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37화 (237/245)

< 77. 리그컵 결승전 (3) >

"어··· 알겠어. 베스테를로에 있을 때처럼 하면 되는 거지?"

"맞아."

몬티는 방금까지만 해도 노팅엄이 이번 시즌 첫 패를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좌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태양의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결의에 찬 얼굴을 보고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꼭 이기자."

"응."

이태양은 자신의 포지션인 최전방으로 향했다. 몬티는 그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점점 벅차올랐다.

벨기에 2부 리그 베스테를로 시절에 이태양은 팀의 에이스였다. 팀이 위기에 빠지면 몬티는 늘 이태양을 찾았다. 이태양은 어떻게든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으니까.

그런 이태양도 노팅엄에 온 후에는 달리기가 빠른 공격수일 뿐이었다. 그냥 후보 선수가 되었다. 몬티는 벨기에 시절부터 이태양을 신뢰했고 친한 동료라 생각했기에 그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다.

하지만, 방금 본 이태양의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과 말은 몬티에게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늘 팀을 승리로 이끌어줬던 이태양이 돌아온 것 같았다.

몬티는 3-1이라고 적힌 점수판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프리미어리그 3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남은 시간은 10분.

분명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길 수··· 있을까?"

몬티는 왠지 모르게 커 보이는 이태양의 등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

<넌 내게 그만한 가치가 있어~>

노팅엄에서 런던의 웸블리까지 온 수만 명의 노팅엄 팬들이 합창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무작정 뛰어다니던 이태양은 평소보다 체력이 훨씬 더 고갈돼 있었다. 그래도 이태양은 이를 악물고 뛰었다.

이기고 싶었고, 그게 자신에게 달렸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주저앉고 싶다는 본능을 누르며 계속 뛰었다.

<넌 올곧게 빛나고 내 삶을 꿈처럼 만들어주거든>

이태양은 이 응원가의 '너'가 노팅엄이라는 걸 김도운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노팅엄이 많은 것을 주기에 우리 팬들도 노팅엄에게 헌신하겠다는 의미의 응원가였다.

이태양은 저 응원가를 부르고 있을 올리버와 비앙카, 그리고 포레스트 펍의 사람들이 어떻게 웸블리에 왔는지 알고 있었다.

노팅엄역에서 런던으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을 이동,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서 버스로 갈아타서 10분 더 이동했을 것이다. 환승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여기까지 오는 데 최소 세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자가용을 타고 와도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거리.

포레스트 펍의 팬들뿐만 아니라 웸블리를 찾은 수만 명의 팬이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해 노팅엄을 응원하러 온 거였다.

하지만 노팅엄은 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리그컵 우승을 저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이태양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중압감을 감당하기로 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끝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니까, 온몸을 내던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익!"

시야가 좁아지든 말든 상대 수비수가 막고 있든 아니든 이태양은 일단 달렸다. 이게 자신의 최대 무기였고, 뭐라도 해야 기회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 발악이야?"

하지만 맨유의 중앙수비수 고드프리는 이태양에게 향하는 패스를 가슴으로 쉽게 끊어내며 말했다.

이태양은 대답하지 않고 그의 가슴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공을 향해 태클을 시도했다.

고드프리는 무릎으로 공을 한 번 더 트래핑해서 이태양의 태클을 피한 후 옆의 중앙수비수에게 패스하는 기교를 보였다.

"적당히 뛰어. 어차피 우리가 이겼···."

고드프리는 그렇게 말하며 경기 내내 자신을 고생시켰던 이태양을 도발하려 했으나, 이태양은 고드프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를 악문 채로 옆의 중앙수비수를 향해 뛰었다.

"자세, 빠르게, 자세, 빠르게."

입단 테스트 시절부터 지금까지 집중해야 하는 순간마다 외웠던 주문을 중얼거리며.

이태양의 속도는 월드클래스 선수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돌진하는 이태양을 발견한 맨유의 중앙수비수는 깜짝 놀라 골키퍼에게 다급히 패스했다.

그렇게 골키퍼부터 시작된 맨유의 공격은 2분 후, 로드의 깔끔한 슬라이딩 태클에 막혔다.

그리고 로드에게 패스를 받은 바비의 발끝에서 마법이 시작되었다.

*

"패스!"

