튜브를 뒤적여 한 선수의 스페셜 영상을 찾아냈다.
맨유와 AC밀란의 경기 영상을 보며 깨달은 건 잭슨이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였다.
피를로가 박에게 꽁꽁 묶이자 AC밀란은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무력하게 패배했다.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들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뒤에서 조율해주는 선수가 없다면 활약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경기였다.
그러니까, 잭슨은 자신이 뉴캐슬전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방금 막 검색한 스페셜 영상의 주인공인 뉴캐슬의 빌드업 핵심, '페데리코 발베르데'를 막아냄으로써.
"발베르데를··· 내가?"
페데리코 발베르데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1억 파운드가 넘는 몸값으로 이적해 온 중앙 미드필더였다. 그는 우루과이 대표팀의 주장이기도 했고, 작년에는 바비와 함께 리그 베스트 11에 뽑히기도 한 월드클래스 선수였다.
잭슨은 자신을 경기에 꼭 투입하겠다고 했다. 그건 자신이 발베르데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였다.
할리는 눈에 힘을 주며 스페셜 영상을 재생했다.
오랜만에 뛰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친구들의 도움을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았으며 잭슨의 기대에 부응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할리는 스페셜 영상을 분석해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자발적인 공부였다. 할리는 노트에 간단한 그림까지 그리며 발베르데에 대한 모든 걸 적어보았다.
오른발잡이고, 몸싸움보다는 기술로 압박에서 벗어나는 걸 즐기고, 뉴캐슬에서는 플레이메이킹에 집중하기 때문에 자주 보여주는 모습은 아니지만 달리기도 빠른 편이고···.
중간마다 정지 버튼을 누르고 인터넷에 검색해보기도 하며 세세한 정보를 찾았다.
영상을 보면서는 발베르데가 저렇게 움직이면 자신은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그림도 그려보며 시뮬레이션해 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할리의 스마트폰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미리 맞춰둔 알람이었다. 바로 잘 준비를 시작하고 30분 후에는 자야 했다.
할리는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다 못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컨디션 관리도 다음 경기를 위한 준비였다. 이 시간에는 꼭 자라고 로드와 라이언이 준 자료에 적혀 있었다.
할리는 어디까지 했는지 기록하고, 컴퓨터를 끄고 노트도 덮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많이 해야지. 알렉스한테 발베르데 분석 영상도 달라고 하고."
할리는 그렇게 다짐하고 30분 후,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깊은 잠에 들었다.
**
할리는 2주가 참 짧다고 생각했다.
할리는 매일매일 팀 훈련에 로드, 라이언과 함께 개인 훈련을 했다. 컨디션을 관리하기 위해 식단에 맞춰 요리도 직접 했고, 남는 시간에는 훈련 영상을 복기해 고쳐야 할 점을 찾았으며 발베르데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분석하고 고민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2주가 순식간에 흘러 지금은 뉴캐슬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할리는 잭슨의 경기 전 연설을 듣고 있었다. 연설은 막바지였다.
"오늘은 무승부도 안 된다. 무조건 승리를 기대하겠다. 다들 자신 있겠지?"
"자신 있습니다!"
"좋아, 그럼 경기장에서 보자."
"예!"
잭슨이 드레싱룸을 나갔다. 선수들과 합창했던 할리는 자신의 라커 앞에 주저앉으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10분밖에 안 남았네. 미치겠네."
"뭐가 미치겠다는 거야? 얼마만의 선발인데 감동은 못 할망정."
옆에 앉은 로드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떨려서 미치겠다고. 데뷔전 때도 이렇게 긴장 안 했는데···."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것 같았다. 로드는 그런 할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할리는 로드가 자신을 위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거짓말하네. 너 데뷔전 날에 나한테 떨린다고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었잖아."
하지만 로드는 팩트폭력으로 할리의 기대를 배신했다.
할리는 벌떡 일어나며 반박했다.
"야, 야! 그땐 진짜 몇 초 안 떨었어."
