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30화 (230/245)

< 74. 레오와 로드 (2) >

"우우우, 꺼져라! 노팅엄 자식들아!"

"오늘 여기서 첫 패배를 당하게 될 거다! 미리 도망치는 게 좋을걸?"

"칼 슈나이더 없이 우릴 이기겠다고? 하하하하!"

원정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스톤빌라 홈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의욕을 활활 불태우던 레오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고, 레오의 뒤에 서 있던 로드가 어깨를 잡아주었다.

"선수들 기죽여보려고 발악하는 거야. 무시해."

"네···."

레오는 로드의 침착한 목소리 덕에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런 야유를 본 적 없는 건 아니었다. 노팅엄의 팬들도 최상위권 팀들의 선수들에게는 유난히 야유를 많이 보내니까. 하지만 그 야유를 직접 당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레오는 험악한 인상의 원정 팬들을 보는 게 거북해 정면에 있는 경기장 입구만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꼬마~ 겁먹은 거야? 여기 좀 보라고."

양옆으로 펜스가 세워져 있었고, 경호원들도 줄지어 서 있었지만 레오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았다.

"그릴리쉬(아스톤빌라의 핵심선수)가 너흴 박살 낼 거다!"

레오는 귀에 들리는 말들을 무시하며 더 빠르게 걸었다. 그렇게 입구에 거의 도착하게 됐을 때, 로드에게 어깨를 붙잡혀 멈추게 되었다.

로드가 손가락으로 펜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 팀 팬들은 무시해도 되지만 우리 팀 팬은 무시하면 안 되지."

로드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익숙한 유니폼을 입은 무리가 보였다. 경기장 입구 근처에는 노팅엄에서 원정 온 팬들이 모여 있었다.

"죄송해요. 못 봤어요."

"괜찮아. 괜찮아. 너 아직 프로 데뷔도 안 했잖아. 원정 와서 긴장하는 건 당연하지. 근데 저 꼬마애한테는 인사 좀 해 줘. 아까 너한테 하이파이브해달라고 손 뻗었는데 네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어."

"정말요?"

레오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시무룩 해져 있는 여자아이와 그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기 입장 전에 사인은 안 돼. 팬들이 몰리면 시간이 지체될 수 있거든. 대신 하이파이브 정도는 해도 상관없어. 그럼 다녀와."

레오는 로드가 시키는 대로 여자아이에게 갔다.

"미안해. 긴장해서 옆을 못 봤어. 자."

레오는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노팅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었고, 여자아이는 자그마한 손으로 레오의 손바닥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오늘 꼭 잘해요!"

"그래."

레오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의 소리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힘내라!"

"오늘 선발이야?"

"경기에서 뛰게 되면 긴장하지 말고 자신 있게 하고···."

노팅엄에서 원정 온 팬들이 격려해주고 있었다. 원래 알던 사람들인 것처럼 친근한 말에 레오는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레오는 손을 내미는 팬들에게 하이파이브하며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로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태프들과 선수들은 이미 들어간 후였다.

"들어가자."

"네!"

레오는 씩씩하게 로드를 따라 경기장에 들어섰다.

경기장 내부 복도에는 아스톤빌라의 직원들 몇과 보안요원들이 몇 돌아다니고 있는 것 말고는 한산했다.

레오는 주변을 힐끔거리면서도 나란히 걷고 있는 로드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걸었다.

로드는 걸으면서 레오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1군 선수가 됐으니까 팬 서비스에 더 신경 써야 해. 노팅엄 선수라면 반드시 팬 서비스를 열심히 해야 해. 그게 우리 구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거든."

레오는 로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멀리까지 응원을 와주는 팬들이 있기에 우리가 축구를 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야. 팬들이 없으면 축구는 공놀이일 뿐이거든. 그러니까 레오 너도 앞으로는 팬 서비스는 잘했으면 좋겠어."

"네!"

힘찬 대답에 로드가 희미하게 웃었다.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의 사소한 팬 서비스가 팬들에게는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인생도 바꿀 수 있거든."

"인생까지요?"

"응, 내가 그 증인이야. 알렉산더가 어린 나한테 팬 서비스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없을걸?"

레오는 잠시 잊고 있던 로드와 알렉산더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었다. 로드가 어릴 때 알렉산더에게 첫 해트트릭 공을 받았다고 했고, 로드는 그날 이후로 축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로드는 리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히는 다재다능한 중앙수비수이자 노팅엄의 주장이었다. 최근에 나온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게임에서도 로드의 능력치는 무려 세 번째로 높았다.

그런 대단한 선수가 자신에게 '노팅엄 선수라면 반드시 팬 서비스를 해야 한다.' 같은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로드는 버스에 탈 때부터 자신을 정말 신경 써주고 있었다. 원정 팬들의 위협에 침착하게 대처해줬으며 노팅엄 원정 팬들이 있다는 걸 친절하게 알려줬다.