이태양이 바비가 공을 잡는 걸 보자마자 외쳤다. 상대 수비수가 들어도 상관없었다. 속도에서만큼은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바비는 이태양의 움직임을 이미 보고 있었다는 듯 이태양의 외침과 동시에 왼쪽 측면으로 로빙 패스를 날렸다.

이태양이 있는 방향이었다.

이태양은 빠르게 달려 공을 받았다. 공을 잡는 순간 필연적으로 속도가 주는 바람에 맨유의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맨유의 중앙수비수 고드프리는 이태양이 방향전환 후 감아 차기 할 걸 대비하는지 이태양의 우측에 서 있었고, 맨유의 오른쪽 풀백은 이태양이 중앙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정면과 우측 사이 애매한 방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태양의 왼발이 약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웃사이드 슈팅 각도를 안 줄 자신도 있었을 테고.

하지만 그들은 이태양이 후반전 종료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도 최대 속도를 낼 수 있을 줄 몰랐을 것이다.

이태양은 망설임 없이 정면을 향해 공을 차고 급가속했다.

"어어?"

"막아! 걸어!"

이태양은 단 한 번의 치고 달리기로 수비수 둘을 떨어트렸다. 이태양은 골문을 바라보았다. 골문 앞에는 맨유의 수문장 데헤아만 보였다. 데헤아는 이태양 쪽으로 달려 나오며 양팔을 뻗고 한 다리를 굽혀 슈팅 각도를 좁히고 있었다.

각도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태양에게는 강한 슈팅이 있었다. 조금만 망설여도 수비수들이 막으러 올 거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이태양은 오른발을 휘둘렀다. 공이 아웃사이드에 묵직하게 얹히는 느낌이 났고, 공이 대포알처럼 쏘아져 데헤아의 손에 맞고도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골망이 출렁거렸고, 데헤아가 제 자리에서 발라당 넘어졌다.

삐익!

이어서 주심의 골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와아아아!>

동점 골도 역전 골도 아닌 추격 골이라 그런지 노팅엄 팬들의 함성은 평소보다 작았다.

이태양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아직 두 골을 더 넣어야 했다.

이태양은 세레머니를 하지 않고, 골대로 달려가 공을 주워 센터서클로 빠르게 뛰어가며 맨유의 진영에 남아있는 선수들에게 외쳤다.

"빨리 돌아가요! 시간 없어요! 그리고 바비! 잠깐만!"

이태양의 재촉에 천천히 뛰던 선수들은 빠르게 뛰어 노팅엄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바비는 이태양이 빠르게 하는 얘기를 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도 경기는 재개되지 않았다.

이태양은 센터서클 중앙에 공을 내려놓고, 센터서클 옆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주심에게 말했다.

"경기 재개해주세요. 빨리. 부탁드려요."

이태양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가득 서려 있었다. 주심은 그 얼굴을 보고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맨유의 스트라이커를 손짓해 빨리 오라고 불렀다.

맨유의 스트라이커는 시간을 끌 생각이었는지 느릿느릿 걸어오다가 주심의 손짓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뛰어왔다.

주심은 맨유의 스트라이커가 오자마자 바로 휘슬을 불어줬다.

삐익!

이태양은 휘슬이 울리고, 맨유의 스트라이커가 킥오프하자마자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렸다.

한 명이 압박하는 걸 피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골을 넣은 이태양이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하자 노팅엄의 선수들도 합류했다.

수비라인을 전체적으로 올리고 미드필더부터 공격진들이 맨유의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볼을 돌리는 걸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익!"

고드프리는 이태양의 슬라이딩 태클을 간신히 피하고, 이어서 쫓아오는 알버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을 앞으로 뻥 찼다.

목표 없이 찬 공은 당연하게도 로드의 발에 잡혔다.

노팅엄이 공을 잡자 맨유의 선수들은 전부 뒤로 물러났다.

3-2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드에게서 패스를 받은 바비가 공을 잡고 제자리에서 툭툭 치며 왼쪽으로 패스를 보낼지 오른쪽으로 패스를 보낼지 고민하는 것 같은 몸짓을 보이며 천천히 전진했다.

그리고 방금까지도 정신없이 압박하던 이태양은 맨유의 미드필더진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미드필더들을 지나자마자 느닷없이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어어?>

그 모습에 관중 일부가 당황한 소리를 냈다.