그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변 선수들이 모여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너 월드컵 때도 긴장 엄청했잖아."
"퍼레이드 때는 어떻고?"
"광고 찍을 때도 다리 떠는 거 봤음."
선수들의 증언이 계속되자 할리는 당황해서 입만 뻐끔뻐끔 거렸다.
그렇게 약 열 개 정도의 증언이 끝났고, 할리는 너덜너덜해진 얼굴로 털썩 주저앉으며 투덜댔다.
"너희들 말이 맞아. 나 원래 긴장 많이 해. 근데 거의 3개월 만에 선발로 뛰는 거라고. 거기다가 포지션도 달라졌지··· 역할도 달라졌지··· 너희들도 내 상황이면 긴장해서 떨걸?"
할리는 다리를 덜덜 떨며 하소연을 계속했다.
"팬들이 왜 날 내보냈냐고 하면 어떡하지? 다른 선수 내보내라고 누가 말하는 거 들으면 멘탈 나가버릴지도 몰라···."
얘기가 길어질수록 할리의 어깨가 점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런 할리를 보던 선수들은··· 웃었다.
할리가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야, 너희들 왜 웃어. 나 엄청 심각하거든?"
선수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이상한 분위기에 할리가 갸웃하는데 로드가 할리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갑자기 일으켜 세웠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가자."
"쓸데없는 걱정이라니··· 근데 벌써 갈 시간이야?"
"응. 이제 심판이 와서···."
로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드레싱룸의 문을 열고 부심이 말했다.
"노팅엄 선수들 나오세요."
필드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할리는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로드는 할리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할리를 드레싱룸 밖으로 이끌었다. 선수들이 뒤를 따랐다.
할리는 필드로 나가는 게 무섭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익숙한 노래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할리, 하~할리! 하~할리! 하~할리 콕스!>
4부 리그 때부터 있었던 할리의 응원가였다.
할리는 당황해서 걸음을 멈추려고 했으나 로드가 어깨동무한 채로 계속 걷게 했다.
옆에서 라이언이 조잘거렸다.
"몸 풀고 드레싱룸으로 들어오자마자 팬들이 네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아까 코치님들이 알려주셨었어."
"아까 네가 '팬들이 왜 날 내보냈냐고 하면 어떡하지?'라고 말했었지? 그럴 리가 없잖아. 여기가 어딘데."
로드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할리는 드레싱룸에서 땅을 팠던 게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필드로 나가는 터널로 가까이 갈수록 응원가가 더 커졌다. 할리는 멍하니 응원가를 들으며 필드로 들어가기 위해 한 줄로 섰다. 옆으로 뉴캐슬의 선수들도 한 줄로 섰다.
그렇게 응원가 한 곡이 끝나고, 처음 듣는 응원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사를 들을수록 노팅엄의 선수들은 웃었고, 할리는 당황했다.
<노팅엄의 개구쟁이! 사냥꾼 새의 아버지! 우리의 아들 할리가 돌아왔다!>
단순한 가사의 반복이었지만 할리는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할리 바로 앞에 선 라이언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할리, 울면 안 돼. 그대로 박제되고, 경기에도 영향 가."
라이언 덕에 할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응원가는 계속 들려왔다.
걱정은 어느새 싹 사라졌고, 자신이 준비했던 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팬들은 자신의 선발복귀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할리는 그런 팬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입장!"
주심의 힘찬 목소리와 동시에 노팅엄과 뉴캐슬의 선수들이 줄을 지어 필드로 나갔다.
할리가 터널을 막 지나 햇살을 맞으며 필드에 들어서자
<와아아아아아아!>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함성이 들려왔다.
할리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눌러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죽을 힘을 다해서 오늘 꼭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
'공을 받자마자 바로 몸을 돌릴 거야.'
할리는 경기 내내 발베르데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석했던 것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발베르데가 패스하는 걸 몇 번 놓쳤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금도 예상한 것처럼···
"윽!"
발베르다가 몸을 확 돌리다가 자신과 부딪혀 넘어졌다.
삑!
