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기다림의 보답 (2) >
"린다, 고마워요."
"뭘요. 식사는 괜찮았어요? 도날드가 저번 주부터 뮤튜브로 요리 공부해서 직접 만든 거거든요."
"정말이에요? 너무 맛있어서 당연히 린다가 했을 줄 알았는데."
알버트의 능글맞은 말에 감자 머리 선수 중 하나인 도날드의 부인 린다가 부드럽게 웃으며 식탁 위에 후식용 디저트들을 내려놓았다.
각종 과일과 견과류가 담긴 건강한 디저트들이었다.
이어서 집주인 도날드가 녹색 음료가 담긴 잔을 여러 개 담은 쟁반을 들고 현관으로 나왔다.
알버트뿐만 아니라 감자 머리 선수들은 지금 도날드의 정원에 마련된 플라스틱 식탁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도날드가 식탁 근처에 와서 말했다.
"아무나 빨리 좀 받아 봐. 무거워."
"엄살은."
사무엘이 쟁반을 받아줬다. 도날드는 자연스럽게 빈자리에 앉았고, 린다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알버트가 말했다.
"도날드, 오늘 파스타랑 맛있는 양념 올라간 생선구이 네가 한 거라며. 정말 저번 주부터 뮤튜브로 공부까지 했어?"
"···에이, 뭐 그런 거 가지고. 이거나 마셔."
"오오, 도날드가 부끄러워한다!"
감자 머리 선수들이 도날드를 놀렸고, 도날드는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역시 각종 몸에 좋은 채소와 과일을 사과를 베이스로 갈아 만든 이 채소 과일즙은 참 맛있다고 생각하며.
감자 머리 선수들은 민망해서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해 보려고 애쓰는 도날드를 놀리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공통사인 노팅엄 FC와 훈련, 그리고 최근 있었던 경기 얘기가 이어졌다. 이들은 본래 다 다른 팀에 있었고, 노팅엄이라는 팀을 통해 만나게 된 선수들이었으니까 대화 주제는 늘 이랬다.
그렇게 가로등이 하나둘쯤 켜질 시간이 되었고 도날드가 얘기하나를 꺼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왠지 모르게 아무도 꺼내지 않았던 얘기였다.
"다큐멘터리 영상 괜히 솔직하게 찍었나?"
순간 식탁에는 정적이 흘렀다. 다들 피하고 있던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알버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의 마지막 다큐멘터리인데 눈치 볼 필요 없었잖아. 단장님은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진지하게···."
감자 머리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김도운의 진지하면서도 정말로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무패우승을 일궈내서 꼭 이름을 남기라고 말했다.
외부에서는 김도운을 노팅엄의 기적을 일궈낸 신, 기계같이 일만 하는 감정 없는 사람이라고 떠들기도 했지만··· 감자 머리 선수들은 다 알고 있었다.
김도운은 다른 구단에서는 본 적 없었던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단장이라는 걸.
말이 없는 편인 피터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이 구단에는 참 좋은 사람이 많단 말이지."
감자 머리 선수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팀 동료들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부터 시작해 관리인 같은 일반 직원들까지. 이곳에는 다른 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무언가가 늘 있었다.
이번에는 사무엘이 말했다.
"우리가 로컬 보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여기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아니면 노팅엄이 4부 리그로 떨어지기 전에 이적제안을 들을 걸 그랬어."
윌리엄의 말에 알버트가 처음 듣는다는 듯 물었다.
"너 이적 제안받았었냐?"
"응, 근데 그때 노팅엄 재정이 엉망이라고 에이전트가 말해서 안 왔지. 그때 내가 만약에 왔었으면 알렉산더랑 같이 이 팀을 재건하는 기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웃기시네. 5부리그로 강등되자마자 떠났을 거면서."
"팩트로 찌르지 말라고."
윌리엄은 로버트의 말에 킬킬거리며 말했다.
감자 머리 선수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을 그저 얘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만큼 지금의 노팅엄은 매력적인 구단이었으니까.
슬슬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알버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입을 열었다.
"나랑 도날드, 피터가 이번 시즌 끝나고 은퇴고··· 사무엘, 윌리엄, 로버트가 다음 시즌에 은퇴한다고 했지?"