"막아! 막아!"

관중뿐만이 아니었다. 맨유의 선수들도 이태양이 뭘 하려는 지 한발 늦게 깨닫고 다급히 움직였다. 중앙수비수 둘은 뒤로 물러나고, 양쪽 풀백은 중앙으로 좁혀 들어왔으며 미드필더 둘도 이태양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이태양을 향해 바비는 중앙선에서 망설임 없이 패스를 보냈다.

이태양이 경기가 재개되기 전에 자신이 달리기 시작할 때 조금 부정확해도 되니까 상대 수비라인과 골키퍼의 한 가운데에 공을 떨어뜨려 달라고 바비에게 부탁했다. 어려우면 골키퍼 쪽에 가깝게 줘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바비는 선제골을 넣은 이태양을 믿어보기로 했고, 그의 주문대로 패스를 줬다.

"빠···흡! 하! 빠르게!"

이태양은 공을 보고 있지 않았다. 호흡도 주문도 아닌 무언가를 외우며 속도를 더 올렸다. 분명 체력이 다한 것 같은데도 여태까지 중에··· 아니, 태어나서 가장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이태양은 맨유의 선수 여섯이 둘러싸기도 전에 최종 수비라인을 뚫고 나갔다. 그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중앙수비수들조차 발을 갖다 대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순수한 속도가 만들어내는 장면에 웸블리의 관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 시작했고, 함성을 모으기 시작했다.

<오오오->

이태양의 앞에 공이 떨어졌다. 수비라인과 골키퍼 한가운데 정확히 떨어지는 패스였다. 데헤아가 다급히 뛰쳐나오고 있었다.

바운드 되며 앞으로 튀었기에 공은 데헤아와 더 가까웠다.

이태양은 자신을 쫓아오는 맨유 선수들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데헤아가 막아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태양은 남은 힘을 끌어모아 허벅지에서 끝까지 힘을 풀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 다리를 쭉 뻗어 데헤아보다 한 템포 빠르게 공을 건드릴 수 있었다.

공은 이태양의 발등에 맞고 데헤아의 키를 살짝 넘겼다.

이태양은 거기까지만 보고 옆으로 굴렀다. 데헤아와 부딪치면 100% 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태양은 공이 골망으로 들어가는 건 보지 못했지만,

<오오오- 와아아아아아!>

노팅엄 팬들이 참아왔던 함성을 터뜨린 덕에 동점 골이 들어갔다는 걸 알았다.

중립 경기장인 웸블리가 순간 노팅엄의 홈 경기장이 된 것 같았다.

이태양은 골문 쪽으로 몇 번 구르고 벌떡 일어났다. 전광판의 숫자가 어느새 3-3이 돼 있었다.

아직 한 골 더 필요했다. 이태양은 세레머니를 하지 않고 골대 안을 느릿느릿 굴러다니고 있는 공을 안고 다시 노팅엄 진영을 향해 달렸다.

그 덕에 세레머니를 할 줄 알고 달려왔던 노팅엄의 선수들은 이태양을 쫓아 달리며 말했다.

"진짜 미쳤어!"

"이 정신 나간 자식아!"

"최고야!"

이태양은 센터서클로 돌아가며 자신이 방금처럼 달릴 수 없을 거라는 걸 자연스레 깨달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허벅지는 뜨거운 걸 넘어 아팠다.

그래서 이태양은 센터서클에 공을 내려놓자마자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가려는 노팅엄의 선수들을 불렀다.

"잠깐만. 내 얘기 좀 들어줘."

경기장에서 경기력이 가장 좋은 선수에게는 자연스럽게 카리스마가 생긴다. 선수들은 바로 이태양 주변에 모였다.

이태양은 그런 선수들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미끼를 할게."

**

삐익!

경기가 재개되는 휘슬 소리가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맨유의 핵심 중앙수비수인 고드프리는 공을 뺏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저 동양인을 어떻게 막을지 생각해보고, 몇 초 만에 방법이 없단 걸 깨달았다.

순수하게 빠른 달리기, 순수하게 강한 몸싸움, 순수하게 높은 점프력. 이런 신체적인 능력은 축구에서 가장 답이 없는 요소들이었다.

