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26화 (226/245)

< 73. 브라우니 재단 (1) >

"킴! 여기 좀 봐 주세요."

"제임스도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기자들이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선수들에게 표정 관리를 잘하라고 자주 말하고 다닌다. 그런 내가 인상 찌푸린 사진을 찍히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쏟아지는 플래시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제임스는 애초에 이런 환경에서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라 아이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조이는 입만 웃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기자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이에게 귓속말했다.

"칼이 기자들 많다고 하던데 정말이네. 무슨 호텔 입구에서 이러냐."

"정말··· 빨리 들어가자."

"그래그래. 제임스, 빨리 가자."

이곳은 노팅엄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 앞이었다.

나와 제임스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두 개만 대답해주고, 호텔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을 지나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셋 다 비즈니스 관련해서 자주 와본 적 있는 곳이었기에 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파티장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고생들 많으시네요."

"반갑습니다."

파티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앞에는 미할리스만 한 경호원이 둘 있었다.

경호원들은 우릴 알아봤지만 내가 내미는 초대장을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줬다.

나는 파티장 문 바로 옆에 놓인 팻말, <브라우니 재단 창립 기념 파티>를 슬쩍 보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파티장의 분위기는 활기찼다.

나는 문 바로 근처에 있는 테이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특히 멀리서 온 부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왔어? 기자들 많던데 괜찮겠냐."

"친구 보러 오는 건데 감수해야죠."

"결혼식 때 뵙고 또 보네요."

"또 만나서 반가워요. 킴."

세자르와 오리아나였다. 경조사에 참 잘 참석하는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버풀 팬들과 보드진이 세자르가 여기에 온 걸 싫어하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요즘에는 그들도 세자르가 노팅엄 선수들과 만나는 것에 대해 과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걸 떠올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노팅엄 선수들과 만난 걸 그대로 SNS에 올려 논란이 되고 그랬는데 이제는 안 그러기도 하고, 세자르가 리버풀에 애정을 보이는 SNS도 자주 올리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리버풀의 팬들도 익숙해지고, 세자르도 나름 노련해진 것이다.

우리 구단의 홍보팀에서도 선수들에게 세자르 나오는 SNS 올리지 말라고 얘기해서 분란이 될 게 없어진 덕도 있었다.

무엇보다 세자르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스트라이커가 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세자르는 득점 선두인 뉴캐슬의 마카키스를 1골 차로 추격하고 있었다. 그만큼 잘하고 있었다.

참고로 노팅엄의 공격수들은 로테이션을 자주 돌리는 바람에 4위부터 우르르 몰려있었다. 어시스트는 라이언이 1위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랑도 인사해야 해서."

"네. 파티 재밌게 즐기세요."

우리는 짧게 담소를 나누고 다음 테이블로 이동했다. 선수들이 있는 테이블 코치들이 있는 테이블 직원들이 있는 테이블을 지나서 이 파티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 도착했다.

"허허, 오랜만이군요."

"노아 할아버지, 공부는 재밌어요?"

조로증에 걸려 빨리 늙어버린 자신의 외모에 좌절하지 않고 할아버지 같은 말투를 사용해 유쾌하게 병에 맞서는 멋진 아이, 노아가 있었다.

이 테이블과 주변 테이블에는 노아를 필두로 노팅엄 병원의 소아병동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모여 있었다.

나와 제임스, 조이는 그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잭슨과 수석코치 로건이 있는 테이블에 도착해 빈자리에 앉았다.

"오셨습니까."

"네, 곧 시작이죠? 라이언은 어디 있나요?"

짧은 인사 후 바로 이 파티의 주최자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테이블을 돌다 보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디 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로건이 내 질문에 답해줬다.

"옆 방에서 연습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노팅엄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긴장된다면서···."

소아병동 아이들과 보호자들도 있었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도 몇 있었다. 저들은 라이언이 창립한 재단의 후원자 자격으로 파티에 참여했다.

갑자기 앞 단상을 비추는 조명을 제외한 파티장의 조명이 다 꺼졌다.

이어서 정장을 입은 라이언이 단상 위에 등장했다. 라이언은 마이크를 잡고,

[안녕하세요. 노팅엄 FC의 축구선수 라이언 브라우니입니다. 브라우니 재단 창립 기념 파티에 와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하며 멋들어지게 인사했다.

나는 파티장의 모두와 마찬가지로 라이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쏟아냈다.

*

라이언 뒤 대형 스크린에 이라고 적혀있고, 옆에는 로빈훗 모자를 쓴 귀가 큰 요정 캐릭터가 있었다.

