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27화 (227/245)

< 73. 브라우니 재단 (2) >

터치 라인 근처에서 몸을 풀던 로드가 내게로 다가왔다. 경기 전 훈련 시간에 내가 필드까지 내려와 있었기 때문일 거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단장님, 무슨 일이에요?"

"아, 신경 쓰지 말고 훈련해. 페레스 회장님을 안내하느라 내려온 거야."

"아."

로드는 노팅엄의 벤치를 구경하는 중인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페레스를 발견하고 다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대략 한 시간 전부터 페레스를 안내해주고 있었다. 몇 년간 급성장한 노팅엄의 경기장을 눈으로 보고 싶다고 부탁해서 내가 직접 나섰다.

경기장 복도를 돌며 VR 체험공간, 팬샵, 푸드코트, 길거리 공연가 등 각종 즐길 거리와 시설들을 지나 마지막으로 필드로 나온 거였다. 이곳은 혼자 구경하고 싶다고 하셔서 나는 노팅엄과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훈련하는 걸 구경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페레스가 돌아왔다.

"아주 인상 깊었어. 안내해줘서 고맙네."

"인상 깊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거대한 축제 현장을 본 것 같아. 팬들이 이렇게 행복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클럽은 처음 보는구만."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우리 선수들이나 보고 가야겠어. 이따 관계자석에서 다시 만나지."

"네."

잠시 후, 이 경기장에서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최종전이 열린다. 1차전 상대였던 레알 마드리드를 홈에서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같은 조에 소속된 바이에른 뮌헨과 인테르는 죽음의 조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 팀과 레알 마드리드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3, 4위로 밀려버렸다.

그러니까 우리 팀은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였다. 레알 마드리드와 1, 2위를 결정지으면 됐다. 바로 이번 경기에서.

우리 팀이 인터밀란 원정에서 무승부를 하는 바람에 레알 마드리드가 승점 2점이 더 높았다.

오늘 반드시 이겨야만 1위로 진출할 수 있었다. 1위로 진출해야만 다른 조의 2위 팀을 만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

선수들은 지난 경기의 아쉬움을 이번 경기에서 털어내고 싶다며 정말 열심히 뛰겠다고 했다.

나는 내려온 김에 몇몇 선수들과 잡담이나 하다 가자고 생각하며 움직였다.

그런 내게 초대형 전광판 왼쪽 아래에 적힌 숫자가 보였다.

[12월의 라이언 후원금액 : 현재 250만 파운드]

바로 라이언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설마 오늘 경기에서도 막 골을 넣고 그러진 않겠··· 아니, 그러면 좋은 거지.

이상한 방식으로 사고가 굴러가는 걸 막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선수들에게 잘하라고 한마디씩 해 줬다.

마지막으로는 오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할리에게 다가갔다.

"할리, 오늘 폼 어때?"

"아주 좋아요! 열심히 관리했다고요."

"그래?"

할리는 가슴을 활짝 펴고 있었다. 나는 라이언을 슬쩍 보고 물었다.

"라이언은 어때?"

"라이언도 최고라고 했어요. 아, 저거 걱정되시는 거예요?"

"전혀!"

할리가 능글맞은 얼굴로 전광판을 가리키며 물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망설임 없이 답했다.

"정말요?"

"당연하지. 저 정도는 괜찮아."

사실 괜찮지 않았다. 예상 범위를 벗어나 버리면 예산 편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득이기도 했다. 라이언의 재단과 우리 구단이 한 내기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중이었다. 우리 구단의 재정을 관리하시는 분들에게 내가 사과만 하면 된다··· 밤 좀 많이 새야 할 것 같다고··· 젠장.

내 표정이 어땠는지 할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가 골 많이 넣어서 라이언이 못 넣게 할게요."

"어허, 이상한 소리 마. 경기 꼬이면 어떡하려고 그래."

"저 오늘은 라이언 말고 바비, 루앙을 위주로 경기 풀어가기로 했거든요. 감독님 지시에요."

"정말?"

내 반응에 할리가 킥킥대며 웃었다.

"저만 믿으세요. 전술이 안 바뀌도록 멋진 활약 보여드릴 테니까. 제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이거든요."

할리를 만나고 처음으로 할리가 듬직하게 보였다.

나는 할리에게 덕담을 건넸다.

"그래, 꼭 득점왕 해야지. 골 많이 넣어라."

*

삑, 삑, 삐이이이익!

<브라우니! 브라우니! 브라우니! 브라우니!>

경기 종료 휘슬과 라이언을 향한 함성이 어우러졌다.

나는 관계자석에서 초대형 전광판을 황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페레스가 날 불러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좋은 경기였네. 토너먼트에서 또 만나서 승부를 가렸으면 좋겠구만."

"네, 네네. 기대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얼이 빠졌어. 경기는 좋았잖아. 그럼 난 가보겠네. 다음에 또 보세."