<노팅엄! 노팅엄! 노팅엄!>

2분도 안 되는 시간에 두 골이나 먹혔다. 덕분에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고, 고드프리는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끊어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맨유의 선수들은 기세가 죽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하고 공을 막 빼앗겼다. 노팅엄의 공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고드프리는 수비수 중에 경험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수비수들과 근처 미드필더에게 외쳤다.

"다들 집중해! 아직 동점이야. 쟤네 기세가 너무 올랐으니까 반칙으로라도 끊어내서 흐름을 우리 쪽으로 가져와야 해. 알겠지?"

정당한 방법이 안 된다면 편법을 쓰면 된다.

고드프리는 마치 아까처럼 미드필더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이태양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미드필더를 지나자 이태양이 방금 골을 넣을 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

맨유 선수들은 이태양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미리 물러날 수 있었다.

미드필더부터 수비라인까지. 무려 여덟 명의 선수가 이태양 하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물러나도 패스가 날아오지 않았다.

수비라인을 이끌고 있던 고드프리의 귀에는 그제야 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멍청이들아! 압박해!"

그제야 고드프리는 이태양이 아까보다 느리게 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 노팅엄의 미드필더와 공격수, 풀백이 전부 자리를 잡았다는 것도 알았다.

노팅엄은 이태양이라는 미끼를 이용해 중거리 슈팅과 크로스가 가능한 위치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올라온 것이다.

완벽하게 속았다.

"썬은 내가 마크한다! 다들 압박해!"

맨유 선수들은 고드프리가 말하기도 전에 부랴부랴 압박을 시도했다.

수비라인이 걱정됐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허무하게 실점할 수는 없었다.

고드프리는 이태양에게 다가갔다. 이태양은 노팅엄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고드프리는 공이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했다.

노팅엄의 중앙 미드필더 몬티가 왼쪽 윙 요한에게 패스하고 있었다. 아직 애매한 위치였기에 고드프리는 안심하고 있었다.

고드프리는 이태양에게 거의 가까워졌다. 고드프리는 이태양의 유니폼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태양이 제자리에서 손을 들더니 갑자기 페널티박스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고드프리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왼쪽 윙인 요한이 먼 곳에서 완벽한 곡선을 그리는 얼리 크로스를 올렸다.

공은 골키퍼와 수비라인 사이로 날아왔다. 헤딩하기는 살짝 낮아 보였다.

하지만 이태양은 그것마저도 예상한 듯 순간적으로 속도를 더 올리고 점프했다. 고드프리의 눈에는 이태양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태양은 빠른 속도로 날아 요한의 크로스에 정확히 머리를 갖다 댔다.

아름다운 다이빙 헤딩 슛이었다.

그리고 맨유의 골망이 출렁였다.

<와아아아아아!>

고드프리는 노팅엄 팬들의 함성을 들으며 패배를 직감했다.

*

머리에 맞는 감각은 있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헤딩을 시도한 이태양은 공을 머리에 맞추고 바닥에 미끄러지며 공을 끝까지 바라봤다.

공은 데헤아의 손이 닿지 않는 것으로 슈팅한 것처럼 빠르게 날아가 꽂혔다.

공이 골망을 출렁였다.

이어서 들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와 경기장이 터질 듯 울리는 팬들의 함성에 이태양은 엎어진 채로 포효했다.

"으아아아아!"

자신이 끌어낸 광경에 이태양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포효를 마친 이태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응원해줬던 W석에 있을 포레스트 펍의 팬들, 아니 친구들을 향해서.

이태양은 그들이 앉아있는 좌석 아래 필드에 금방 도착했고, 자신의 유니폼을 찢어지라 흔들고 있는 비앙카와 올리버를 발견했다.

이태양은 그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함께 경기를 뛴 동료들도 자신의 양옆에 서서 주먹을 흔들며 포효했다.

W석에 앉은 팬들의 함성이 더 커졌다. 포레스트 펍의 사람 중 몇은 울기까지 했다.

최고였다.

앞으로도 이런 광경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태양은 고개를 든 채로 환하게 웃었다.