[우리 재단을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 재단의 얼굴이 되어줄 캐릭터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마스코트 사냥꾼 새 만큼이나 귀여운 캐릭터였다. <사냥꾼 새>, <고양이 테베>에 이어 세 번째 마스코트로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 제임스와 조이에게 속삭였다.

"저 마스코트 탐난다. 저 요정까지 데려와서 어벤저스처럼 로빈훗 모자 쓴 캐릭터들 모음 만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조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마스코트를 우리가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더 그려달라고 하면 되잖아."

"응? 누구한테?"

"저거 할리가 그린 거 같은데."

그때 라이언이 말했다.

[이 캐릭터는 제 영원한 친구이자 이제는 캐릭터 디자이너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할리 콕스가 그려줬습니다. 귀엽죠? 귀엽지 얘들아?]

아이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흐뭇하게 웃었고,

휘유~!

자길 소개해줘서 그런지 신난 할리가 기쁨의 휘파람을 불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제임스가 말했다.

"뉴캐슬이랑 한 경기 끝나고 완전 원래대로 돌아왔네."

"보기 좋다."

이어서 노아가 단상에 올라왔다. 라이언이 노아를 소개했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4부리그에서 운 좋게 데뷔한 저는 여기 있는 노아를 만나 많은 걸 느꼈고, 이 재단을 세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 친구 노아와의 대화를 통해 꿈을 꾸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아픈 어린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라이언은 작년부터 이 재단을 세울 계획을 세웠고, 나에게 간혹 조언을 구했다. 나는 라이언이 사기당할까 봐 걱정돼 재단을 운영해줄 만한 분을 내 인맥을 통해 소개해줬다. 실무 경험도 많고, 돈보다는 봉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지금도 가장 앞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라이언은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번 돈의 대부분을 이 재단에 투자했다.

재단의 목표는 세 가지,

1. 아픈 어린아이들을 위한 치료비 지원

2. 아이들이 꿈을 찾을 수 있게 돕는 각종 수업과 체험

3. 아이들의 목표가 될 수 있는 유명인사 초빙 후 만남 주선

였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주로 앓는 불치병 연구비 지원'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라이언은 노아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노아를 통해 아픈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들을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재단의 목표를 정했다며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쭉 설명했다.

이어서 내년부터 시작될 재단의 활동에 대해 쭉 설명했고, 마지막으로는 후원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할리, 로드, 칼···.]

부터 시작해서 라이언은 이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줬다.

[···제임스 구단주님, 그리고 재단설립에 조언을 많이 해 주신 김도운 단장님까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특별한 후원자가 있습니다.]

라이언은 그렇게 말하며 내 쪽을 흘긋 바라보고, 마이크를 세게 쥐었다. 슬슬 앞에 나갈 시간이 되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이언 뒤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노팅엄 FC의 엠블럼이 떡하니 나타났고, 라이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로··· 노팅엄 FC, 우리 구단입니다. 노팅엄은 특별한 방식의 후원을 약속했습니다. 설명은 킴 단장님이 해주시겠습니다.]

단상에 도착한 나는 라이언에게서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모두에게 인사한 후, 몇 주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

"너희는 왜 왔냐?"

"심심해서요."

나는 라이언의 뒤에 서 있는 로드와 할리를 보며 어이없어서 물었다. 라이언만 불렀는데 줄줄이 소시지처럼 오다니.

"잘됐네. 너희들도 앉아."

오히려 좋았다. 내가 라이언을 부른 이유는 구단 차원에서 하는 후원 기획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브라우니 재단 창립일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조이가 갑작스럽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주는 바람에 급히 만든 자리였다. 사람이 많을수록 아이디어가 괜찮은지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셋을 차례로 보며 얘기했다.

"그럼 너희들도 듣고, 이 기획이 괜찮은지 말해줘."

"네."

나는 테이블 위로 A4용지 한 장을 올려놓았다. 용지에는 <12월의 라이언 후원>이라는 제목의 짧은 기획서가 적혀있었다.

"우리 구단 차원에서도 네 재단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싶은데···."

그 말에 라이언이 밝아지며 힘차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왕 하는 거 화제성도 몰고, 재미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조이가 아이디어를 하나 줬거든."

할리와 로드가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셋 모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라이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12월에 강하다는 게 노팅엄 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잖아. 실제로도 12월만 되면 경기력이 쭉쭉 오르고."

"···맞아요. 참 신기해요."

"그걸 이용해보자 이거야. 우리 구단은 12월에 네가 MOM을 받거나 골, 어시스트를 하거나 팀이 승리할 때마다 후원금액을 올려줄 생각이야."

할리는 이해하지 못한 듯 갸우뚱했고, 로드와 라이언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들의 반응에 신난 나는 계속 얘기했다.