페레스는 그렇게 말하고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자들과 함께 떠났다. 나는 다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노팅엄 FC vs 레알 마드리드

3 3

득점자

라이언 앨런

(15분, 39분) (20분, 22분,

루앙79분)

(70분)

레알 마드리드와 노팅엄은 주전 전원 출전이라는 총력전을 치렀고, 난타전 끝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옆에서 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언 또 MOM 받았네."

오늘 두 골을 넣은 라이언은 필드 위에 임시로 세워진 광고판을 배경으로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할리···."

믿었던 할리는 골을 넣기는커녕 라이언한테만 두 개의 어시스트를 했다. 라이언은 단 두 개의 슈팅만으로 두 골을 집어넣는 집중력을 보여줬다.

틀림없이 잘한 거긴 한데··· 나는 실시간으로 50만 파운드가 더 올라간 숫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2월의 라이언 후원금액 : 현재 450만 파운드]

아니, 무슨 중앙 미드필더가 두 경기에서 네 골에 어시스트 하나, MOM을 두 번이나 받는 건지···.

불과 두 경기 만에 후원금이 450만 파운드(약 68억 원)가 됐다. 아직도 네 경기나 남아있는데.

망했다.

나는 슬픈 마음을 담아 중얼거렸다.

"이제는 물릴 수 없겠지···? 제한금액 같은 거 걸면 추하겠지? 나 재무팀이랑 운영팀 사람들한테 머리 박고 사죄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말을 듣던 조이가 까르르 웃었다. 조이가 말했다.

"너 실수하는 거 오랜만에 보네. 너무 상심하지 마. 내가 운영팀장이잖아. 같이 사과해 줄게."

조이가 이어서 말했다.

"홍보비를 조금 많이 썼다고 생각하자. 우리 구단은 그동안 예산 배분이 지나칠 정도로 완벽했어. 다들 이해해 줄 거야. 너도 사람인데 늘 완벽할 수는 없는 거잖아?"

"조이···."

나는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조이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뭣보다 좋은 데 쓰이는 돈이잖아. 너무 부담 갖지 마."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위로가 됐다.

"고마워."

"뭘. 아무튼, 빨리 드레싱룸에 가야지."

"오케이."

남은 네 경기에서 금액이 더 커질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화제성도 커지고 있으니 이걸 토대로 돈을 더 벌 방법을 마련하면 될 테니까.

지금은 선수들을 축하해주러 갈 시간이었다.

노팅엄은 오늘 경기를 마지막으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무사히 마치고, 16강으로 향하게 됐으니까.

*

"구단 차원에서 파티를 해주고 싶은데 당장 나흘 후에 경기가 있는 거 다들 알죠? 파티는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 경기 날로 미뤄야 해요. 대신! 바로 줄 수 있는 게 있죠. 바로 보너스예요."

"와아아아아!"

"단장님 멋지다!"

대부분의 선수가 웃통을 벗은 채로 날 향해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다. 다들 땀을 얼마나 흘렸으면 저러고 있는 건지.

그래도 다들 기뻐하니 보기 좋았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챔피언스리그 첫 토너먼트 진출에 공헌한 모두에게 계약상 보너스 외의 특별 보너스가 들어갈 거예요. 당연히 코칭스태프도 포함이죠."

"우어어어!"

이제는 코칭스태프들도 환호하고 있었다. 역시 돈이 최고다.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보기 좋았다.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고, 오늘은 푹 쉬세요."

"예!"

모두의 힘찬 대답을 끝으로 몇몇 선수들은 샤워하러 갔고, 몇몇 선수들은 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옆방에 마련된 아이스 체임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퇴근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나는 그중 가장 가까이 있던 라이언을 발견하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축하한다. 벌써 450만 파운드네."

"어···."

라이언이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해요. 너무 지나친 거 같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해. 후원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 그리고 이게 홍보가 얼마나 되는데."

라이언이 정말이냐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은하게 웃었다. 라이언이 말했다.

"단장님은 역시 마음이 따뜻하신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할게요."

"마음이 따뜻하긴 무슨. 아무튼, 12월에는 한 번도 지지 말아서 많이 가져가라."

"네! 그렇게 할게요! 이번 달은 프로 데뷔하고 폼이 가장 좋아요. 단장님이 이런 내기를 제안해주신 덕 때문일 거예요."

천사 같은 라이언의 태도에 아까 그런 고민을 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이 살짝 들었다.

뭐, 고민하고 발로 뛰다 보면 잘 풀리겠지.

내년에도 어떻게든 잘 될 거다. 그렇게 만들 거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라이언에게 말했다.

"다음 주에도 MOM 기대할게."

**

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였다.

SNS가 세계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만큼이나 플라자(Plaza)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이기도 했다.