그때, 고개를 들고 있던 이태양은 눈이 부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대체 뭣 때문에 눈이 부신 건지, 이태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어느새 걷혔고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포레스트 펍의 중앙 테이블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온갖 영국 신문들이 모여있었고, 테이블 바로 앞에 선 이태양은 신문들의 첫 면 제목을 사람들에게 읽어주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격수! 최단시간 해트트릭 달성!>, <웸블리에 태양이 비춘 날>···."

제목 하나가 불릴 때마다 포레스트 펍에 모인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렇게 열일곱 개에 달하는 첫 면 제목을 읽은 이태양은 모두에게 말했다.

"자요. 어때요? 대단하죠?"

이태양이 어깨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며 으스대는 얼굴을 했다. 그 모습에 포레스트 펍 사람들은 모두 배를 잡으며 웃어댔다.

그때, 사람들 사이로 포레스트 펍의 주인인 사라가 다가왔다.

사라는 미소를 지은 채로 품에 커다란 트로피를 안고 있었다.

이태양이 갸웃했다.

"어? 그건···."

"리그컵 우승 트로피 모형이에요! 썬! 이 트로피에 사인 좀 해 줘요. 몇 년만 지나도 보물이 될 거예요."

"아, 모형이었구나. 당연히 해야죠."

이태양이 받침대에 사인하자마자 다른 사람들도 기다렸다는 듯 유니폼, 공, 머플러 등을 내밀며 사인해달라고 했다.

이태양은 장난으로 거만한 척하며 사인했고, 팬들은 웃으면서 야유했다.

그렇게 사인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올리버와 비앙카의 차례가 됐다.

"우리 덕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지?"

"틀림없어. 내가 썬이 우리를 보는 걸 봤거든. 그다음부터 썬이 잘했어."

올리버와 비앙카의 말은 정확했다. 그래서 이태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두 분 덕이에요. 아니, 여기 계신 모든 분 덕이에요."

"오오오!"

펍의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다들 감동한 얼굴로 이태양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 비앙카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한테 이번 대활약의 지분이 있는 거지?"

"그렇죠? 지분이 있으니 주급 떼서 오늘 펍에 전부 쏠게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이태양은 일단 수긍하며 농담도 던졌다. 사람들은 환호했으나 비앙카만은 진지한 얼굴로 이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끌시끌하던 펍은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이태양과 비앙카의 대화에 집중하게 됐다.

비앙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거 말고 다른 걸 해 주면 안 될까···?"

"뭔데요?"

"적어도 다음 시즌까지는 우리 팀에 남아줄 수 있어···?"

이태양은 방금 팬들에게 자랑했던 기사들을 전부 읽었다. 그래서 기사 내용에 '이태양에게 관심이 있는 빅클럽이 최소 다섯 개 이상이다.'라는 문구를 여러 번 봤다.

비앙카는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남아줘!'라고 과감하게 말하지 못하는 건 이태양의 입장까지 배려해서 일 것이다.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상황에 이태양에게 남아달라고 하는 건 욕심이었으니까.

이태양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태양이 입을 열려는 찰나 조용히 있던 올리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쟤가 어딜 간다고 그래. 다른 팀으로 도망가면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안한 얼굴이었다.

다른 팬들도 올리버와 비앙카의 말을 듣고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틀림없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태양은 이들의 불안한 표정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자길 필요로 해 준다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도 2부 리그를 전전하던 자신이 세계 최고를 향해 달려가는 구단의 팬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다니.

정말 행복했다.

그래도 그냥 쉽게 남겠다고 말하면 재미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태양은 이렇게 말했다.

"빅클럽에서 제안이 들어온다면 들어볼 생각이 있는데···."

이태양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다들 당황했다. 이태양은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으며 남은 말을 했다.

"들어보기만 하고 안 갈 거예요."

속은 걸 깨달은 팬들이 억울한 얼굴을 했다. 이태양은 그들의 표정을 즐기며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다음 시즌에 저는 미할리스와 제롬의 자리를 빼앗을 거예요. 리그컵 결승에서 MOM까지 받았으니까 이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서 주전 자리를 차지해야죠. 할리가 스트라이커로 돌아와도 이길 거예요. 그렇게 노팅엄의 주전 공격수가 될 거예요. 뭐,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이태양은 자신을 바라보는 팬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노팅엄이 절 필요로 하는 한, 저는 안 떠날 거예요."

< 77. 리그컵 결승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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