"응. 그래도 다음 시즌에는 미련 없어. 꼬마 스카우트한테 우리 포지션 후보 선수들 구하는 게 좀 애매하다는 얘길 들어서 은퇴를 미룬 거거든. 다다음 시즌부터는 유소년 선수들을 후보로 쓴다고 하더라고. 너희들이랑 똑같이 이번 시즌에 불태우고 다음 시즌은 적당히 할 거야."
사무엘의 대답에 알버트는 씩 웃었다.
"그래. 그럼 이번 시즌에 불태워보자고. 단장님 말대로 해 보자. 앞으로 남은 경기는 우리가 주역이긴 하잖아?"
공격수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한 알버트를 제외한 다섯 명은 다 주전으로 뛸 것이다. 알버트도 예전보다 더 많이 뛰게 될 것이다.
물론, 당장 언론과 팬들의 관심은 리그보다는 다음 주 있을 챔피언스리그 8강 전 PSG와의 경기와 FA컵 8강 전 맨체스터시티와의 경기에 쏠릴 것이다.
노팅엄의 이번 목표는 트레블이고 노팅엄의 주전 선수들은 그만큼의 기량을 보여줬으니까.
감자 머리 선수들은 주역이 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버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알버트는 이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악하는 게 어울리는 놈들이잖아? 끝까지 제 역할을 다 해 보자고. 노팅엄을 위해서!"
나이가 든 감자 머리 선수들은 좋아하는 팀에서 뛸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는 걸 잘 알았다. 팀에서 역할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역할에 자부심이 있었다.
"동감이야. 자, 좀 창피하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
사무엘이 그렇게 말하며 빈 잔을 들었다. 다들 사무엘의 의도를 눈치채고 모두 빈 잔을 들었다.
그들은 알버트가 마지막에 한 말을 외치며 빈 잔을 부딪쳤다.
"노팅엄을 위하여!"
*
<와아아아아!>
3개월 전, 미국에서 건너와 노팅엄에서 거리공연을 시작한 자칭 싱어송라이터 니콜은 관중의 함성에 동화되어 외쳤다.
"와아아아아!"
노팅엄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함성은 꺼졌다. 하지만 니콜은 아직 가슴이 두근거렸다. 함성을 지른 여운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노팅엄을 응원하는 건 최고였다.
"아주 푹 빠졌구만."
"헨리, 표 구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헨리는 평일에 런던의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이나 쉬는 날을 통해 노팅엄에서 거리공연을 즐기는 니콜의 선배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헨리는 노팅엄 경기장에서만 무려 3년이나 거리공연을 해 왔으니까.
헨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사랑은 무슨. 나중에 갚아."
"너무해요!"
둘의 대화에 주변 음악가들도 웃었다.
관중석에는 음악가들이 모여있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은 경기 표를 구해 경기를 즐기곤 했다.
왜냐면, 노팅엄의 팬이 아니었던 음악가들도 이곳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다 보면 노팅엄의 팬이 되니까.
다들 그런 과정을 거쳐왔기에 음악가들은 신입 니콜을 귀엽다는 듯 바라봤다.
오늘 노팅엄의 선수단 중 절반은 평소 로테이션으로 뛰던 선수들이었다. 그랬기에 노팅엄은 오늘 상대인 브라이튼을 상대로 선제골은 넣었으나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경기가 살짝 지루해지자 니콜은 주변 음악가들에게 말을 걸었다. 경기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너희는 누구로 곡 쓸 거야?"
"야야, 작게 말해."
니콜이 무슨 질문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헨리가 다급히 말했다.
며칠 전 노팅엄에서 최소 3개월 이상 공연해 구단의 연락처를 받아놓은 음악가들은 전부 <응원가 공모전>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응원가가 상대적으로 약한 선수들의 응원가를 만들어달라는 공모전이었다. 선수 하나마다 상금이 걸려 있었고, 그 상금 또한 무척 많았기에 여기에는 어제 밤을 새운 음악가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공모전은 비밀이었다.
선수들에게 비밀로 뜻깊은 선물을 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니콜은 실수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말할게요···."
"그래."
시무룩해진 니콜에게 뒤에 있던 음악가가 말했다.
"나는 후이 응원가 만들려고."
"후이요?"
니콜이 바로 기운을 차리며 물었다.
"응. 후이는 응원가가 없잖아. 그 이상한 구호만 있지."
이상한 구호라는 말에 니콜이 킥킥 웃었다. 축구장에서는 프리킥을 막거나 찰 때, 관중이 쿵쿵거리며 골키퍼나 키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응원법이 있었다. 이상한 구호는 후이가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막을 때, 사람들이 쿵쿵거리는 것 대신에
<후이! 후이! 후이! 후이! 후이이이이!>
라는 외침을 하는 거였다.
