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36화 (236/245)

< 77. 리그컵 결승전 (2) >

이태양은 난생처음 밟아보는 웸블리(영국 축구의 성지라고 불리는 경기장)의 잔디밭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잔뜩 껴서 우중충했다. 평범한 영국 날씨였다.

"썬, 기다렸지? 다시 하자."

"네."

잠깐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던 감자 머리 알버트가 돌아왔다. 이태양은 다시 알버트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리그컵 결승이 시작할 때까지 40분 남았다.

<글로리~ 글로리~ 유나이티드!>

이태양은 여유가 있을 때마다 관중석을 돌아봤다.

웸블리의 총 좌석은 9만 석, 그런데 지금 절반 정도나 차 있었다. 그 인원만 해도 노팅엄 홈 경기장보다 훨씬 많았다.

<컴온! 노팅엄!>

이곳이 다 차면 어떤 분위기가 될까, 이태양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알버트가 패스를 하며 질문을 걸어왔다.

"노팅엄에 오고 첫 결승전이잖아. 기분이 어때?"

"설레요."

이태양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날 만났던 비앙카와 올리버 덕에 이태양은 평소보다 더 편안한 마음이었다.

"오, 긴장 안 되는 거야? 그럼 오늘은 너만 믿어야겠다. 나 은퇴도 얼마 안 남았는데 커리어에 한 줄 더 적게 도와줘."

"에이, 3년은 더 뛰셔야죠."

"무슨. 올해까지만 하고 은퇴할 거야. 캡틴··· 아니, 알렉스가 전력분석팀원으로 들어오라고 했거든."

알버트가 은퇴한다는 건 자주 얘기를 나눠 알고 있었다. 전력분석팀으로 들어간다는 건 처음 들었지만.

"정말요? 잘됐네요.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래그래, 대신 오늘 열심히 해 줘라. 나도 열심히 할 테니까."

"당연하죠."

알버트는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스트라이커였고, 이태양과 같은 후보 선수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태양은 알버트에게 많은 조언을 듣고 연구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태양은 오늘 꼭 이겨야 할 이유에 '알버트를 위해서.'를 추가하며 알버트의 다음 질문을 들었다.

"아까 올라온 기사 봤어?"

이태양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알버트가 계속 말했다.

"망할 기자 놈들. 왜 우리한테 시비지?"

알버트가 방금 말한 기사는 불과 20분 전에 발표됐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발표된 선발명단을 보자마자 부랴부랴 작성해서 올린 기사일 것이다.

기사의 제목은

<결승전에 후보 선수들 대거 출전, 노팅엄은 리그컵을 무시하는가?>

였다.

리그컵 결승전 프리뷰 기사 만큼이나 빠르게 조회 수가 올라가 SNS나 인터넷상에서 많은 화제가 됐기에 선수들도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한마디 해야겠어요."

옆에서 악셀과 몸을 풀던 몬티도 알버트의 말에 공감했다. 악셀은 월드컵에서 발굴된 수비형 미드필더였고 몬티는 이태양과 벨기에에서 함께 뛰었던 중앙 미드필더였다. 둘은 원래 후보 선수들로 오늘은 함께 선발 출전하게 됐다. 물론, 이 둘은 리그컵에서는 대부분 선발로 뛰었다.

그때 근처에서 몸을 풀던 로드가 넷의 대화를 듣고 말했다.

"썬, 알버트, 몬티, 악셀.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다 관심 끌어 보겠다고 쓰는 기사잖아요."

로드는 리그컵에서도 선발로 뛰었기에 결승전에도 포함돼 있었다.

로드의 말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 푸는 데에 더 신경을 썼다. 공을 높게 차기도 하고, 깔아 차기도 하고 크로스 방식으로 주기도 하면서.

이태양은 그 기사를 보고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왜냐면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K리그 2에서도 인정받지 못해 군대로 향해야만 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군대에서 가능한 한 훈련을 계속했던 일, 어느 날 갑자기 행보관이 와서 노팅엄의 단장 김도운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길 들었던 것도 차례로 생각났다.