레오는 고마움을 느끼며 로드를 존경스럽게 보기 시작했다.

*

레오는 드레싱룸에 앉아 다리를 떨며 스마트폰으로 시계를 보고 있었다. 분명 몇 분 전에 몸을 데우고 왔는데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몸이 굳는 것 같았다. 첫 경기부터 대활약을 펼쳐보겠다는 꿈은 정말 멀어 보였다.

"너 긴장되냐? 응? 응?"

할리가 레오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레오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의 표정이 어땠는지, 옆에서 라이언이 할리를 핀잔했다.

"할리, 레오는 데뷔전부터 원정 경기잖아. 긴장될 만하지. 너무 놀리지 마."

"라이언은 너무 바른 생활 사나이라니까."

할리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리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유니폼이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할리는 오늘 교체명단이었기 때문이었다. 할리는 레오에게

"오늘 잘해라."

라고 짧게 격려해주고 드레싱룸을 나갔다.

레오는 다시 스마트폰을 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

"심호흡 크게 해 봐."

테디와 테오, 헌터 형제가 한 마디씩 해줬다. 그래도 레오는 뻣뻣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이거 찍어놓고 나중에 놀리자."

바비는 레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있었다. 뭐 이렇게 다들 관심이 많은 건지, 레오는 울상을 지었다. 선수들은 그 모습을 보며 더 재밌어하며 장난을 걸었다.

잠시 후, 잭슨이 들어와 선수들이 장난을 멈추고 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레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부에도 유명한 잭슨의 드레싱룸 대화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전술 수정사항이 약간 있다. 루앙은 번리랑 상대할 때 기억하지? 그때처럼 플레이해라. 기억이 안 난다면 스티븐(코치)에게 물어봐. 요약 영상을 준비했으니까. 그리고 바비와 라이언은 역할을 바꾼다."

"네!"

레오는 모르는 얘기 위주였기에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어제 들었던 전체적인 전술 관련 얘기를 간략하게 듣고 선수 하나마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후이부터 시작해서 루앙까지.

순식간에 레오의 차례가 됐다.

레오는 긴장한 얼굴로 잭슨을 바라보았다.

잭슨은 다른 선수들을 대할 때와는 달리 약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네가 유소년 경기와 2군 경기에서 하던 대로 플레이하면 된다. 자유롭게 날뛰어 봐라."

"예!"

레오는 다른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힘차게 대답했다. 잭슨은 제롬을 마지막으로 얘길 마치고 떠났다.

선수들은 본격적으로 신발 상태를 확인하고, 무릎 보호대나 테이핑 같은 것들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경기 시작까지 10분도 안 남아 있었다.

레오는 다른 선수들처럼 신발을 확인하는 시늉을 하며 속으로는 걱정됐다. 태어나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몸은 굳어있었고, 이대로 경기를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때, 레오의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네가 멍청하게 플레이하면 내가 등을 세게 한 대 때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과감하게 플레이해. 겁먹을 거 없어. 너 하나 못한다고 우리 팀이 질 것 같아? 우리 지금 18경기 동안 한 번도 안 진 팀이야."

로드였다.

레오의 눈에는 로드가 팔뚝에 두른 주장 완장이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왔다.

레오는 원래 로드를 유소년 팀에 자주 놀러 오고, 합동훈련 때 친절한 좋은 형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계속 달라 보였다. 유난히 어른스러워 보이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부담감이 좀 덜어지는 것 같았다.

레오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과감하게 할게요."

*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릴 때까지만 해도 긴장감이 남아 있었는데.

"패스!"

레오는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바비에게서 공을 건네받았다. 몸이 가벼웠다. 막상 경기에 뛰어보니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오늘의 상대 아스톤빌라는 중앙선 근처로 아무도 오지 않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팅엄은 마치 바르셀로나나 맨체스터 시티처럼 짧고 긴 패스를 이용해 아스톤빌라의 좌우를 차례로 두드리고 있었다.

레오는 그 과정에서 여러 번 공을 만졌고, 자연스럽게 몸이 풀렸다.

공을 잡은 레오는 아스톤빌라의 골대를 향해 공을 슬슬 몰고 가며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앞으로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상대 수비수들에게 공을 뺏길 거리까지 간 순간, 레오는 자신을 막기 위해 좁혀오는 수비수 두 명의 틈을 발견했다.

레오는 왼쪽으로 이동하는 척 몸을 움직이며 공을 왼쪽 발로 옮겼다. 레오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던 수비수는 레오의 움직임을 따라왔고, 오른쪽에 있던 수비수는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수비수 둘 사이의 공간이 넓어진 순간 레오는 공을 오른발로 옮기며 빈 곳으로 뛰쳐 들어갔다. 완벽한 팬텀 드리블이었다.