그런 플라자의 마케팅팀에서는 치열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예전이랑 똑같은 방식이잖아요. 우리에겐 기업 이미지를 바꿔줄 광고가 필요해요."

이들은 앞으로의 광고 방향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소비해 전 세계적인 광고를 했고, SNS 업계에서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플라자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쟁 기업인 체인이 급격하게 점유율을 따라오고 있었다.

플라자의 이사회에서는 그 이유로 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꼽았다. 기업 운영이 미숙했던 시절 개인정보 유출 같은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고, 지금은 쫓겨난 이사가 뒷돈을 챙긴 사건 같은 일들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사회는 돈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 일반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걸 1순위로 삼고 있었다.

마케팅팀은 그들의 지시를 받아 새로운 광고를 물색하고 있었다.

"브랜드에게 의뢰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리도 돈만 충분하다면 의뢰할 수 있을 거예요."

"휴고는 어떨까요?"

이들의 입에서는 세계적인 카피라이터(광고제작자)들의 이름이 줄줄 나왔다.

"보세요. 브랜드는···."

직원들은 카피라이터들이 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보며 어떤 카피라이터가 플라자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줄지 의논했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흘렀을 때, 한 직원이 그동안과는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꺼냈다.

"카피라이터 말고, 축구팀은 어떻습니까?"

"축구팀?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요 며칠 밤을 새워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마케팅팀장이 말했다. 직원은 움찔하면서도 할 말을 계속했다.

"노팅엄이라는 팀인데···."

"아, 그 올해 중순쯤에 미친 이적으로 가장 화제 됐던 팀 말이야?"

"네, 맞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후원자를 거느린 프로스포츠 구단 중 하나죠."

"그 팀이 왜. 우리도 거기 후원하자고?"

팀장의 말에 직원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자신의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직원의 노트북이 곧 모두가 볼 수 있는 대형 디스플레이에 연결됐다.

디스플레이에는

[12월의 라이언 후원금액 : 현재 450만 파운드]

노팅엄 경기장 대형 전광판에 적혀있는 문구가 찍힌 사진이 왼쪽에 띄워져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 이벤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략하게 요약돼 있었다.

마케팅팀 사람들은 디스플레이만 보고 금세 내용을 이해한 후 이 얘기를 꺼낸 직원을 바라보았다.

직원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팅엄은 라이언 선수가 만든 <브라우니 재단>에 후원하기 위해 이와 같은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이벤트가 정말 반응이 뜨겁습니다. 우리가 수백억을 들여야만 가능한 화제성 보여주고 있습니다."

축구에 관심 있는 팀원이 없었기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말만으로는 와닿지 않는 거였다.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 이 이벤트의 트래픽 양, 도메인 점수, 키워드 검색 및 언급 순위를 그래프로 띄웠다.

전부 세계에서 최상위권이었다. 이들 회사의 SNS 앱인 플라자에서도 압도적인 검색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흠···."

까칠하던 팀장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은 다음 페이지로 넘겨 각종 포털 메인에 올라온 노팅엄의 기사를 띄워놨다.

<라이언, 노팅엄에게서 얼마나 후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2경기 2 MOM, 4골 라이언. 미친 활약에 근심이 깊어가는 킴 단장의 얼굴>

<남은 4경기 동안 라이언은 얼마나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릴 것인가?>

그리고 말했다.

"이 이벤트는 아직 절반도 안 왔습니다. 네 경기나 남았고, 내년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벌써 이 정도 화제성입니다. 틀림없이 앞으로도 계속 전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제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돼."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직원은 숨을 고르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했다.

"이 이벤트의 후원금액을 우리가 지원해주는 겁니다. 지금 골이나 어시스트, MOM과 승리마다 50만 파운드라고 했죠? 저희는 100만 파운드, 혹시 경쟁이 붙는다면 200만 파운드로 가도 됩니다. 한 20골을 넣는 게 아니라면 웬만한 광고비보다 싸게 화제성도 얻고, 이미지도 챙길 수 있습니다."

직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밤을 새워서 만든 자료였다. 이 회사는 철저한 성과제였고, 직원은 이번 일을 성공으로 이끌어 더 높은 자리에 가고 싶었다.

잠시 후, 마케팅팀원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난 좋은데?"

"나도 좋아."

"존, 너 천재 아니야?"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지자 직원 존은 미소지었다. 존은 바로 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은 아직도 흥미로운 눈으로 기사 제목들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팀장이 입을 열었다.

"좋아. 진행해 보자고. 그리고 이런 걸 다른 기업들이 모르는 게 말이 안 되니까 무조건 빨리해야 해."

"네!"

긍정적인 대답에 존은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 마케팅팀장의 말대로 플라자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의 마케팅팀, 커머셜팀, 심지어는 이사회에서도 노팅엄과 브라우니 재단이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었다.

< 73. 브라우니 재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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