이태양은 알버트에게 높은 패스를 보낸 후 관계자 석에 앉아있는 김도운을 찾았다. 김도운은 친구 제임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잘 다듬으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보다는 유럽에서.'

김도운은 기적처럼 나타나 자신에게 입단 테스트를 제안했다. 그날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 이태양은 김도운을 위해서라도 이기고 싶었다.

"썬! 패스!"

이태양은 알버트에게서 능숙하게 패스를 받고 되돌려줬다.

입단 테스트를 위해 찾아온 노팅엄은 정말 따뜻한 구단이었다. 잭슨은 툴툴대며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기술을 알려줬고, 선수들도 인종차별 없이 자신을 맞아줬다. 무엇보다 노팅엄의 팬들도 자신을 환영해줬다.

그래서, 노팅엄에서 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목표를 위해 벨기에 2부리그를 제패했고, 국가대표팀에서 자리 잡아 취업비자를 받고 이곳에 돌아올 수 있었다.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이 떠올랐다.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있을 수 있었는지, 이태양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태양은 고개를 돌려 W석의 한 지점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태양의 유니폼을 흔들고 있는 비앙카와 올리버, 둘 뿐만 아니라 포레스트 펍에 자주 출몰하는 이태양의 지인들이 모여있었다.

이기고 싶은, 이겨야만 하는 이유는 많았다.

아직 자신이 부족할지라도 이태양은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이태양은 혼자만의 조용한 다짐을 하며 열의를 불태웠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컵 결승에서 선수명단을 대거 교체했다. 결승까지 팀을 이끈 유소년, 로테이션 선수들을 배제하고 핵심 선수들을 주전으로 기용했지."

잭슨이 드레싱룸 한가운데 서서 선수들을 돌아보며 일장연설 중이었다.

"반면에 우리 노팅엄은 결승까지 팀을 이끈 너희들을 주전으로 기용했다. 자, 썬. 내가 질문 하나 하겠다. 내가 리그컵을 포기한 것 같나?"

"아닙니다!"

이태양이 힘차게 대답했다. 잭슨은 망설임 없는 이태양의 대답에 픽 웃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그렇게 떠들고 있다. 너희들도 조금 흔들리는 것 같고."

잭슨의 말에 드레싱룸은 숨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잭슨은 이 분위기를 예상했다는 듯 차분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감독 일을 해 오며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동기부여'라는 걸 깨달았다. 너희들을 선발로 세운 이유는 그 동기부여 때문이다. 주전 선수들보다 너희들이 리그컵을 더 갈망할 테니까. 아닌가? 내 생각이 틀렸나?"

잭슨은 단 세 마디로 드레싱룸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선수들은 여전히 침묵했지만, 다들 눈빛이 선명해져 있었다. 몸이 앞으로 쏠리고 있었다.

잭슨은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리그컵에서 최선을 다한 건 주전 선수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다. 리그컵 우승을 원하는 것도 너희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너희들이 무조건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선수들은 잭슨의 한마디 한마디에 고양됐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듣자마자 일제히 외쳤다. 이태양도 마찬가지였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승할 겁니다!"

이들의 머릿속에서 경기 전에 봤던 기사는 자연스럽게 잊혔다. 잭슨은 선수들 제각각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선수 하나마다 해야 할 일을 되새겨주기 시작했다.

"로드, 평소보다 더 뒤에서 플레이해야 하는 걸 잊지 마라."

"몬티, 무조건 전진 패스다. 썬만 봐라."

······

그렇게 이태양의 차례까지 왔다.

잭슨은 잠시 이태양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태양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잭슨이 씩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상태가 괜찮은 것 같군. 경기에서도 지난번처럼 실수 좀 했다고 쪼그라들지 않으면 좋겠다. 알겠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썬 너는 뒷공간을 계속 노려라. 오프사이드를 열 번 넘게 받아도 상관없다. 계속 시도해라. 실패해도 괜찮다. 그 행동만으로도 우리 팀에 도움이 된다."