파울이었지만 괜찮았다. 발베르데가 역습을 시작하려는 걸 저지한 거였으니까. 할리는 주저앉은 발베르데에게 손을 내밀었다.
"꺼져."
발베르데는 미간을 찌푸리며 할리의 손을 툭 쳐버리고 혼자 일어나 자신의 진영 쪽으로 향했다.
할리는 발베르데를 슬금슬금 쫓아가며 미소를 지었다.
발베르데는 경기 초반에 이러지 않았다. 자신이 붙어 다녀도 농담을 걸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전반 30분이 지난 지금은 사소한 접촉에도 이렇게 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발베르데가 이러는 이유는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내 기술이 통한다···."
"내 뒤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기분 나쁘게."
할리는 발베르데에게 환하게 웃어줬다. 발베르데는 질색하는 얼굴을 하며 더 멀어졌다. 그래서 할리는 발베르데를 졸졸 쫓아갔다.
<할리! 할리! 할리!>
공을 완벽하게 뺏을 필요는 없었다. 견제만 해도 발베르데의 패스는 부정확해지고, 그건 곧 노팅엄의 공격 찬스로 이어졌다.
핵심은 '상대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뉴캐슬이 공을 가졌을 때 할리는 그것만 생각하며 냉정하게 플레이했다.
발베르데는 점점 흥분하고, 할리는 점점 냉정해진다.
그 차이가 발베르데에게는 틈을 만들었고 할리에게는 기회를 주었다.
뉴캐슬의 골키퍼에게 공을 건네받은 발베르데가 할리를 직접 제치려고 드리블을 시도했다.
이것 또한 할리가 분석한 대로였다.
'패스할 공간이 없거나 상황에 따라 직접 공을 몰고 운반할 때도 있다. 추가로 답답할 때도 자주 이런 플레이를 한다.'
할리는 망설임 없이 로드에게서 배운 대로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를 멈칫하게 했고, 라이언에게 배운 대로 슬라이딩 태클을 했다.
<할리! 할리! 할리!>
자신을 외치는 함성이 너무나도 듣기 좋았다.
할리는 빼앗은 공을 달려오는 바비에게 넘겼다.
맨유의 박이었다면 딱 여기까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할리는 박이 아니었다. 할리는 어린 시절부터 공격수였고, 공격 상황에서는 그걸 맘껏 활용해야 했다.
경기 시작 때까지만 해도 뉴캐슬의 수비수들은 할리를 주시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할리가 계속 발베르데만 쫓아다니자 할리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오직 원톱 스트라이커 미할리스만 견제하고 있었다.
바비가 막 우측면에 있는 칼에게 로빙 패스를 보내 주고 있었다.
할리는 그 순간 페널티박스 안으로 전력 질주했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왜냐면 골 냄새가 났으니까.
*
할리가 막 발베르데에게서 깔끔한 태클로 공을 뺏어냈을 때, 벤치에 앉은 알렉산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잭슨에게 말하고 있었다.
"제가 쓴 시간이 헛되지 않았군요."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기쁘구만."
잭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 시즌 첫 선발출전에 지난 시즌과 완벽히 다른 스타일로 필드에 등장한 할리는 말 그대로 비밀병기였다.
할리가 긴장해서 실수할까 걱정했지만 할리는 애초에 이런 포지션에서 뛰어본 선수처럼 능숙하고 냉정하게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그 결과, FIFA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은 적 있는 뉴캐슬의 감독 리찌가 필드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경기가 지나치게 안 풀릴 때 나오는 리찌의 버릇이었다.
<할리! 할리! 할리!>
훌륭한 수비 기술은 관중의 함성을 끌어낼 수 있다. 할리의 슈퍼 플레이에 바비가 공을 잡았음에도 팬들은 할리의 이름을 계속 연호하고 있었다.
"할리가 새 날개를 달았으니··· 앞으로 자주 써먹을 수 있게 됐구만."
"축하드립니다. 할리도 축하해··· 어어?"