이게 몇만 명이 함께 하면 되게 웅장하게 들리는데 막상 할 때는 웃음도 나오는 그런 응원이었다.
이어서 다른 음악가들도 말했다.
"나는 루카. 구단 영상을 보면 맨날 자고 있거나 아무 말 않고 하늘만 멍하니 보잖아. 그러면서도 라이언은 졸졸 따라다니고. 그걸 컨셉으로 써 보려고."
"킹이랑 야수를 합쳐서 써 볼 거다."
"한스가 동네 아저씨같이 생겼잖아? 그런 한스 응원가로는 컨트리 느낌이 괜찮을 것 같아서 만들어 볼 거야. 괜찮은 거 나올 것 같지 않아?"
구단이 정해준 응원가가 약한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 1군 명단인 23명에 속한 선수들이었다.
후이, 킹, 한스, 루카, 그리고 후보 선수 몇과 감자 머리 선수 여섯.
니콜은 음악가들이 하고 싶다는 선수들의 이름을 들으며 갸웃거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무도 감자 머리 선수들로는 안 만들어요?"
경기장에서 막 감자 머리 로날드가 측면에서 머리로 공을 따내 공격의 활로를 열어주고 있었다. 니콜을 비롯한 음악가들은 잠시 경기에 집중했다가 슈팅이 아쉽게 빗나가는 걸 보고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헨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니콜에게 말했다.
"감자 머리 선수들은··· 아, 너는 아직 단체 대화방에 안 들어왔지?"
"네? 거기서 금지하기라도 했어요?"
헨리가 말하는 단체 대화방은 노팅엄에서 공연한 지 1년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헨리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먼 좌석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저기 좀 봐 줄래?"
"뭘요··· 어어? 저분 엘라 아니에요? 저분은 케네스? 어? 저분들은 코피랑 히메나··· 작은 방 밴드?"
노팅엄에서 오랜 기간 공연하며 메이저로 나간 대표적인 세 팀이 모여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솔로 가수와 두 팀이었다.
젬베 치며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케네스 그랜트.
재즈가 주력이지만 다양한 음악을 늘 시도하는 엘라와 에이바 듀오.
마지막은 노팅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응원가를 만든 <작은 방> 밴드.
케네스는 최근 미국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고, 두 달 전쯤에 엘라와 에이바는 수십 개의 나라에 곡을 차트인 했으며 <작은 방> 밴드는 작년에 유럽 주요 도시 투어를 성황리에 해냈다.
니콜이 존경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니콜은 저 사람들이 뭐 어때서라는 얼굴로 헨리를 바라보았다.
헨리가 부가 설명을 해 줬다.
"저 세 팀이 감자 머리 선수들의 응원가를 만들 거라고 단체 대화방에서 얘기했거든."
그래서 다들 감자 머리 선수들을 포기한 거였다.
저들에게는 절대로 이기지 못하니까.
니콜은 상황을 이해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세 팀을 바라보았다. 세 팀의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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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국 두 명씩 나눠서 만들자는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거지? 우리는 윌리엄이랑 로버트로만 쓰고 싶었는데···."
엘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방 밴드의 보컬이자 마야와 손민국의 친구인 코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여섯을 모아 한 곡만 만들 생각이라서. 히메나, 그렇지?"
"응, 감자 머리 선수들을 나누는 것보다는 합치는 게 좋을 거 같아."
코피는 나누는 것도 상관없었지만, 작사 작곡을 거의 혼자 해내는 히메나가 반드시 그렇게 하고 싶다고 어제 말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히메나의 이유도 너무 그럴듯해서 수긍했다.
히메나와 코피는 팀 닥터인 마야를 통해 감자 머리 선수들이 얼마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에 헌신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히메나는 그들 모두를 위한 헌정 곡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엘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댔다.
"아씨··· 너희랑 겹치면 너희나 우리나 좋을 게 없는데··· 너희 노래도 좋고 우리 노래도 좋을 거 아냐. 하나가 묻히는 건 아깝잖아."
엘라는 딱히 싸우려는 게 아니었다. 이 세 팀은 노팅엄이 4부 리그 때부터 옆자리에서 함께 공연해온 동료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아직도 서로를 존중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엘라는 "어쩌지···." 라며 듀오인 에이바와 의논을 시작했다.