"알겠습니다."

잭슨은 드레싱룸 가운데로 가서 모두에게 말했다.

"이번 시즌 첫 트로피를 가져오자. 가자!"

"노팅엄!"

선수들은 일제히 대답하고, 필드로 향했다.

*

삐익!

이태양이 맨유의 수비수에게 유니폼이 잡혀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이태양은 필드에 누운 채로 오늘 자주 맞붙고 있는 맨유의 수비수 고드프리를 올려다보았다.

막 주심에게 옐로카드를 받은 고드프리는 침이라도 뱉을 것 같은 얼굴로 이태양에게 투덜거리고 사라졌다.

"더럽게 빠르네."

기분 좋은 말이었다. 이태양이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노팅엄 선수들이 다가왔다.

"오늘 폼 좋은데?"

"고마워."

몬티의 말에 이태양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시각은 전반전 10분. 이태양은 잭슨의 지시대로 상대 수비 라인에 바짝 붙어 끊임없이 뒷공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꽤 잘 먹혀서 방금은 경고와 프리킥까지 이끌어냈다.

프리킥을 위해 페널티박스 근처로 온 로드도 이태양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줬다.

"썬, 지금처럼만 하면 될 것 같아. 아주 좋아."

그리고 불과 5분 후, 이태양은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렸다.

*

맨유의 수비수 고드프리가 이제 다 알았다는 표정으로 이태양을 보며 살짝 웃었다.

이태양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며 시야가 좁아졌다.

자신 있는 플레이를 했을 때 상대에게 막히면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이태양은 애써 펍에서 만난 두 명의 팬을 떠올렸다. 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후우···."

이태양은 크게 심호흡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영화나 드라마처럼 시야가 다시 넓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태양은 잭슨이 경기 전에 해줬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썬 너는 뒷공간을 계속 노려라. 오프사이드를 열 번 넘게 받아도 상관없다. 계속 시도해라. 실패해도 괜찮다. 그 행동만으로도 우리 팀에 도움이 된다.'

시야가 좁으면 플레이도 최소한으로 줄이면 된다.

이태양은 자신이 뭘 할 생각보다는 팀에 보탬이 되기로 마음먹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공을 잡은 선수를 보고, 패스를 줄 수 있을 것 같으면 상황에 상관없이 달린다. 아니면 가만히 서서 체력을 보존한다.

심장이 아직 두근거렸지만 이 정도 플레이는 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다.

"그만 뛰어라. 좀···."

수비수 고드프리가 헉헉대며 말했다. 이태양의 압도적인 속도는 그것만으로도 무기였기 때문에 맨유 수비수들은 어쩔 수 없이 이태양을 쫓아야 했다.

그렇게 맨유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그렇게 전반전 30분가량이 되었고, 또 한 번 이태양이 몬티가 공을 잡은 걸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맨유의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이 이태양을 쫓아 라인을 내렸다.

"패스!"

그리고 이태양이 아닌 이태양이 만들어준 공간으로 이동한 공격수 알버트가 몬티의 패스를 받았다.

알버트는 페널티박스 밖이었지만, 과감한 감아 차기를 시도해 선제골을 넣었다.

<와아아아아!>

<노팅엄! 노팅엄!>

이태양은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함성을 뚫고 알버트를 끌어안았다.

"저만 믿는다더니 알아서 하네요!"

"네 덕이지. 좋은 움직임이었어."

알버트가 이태양의 머리를 헝클며 말했다. 이태양은 씩 웃었다. 이어서 다른 선수들도 알버트를 덮치며 선제골을 축하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 재개 휘슬이 울렸을 때 이태양은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해야 할 일에 계속 충실하니 자연스럽게 극복이 된 거였다.

이태양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반복적으로 침투를 시도하고, 가끔은 직접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태양이 살아나니 노팅엄 전체의 경기력도 좋아졌다.

그렇게 노팅엄은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맨유를 몰아붙였고, 1-0으로 앞선 채로 전반전 종료 휘슬을 들었다.

*

"다들 좋았다. 이대로만 해라."