<와아아아!>

아스톤빌라의 홈팬들은 조용해졌고, 천명 가량의 노팅엄 원정 팬들은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레오는 아스톤빌라의 수비수들이 워낙 빽빽하게 있어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하기 어렵다는 걸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페널티박스 오른쪽 측면에 있어 슈팅 각도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레오는 망설임 없이 슈팅을 때렸다.

<아아아···.>

"아으!"

레오는 노팅엄의 원정 팬들처럼 탄식했다. 공은 골대 위로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레오! 레오! 레오!>

그리고 이어지는 원정 팬들의 환호성. 그제야 레오는 자신이 좋은 플레이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프리미어리그 레벨에서도 자신의 기술이 먹힌다는 걸 알았다.

레오는 원정 팬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더 자신 있게 경기를 치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레오를 로드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아깝다···."

레오가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감에 찬 레오는 또 한 번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고 아스톤빌라의 수비수에게 막혔다. 가장 자신 있는 드리블이었기 때문에 레오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그래서 지금 세 번째 드리블 돌파까지 시도하고··· 또 실패했다.

"무리해서 돌파하려고 하지 마. 주변에 패스해."

공격수 제롬이 한마디 하고 갔다.

"네."

레오는 그렇게 대답하며 드리블 욕심을 줄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자신의 두 번째 드리블을 막아낸 수비수와 오른쪽 측면에서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졌고, 레오는

'이번에는 성공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또 한 번 드리블을 시도했다.

"하하하하!"

"꼬마가 드리블을 못 하네."

"운으로 한 번 제친 게 자기 실력인 줄 알았겠지?"

그리고 근처의 아스톤빌라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이번에도 공을 쉽게 빼앗겼다.

레오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기회가 생기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그렇게 여섯 번째 드리블 돌파 시도에서 레오는 상대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는 데 성공했고,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와아아!>

아쉽게도 노팅엄의 다른 선수들은 레오가 돌파에 성공할 줄 몰랐는지 한 박자 늦게 침투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오는 이번에도 슈팅을 선택했다.

<아아아···.>

이번에는 공이 반대쪽 골대를 맞고 튕겨 나갔다. 아쉬웠지만 레오는 드리블 돌파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다. 그래서 좌절하지 않고 다음 기회에 성공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주장 완장을 찬 로드가 근처까지 와 있었다.

레오는 로드가 자신을 칭찬해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는 꼭 골 넣을게요."

하지만 로드는 망설임 없이 레오의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아으··· 아아."

로드의 손은 정말 매웠다. 레오는 너무 아프고 당황스러워서 인상을 찌푸리며 로드를 바라보았다. 로드가 말했다.

"정신 차려. 너 혼자 경기를 다 망치고 있잖아."

**

로드는 데뷔 시즌 초반에 트래시 토크를 하다가 알렉산더에게 혼났던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그때 로드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얄팍하고 비겁한 방식이다. 적당히 해라.'

생각해보면 그때 알렉산더는 로드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알렉산더가 당장 경기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했더라면.

로드는 알렉산더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이제야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도 레오를 그대로 둬도 상관없었다. 레오가 무리한 드리블 돌파를 남발하고 있었지만 다른 선수들이 레오의 멍청한 플레이를 충분히 메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오도 아주 가끔이지만 드리블 돌파에 성공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레오는 한동안 흔하디흔한 유망주가 되어버릴 것이다.

기술만 좋고 팀원을 사용할 줄 모르는 반쪽짜리 선수 말이다.

유망주들은 처음으로 성공했던 방식으로만 경기를 치르게 되기에 그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로드는 그게 싫었다.

레오가 더 빠르게 더 좋은 선수가 되길 바랐다. 레오는 좋은 녀석이었고 이번 경기만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같이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선수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레오는 노팅엄의 미래였으니까.

그렇기에 로드는 레오가 자신의 플레이를 돌아볼 수 있도록 브레이크를 걸었다.

"축구가 언제부터 혼자 하는 스포츠였어? 네가 드리블을 잘하는 건 아는데 네 원래 플레이 스타일도 이랬어? 드리블만 시도하면 상대가 쉽게 읽는단 말이야. 선택지를 여러 개 갖고 있어야 상대가 속지."

로드의 질책 섞인 말에 레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 레오가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로드는 끝까지 할 말을 했다.

"계속 그 상태면 틀림없이 교체당할 거야. 네가 원래 뭘 잘했는지 생각해 내."

*

하프타임이 되자마자 로드는 알렉산더부터 찾았다. 로드는 알렉산더와 함께 드레싱룸으로 향하며 방금 자신이 레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둘은 지금 드레싱룸 구석에서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레오를 보고 있었다.

"잘한 걸까요?"