코피 또한 경기장에 정신이 팔려있는 히메나를 제외하고 다른 <작은 방> 멤버들과 "경쟁하는 방법밖에는 없나··· 히메나는 설득 안 되지?"라는 말을 시작으로 더 좋은 방법이 없는지 의논했다.
그러고 있는데 조용히 있던 솔로 가수 케네스가 갑작스럽게 제안 하나를 꺼냈다.
"저기, 이번에는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때요? 나도 감자 머리 선수들을 떼놓는 건 별로 안 좋아 보여서 한 곡만 만들려고 했는데."
"힘을 합치자고?"
의외의 제안에 엘라가 솔깃한 얼굴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코피가 히메나를 툭 치며 물었다.
"어때?"
"나는 좋아. 같이 연주만 해도 즐거울 것 같아."
얘기를 듣고 있긴 했는지 히메나는 바로 대답해줬다. 엘라와 에이바도 긍정적으로 말했다.
"오늘 경기 끝나고 펍에서 진지하게 얘기해보자. 우리가 자주 가는 펍이 있거든. 우리가 한잔 살게."
"오오!"
그렇게 세 팀의 동맹이 만들어졌다.
다들 하이파이브하며 즐거워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히메나는 오늘 경기에 나선 감자 머리 선수 다섯을 집중해서 봤다.
특히, 첫 골을 넣은 이태양이 아니라 이태양의 골을 만들어준 도날드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왠지 가사가 떠오를 것 같아서.
*
작곡 작사를 담당하고 있는 히메나, 엘라, 케네스는 브라이튼 전에 이어 오늘 경기도 함께 보았다.
오늘은 감자 머리 선수들 전원이 뛰었고, 노팅엄은 또 승리했다.
그런 기분 좋은 날인데도 엘라는 <작은 방> 밴드의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절규하듯 외쳤다.
"으아아, 우리 진짜 시간 없어."
케네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히메나를 바라보았다.
공모전 마감이 다음 주까지인데 이들은 아직 함께 연주해서 만들 곡이 뭔지 정하질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계획표 자체를 아예 잡지 않았다.
다들 노팅엄의 우승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간도 많았기에 다들 금방 만들 수 있을 거라 자신만만했지만, 히메나가 문제였다.
셋 모두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룬 작곡가들이었기에 브라이튼 전 이후 펍에서 셋이 각자 곡을 만들고,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곡을 뽑아 그걸 중심으로 만들어 보자고 얘기했는데··· 히메나의 곡 완성이 예상보다 늦어져서 막다른 길까지 몰린 것이다.
"히메나, 아직도 곡 못 썼으면 우리가 만든 두 개 중에 뽑아야 해. 오늘이 마지노선이야."
엘라의 말에 히메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아침에 곡은 다 나왔고 가사가 완성이 안 됐어. 내 곡이 가장 좋으면··· 나중에 가사를 조금 바꿔도 될까?"
"어? 정말? 나왔어? 당연히 가사 몇 줄 정도는 상관없지."
엘라가 화색 하며 말했다.
케네스 또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히메나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전자피아노 앞에 앉았다.
"제목은 <우리는 다 알고 있어> 야."
엘라와 케네스의 노래는 이미 들었고, 히메나는 자신만 노래를 보여주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바로 멋들어진 연주로 손을 풀었다. 조금 떨리긴 했지만, <작은 방>의 멤버들도 전부 최고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시작할게."
히메나의 말에 둘은 눈을 감았고, 히메나는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응원가로 부를 수 있는 단순한 음의 연속이었지만, 히메나 특유의 부드러운 주법에 히메나의 목소리가 더해지자 왠지 모르게 감미로우면서도 풍부한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히메나의 입에서 나오는 가사에 엘라와 케네스가 눈을 다시 뜨고 입을 살짝 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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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어.
알버트가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맨유를 이길 수 있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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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나의 노래에는 감자 머리들의 헌신이 담겨 있었다.
삶이 담긴 노래는 어려운 기교가 잔뜩 들어간 음악보다 훨씬 더 깊고 와닿게 들릴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엘라와 케네스는 히메나의 노래를 끝까지 들으며 이 노래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걸 상상해봤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감자 머리 선수들이 이 노래를 듣는 걸 상상해봤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히메나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무조건 이거로 하자!"
< 78. 기다림의 보답 (2) > 끝