잭슨의 말에 선수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전술적인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 때 잭슨이 이런 식으로 얘길 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만약에 맨유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너희들은···."

잭슨은 맨유가 어떤 식으로 반격할 수 있다고 말해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하프 타임은 순식간에 끝났다.

선수들은 드레싱룸을 나가기 직전,

"자, 다들··· 노팅엄!"

"가자!"

로드의 선창에 따라 크게 파이팅하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

후반전 10분

노팅엄 FC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3

"···."

이태양은 전광판에 적힌 숫자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후반전 시작 10분 만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드레싱룸에서 대체 어떤 말을 듣고 나온 것일까. 맨유는 전반전과 똑같은 전술을 들고 나왔지만, 선수들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들은 단 세 번의 슈팅에 세 골을 넣었다.

골키퍼의 실수라고 하기에는 이들의 슈팅과 슈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완벽했다.

괜히 리그 3위를 달리는 주전 선수들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 노팅엄은 슈팅 네 개를 했는데도 이번 시즌 은퇴를 선언한 베테랑 골키퍼 데헤아에게 전부 막혔다.

"괜찮아. 아직 시간 많아."

이태양은 로드의 위로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전반전처럼 기계적인 플레이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후반전 30분

노팅엄 FC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3

하지만 20분 동안 점수에는 변화가 없었다.

잭슨은 리그컵에 자주 출전한 1군 선수, 테디와 바비를 투입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맨유의 선수들은 점점 집중력이 오르고 있었고, 노팅엄의 선수들은 급해져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경기 종료 시각이 가까워져 가니 발악하듯 외치던 노팅엄 팬들의 응원 소리도 어느새 작아져 있었다.

이태양도 분위기에 점점 동화되고 있었다.

시야는 다시 좁아지고 있었고, 계속 똑같은 플레이를 해도 괜찮은지 의문이 들었다.

테디가 개인돌파를 한 후 슈팅을 때렸지만, 허공으로 날아갈 뿐이었다.

튕겨 나오는 슈팅을 잡거나 크로스를 헤딩하려고 페널티박스 안까지 들어갔던 이태양은 터덜터덜 노팅엄의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앙선 근처까지 왔을 때, 갑자기 관중석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태양은 고개를 돌렸다.

"경기 아직 안 끝났잖아! 뭐 하는 거야!"

"우리는 아직 경기장 안 나갔어! 할 수 있다고!"

주변 노팅엄 팬들이 침묵하고 있어서인지 이태양의 귀에 비앙카와 올리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계속 응원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둘의 영향을 받은 근처의 팬들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노팅엄의 서포터즈에서도 북을 두드리며 응원가를 다시 시작했다.

경기장이 다시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뭔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이태양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잭슨이 지시한 역할은 팀원 전체가 유기적으로 돌아갈 때나 효과적인 것이었다.

지금 같이 엉망인 상황에서는 슈퍼스타의 활약이 필요했다. 이태양이 늘 벤치에서 지켜본, 미할리스나 제롬 같은 스트라이커나 루앙과 칼, 라이언 같은 크랙들이 보여주는 플레이 말이다. 노팅엄은 위기 상황마다 슈퍼스타들이 제 역할을 해 줘 단 한 번도 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필드 위에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바비와 테디는 이번 시즌 골보다 어시스트에 주력하는 선수들이었다.

그래서 이태양은 자신이 하기로 했다. 저 응원에 보답해야 했으니까. 못 하면 지는 거니까. 이판사판으로 부딪쳐보기로 했다.

"바비, 나 더 공격적으로 움직일 테니까 꼭 패스해줘. 부탁해."

바비는 이태양의 곧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어서 이태양은 윙 테디와 요한, 공격수 알버트에게 같은 말을 했다. 다들 갸웃하면서도 이태양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양은 마지막으로 벨기에에서 함께 이 팀에 온 중앙 미드필더 몬티에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더 공격적으로 뛰어 들어갈 테니까 날 믿고 패스해줘."

< 77. 리그컵 결승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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