로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알렉산더는 아까부터 레오와 로드를 보며 피식거리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모르지. 레오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지."

"···그러면 어떡하죠."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캡틴, 너무 대충 대답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선수들에게 든든한 캡틴인 로드는 알렉산더에게만큼은 늘 솔직하게 얘기하고, 캡틴으로서의 고충을 자주 늘어놓곤 했다.

알렉산더는 이번 얘길 듣고 기분이 무척 좋아져 있었다. 로드가 예전의 자신처럼 미숙한 선수에게 자연스럽게 조언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로드였어도 똑같이 말했을 것 같았다.

알렉산더가 물었다.

"너는 레오에게 그런 조언을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 거지?"

"당연하죠."

로드의 빠른 대답에 알렉산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그게 무조건 옳은 거다. 넌 노팅엄의 캡틴이잖아. 네 결정에 자신을 가져라."

로드가 뚱한 얼굴이 돼서 투덜댔다.

"···그게 뭐예요. 아, 몰라요. 잘못되면 다 캡틴 때문이에요."

"뭐? 왜?"

"다 캡틴 보고 배운 거니까요."

알렉산더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

처음에는 서운했다.

로드에게서 받은 질책은 레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레오는 섭섭함을 덜어내고 진지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돌아보고 있었다.

로드는 좋은 형이었고, 경기 전에 자신을 도와주고 격려해준 주장이기도 했다. 4부리그부터 노팅엄의 전설을 만들어온 선수이기도 했다.

그런 로드가 자신을 이유 없이 질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레오는 하프타임 내내 자신이 2군 팀이나 유소년 팀에서 어떤 플레이를 해 왔는지 복기했다.

하프타임은 불과 15분, 시간은 금세 흘러 어느덧 필드로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수들 개개인에게 전술 지시를 하던 잭슨도 레오에게 다가왔다.

잭슨이 말했다.

"네가 신인 선수라는 건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더 너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구나."

"예."

로드는 '네 원래 플레이 스타일도 이랬어?'라고 말했고, 잭슨도 '더 너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했다.

레오는 후반전에 어떻게 플레이해야 할지 감이 오긴 했다.

드리블은 자신의 여러 가지 무기 중 하나였다. 자신은 패스도 잘했고, 슈팅도 잘했고, 크로스도 잘 올렸다.

상대가 자신을 막으러 나오지 않으면 중거리 슈팅을 날리고, 수비수들이 자신을 에워싸면 주변의 선수에게 패스해준다. 동료들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일대일로 돌파할 자신이 있을 때는 과감한 드리블을 시도했다. 이렇게 경기 상황에 맞춰 필요한 무기를 꺼내 썼던 게 레오의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드리블만큼 다른 무기도 잘 먹힐지 걱정됐다. 이곳은 수준 높은 프리미어리그였기 때문이었다.

레오는 고개를 들어 로드를 바라보았다. 로드는 전력분석팀장 알렉산더와 얘길 나누며 진지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레오는 일단 로드가 조언해준 대로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자신이 틀렸다면 로드가 또 한 번 자신 등을 때려줄 테니까.

*

레오는 발목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심판이 그 모습을 보며 상대 수비수에게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카드 색을 보자마자 레오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아주 좋았다."

근처에 있던 제롬이 칭찬해줬다.

레오는 후반전 시작 5분 만에 좋은 찬스를 만들어 냈다.

드리블하는 척하다가 패스를 주고, 상대 수비수에게 벗어나 다시 패스를 받아 일부러 과장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해 상대의 반칙을 유도했다.

페널티킥을 노린 거였지만, 심판은 아쉽게도 페널티박스 바로 근처에서 프리킥을 선언했다.

골은 아니었지만, 레오는 이게 자신다운 플레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부르는 호칭인 크랙이라는 단어 그대로 자신은 상대 팀의 수비진을 다양한 방식으로 부숴 기회를 만드는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프리킥은 루앙이 차겠다고 했다.

그래서 레오는 페널티박스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가며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플레이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누군가 레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레오는 자신을 견제하려는 상대 팀 선수겠거니 하며 고갤 돌리다가 어색한 얼굴을 발견했다. 로드였다. 레오는 살짝 겁도 났다. 방금 한 플레이도 별로라고 하면 어떡하냐 해서.

하지만 로드는

"좋은 플레이였어. 그렇게 후반전 끝까지 잘해 보자."

이렇게 말하며 어깨를 두들겨주고 프리킥 헤딩을 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인정받는 기분은 환상적이었다. 레오는 마치 골을 넣은 것 같이 기뻤다.

레오는 끊임없이 선수들의 위치를 잡아주는 로드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오늘 로드를 보며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로드는 정말 멋진 선수였다.

그래서 레오는 장기적인 목표를 막 하나 세웠다.

로드처럼 노팅엄의 주장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 74. 레오와 로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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