알렉산더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잭슨 또한 입을 다물고 뉴캐슬의 페널티박스 쪽을 봤다.
바비가 칼에게 패스한 순간 할리가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측면에서 공을 잡은 칼은 원래였다면 미할리스에게 짧고 높은 크로스를 띄워줘야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할리를 발견하자마자 강하게 크로스를 올렸다.
공은 미할리스를 넘고, 뉴캐슬의 수비 셋을 넘어 마크 하나 없는 할리에게 향했다.
할리는 제자리에서 높게 점프해서 탄력 있는 움직임으로 공을 머리에 맞췄다. 공은 완벽하게 골대 구석으로 향했고,
"와아아아아!"
골망을 흔들었다.
선제골이었다.
잭슨은 벤치에 앉은 사람들의 함성을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고, 알렉산더는 코치, 후보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앉아 세레머니를 하는 할리를 바라보았다.
할리가 라이언과 로드를 양쪽에 낀 채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잭슨은 고개를 들어 대형 전광판에서 재생되는 할리의 선제골 장면을 봤다.
"완벽해···."
발베르데를 대인마크 하며 상대 수비수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걸 이용한 기습적인 침투였다. 자신이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놨어도, 옛 전설을 흉내 내라고 했어도··· 할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장점을 살린 채로 새 포지션과 새 역할에 적응했다.
상대의 빌드업 핵심선수를 일대일로 막아 상대 팀 전체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들고, 기습적으로 침투해 골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공격수.
할리는 앞으로 자신이 어떤 축구선수가 될지 행동으로 보여줬다.
할리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 기간을 꾹 참고 자신의 지시를 따라오고, 그 이상을 보여준 할리가 잭슨은 무척 대견했다.
"이런 경기를 두세 번만 더 보여주면 재계약도 해야겠지? 노리는 팀들이 많아질 것 같은데."
잭슨의 말에 알렉산더가 미소지으며 답했다.
"당연하죠."
*
경기가 끝난 후 할리는 광고판 앞에 서서 트로피를 들고 있었다. 할리의 앞에 선 인터뷰어가 물었다.
"이번 시즌 첫 선발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MOM까지 받았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할리 콕스?"
"최고예요. 믿을 수 없어요. 말도 안 돼요."
"정말 기뻐하시는 게 느껴지는 대답이네요."
인터뷰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할리는 자신의 손에 MOM 트로피가 들려있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전광판에 새겨진
노팅엄 vs 뉴캐슬
3 : 0
이라는 숫자도.
그런 할리에게 인터뷰어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경기 내용 질문에 할리는 술술 대답했다. 출전하지 못하는 기간에는 새 포지션과 새 역할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고, 발베르데를 잘 막을 수 있었던 건 철저한 분석과 시뮬레이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이제 인터뷰가 다 끝났나 싶었는데 인터뷰어가 대답하기 어려운 기습적인 질문을 했다.
"선발로 출전하지 못하는 기간에 힘들지 않았나요?"
"음···."
고민은 짧았다. 몇 사람의 얼굴이 할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할리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힘들었지만··· 몇몇 사람이 도와줘서 견딜 수 있었어요. 코치님들은 돌아가며 제 개인 훈련을 봐 주셨고, 바비는 제 스트레스를 풀어주겠다며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죠. 알렉스는 제가 개인적으로 부탁한 분석 영상도 만들어줬어요. 그리고···."
할리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제 영원한 친구들일 로드와 라이언이 자기들 시간까지 써 가면서 도와줬어요. 이런 사람들이랑 같은 팀에 있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할리의 얼굴을 본 인터뷰어가 픽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 질문은 하나마나겠네요."
"뭔데요?"
"요즘 계속 경기에 못 나오니 노팅엄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있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정말 하나마나한 질문이네요."
할리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저 경기장은 다음 홈 경기 때 또 가득 찰 것이다. 틀림없이. 지금 자신이 할 말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할리가 입을 열었다.
"절대 안 떠나요. 이곳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데 제가 어딜 가요?"
< 72. 할리 콕스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