"이걸 구단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거야. 네가 뭔가 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금액이 올라가고, 끝나는 날에 파티든 경기장에서든 후원금 전달식을 하는 거지. 이게 잘 되기만 한다면 언론과 축구 팬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줄 거야. 라이언이 12월에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 구단에서 얼마나 후원금을 가져갈 수 있을까? 라고 말이야."

"좋은데요?"

이제야 이해한 할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로드 또한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저도 좋긴 한데···."

라이언에게는 부담되는 일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즐거우면서도 힘든 일이니까.

나는 그런 라이언에게 말했다.

"내 얘기는 여기까지야.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네가 정해."

*

라이언은 며칠 후 내게 하겠다고 말했고, 그 결과 나는 조금 수정된 내용을 후원자들에게 발표하고 있었다.

"···기간은 <12월 1일부터 24일까지>입니다. 그 안에 있는 경기에서 라이언이 얼마나 활약하냐에 따라 구단의 후원금액이 정해지는 거죠.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전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구단 차원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 때 후원금 전달식을 하려고 합니다."

내 설명을 이해한 후원자들이 감탄하거나 재밌다는 듯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헛기침을 조금 하고, 나는 가장 중요하고 이들이 궁금해할 주제를 꺼냈다.

"후원금액은 경기 MOM에 뽑혔을 때, 골·어시스트를 기록했을 때, 그리고 팀이 승리했을 때마다··· 50만 파운드(약 7억 8천만 원)씩 올라갑니다."

팀의 승리를 조건으로 넣은 이유는 라이언이 괜히 개인기록에 집착할까 봐 걱정돼서였다. 빅클럽들도 이런 후원을 할 때 거의 100만 파운드 가량한다. 팀의 승리만 이끌어도 100만 파운드 이상을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었다.

큰 금액이었지만 우리 구단이 돈을 버는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환원을 하고 싶다는 게 제임스를 비롯한 구단 수뇌진 모두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내 예상으로는 최대 500만 파운드(약 78억 원) 정도 기부할 거라고 생각했다.

라이언이 그동안 12월에 무척 잘하긴 했지만, 공격포인트는 대부분 3~4개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12월의 라이언은 태클이나 키패스 등 보이지 않는 활약을 주로 했다.

"와아아아아!"

내 발표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휘파람을 불며 박수갈채를 보내줬다.

나는 그들에게 인사하며 라이언에게 마이크를 돌려줬다.

설마 얘가 나를 당황 시킬 정도로 공격포인트를 많이 쌓지는 않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하면서.

*

<라이언은 노츠 녀석들에게는 무서운 사자가 된다네~>

노팅엄의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라이언의 응원가를 들으며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12월 4일, 오늘 상대는 노리치시티.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라이언의 응원가가 이렇게 울려 퍼지는 이유는 대형 전광판 왼쪽 아래 구석에 적힌

[12월의 라이언 후원금액 : 현재 0파운드]

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불과 몇 분 전에 구단 아나운서가 '오늘부터 크리스마스 전 경기까지 라이언이 활약할 때마다 우리 구단이 브라우니 재단에 후원할 금액이 늘어난다.'라는 설명을 해 줬기 때문이었다.

<라이언~ 오오오~>

새로운 볼거리에 서포터즈는 라이언의 응원가만 계속 불러대고 있었다.

"오늘 라이언이 몇 골이나 넣을까?"

"한 골 정도 넣지 않을까? 동기부여 잘 돼 있으니까 경기력도 좋을 것 같은데."

제임스에게 그렇게 답하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선수들이 막 입장하고 있었다. 경기장의 많은 카메라가 라이언을 잡아주고 있었다. 전광판을 찍는 카메라도 보였다.

화제성을 모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이걸로 꽤 많은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라이언의 브라우니 재단이나 우리 구단 모두.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경기가 시작되는 걸 바라보았다.

전반전 5분 만에 라이언이 30m 정도 되는 거리에서 중거리 슛을 꽂아 넣을 때까지만 해도 내 미소는 유지됐다.

하지만, 전반전 41분에 라이언이 프로 첫 헤딩 골을 넣는 걸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고··· 후반전 77분에 라이언이 칼과의 5연속 티키타카를 통해 프로통산 첫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순간에는 이 기획 망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전광판의 숫자는 이렇게 변해 있었다.

[12월의 라이언 후원금액 : 현재 250만 파운드]

활짝 웃는 라이언에게 팬들이 환호하는 걸 보며, 나는 다급하게 크리스마스 전까지 몇 경기 남았나 세기 시작했다.

< 73. 브라우니 재단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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